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65화 (65/201)

감독 대행 함성훈

“트레이드까진 바라지 않습니다. 최소한 시즌을 끝날 때까진 선수단 운영에 관해선 임 감독님이 해 오시던 수준으로 제가 운영할 수 있게 해 주십쇼.”

김학인은 단장에게 함성훈의 조건을 전달했다.

단장은 군말 없이 오케이 사인을 냈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선 4강도 턱걸이야. 꼴찌만 면하면 되니까 들어준다고 해.”

김학인은 함성훈을 찾아 단장의 얘기를 전했다.

함성훈은 직접 단장을 찾아 다시 한번 조건을 말했다.

“비정상적인 선수단 운영이 아니라면 제게 전권을 주시는 거 잊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조건은 그거 딱 하납니다.”

“좋아. 그렇게 하지.”

단장이 함성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생이 많을 거야. 어디 한번 잘해 보자고.”

“예.”

“아, 그리고 낙균이랑 문규는 잠깐 2군에 내릴 거야. 좀 쉬었다가 1군에 올리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그거까진 내 선에서 결재하기로 하지.”

“저도 2군에 내리는 건 찬성합니다.”

“좋아. 그럼 됐네.”

단장이 함성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힘들겠지만 어려울수록 서로 힘을 합쳐야 하는 거 아닌가. 부탁 좀 함세.”

함성훈은 단장을 보며 얘기했다.

“우선 첫 번째로 원하는 걸 말씀드려도 될까요?”

“뭔데?”

“우선 지금 1군 코치진과 2군 코치진을 바꾸고 싶습니다. 지금 코치님들은 제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분들이라 같이 경기를 운영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좋아. 그건 나도 찬성이야. 어려울 때 발 빼던 사람들한테 우리도 계속 호의를 베풀 순 없지.”

“감사합니다. 차후에 또 원하는 게 있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도 마음이 편치 않아. 함 코치가 어려운 길 가는 거 알아. 그래도 잘 수행해 주면 우리도 섭섭지 않게 대우할 테니까 잊지 말라고. 알았지?”

함성훈은 단장실을 나오자마자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함성훈이 찾은 이는 작전코치이자 후배인 김민석이었다.

“너 지금 바로 주차장으로 와. 나랑 갈 데가 있어.”

* * *

김민석이 운전대를 잡고 함성훈은 조수석에 앉았다.

함성훈 손에는 두터운 서류가 들려 있었다.

“아, 결국 형이 감대 하는 거예요?”

“그래.”

“이거 그냥 먹고 버리는 자린 거 알잖아요. 왜 했어요?”

“지금 아니면 내가 언제 감독 자리를 해 보겠냐?”

“그래도 형 커리어면 다른 데서 다시 코치 할 수 있는데. 감대 하면 애매해지잖아요. 다른 팀 코치로 가기도 그렇고.”

함성훈은 서류를 한 장 뒤로 넘겼다.

“난 항상 애매했어. 그러니 구단에서도 날 뽑았을 테고.”

“형은 진짜 감독감인데. 괜히 여기서 커리어가 꼬이면 감독 자리도 꼬일 수 있어요. 지금이라도 사정이 생겨서 못한다고 해요.”

“내가 뭐 보여 준 게 있다고 감독을 해? 그렇다고 여기에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었어. 감독을 한다면 지금밖에 못 해. 안 좋은 상황이라도 오면 받아야지.”

“형이 감독 자리에 그렇게 욕심이 많은 줄 몰랐네요.”

“나중에 미국에 다시 건너가도 거기서 감독은 못 할 거야. 그렇다고 단장까지 가기도 어려울 거고. 반년짜리 감독이어도 충분해. 내 야구 인생에 프로 야구 감독이라는 커리어 새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하, 이거 백 프로 토사구팽행인데. 형 실력이 아깝다.”

“난 어차피 여기가 아니어도 어디 가든 먹고살 자신 있어. 난 아쉬울 거 없다. 자꾸 그런 말 하지 마. 집중 안 돼.”

함성훈의 손이 멈췄다.

“송석현?”

“왜요?”

함성훈은 턱을 매만졌다.

“재밌네. 2군 경기는 얼마 안 뛰었는데 성적이 무시무시해. 홈런만 보면 김인환보다 더한데.”

“그런 애가 있었어요?”

“고졸 신고 포수. 경력도 특이하네. 투수에서 포수로 전향한 케이스는 처음 보네.”

“이상한 놈이네. 포수에서 투수는 봤어도.”

“직무유기야.”

함성훈이 서류를 덮었다.

“뭐가요?”

“나. 나 말이야.”

“형이 왜요?”

“1군 신경 쓴다고 2군 선수들을 너무 대강 봤어. 1군에 필요한 포지션만 본다고 이런 친구를 놓쳤어.”

“수석코치가 2군 선수들까지 다 꿰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잖아요?”

