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임의수 (1)
며칠 전.
강남 일식집에 세 남자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멀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데에 반해 한 사람은 빛바랜 와이셔츠와 구겨진 양복을 입고 있었다.
“자, 받으세요.”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남자가 주전자를 들었다.
남자의 이름은 이화성.
고트의 사장이었다.
“감사합니다.”
술은 받은 이는 임의수.
고트의 현재 1군 감독이었다.
말없이 앉아 있는 남자는 고트의 단장 김명수.
팀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세 사람이 월요일 점심부터 술을 한 잔씩 나눠 마시고 있었다.
“임 감독님.”
“예.”
이화성 사장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요새 많이 힘드시죠?”
“아닙니다.”
“여기서 가장 힘들어하실 분이 감독님이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송구합니다.”
“야구라는 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허허. 안 그래, 김 단장?”
“예, 그렇죠.”
“그래도 좀 아쉬운 게 있네요. 벌써 5위로 밀려 나간 건 이르지 않나 싶습니다.”
임의수가 얕은 숨을 내뱉었다.
“잠깐 밀린 겁니다. 금세 위로 올라갈 겁니다.”
“그럼요, 그럼요. 우리 4월에는 좋았지 않습니까? 저희는 임 감독님을 믿고 있습니다. 우승이라는 걸 아무나 하나요? 우승도 해 본 사람이 하는 건데요, 허허.”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언제나 임 감독님을 응원하지만 저도 구단을 이끌어 가는 입장이라는 걸 잘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외풍이 거세지면 울타리도 버티지 못하는 법이죠.”
짧은 식사가 끝난 뒤 사장과 단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임의수는 두 사람이 차를 타고 떠나는 동안 허리를 숙였다.
“……후우우우.”
차가 떠나갔다.
홀로 남은 임의수는 주차장 한편에서 줄담배를 피웠다.
임의수는 담배를 발로 비벼 끈 후 집으로 향했다.
40평대의 신축 아파트 문을 열자 냉기가 가득했다.
식탁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고 소파 앞 탁자엔 맥주 캔과 과자 봉지가 가득했다.
임의수는 그대로 소파로 가 누웠다.
아침부터 술을 마신 때문일까.
설핏 잠이 들었다.
띠리링.
임의수는 핸드폰을 들었다.
액정에는 ‘마누라’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어, 왜?”
-연락이 없어서 전화한 거야.
“무슨 연락?”
-이혼 서류 안 낼 거야? 언제까지 버틸 건데?
“하! 야, 넌 꼭 이런 타이밍에 이혼 타령해야겠냐? 남편이라는 사람은 스트레스 때문에 죽을 지경인데?”
-너만 스트레스 받니? 나도 스트레스 받아. 나도 너 때문에 평생 스트레스 받고 살았어!
“최소한 어머니 살아생전에는 좀 미루자. 뭐가 그리 급하냐?”
-그 노인네 평생 골골대고 살았는데 언제까지 내가 참아야 돼?
“뭐, 노인네?”
-너 빨리 사인 안 하면 그땐 소송으로 갈 줄 알아.
“이런 씨발. 야! 너 이렇게 나올 거야?”
-그럼 빨리 사인을 해! 나도 너랑 이렇게 입씨름하기 싫어!
“너 어디 놈팡이라도 생겼냐? 왜 갑자기 지랄이야, 지랄이!”
-딴 년 생긴 건 너지. 어디서 뒤집어씌워? 너 이게 마지막 통환 줄이나 알아. 오늘 당장 사인해! 안 하면 나도 가만히 안 있어!
전화가 끊겼다.
임의수는 두 눈을 질끈 감곤 주먹으로 소파를 쳤다.
“아우! 왜 이렇게 되는 게 없어!”
다음 날.
오전부터 감독과 코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희의 시간이자 정례적 미팅.
임의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얘기를 듣고 있었다.
“과부하라고?”
“네, 불펜만 피로도가 높은 게 아닙니다. 타선도 피로도가 높습니다. 사실상 고정 타순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휴식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최근 들어 수비에서 실책이 많이 나오는 데는 팀의 전반적인 과부하에 큰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임의수를 보며 말하는 남자는 수석코치 함성훈.
함성훈의 말에 타격코치가 나섰다.
“이제 몇 달 뛰었다고 벌써 퍼진다는 거야? 시즌이 시작한 지 이제 석 달째야. 피곤한 게 아니라 꾀를 피우는 거야. 수석코치라는 사람이 잔꾀 부리는 것도 몰라?”
투수코치가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현장에서 많이 못 뛴 거 알면서 우리 수석코치님을 곤란하게 만들면 되겠어?”
“아, 그런가요? 제가 실수했네요.”
코치들이 가볍게 웃었다.
웃지 않는 코치는 테이블 끝에 앉은 젊은 코치들 몇몇뿐이었다.
임의수가 말했다.
