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gun (3)
에이스는 에이스였다.
김영곤은 1회부터 4점을 내줬으나 2회부턴 삼진을 쌓아 갔다.
빠른 직구로 윽박지른 후 떨어지는 하드 슬라이더로 삼진.
고트의 타자들은 김영곤의 슬라이더에 맥을 못 췄다.
최고 140km/h의 하드 슬라이더는 2군 무대에선 언터처블에 가까웠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홍대성 선수 대단하네요. 세 타자 연속 삼진. 구위가 정말 대단합니다.”
“공이 대부분 높게 형성되는데도 삼진을 뽑아내고 있습니다. 구속도 지금 152km/h까지 나오거든요.”
“서로 비슷한 유형의 투수라고 했지만 양상은 조금 다른 거 같습니다. 김영곤 선수는 슬라이더로 삼진을 잡는데 홍대성 선수는 직구로 삼진을 잡고 있습니다.”
“경험의 차이인 거 같습니다. 홍대성 선수의 변화구는 오늘 위력적이진 못하거든요. 구속이 빨라도 타자들은 또 금세 적응합니다. 타선이 한 바퀴 돌면 홍대성 선수의 직구 위주의 볼 배합은 위험해요. 지금처럼 높은 공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홍대성은 마운드에서 내려오자 팔짝팔짝 뛰면서 송석현에게 달렸다.
송석현은 홍대성이 두 팔을 벌리며 다가오자 몸을 피했다.
“석현아~.”
“왜 이래, 너?”
“흐흐, 재밌다. 오늘은 야구가 재밌는데?”
“언제는 재미없었냐?”
“보통은?”
송석현은 포수 마스크를 벗고 자리에 앉았다.
홍대성은 송석현 옆에 딱 달라붙었다.
“쫌.”
송석현이 한 사람은 족히 들어갈 만큼 자리를 띄워 앉았다.
“근데 이렇게 계속 던져도 될까나?”
“공 높이를 낮추면 좋지. 그런데 지금 그게 잘 안 되잖아? 아까도 패대기 공 나왔으면서.”
“그러면 계속 힘으로 찍어 눌러?”
송석현은 프로텍터까지 다 벗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후 음료수 한 잔을 마셨다.
“너 팔 높이를 교정하란 소리 안 들어 봤어?”
“팔?”
“어, 릴리스 포인트 낮추라는 말 말이야.”
“들어 봤지.”
“보통 제구가 안 좋으면 릴리스 포인트를 낮추잖아. 그런데 넌 애매해. 높은 것도 아니고 낮은 것도 아니고. 그게 낮춘 거야, 아니면 낮추다 만 거야?”
“낮춰도 별로 효과가 없는 거 같아서.”
“낮추는 건 시도해 봤고?”
홍대성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해 봤지.”
“얼마나 진지하게 했는데? 1년? 2년?”
“에이, 뭐 그렇게까지. 한…… 2주?”
“2주? 2주 해서 그게 교정이 되냐?”
“팔 높이를 낮춰도 제구도 안 되고 공도 더 느려진 거 같고 그래서.”
“제구가 안 좋으면 제구를 좋게 하든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만들어 봐. 너 포크나 스플리터는 던져 봤어?”
홍대성이 자기 손가락을 내밀었다.
“해 봤는데 잘 안 돼.”
“흠…… 그러면 떨어지는 공은 영 소질이 없다는 거네. 커브는?”
“던질 줄은 알지, 던질 줄은.”
송석현이 고개를 저었다.
“결국 사이드로 빠지는 공을 던져야 하는데 각도를 낮추는 건 싫어하니 별수 없네. 앞으로도 이런 패턴으로 해야지. 물론 1군에선 개털리겠지만.”
“뭐?”
홍대성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뭐 그런 저주의 말을 하냐, 친구끼리?”
“공은 빠른데 제구는 별로야.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구도 없어. 바깥쪽으로 빠지는 변화구도 없어. 공도 최고 구속 153km/h 정도. 당연히 1군에서 안 통하지. 저기 김영곤을 봐. 제구가 너보단 낫지만 뛰어난 정도는 아닌데 너랑 차원이 다르잖아. 통하는 변화구가 있냐, 없냐 차이지. 내가 하는 건 임기응변일 뿐이야. 너무 좋아하지 마. 결국 네 공은 눈에 익으면 맞게 돼 있으니까.”
“포수가 투수 기운 떨어지게 그런 말 해도 되냐?”
“실망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야. 어차피 넌 맞게 돼 있어. 오늘 공이 계속 높잖아.”
송석현은 말을 하면서 다시 포수 장비를 찼다.
김영곤의 삼진쇼에 타자들이 픽픽 나가떨어져 어느새 공수 교대가 다가왔다.
“내 말이 듣기 싫으면 구위로 찍어 누르시든가.”
김영곤과 홍대성의 투수전은 5회까지 이어졌다.
송석현의 말이 무색하게 홍대성은 상무 타선을 직구 하나로 찍어 눌렀다.
연속 볼넷 세 개를 내주기 전까진.
“아, 무사 만루네요. 홍대성 선수. 제구가 급격하게 흔들립니다.”
“공이 계속 높게 제구되고 있었는데 그동안 버틴 건 그래도 좌우 제구는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거든요. 특히 바깥쪽 제구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바깥쪽 공도 많이 벗어나는 공이 나오고 있습니다. 홍대성 선수가 바깥쪽으로 빠지는 변화구가 있었다면 모를까, 저렇게 직구가 바깥쪽으로 빠지기 시작하면 타자의 배트는 시동을 걸 필요가 없죠.”