“이 정도 성적을 냈다면 수석코치가 몰라선 안 돼.”

함성훈이 차창 밖을 쳐다봤다.

“나는 남 탓이나 하는 놈이 되기 싫었는데.”

“형이 언제 남 탓을 했다고. 형 자책 좀 그만해요.”

“포수지만 이런 친구라면 일단 불러야겠어. 인환이가 대규 공백을 채울지도 미지수고, 이런 복권이라면 한번 긁어 봐야지.”

“지타로 쓰게요?”

“지타든 뭐든 써 봐야지. 문규랑 낙균이까지 빠지면 FA 타자 다 빠지는 거야. 후반기에 쓸 수 있는 카드를 지금이라도 하나 늘려 놔야 돼.”

“문규, 낙균이는 여론 잠잠해지면 올라올 수 있지 않아요?”

“여론이 잠잠해질지 아닐지는 모를 일이야. 여론에만 기대는 건 감독이 할 일이 아니지.”

함성훈이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잠깐 통화 좀 할게.”

“네.”

함성훈이 전화를 건 이는 2군 감독 구창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 * *

2군 구장에 도착한 함성훈은 바로 구창현을 찾았다.

구창현은 함성훈을 보자마자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우리 함 코치가 똥지게를 진 거야?”

“그렇게 됐습니다.”

“하, 진짜 너무들 하네. 만만한 게 함 코치지.”

구창현이 함성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라도 거절을 하지, 왜 굳이 받은 거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 않습니까? 저도 임 감독님 덕에 뽑힌 건데 저희 쪽에서 책임질 사람이 나와야죠.”

“다른 코치들은 입 싹 닦았다며?”

“……다들 사정이 있으시겠죠.”

“하여간 그 꼰대들, 허휴.”

함성훈은 손으로 탁자를 가리켰다.

“긴히 말씀드릴 게 있는데 앉아도 되겠습니까?”

“그래, 말해. 나도 함 코치한데 빚을 진 셈인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 줄게.”

함성훈과 구창현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먼저 신세를 많이 져야 할 거 같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거 같습니다.”

“신세는 무슨. 뭔데? 말해 봐.”

“우선 코치진 이동이 필요합니다.”

“하, 뭐. 그거야.”

구창현이 다리를 꼬았다.

“그래야지. 그 양반들이 자네 말을 들을 사람들도 아니고.”

“1, 2군 코치진이 바뀌면 감독님이 좀…… 곤란하실 부분이 있잖습니까? 다들 자기주장이 강하신 분들이라…….”

“박윤수 때문에 그래? 걔가 뭐라고. 여기선 내가 왕이야. 떨거지들 다 이리로 보내. 그런 건 걱정하지 마.”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 괜찮아. 그런 건 신경 꺼.”

“감사합니다.”

구창현이 고개를 숙였다.

“됐어, 됐어. 그건 당연한 거지.”

“그리고 낙균이랑 문규도 당분간 2군에 있을 겁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 친구들…….”

“사고 치지 못하게 잘 관리 감독하라고?”

함성훈은 허탈하게 웃었다.

“어쩜 그렇게 다 아십니까?”

“그거야 뻔한 거니까. 그 새끼들, 내가 조질 거야. 외박도 외출도 빡세게 관리할게. 뭐, 그래도 성인이고 하니 구설수를 완전히 막을 순 없겠지만…… 내 선에선 최대한 컨트롤할게.”

“감사합니다, 감독님.”

“다 당연한 거야. 말이 1, 2군이지 우리 다 한 팀인데 서로 협력해야지. 함 코치가 제일 고생하는데 내가 생색을 내서 되겠어?”

“이 두 가지 사안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감독님께 말씀드리기 참 어려웠는데 이렇게 흔쾌히 받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가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는 거야. 함 코치가 감대 안 했으면 결국 나한테 왔을 거 아냐?”

함성훈은 서류를 펼쳤다.

“그리고 대규모 콜업이 있을 겁니다. 김인환, 김정률 말고 이 친구들도 1군 콜업 준비 가능할까요?”

“어디 보자……. 최재완, 설진일. 얘들은 낙균이랑 문규 대타고. 이백찬이랑 정천운까지? 투수만 셋을 올려?”

“네, 1군 불펜 피로도가 너무 높습니다. 이번에 2군으로 내려오는 친구들은 당분간 쉬면서 관리가 필요합니다. 2군 경기 뛰는 건 어려울 겁니다. 감독님 경기 운영에 지장이 있으실 겁니다만 휴식이 꼭 필요한 친구들이라……. 계속 어려운 부탁만 드리네요.”

“좋은 투수가 세 자리 비는 건 타격이 좀 크긴 하네. 이닝은 채워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그래도 별수 없지, 상황이 이런데. 불펜을 줄이고 선발 위주로 길게, 길게 끌어가야지. 후, 그래도 빡세긴 하겠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성훈이 송석현이라는 이름에 손가락을 올렸다.

