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66화 (66/201)

잠실 입성

그날 저녁.

송석현은 짐을 싸 들고 집으로 향했다.

연락도 없이 송석현이 나타나자 어머니는 깜짝 놀라 영문을 몰랐다.

“무슨 일이야? 그 짐은 뭐고? 너 혹시 잘린 거니?”

송석현은 짐을 내려놓곤 활짝 웃었다.

“엄마! 나 내일부터 잠실로 출근해! 1군이야!”

* * *

저녁은 삼겹살 파티였다.

어머니는 고기를 굽는 족족 송석현의 밥그릇에 올려놨다. 송석현은 다시 동생과 어머니 밥그릇에 올려놓곤 쌈을 하나 쌌다.

“자, 한번 드셔 봐.”

“얘는. 남사스럽게.”

“에헤이, 이런 날 먹는 거지. 어여 드셔.”

어머니는 못 이기는 척 쌈을 입에 넣었다.

송석현은 손에 묻은 물기를 바지에 슥슥 닦았다.

“뭐, 벌써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이제 우리 집안도 숨통이 트였어. 내 월급만 가져와도 우리 세 식구가 충분히 먹고살 수 있어. 틈틈이 저축도 할 수 있고.”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야. 네가 이렇게 빨리 돈을 벌 수 있으니 너희 선배들 빚도 빨리 갚을 수 있을 거 아니냐.”

“응, 갚아야지. 벌써 병원비며 뭐며 꽤 나갔지?”

“아무래도…… 그렇지. 도매 외상도 정리하고 하다 보니 우리가 쓴 건 없는데 돈이 많이 비었지.”

“그럼 당장은 못 갚을 거고……. 일단 나 월급 나오면 여유 되는 대로 갚아 나갈게.”

“그래야지. 호의로 빌려준 거라고 해도 빌린 돈은 얼른 갚는 게 좋다.”

송석현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도 이제 공부만 열심히 해. 형이 너 대학까진 어떻게든 보내 줄게.”

“대학은 내가 알아서 할게. 형이야말로 1군에 갔다고 너무 들뜨지 말고 잘해.”

“짜식이. 벌써 으른같이 말하네.”

어머니가 말했다.

“그럼 내일부터 여기서 출퇴근하는 거니?”

“응, 그럴 거야.”

“잘됐구나, 잘됐어. 이제 엄마도 집에 있을 테니까 네 뒷바라지 제대로 해 줄게. 너 학교 다닐 땐 일 때문에 제대로 뒷바라지도 못해 줬잖아.”

“뒷바라지가 뭐 있다고. 이제 나 다 컸어. 밥 잘 먹고 잘 자면 그만인데. 엄마는 엄마 몸이나 챙기셔. 재활은 꾸준히 하고 있지?”

“그럼. 나영이가 병원에 갈 때마다 꼭 같이 간다. 그러니 빼먹고 싶어도 빼먹을 수가 있니?”

“아…… 그래?”

송석현은 된장찌개를 떠먹었다.

“나영이 공부하기도 바쁠 텐데 참 착하지. 어릴 때부터 애가 야무지고 착하더니 커서도 어쩜 그렇게 바른지.”

“뭐, 나영이야 원래 그런 캐릭터잖아.”

“너도 나영이한테 꼭 고맙다고 말해라. 너는 요새 친구들이랑 연락도 잘 안 한다며?”

“나도 바쁘고 만나기도 힘드니까 예전처럼 못 하는 거지. 일부러 안 하고 그런 거 아냐.”

“그래, 그래도 친구가 자산이다, 자산. 미남이랑 영식이도 자주 보고 그래라. 나영이한테도 맛있는 거 사 주고.”

“저번에도 사 줬구만 뭘 또 사 주래?”

“자주 보라는 말이지.”

식사를 마친 후 송석현은 집 밖에 나와 계단에 앉았다.

송석현 손에는 야구공이 들려 있었다.

“형.”

송철현이 송석현 옆에 앉았다.

“왜 나왔어?”

“형은?”

“나는 바람이나 쐴 겸.”

“나도.”

“뭐야, 싱겁게.”

송철현은 송석현 손의 야구공을 빼앗아 쥐었다.

“다른 형이랑 누나한테는 연락 안 해? 형 1군 출전인데 오늘 만나서 얘기라도 하지.”

“어차피 말이 1군이지 경기 뛰려면 멀었어. 괜히 애들한테 자랑했다가 경기도 못 뛰고 2군 내려가면 쪽팔리잖아.”

“그래도……. 나영이 누나한테라도 말하지.”

“됐어. 어차피 내일부터 원정이야. 원정 끝나고 그때 애들 보면 돼.”

“서운하겠다, 형들이랑 누나랑.”

