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61화 (61/201)

Young gun (6)

“수고하셨습니다!”

경기는 고트의 승리로 끝났다.

이백찬은 강속구로 상무 타선을 꽁꽁 묶었다.

경기가 끝나자 김정률이 송석현에게 다가왔다.

“어이, MVP. 어떻게 슬라이더 알고 친 거야? 쿠세가 뭔데?”

송석현은 씨익 웃었다.

“팔꿈치요.”

“팔꿈치?”

“네, 슬라이더를 던질 때 살짝 더 팔이 빠지더라고요.”

“살짝? 그게 보였다고?”

“그래서 타석에서 발자국을 찍어 놓고 안 움직였어요. 똑같은 자세에서 보면 투수 팔꿈치가 더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알잖아요.”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데?”

“음…….”

송석현이 손가락 한 마디를 가리켰다.

“요 정도?”

“타석에서 그게 보이디?”

“계속 보니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안 쳤던 거야? 쟤 쿠세 알아보려고?”

“네, 앞으로 자주 만날 수 있는 투수잖아요. 오늘 한 경기 버리고 투수 쿠세를 알아내면 그게 이득 아니에요?”

“오늘 홈런 두 방 친 놈이 그런 말을 하니까 웃기긴 하다.”

김정률은 소리 내 웃더니 송석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투자한 가치가 있는 놈이야. 야, 형도 쿠세가 있냐?”

“에이, 형은 쿠세 없어요.”

“정말이야? 형이 아래로 던진 지 얼마 안 됐는데 쿠세가 없어?”

“오히려 던진 지 얼마 안 돼서 쿠세가 없는 거 같아요. 나중에 보이면 그때 얘기해 드릴게요.”

송석현이 벤치로 돌아와 장비를 벗었다.

장비를 챙겨 일어서는데 배터리코치 김태우가 다가왔다.

“석현아.”

“네, 코치님.”

“내일 오전에 시간을 비워 둬야겠다.”

“오전에요?”

“그래, 너한테 인터뷰 요청이 온 모양이야.”

“예?”

“별일 없으면 구단에서도 오케이할 테니까 내일 오전에 인터뷰하는 거로 알고 있어라.”

“갑자기 인터뷰요?”

“오늘 잘했잖아. 한번 인터뷰 딸 만하지.”

“아…… 네. 알겠습니다.”

그날 저녁.

송석현과 김인환, 김정률이 저녁을 함께했다.

식사를 마칠 무렵 타격코치가 김인환을 직접 찾았다.

“인환아, 밥 다 먹었냐?”

“네, 지금 다 먹었는데요.”

“잘됐네. 일이 좀 급하게 됐다. 너 지금 짐 싸서 서울로 올라가. 내일 경기부터 바로 뛰어야겠다.”

“지금요?”

“그래, 얼른 짐 챙겨서 가.”

“아…… 네. 알겠습니다.”

코치가 자리를 뜬 후 김인환은 김정률을 쳐다봤다.

“형, 내일 아침에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오늘 올라가라고 한 적도 있어요?”

“우리야 서울까지 가까워서 보통 당일 올라가기는 하는데……. 다른 데는 전날 올라가기도 하니까.”

“갑자기 절 왜 부르죠? 누가 내려오지?”

“글쎄다. 대규가 내려오나?”

송석현이 가볍게 박수를 보냈다.

“축하해요, 형. 이번에는 1군에서 오래 있다가 와요.”

“어, 어. 그래. 축하는 고맙다. 뭔가 좀 뜬금없긴 하지만…….”

“올라가면 좋은 거죠. 나쁠 게 있어요?”

“그거야 그렇지만…….”

송석현과 김정률은 짐을 싸는 김인환을 도왔다.

1군에서 2군을 들락이는 건 자주 있는 일이라 짐을 싸는 것도 금방이었다.

김인환은 차에 타기 전 송석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도 얼른 올라와.”

“노력해 볼게요.”

“얀마, 형은 여기 살라고?”

“형은 조금 있다가 올라올 거잖아요. 우리 팀에서 불펜이 노는 법 있어요?”

김정률이 파하하 웃었다.

“하기야. 뭐, 그렇지. 갈리는 게 문제지 다른 게 문제는 아니지.”

“일단 저 먼저 올라가 있을게요. 두 사람 다 얼른 올라와요.”

김인환은 차를 타고 떠났다.

김인환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김정률은 한숨을 쉬었다.

“왜요?”

“……흠, 뭔가 찜찜해서.”

“뭐가 찜찜하신데요?”

