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임의수 (2)
이른 새벽.
1차, 2차를 넘어 막차를 갈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
취객의 발걸음이 휘청거리는 거리에 택시 하나가 급하게 섰다.
택시에서 내린 이는 임의수였다.
“심각해?”
임의수가 운영팀장과 만난 곳은 병원이었다.
“상대 차량 운전자는 크게 다치진 않았는데 대규를 알아봤습니다.”
“하.”
임의수는 머리를 감쌌다.
“그래서?”
“……어떻게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음주 측정을 채혈 검사로 대신한다고 말은 해 놨습니다. 막아 봐도 내일이나 모레면 기사가 터질 겁니다.”
“으음.”
“일단 내일 바로 대규 2군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1군에 올릴 선수를 미리 귀띔해 주시죠.”
“……지금 올릴 놈이 있나?”
임의수는 두 손을 비벼 눈에 가져다 댔다.
“고만고만한 놈들이야. 김인환 올려.”
“예, 내일 바로 인환이 올리는 거로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대규는 올 시즌은…… 힘든가? 많이 마셨나?”
운영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사불성이었습니다. 면허취소는 기본으로 깔고 갈 겁니다.”
“으음.”
임의수가 침음을 내뱉었다.
“사고를 쳐도 문규나 낙균이가 칠 줄 알았는데 조용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 버렸네. 하.”
말을 하던 임의수가 운영팀장을 바라봤다.
“술 어떻게 마시게 된 건지 아나?”
“그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오늘 경기에서 이기고 했으니 마시지 않았을까요?”
“그럼 다른 애들은? 다른 애들은 술 안 마셨어?”
운영팀장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임의수도 코치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한참을 전화로 씨름하던 운영팀장이 임의수에게 다가왔다.
“다행히 음주 운전한 애들은 더 없는 거 같습니다.”
“그래?”
“네, 오늘 경기 끝나고 술자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거기서 먹고 끝났답니다. 지금은 다 귀가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구만. 불행 중 다행이야…….”
임의수는 마른 숨을 내뱉었다.
“그럼 대규 문제는 이렇게 마무리 짓도록 하지. 올 시즌 구상에서 대규를 빼야겠지?”
“……협회 징계가 아니더라도 구단 징계론 최소 시즌 아웃은 해야 여론의 반발이 없을 겁니다.”
“단장님은 다른 말씀 없으셨고?”
“그룹 이미지에 문제 가지 않게 단호하게 처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시즌 아웃이네.”
“아마도.”
“하아, 그래. 알았어. 자세한 건 내일 얘기하자고. 오늘은 이만해.”
“감독님, 고생하셨습니다. 내일 아침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나도 일어나면 바로 구장으로 갈게.”
임의수는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몸을 누였다.
술기운과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와 눈을 뜰 수 없었다.
임의수가 다시 눈을 뜬 건 배터리코치의 전화벨이 울렸을 때였다.
“감독님! 큰일입니다!”
임의수는 숨을 한번 고르고 답했다.
“그래, 알아, 일 생긴 거.”
“……알고 계셨습니까?”
“침착해. 구단에서 처리 중일 거야. 대규는 시즌 아웃 처리하고 오늘 인환이 올리기로 했어.”
“네? 대규가 시즌 아웃이라고요?”
임의수는 배터리코치의 반응에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한 걸 왜 물어?”
“그게 아니라…… 전 지금 SNS가 난리 났다고 딸내미한테 문자를 받아서 말씀드린 겁니다.”
“그게 뭐야?”
“어제 우리 애들이 난잡하게 논 게 사진 찍혀서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지금 벌써 구단 홈페이지가 다운되고 난리 났어요.”
“뭐?”
임의수는 머리가 핑 돌았다.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내가 지금 가지. 자네 어디야?”
“저도 출근하는 중입니다.”
“알았어. 구장에서 보지.”
임의수가 구장에 도착했을 땐 핵폭탄이 터진 직후였다.
최대규의 음주 운전과 시즌 아웃도 밝혀지기 전이었다.
운영팀장은 전화를 붙잡고 씨름하느라 임의수와 인사할 시간조차 없었다.
“여기, 이거 보세요.”
배터리코치가 핸드폰을 스윽 내밀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은 수위가 제법 높았다.
선수들이 여자의 가슴을 만진다거나 은밀한 부위를 만지며 웃는 장면이 노골적으로 찍혀 있었다.
한 장이 아니라 그런 사진만 열 장이 넘었다.
“이건 대체 뭐야?”
“어제 애들이 클럽에서 놀다 찍힌 사진입니다.”
“전화는?”
“했는데 안 받습니다. 낙균이만 연락이 됐습니다.”