“내일 연락은 할 거야. 1군 간 거는 알려야지.”

“형, 내일은 못 뛰는 거야?”

“내일 뛸 수가…… 없겠지. 내가 서드 캐천데. 백업의 백업이 바로 경기에 뛰겠어?”

“그래, 그래도 내일 기대할게.”

“넌 공부나 해. 내일 나오더라도 대타로나 나올 텐데 그거 때문에 공부 째려고? 어림없다, 인마.”

송철현이 야구공을 꽉 쥐었다.

“아빠가 형 피닉스 상대로 이기면 좋아할까?”

“좋아해야지. 아들이 이긴 건데.”

“피닉스 팬이 피닉스 상대로 첫 경기 할 수도 있겠네.”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재밌겠네.”

송석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엉덩이 차갑다. 일어서자.”

“응.”

송철현도 일어섰다.

“형 일찍 자야 되지?”

“어, 내일 아침부터 선배들이랑 훈련하기로 해서.”

“내일은 오랜만에 같이 나가겠다.”

“그렇게 되나?”

* * *

다음 날 아침.

송석현은 짐을 싸 들고 잠실로 향했다.

주차장 앞에는 김정률과 김인환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송석현이 밝게 인사하자 김정률이 손을 흔들었다.

“야, 이렇게 빨리 우리가 다시 만날 줄은 몰랐네.”

“저도요. 제가 이렇게 빨리 1군에 올 줄은…….”

송석현은 감격에 젖은 눈으로 잠실구장을 바라봤다.

한국에서 가장 큰 야구장.

한국시리즈의 성지.

서울 야구의 심장.

“일단 1군에 온 건 축하해.”

김인환이 송석현이 어깨를 두드렸다.

“고마워요, 형.”

“그런데 석현아, 알아 둬야 할 거 있다.”

“뭔데요?”

“지금 팀 사정이 개판이야. 분위기가 흉흉해. 그건 알고 들어가야 돼.”

“팀 분위기가 왜요?”

김정률이 나섰다.

“아마 오늘이나 내일 기사 뜰 거야. 우리 팀 1루수가 음주 운전했어.”

“……많이 마셨나요?”

“면허취소. 구단에선 시즌 아웃시킬 거야.”

“1루수면 최대규 선배님이신데…….”

“덕분에 인환이가 콜업 된 거지.”

김인환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제가 미안해지네요.”

“너 인터넷에 도는 사진도 봤지?”

“무슨 사진요?”

“너 못 봤어? 낙균이랑 문규 사진.”

“아뇨. 뭔데요?”

“벌써 구단에서 지웠나……?”

김인환이 말했다.

“낙균 형이랑 문규 형네 변호사가 나선 걸 수도 있죠.”

“파워가 그렇게 좋은가……? 아, 아무튼, 낙균이랑 문규도 이번에 2군 갔어. 걔들 사고 쳤거든.”

“큰 사고예요?”

“지금은 잘 모르겠다. 클럽에서 문란하게 놀던 게 찍힌 거라. 잠잠해질 때까진 대가리 숙이고 기다리겠지.”

“이낙균 선배님이랑 강문규 선배님 말씀하시는 거죠?”

“어, 어. 우리 팀 3루수랑 우익수.”

“와, 그러면 우리 FA 타자 전부 다 빠진 거 아니에요?”

“맞아. 낙균이랑 문규야 워낙 그렇게 놀던 놈이니까 언제 사고 쳐도 이상하지 않다고 봤는데 대규가 음주 운전할 줄은 몰랐네, 얌전한 놈인데.”

“주전 타자 셋이 빠졌으면 분위기가 심각하겠네요.”

“코치도 바뀌었어. 우리 팀 2군 코치들이 1군에 올라오고 1군 코치들은 2군으로 갔어.”

송석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그렇게 바뀐 게 많아요?”

“감독도 바뀌고 코치도 바뀌고 선수도 바뀌고 난리다, 난리.”

“하필 제가 안 좋을 때 올라온 거 같아요. 분위기가 영…….”

“너는 신인이니까 너한테까지 일 번질 일은 없을 거지만 그래도 몸조심, 입조심 해라.”

“네. 입조심, 몸조심.”

“일단 가자. 애들 오후에 출근할 거거든? 그 전에 구장도 구경하고 프런트 쪽 아저씨들이랑 인사도 하고 해야지. 신인이 시간 딱 맞춰서 가면 그거 눈치 없는 거다.”

“예, 예. 알겠습니다.”

송석현은 김정률을 따라다니면서 구장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잠실은 고트뿐만 아니라 울브스도 함께 쓰는 구장이었다.

오지랖 넓은 김정률은 울브스 직원들과도 알은체를 하며 송석현을 소개했다.