“나한테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거든. 1군에서 누가 내려온다고 하면 나한테 연락 한번 할 텐데……. 내려온다는 사람은 없는데 인환이가 이렇게 급하게 가니까 이상하지.”

“무슨 사고가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기사가 떴겠지. 아, 아니다. 기사가 안 뜬 게 더 위험한 건가?”

“선배님, 불안하게 그런 말씀을…….”

“하긴, 좀 재수 없었다. 자 자, 들어가자. 잠깐 쉬었다가 훈련하자.”

“네.”

송석현은 저 멀리 김인환의 차가 사라져 버린 곳을 바라봤다.

* * *

다음 날 아침.

송석현은 아침 일찍 배터리코치의 문자를 받았다.

-오늘 인터뷰는 구단에서 취소했다.

설명이나 이유도 없이 단 한 줄의 문자.

송석현은 문자를 한참 보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어이, 송 씨. 뭔데 그렇게 표정이 심각하셔?”

함께 오전 훈련에 나선 김정률이 송석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 오늘 인터뷰 취소됐다고 연락이 와서요.”

“응? 오늘 오전 인터뷰 아니었어?”

“네.”

“그런데 인터뷰를 당일 이렇게 급하게 취소한다고?”

“구단에서 취소했대요.”

“구단에서 취소했다고……?”

김정률이 걸음을 멈췄다.

송석현도 따라서 걸음을 멈췄다.

“어째 기분이 싸아아하다. 어제 인환이부터 말이야.”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인터뷰 약속을 미루거나 바꿀 순 있어도 취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당사자가 사고 치는 거 아닌 이상 말이야. 너 나 몰래 사고 친 거 있어?”

“아뇨. 만날 선배님이랑 붙어 다니는데 어떻게 사고를 쳐요?”

“밖에 나가서 뭐 사고 친 거 없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건 없는데.”

김정률이 혀를 찼다.

“네가 문제가 아니면 구단에 문제가 생긴 거네.”

“구단에요?”

“내가 모르는 게 있나 본데…….”

김정률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너 먼저 가 있어. 나 통화 좀 하고 갈게.”

“네, 금방 오시죠?”

“금방 갈 거야.”

김정률은 30분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대신 문자 하나를 보냈다.

-오늘 오전 훈련은 빼자.

송석현은 장비를 챙겨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일이지……?”

김정률은 그날 상무 2차전 원정 경기에도 빠졌다.

송석현이 투수코치에게 이유를 묻자 오늘 1군에 간다는 말만 해 줬다.

송석현이 김정률에게 문자를 보내자, 김정률은 뒤늦게 답장했다.

-나 오늘 1군 갈 거 같다. 사정이 급해서 준비하느라 바쁘네. 형 먼저 서울에 가서 연락할게. 오늘 경기 잘 뛰어라.

김인환과 김정률의 갑작스러운 콜업.

2군 선수들은 팀의 에이스라 할 수 있는 두 선수의 콜업에 혼란스러워했다.

두 명이 올라가면 두 명이 내려와야 한다.

한데 아직 내려온 사람이 없다.

감독도 코칭스태프도 가타부타 어떤 말도 없었다.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 경기는 시작됐다.

송석현은 선발로 나섰다.

투수는 이상철.

2군에서는 불펜과 선발을 오가는 선수였다.

원래 투수 로테이션에는 없는 선수였지만 어제 갑자기 교체돼 선발로 나왔다.

-플레이볼!

1회는 고트의 공격부터 시작됐다.

상무의 투수는 황준표.

페가수스의 선발 유망주로 상무에서도 김영곤 다음으로 꼽는 투수였다.

-스트라이크!

황준표는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잡아내더니 연이어 세 타자를 범타 처리로 1회를 마쳤다.

“자, 자. 힘내자. 정신 차리고.”

고트의 타격코치가 손뼉을 치며 축 처진 분위기를 돋웠다.

코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직구, 바깥쪽.’

송석현은 1번 타자 상대로 초구를 직구로 선택했다.

투수는 힘껏 와인드업하더니 한복판에 직구를 던졌다.

탁.

1번 타자는 그대로 공을 밀어 쳐서 안타를 만들었다.

무사 1루.

다음 타자는 유격수 방정욱이었다.

“…….”

송석현이 그라운드를 쳐다봤다.

수비하는 선수들이 잔발을 치지 않았다.

투수는 어깨에 힘을 풀고 멍하니 서 있었다.

“흠흠.”

송석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인을 내는 척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방정욱은 상무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다.

느슨한 줄로는 낚아챌 수 없다.

‘바깥쪽, 포크.’

이상철은 국내에서 드문 포크볼러였다.