“그럼 걔라도 바로 오라고 해.”
“우선…… 변호사랑 얘기하고 오겠다고…….”
“뭐?”
임의수의 눈에 불이 일었다. 평소 꼬장꼬장하던 배터리코치도 어깨를 움츠렸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그 새끼 당장 잡아 와! 당장!”
“네, 네. 알겠습니다.”
임의수가 머리를 감쌌다.
눈이 핑핑 돌았다.
휘적거리며 감독실에 가 소파에 누워 버렸다.
천장이 돌고 머리가 띵했다.
띠리링, 띠리링.
이젠 전화벨도 무서웠다.
발신자는 와이프, 안 받을 수도 없었다.
“왜?”
-아직도 사인 안 했지?
“……지금 말싸움하고 싶지 않아. 오늘은 그럴 여유 없어.”
-여유가 없어?
전화가 바로 끊겼다.
임의수는 전화기를 옆에 놓고 팔을 이마에 올렸다.
목덜미로 식은땀이 흘렀다.
띠링.
문자 소리에 임의수가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이런 씨발!”
문자를 확인한 임의수가 와이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 하자는 거야!”
-뭐긴. 네가 어린 계집애 끼고 놀러 다니던 사진이지.
“지금 협박이야? 어? 이런 건 어떻게 찍었어? 너 이거 불법인 줄 알고는 있어? 어? 이런 걸로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 같아? 나 임의수야! 임의수라고!”
-아, 그러셔요? 그럼 이거 구단에다 보낼까? 아니면 언론사에? 그나마 있던 직장이라도 보전하려면 잘 선택하셔요. 오늘까지 사인해서 안 보내면 내일 이거 다 뿌려 버릴 거야. 알았어?
임의수가 목덜미를 붙잡았다.
어지러운 걸 넘어 토할 거 같다.
눈앞이 흐렸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박윤수 배터리코치가 들어왔다.
“감독님, 낙균이가 바로 온다고 합니다. 문규랑도 연락이 닿았습니다.”
“……끄응, 그래?”
임의수는 갈라진 목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박윤수와 눈이 마주치자 몸이 휘청거렸다.
“감독님!”
임의수는 박윤수가 두 사람, 세 사람이 돼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봤다.
임의수의 몸이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쿵!
박윤수가 가까스로 부축했으나 두 사람 모두 바닥에 나뒹굴었다.
“감독님!”
* * *
“미치겠구만.”
운영팀장 김학인은 오늘 병원 방문만 두 번째였다.
한 번은 최대규와 사고 난 운전자 때문에, 한 번은 임의수 감독 때문에.
김학인은 병원에서 나와 바로 구장으로 향했다.
김학인이 향한 곳에는 수석코치 함성훈이 앉아 있었다.
“코치님.”
“김 팀장님.”
김학인은 함성훈을 보자마자 큰 한숨을 쉬었다.
“우선 앉으시죠.”
김학인은 쓰러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들으셨죠?”
“……대충 들었습니다.”
“어디까지 들으셨죠?”
“대규가 음주 운전해서 시즌 아웃 할 거라고요. 지금 인터넷에 문규랑 낙균이 사진 떠도는 것도요.”
“감독님이 쓰러지신 것도 들으셨죠?”
“……네.”
“뇌졸중이라고 합니다. 바로 병원에 가셨지만 언제 돌아오실지는 몰라요. 저도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의사한테 들으니 뇌졸중이라는 게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그런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네, 그렇군요.”
“구단 초유의 사탭니다. 대규는 시즌 아웃, 감독님도 올 시즌은 더는 어렵다고 봐야 하고……. 문규나 낙균이도 어떻게 처리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최악이에요. FA 셋이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네.”
김학인은 함성훈의 눈치를 한 번 보더니 헛기침했다.
“그래서 말이죠, 어쩔 수 없이 감독 대행 체제로 가야 할 거 같습니다.”
“네, 그래야죠.”
“참 말씀드리기 송구하지만…… 어려운 상황이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감독 대행을 맡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함성훈은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저보다 연배가 높으신 코치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 거절 의사를 밝히셨어요.”
함성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기 감독을 염두에 둔다면 지금 이 시점에 팀을 맡고 싶진 않으시겠죠. 성적 하락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할 테니까요.”
김학인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시는군요.”
“감독 대행이라는 자리가 보통 그러니까요.”
“흠흠.”
김학인은 함성훈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어려울까요?”
함성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책임지고 여기서 사퇴하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제가 대행을 한다고 해도 코칭스태프 간에 분열만 일어나고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겁니다.”
“사퇴요?”