“들었지? 시즌 절반도 안 지났는데 무슨 과부하 타령이야? 거 애들 너무 감싸고돌지 마. 감상에 젖지 말라고.”
“시즌은 시작한 지 두 달이 좀 지났지만 스프링캠프 때부터 계산하면 벌써 다섯 달째입니다. 스프링캠프의 강도도 높았는데 시즌 중에도 계속 특훈이 있었습니다. 월요일 특훈도 거의 매번 빠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여름이 오면 점점 더 체력이 빨리 떨어질 겁니다. 지금이라도 관리를 시작해야 합니다.”
“함 코치.”
임의수가 함성훈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성적은 올릴 수 있을 때 올리는 거야. 지금 안 그래도 분위기가 어수선한데 애들을 빼면 어떨 거 같아? 더 고꾸라지는 거야. 이럴 때 승점을 벌어 두고 여름부터 체력을 관리하는 거지, 누가 지금부터 체력 관리를 시키나? 훈련을 우리만 했어? 남들은 안 했어?”
“하지만 우린 벌써 3년째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선수들의 피로도가 누적됐다는 걸 감안하면…….”
배터리코치 박윤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어디 감독님 말씀하시는데 따박따박 전부 그렇게 대드나? 아무리 수석코치라도 그렇지, 경우가 없어도 너무 없구만. 미국에서 야구 배우면 그렇게 해도 돼? 미국에서 감독을 무시하라고 가르쳤나?”
함성훈 수석코치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대답했다.
“결정은 감독이 하되, 코치는 감독의 올바른 결정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의뭅니다.”
“최선은 함 코치만 하나?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얘기야?”
“이건 수석코치로서 제 의무이고 권립니다.”
“거 누가 들으면 함 코치만 코치인 줄 알겠네. 아무리 수석코치라도 말이야,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인데 우리말은 귓등으로 듣지도 않지?”
“그만, 그만.”
임의수가 손을 흔들었다.
코치들은 입을 다물었다.
“여기가 도떼기시장도 아니고 뭐 하는 거야? 시끄러워 죽겠네.”
“크흠, 죄송합니다.”
배터리코치 박윤수가 사과했다.
함성훈 수석코치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2군에 좋은 선수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이 선수들을 너무 오래 묵혀 둬서 문젭니다. 1군 선수들의 체력 안배도 필요한 시간이니만큼 2군 선수들과의 로테이션이 필요합니다.”
임의수 감독이 피식 웃었다.
“우리 2군에 좋은 애들이 어딨어? 다 고만고만하지. 대체 누굴 말하는 건데? 좋은 애들 있으면 말해 봐. 나도 데려다 쓰고 싶다.”
“최근 김정률의 성적이 눈에 띕니다. 이제는 완전히 언더핸더로서 각성했습니다. 김인환도…….”
“이봐, 함 코치. 걔들 안 지겨워? 바랄 걸 바라야지, 무슨 도돌이표도 아니고. 걔들은 이미 한 수십 번 긁은 복권이야. 꽝인 복권을 몇 번이나 긁어야 만족하는 거야?”
이번에도 배터리코치 박윤수였다.
임의수는 탁자를 손으로 탁 쳤다.
“자, 그만하자고. 쓸데없는 데 힘 빼지 말고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그것만 생각해.”
“감독님.”
“함 코치, 함 코치도 고집 적당히 부리고. 언제까지 애처럼 그렇게 징징거릴 거야? 어른스러워져야지.”
임의수가 나가자 뒤따라서 코치들도 우르르 나갔다.
감독실에 남은 건 함성훈과 젊은 코치 몇몇.
함성훈은 숨을 한번 깊게 들이켜곤 눈을 감았다.
젊은 코치들은 침묵을 지키다 뒤늦게 일어섰다.
“가시죠, 함 코치님.”
함성훈은 먼저 나가라고 손짓한 후 다시 한번 깊게 숨을 들이켰다 내뱉었다.
“하아.”
* * *
오전 미팅이 끝난 후.
투수코치를 비롯해 타격코치, 배터리코치, 수비코치는 한 손에는 커피 잔을, 다른 손에는 담배를 들고 모여 있었다.
“하, 진짜. 저 새끼는 너무 건방져.”
배터리코치가 포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타격코치가 나섰다.
“자기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라는 것도 모르고 너무 설쳐요.”
“감독님 백으로 들어왔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제 나이에 수석코치 명함을 단 게 자랑인 줄 알아. 그게 뭐 자기 실력인가? 감독님 아니면 지가 어디 한국에서 코치를 하겠냐고.”
“배은망덕한 놈이죠, 감독님 덕에 수석코치 명함을 달고 사사건건 감독님 발목을 잡으니.”
“참 나, 요새가 어느 땐데. 은사의 아들이라고 수석코치 꽂아 준 감독님도 너무하고, 하란다고 젊은 놈이 엉덩이 비비고 앉아 거들먹거리는 것도 꼴 뵈기 싫어 죽겠어.”