덕분에 빠르지 않은 공에 대단찮은 제구력을 지녔지만 2군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바깥쪽 포크볼이야말로 헛스윙의 대명사.

송석현은 어깨가 덜 풀린 투수가 공 하나를 낭비하더라도 영점을 잡길 바라며 포크볼을 요구했다.

‘알았어.’

이상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를 한번 견제한 후 피칭.

공은 바깥쪽으로 잘 빠졌으나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탁!

방정욱은 힘없이 밀려온 공을 외야로 밀어 쳤다.

무사 1, 3루.

투수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후.”

송석현은 앉은자리에서 한숨을 쉬었다.

어제 홍대성, 이백찬은 제구가 안 돼도 구위로 찍어 눌렀다.

이상철은 구위마저 약했다.

유일한 비기(祕技)인 포크볼마저 떨어지지 않으면 풀어 나갈 도리가 없다.

타석에는 3번 타자가 들어섰다.

3번 타자는 포수 박상연.

어제와 다른 타선이었다.

“흠흠.”

박상연은 송석현을 눈으로 슬쩍 보곤 타석에 자리 잡았다.

송석현은 박상연의 발을 보곤 바깥쪽 직구 사인을 냈다.

팟!

투수가 던진 공은 낮게 왔으나 바깥쪽은 아니었다.

박상연은 그대로 공을 들어 올려 외야로 보냈다.

휘리릭.

박상연이 던진 배트가 1루 선상 밖으로 떨어졌다.

홈런.

3점 홈런이었다.

“좋았어!”

“이야, 어제 복수하는 거야?”

“역시. 최고는 박상연이지.”

“홈런왕 박상연 납신다~.”

상무는 1회부터 3점 홈런을 치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고트는 어제의 승리를 잊은 듯 분위기가 점점 가라앉았다.

팡팡.

“자, 자. 집중하죠!”

송석현이 큰 목소리로 투수에게 말했다.

1회 초는 6실점으로 끝났다.

1회 투구 수는 서른세 개.

벤치로 돌아온 투수는 녹초가 돼 쌕쌕거렸다.

“한 점, 한 점 따라가자. 집중.”

2회 초.

선두 타자는 송석현이었다.

송석현이 나오자 포수 박상연의 몸짓이 부산스러워졌다.

상무 벤치에서도 사인이 요란했다.

“…….”

당사자인 송석현은 가만히 서 있었다.

황준표의 초구는 몸 쪽 직구.

송석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고트의 배터리코치 김태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깊은데. 저렇게 주면 누가 쳐?”

옆에 있던 투수코치가 말했다.

“우리도 저기 던지기만 하면 상관없죠. 못 던져서 그렇지.”

제2구도 몸 쪽 직구였다.

송석현은 이번에도 미동하지 않았다.

박상연은 제3구에 앞서 손이 더 부산스러웠다.

투수는 고개를 흔들고 포수는 다시 사인을 냈다.

심판이 속행하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사인은 좀체 끝나지 않았다.

끄덕.

긴 사인 교환 끝에 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큰 와인드업 후 피칭.

-스트라이크! 아웃!

이번에도 몸 쪽 깊은 공이었다.

보통 스트라이크존보다 공 하나는 더 깊은 곳.

송석현은 그대로 서서 스탠딩 삼진을 당했다.

박상연은 상기된 얼굴로 송석현의 표정을 살폈다.

송석현은 삼진을 당하자 아쉬움 하나 없이 타석에서 나가 벤치로 돌아가고 있었다.

“……뭐야, 시시하게.”

박상연이 입맛을 다셨다.

타석의 핵이라 부르는 송석현이 침묵하자 고트의 타선은 물에 젖은 대포가 됐다.

2회에도 세 타자 연속 범타.

2회 말에는 상무가 추가점을 내며 9-0까지 점수를 벌렸다.

“예에.”

“오늘 부숴 버리자!”

“고트 밟아 버려!”

상무 선수들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 더 크게 소리를 올렸다.

승부의 추는 기울대로 기울어져 버렸다.

김빠진 맥주 같은 경기.

경기가 다시 불이 붙은 건 3회 말부터였다.

아웃!

2번 타자 방정욱의 2로 도루 실패.

상무에서 도루를 가장 잘하는 선수가 이틀 연속 도루에 실패했다.

고트의 타선은 물에 젖고, 투수의 공은 무딜 대로 무뎠으나 포수의 어깨는 잔뜩 성이 나 있었다.

상무의 감독 정상훈이 코치를 불렀다.

“오늘 애들 전부 다 그린라이트다. 2루 도루 성공시켜, 무조건.”

경기의 양상은 승패가 아니라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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