“이 친구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구창현이 씨익 웃었다.

“석현이?”

“네, 기간이 매우 짧지만 성적이 훌륭하던데요. 특히 장타력이 돋보였습니다.”

“송석현. 아주 괴물이지, 괴물. 수석코치라는 사람이 석현이를 이제야 알아본 거야?”

함성훈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게을렀습니다.”

“정말 석현이에 대해 못 들었나 봐?”

“면목 없습니다.”

“하, 심각하구만. 1군에 올려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이나 임 감독님한테 말씀드렸는데 자네한테는 전혀 언질이 없었단 얘기잖아.”

“……그랬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석코치한테 너무했네, 임 감독님도.”

“아닙니다. 제가 먼저 알고 있어야 했던 건데 1군에만 집중한다고 2군 사정에 너무 어두웠습니다.”

“됐어, 됐어. 내가 보진 못했어도 귀로는 다 들었어. 애도 아니고 다들 왜 그러는 거야?”

“…….”

“유치하긴, 다 큰 어른들이.”

“흠흠.”

함성훈이 화제를 돌렸다.

“송석현, 괜찮은 선숩니까?”

“괜찮냐고? 하하하!”

구창현이 크게 웃었다.

“솔직히 미트질은 아직 좀 부족해. 그건 무조건 경험이 많이 쌓여야 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는 거고. 근데 그것만 제외하면…….”

구창현이 엄지를 추켜세웠다.

“괴물이야. 155km/h 던지는 어깨에 장타력도 김인환이랑 동급이야. 요새 얘 별명도 생겼어, 장외 송석현이라고.”

“장애요? 장애가 있습니까?”

“장애가 아니라 장외. 벌써 장외를 넘긴 홈런이…… 두 갠가 세 갠가. 뻑하면 장외를 넘기는 친구야.”

함성훈이 안경을 위로 올렸다.

“장외를 넘긴다고요?”

“똑똑하고 성실하고 파워 좋고 어깨도 좋고, 캬. 아주 물건이지, 물건. 솔직히 이걸 내가 키웠다고 하면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텐데 애초부터 난놈이라 소문내기도 민망해. 내가 야구 인생 34년을 걸고 말할 수 있어. 정용욱이 은퇴하기 전에 얘가 리그 톱이 될 거야.”

“……그 정돕니까?”

“2군에서만 날아다니는 스타일만 아니라면 무조건, 무조건 얘는 뜰 거야. 아쉽게도 우리 포수 자리가 너무 탄탄한 게 흠이지만 그래도 얘는 어떻게든 경험치를 먹여야 돼. 지타로든 후반 대타든 꼭 키워. 구단의 미래가 될 친구야. 아니, 한국 야구의 미래가 될 친구라고 봐.”

“제가 정말 무뎠네요, 이런 친구를 몰랐다니.”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석현이도 바로 기회를 잡네. 이렇게 기회가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지금 송석현 선수를 만나 볼 수 있을까요?”

“그럼. 기다려 봐, 내가 부를 테니까.”

함성훈은 구창현이 통화하는 동안 송석현의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운동선수답지 않게 평범하고 선하게 생긴 얼굴이다.

굳게 다문 입술 정도만 운동선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송석현이 들어왔다.

사진과 비슷한 얼굴이었다.

“어, 왔어? 이리 와 봐.”

구창현이 송석현을 불렀다.

함성훈은 송석현과 눈을 마주쳤다.

구창현은 송석현 앞이라 함성훈에게 존대했다.

“여기 이 친구가 송석현. 우리 고트의 미랩니다.”

함성훈이 손을 내밀었다.

“아, 반가워요. 저는 함성훈이라고 해요.”

함성훈이 이어 말했다.

“지금까진 고트 수석코치였습니다. 내일부터는 감독 대행이고요.”

송석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감독 대행이라는 단어에 꽂혔을 터다.

“축하해요. 오늘 짐 싸세요. 내일 잠실로 출근하면 됩니다.”

“예?”

“어쩌다 보니 내가 직접 말하게 됐네요. 잘 부탁합니다. 내일부터 우리 잘해 보죠.”

“……네에?”

굳세 보이는 표정이 무너지자 함성훈은 웃음이 나왔다.

외면은 꽤 포수다워 보이는데 아직은 어린 친구구나.

“짐 빨리 싸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내일부터 원정이라 정신없을 건데.”

“아…… 예. 예, 예. 알겠습니다.”

송석현은 그대로 감독실을 나갔다.

구창현은 껄껄 웃었다.

“아직은 어려. 그치?”

“네, 아직은 순진하네요.”

“그래도 방망이는 아주 제대로야. 함 코치, 우리 함 감독한테 큰 보탬이 될 테니까 잘 갈고닦아 봐.”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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