“원래대로 형님이 수석 달았으면 만사형통인데 그놈의 여론이 참.”
배터리코치 박윤수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하여튼 형님도 곱게 나갈 것이지 사고를 치고 나가서 사람 앞길을 막냐 이 말이야.”
원래 수석코치는 임의수 감독의 절친한 후배인 백진응이었다.
백진응은 임의수 사단의 확고한 2인자였지만 음주 운전으로 물러났다.
임의수는 여론의 비난에 기존 코치들을 수석코치로 올리는 대신 젊은 유학파 코치를 수석코치로 데려왔다.
임의수가 데려온 코치는 함성훈.
임의수 고등학교 은사의 제자이자 올해 마흔을 채운 젊디젊은 코치.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선진 야구의 시각을 얻기 위해 데려왔다고 발표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함성훈은 대학교까지 야구 선수를 했지만 실력 미달로 프로에 가지 못했다. 그리고 야구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으로 건너가 스포츠 마케팅을 공부했다. 미국 구단 프런트에 합류해 경험을 쌓았으며 일본에서도 코치 연수를 받았다.
경력은 화려하지만 국내에 연줄이 없는 코치.
은사의 아들인 데다 어린 나이.
임의수는 구단이 구단 사람을 수석코치로 내세우기 전에 가장 그럴듯한 카드로 함성훈을 먼저 내밀었다.
구단도 성적을 내기 위해 임의수를 흔들기보단 뻔한 수를 받아 줬다.
임의수의 꼼수는 사단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반란까지 번지진 않았다.
임의수의 경력과 연차는 기존 코치들에겐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조용하던 수비코치 김성현이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 우리 이번 시즌 괜찮을까요? 이번에도 성적 안 나오면 임 감독님이라고 해도 별수 없을 거 같은데.”
“그러니까 어떻게든 이번에 3위 안에는 들어야지. 그래야 어떻게 엉덩이를 비비지 않겠어?”
“그 성적을 구단에서 받아들일까요?”
“우리 임 감독님이 아니면 누가 들어오게? 지금 어쨌든 임 감독님보다 커리어 좋은 감독은 없어. 뭐, 여기서 잘 안 되더라도 어떻게든 성적만 좀 내면 다음 팀 찾는 거 어려운 것도 아니고 말이야.”
타격코치 석진우가 말했다.
“고트 애들이 뺑끼치는 것만 잡아도 금세 1위 할 텐데. 여기 애들은 하도 뺀질거려서.”
“그러니까 애들 딴생각 못 하게 확실하게 굴리라고. 어떻게든 전반기에 4위까진 올려야 후반기에 3위는 노려 볼 거 아니야?”
“말이야 쉽죠. 마음 같아선 제가 나가서 치고 싶다니까요.”
“어떻게든 치게 만들어야지. 우리도 성적이 좀 나와야 다른 데에 이력서를 낼 수 있다. 다들 알지? 어?”
“예, 예. 그렇죠.”
“애들 꾀병 부리는 거 무시하고 강행해. 함성훈이처럼 유약하게 나가면 애들 만만하게 본다.”
“그거야 다 알죠.”
“그래, 다시 한번 말해 주는 거야. 잘해 보자. 전반기 4위는 가야지.”
“오늘은 폭스 아닙니까? 만만한 놈이 오면 밟아 줘야죠.”
“그래, 폭스 잡고 다음 피닉스 아닌가? 잡을 놈은 잡아야 4위 가는 거야. 오늘부터 연승 가 보자고.”
3~5위권에서 버티는 고트와 달리 부산 폭스와 대전 피닉스는 꼴찌 싸움에 이골이 난 약체였다.
그날 저녁.
고트는 부산 폭스를 상대로 1차전에 무려 14-3이라는 대승을 거뒀다.
임의수는 오랜만에 미소를 띠며 경기장을 나섰다.
전반기까지 한 달 남짓.
현재 5위지만 대진 운이 좋다.
전반기에 4위에만 올라도 후반기는 자신 있었다.
모든 팀은 다 후반기에 들어 체력에 지쳐 허덕거리기 마련이다. 같이 체력이 부족해 허덕인다면 단기전에 강한 임의수가 한발이라도 더 앞설 수 있다.
“크으.”
임의수는 오랜만에 맥주가 아닌 와인을 땄다.
결혼기념일이라고 후배가 줬던가, 선배가 줬던가.
임의수는 이혼 서류를 안주 삼아 와인 한 잔을 비웠다.
취기에 눈이 감긴 시간은 새벽 0시 22분.
전화기 진동이 울렸지만 임의수는 무시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우우우웅.
쉬지 않는 진동에 임의수는 결국 전화기를 들었다.
발신자는 고트의 운영팀장이었다.
“감독님! 큰일 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