“포스트 정용욱 송석현! 잊지 말아요! 큰 사고 칠 녀석이니까.”

구장을 구경하고 점심을 먹을 때 맞춰 선수들이 하나둘 속속 등장했다.

김정률은 이번에도 앞장서서 송석현과 선수들을 소개했다.

“창훈아!”

“요, 민석!”

“석주 왔냐?”

“동규쓰!”

“동글동글 우리 재완이~.”

김정률은 그야말로 모르는 선수가 없었고, 친하지 않은 선수가 없었다.

송석현은 팀의 모든 선수들을 소개받았고, 또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여긴…… 우리 안방마님! 박신언!”

김정률이 박신언을 가리켰다.

고트의 주전 포수.

정용욱에 가려 2인자 노릇을 하고 있지만 수비형 포수로는 으뜸으로 꼽았다.

수비형 포수라지만 타격도 평균 이상은 치는 타자였다.

“정률이 오늘 약 빨았어? 하이 텐션이네.”

“잘 봐 둬. 우리 신인 포수이자 포스트 정용욱이시다, 송석현.”

“오오, 포스트 정용욱?”

박신언은 허허 웃더니 송석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또 힘든 길을 걷고 계시는 우리 후배님을 보게 되네. 너도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저는 포수 만족합니다.”

“어우, 얘 손 봐. 너 손바닥이 두텁네. 공 잘 잡겠는데?”

박신언은 송석현의 손을 이리저리 살폈다.

“손가락은 또 기네.”

“얘 투수였거든. 고딩 때 포수로 전향했어.”

“투수가 포수로?”

박신언이 송석현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웃기는 놈이네. 그래서 포수는 얼마나 했어?”

“올해 3년 찹니다.”

“3년? 3년이라고?”

김정률이 대신 대답했다.

“얘 스무 살이야. 올해 입단했어.”

“스무 살?”

박신언이 송석현을 신기하다는 듯 위아래로 훑었다.

“지환이가 안 올라오고 네가 올라온 거야?”

“예, 예. 그렇습니다.”

“입단 3년 차도 아니고 포수 3년 차면…… 1군이 많이 이른데.”

송석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김정률은 박신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얘 기본기 의외로 괜찮다? 그리고 무엇보다 빠워가 진퉁이야. 인환이 빼곤 우리 팀에서 빠워 넘버 2는 확실할걸.”

“그럼 공격형 포수구나. 이제야 이해가 가네. 지환이도 수비 쪽이고 나랑 일혁이도 수비 쪽이고, 공격 되는 포수 TO 하나가 필요하긴 하지.”

“네가 앞으로 잘 가르쳐 줘. 네 후계자로 딱!”

“후계자?”

박신언은 송석현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그건 봐서.”

“튕기기는.”

김정률이 다음에 소개한 사람은 서일혁이었다.

고트의 백업 포수이자 수비형 포수였다.

“일혁아, 바빠?”

“아니요. 왜요?”

“우리 막내랑 인사 좀 하라고. 처음 보지, 우리 막내?”

“네, 너 이름이 뭐야?”

“안녕하십니까? 포수를 보고 있는 송석현입니다.”

“너도 포수구나?”

서일혁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몸을 돌렸다.

“그래, 앞으로 잘해 보자.”

서일혁이 몸을 돌리자 송석현도 더는 얘기를 이어 갈 수 없었다.

식사 후 인사를 돌고 겨우 짬이 날 무렵 이번엔 버스에 올라야 했다.

원정 경기이니만큼 일찍 출발해야 했다.

송석현은 1군 버스에 올라타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송석현 옆에는 정천운과 이백찬도 함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21세, 22세였고 송석현과는 이미 합을 맞춘 투수들이었다.

부우우우웅.

원정 경기를 가는 버스 안은 조용했다. 선수들 대부분은 잠을 청하거나 창밖을 보고 있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는 2시간 반이 걸렸다.

버스 창문 밖으로 대전구장이 보였다.

치이익.

문이 열리자 선수들이 우르르 내려 짐을 챙겼다.

송석현도 따라 나가 짐을 챙겼다.

대전구장.

아버지와 함께 야구를 본 적도 있었다.

송석현은 하늘을 한번 쳐다봤다.

톡톡.

그때 누군가 송석현의 등을 두드렸다.

송석현이 고개를 돌리자 타격코치 강연태가 서 있었다.

강연태는 송석현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이따 프리 배팅 때 최대한 자제해. 무슨 말인지 알지?”

“네?”

“너 오늘 비밀 병기니까 들키지 말라고.”

“비밀 병기요?”

강연태는 대답을 해 주지 않고 그대로 걸어갔다.

송석현은 영문을 몰라 큰 눈을 깜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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