“다시 미국으로 가 공부할 생각입니다. 시즌 중이라 자리는 없겠지만 미리 준비를 해 둬야 자리를 얻겠죠.”
“벌써 결정하신 겁니까?”
“예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함성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수 관리에 저도 책임이 있는 바,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함성훈은 김학인에게 고개를 숙인 뒤 자리를 떴다.
김학인은 얼뜬 표정으로 눈알을 굴렸다.
“이러면…… 나가린데.”
김학인은 바로 단장에게 달려갔다.
단장은 전화를 붙들고 입씨름하고 있었다.
똑똑.
김학인이 노크를 하자 단장은 기다리라고 손을 내밀었다.
김학인은 들릴 듯 말 듯 조용하게 말했다.
“함 코치도 감대 거절했습니다.”
단장은 눈을 부라리더니 전화를 끊었다.
“뭐?”
“그만두고 미국으로 간다고 합니다.”
“미국? 이 시국에? 허, 이거 너무하는구만. 책임감 있는 사람이 이렇게 없나? 어?”
“어쩌죠? 이미 우리 사정 구단 내에서 알 사람은 다 압니다. 감대 자리를 맡겠다고 나설 사람은 더 없습니다.”
“함성훈까지 거절할 줄은 몰랐는데……. 2군 구 감독을 올리는 건 어때?”
“거기도 소문이 다 났을 겁니다.”
“일단 감독 대행으로 세우면 될 거 아냐.”
“그러면 감독님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들의 동요가 더 커질 겁니다. 지금 2군 코칭스태프들은 거의 다 우리 구단 출신인데 코치들을 홀대했다간 선수들도 흔들릴 겁니다.”
“이런…… 하. 오늘 내로 수습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는 거야?”
“함 코치님이 가장 적격이긴 한데 이렇게 파격적으로 나오실 줄은……. 박 코치님한테 다시 부탁드려 볼까요?”
단장이 손가락을 탁탁 튀겼다.
“아냐, 아냐. 그 능구렁이들은 죽어도 안 한다고 하겠지.”
단장은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김학인은 단장의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랐다.
“함 코치, 지금 당장 미국에 갈 순 없을 거야. 그치? 비행기 표를 미리 예약하지 않은 이상 말이야.”
“예.”
“감독 대행을 맡을 사람은 함성훈이 적격이야. 어차피 그 친구 독고다이잖아. 우린 연이 없는 친구를 다루는 게 더 좋아. 그래야 나중에 감독을 교체할 때 뒤탈도 없을 거고.”
단장이 손가락을 튀겼다.
“어떤 조건을 내걸어도 좋아. 함 코치 잡아. 돈이면 돈 준다고 하고, 뭐든 다 해 준다고 해, 뭐든. 나중에 번복을 하더라도 뭐든.”
“뭐든요?”
“그래, 나중에 번복을 하더라도 일단 조건을 다 들어줘. 무조건 잡아 와. 최대규 음주 운전 발표 후에도 감독 대행이 없으면 팀이 얼마나 개판 되겠어? 누가 책임은 져야 할 거 아냐. 바로 잡아 와. 지금 당장.”
김학인은 단장실에 나와 바로 함성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함성훈은 사무실에서 짐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네, 김 팀장님.
“잠시 얘기 좀 더 가능할까요?”
-……일단 알겠습니다.
“지금 어디세요?”
-짐 정리 중입니다.
“아, 그러면 잠시만, 잠시만 거기 계세요.”
김학인은 바로 사무실로 달려가 함성훈을 찾았다.
함성훈은 김학인에게 물병을 건넸다.
“좀 드시죠. 힘들어 보이시네요.”
“감사합니다.”
김학인은 500ml 물병을 단숨에 비우곤 입가를 닦았다.
“코치님, 정말 방법이 없을까요? 코치님이 원하시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연봉도 올려 드릴 거고. 하여튼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다요?”
“네, 전부. 뭐든요.”
“팀장님 결정이십니까?”
“아뇨, 아뇨. 단장님 결정이십니다. 단장님이 코치님 아니면 어렵다고 뭐든 다 들어주라고 하셨습니다.”
“벌써 단장님을 뵙고 오셨나 보네요.”
“아…… 그게…….”
김학인이 눈알을 밑으로 굴렸다.
“그럼 정말 제 조건을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김학인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그럼요! 뭐든 말씀만 하세요!”
“연봉은 됐습니다. 이미 충분하니까요.”
“아뇨, 아뇨. 저희가 충분히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연봉에서 감독 연봉으로 맞춰서 바로 월급으로 지불하겠습니다.”
“……연봉은 알아서 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뭐든요!”
“그게 뭐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