“말씀드리는 순간, 1번 타자 홍진섭 선수가 나옵니다. 오늘 출루가 없습니다. 1번 타자가 출루가 없으니 공격 활로가 풀리지 않습니다.”
“홍진섭 선수가 공은 잘 치거든요. 이번에 몰리는 공이 보이면 주저 없이 돌릴 겁니다.”
송석현의 사인은 90%가 직구였다.
홍진섭을 맞이해 송석현이 낸 사인은 바깥쪽 낮은 공 직구.
이제는 되든 안 되든, 낮은 공을 던져야 한다.
“홍대성 선수, 포수와 사인을 교환합니다. 이번에는 신중하게 보네요.”
“신중해야죠. 무사 만루 아닙니까?”
“투수 와인드업!”
홍대성의 공은 자로 잰 듯, 한가운데로 날아왔다.
홍진섭은 결대로 공을 밀어 쳐 외야 우중간을 갈랐다.
“쳤습니다! 안타! 안타!”
“이러면 싹쓸이 2루타가 될 거 같습니다.”
“주자 홈인! 2루 주자도 홈인! 1루 주자까지 달려옵니다! 1루 주자도 들어오고, 타자 주자는 2루로! 2루까지 갑니다!”
“아슬아슬했는데 결국 경기가 이렇게 되네요. 4-3. 이제 1점 차. 5회에 1점 차는 뒤집히고도 남을 점수죠.”
홍대성이 풀 죽은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포수는 어떤 제스처도 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홍대성은 팔을 들어 빙빙 두 번 돌렸다.
“역시 프로는 직구 하나론 안 되나.”
상무의 2번 타자는 방정욱.
수원 페가수스의 차기 유격수이자 상무에선 가장 잘 치는 타자.
오늘 출루는 없었지만 홍대성을 상대로 모두 공 다섯 개 이상을 끌고 가는 저력을 보였다.
“무사 2루 상황에서 하필 방정욱 선수가 나오네요.”
“방정욱 선수, 수비에 가려져서 그렇지 타격도 좋습니다. 오히려 수비가 너무 좋아서 타격이 가려진 케이스예요. 선구안도 좋고 공도 결대로 잘 밀어 때리는 타잡니다.”
“방정욱 선수가 2번 타잡니다. 그 말은 3번, 4번 타자가 뒤에서 기다린다는 얘기죠. 여기가 승부처가 되지 않겠습니까?”
“현실적인 방법은 여기서 1루를 채우고 병살을 노리는 겁니다. 하지만 3번 신석열 선수는 일발 장타가 있거든요. 거기에 4번 황영식 선수는 힘이 상당한 타잡니다. 힘과 힘으로 가면 홍대성 선수에게 밀릴 선수는 아니에요. 상성으로 보면 홍대성 선수는 힘으로 찍어 누르는 투수라서 반대로 힘으로 이겨 낼 수 있는 타자가 나오면 힘들어집니다. 여기서 승부를 봐야 해요.”
송석현의 사인은 바깥쪽 직구.
마음 같아선 몸 쪽 빠른 공 하나로 타자를 윽박지르고 싶었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다.
홍대성의 제구가 나빠진 상황이라면 빈볼일 확률이 높다.
1루를 채우는 건 좋은 선택이지만 타자가 위험할 수 있다.
홍대성의 지금 제구로는 타자의 머리로 공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다.
“음…….”
홍대성은 잠시 고민하더니 크게 와인드업했다.
2루 주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팡!
-스트라이크!
타자가 놀라 몸을 뺐다.
몸 쪽으로 낮은 곳으로 들어오는 크로스 카운터.
명백한 반대 투구지만 각도가 날카로웠다.
“방금 공은 정말 좋았네요.”
“방금 같은 공을 계속 던질 수만 있다면 홍대성 선수는 당장 1군에 가서도 에이스로 활약할 수 있을 겁니다.”
해설자의 칭찬과 달리 송석현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팔 각도가 낮았다.
눈에 확 띌 정도는 아니지만 공 하나 높이가 낮아졌다.
고의로? 아니면 실수로?
경기 중에 팔 각도를 조절한다고?
송석현은 다시 바깥쪽 직구 사인을 냈다.
팡!
-스트라이크!
똑같은 코스의 똑같은 직구.
방정욱은 이번에도 배트를 낼 수 없었다.
크로스로 오는 150km/h 몸 쪽 낮게 꽉 찬 공을 칠 수 있는 타자가 몇이나 있을까?
“2스트라이크! 순식간에 타자를 몰아세웁니다.”
“이거 게임이 재밌어지는데요? 갑자기 제구가 좋아졌습니다. 우연인 건지, 아니면 제구가 이제야 잡힌 건지 궁금하네요.”
“방정욱 선수가 꼼짝도 못했는데요.”
“저런 공은 절대 손을 대선 안 돼요. 카운트가 몰리기 전까진 두고 봐야 하는 공입니다.”
송석현은 투수에게 공을 던져 줬다.
분명하다.
일부러 손을 내렸다.
경기 중에 투구 폼을 바꾼 거다.
팔 각도가 낮아지면서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바깥쪽으로 흘렀다.
송석현은 처음으로 사인을 내기를 주저했다.
“…….”
마운드에 올라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송석현은 공 하나를 더 보고 결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직구, 바깥쪽.’
아까와 똑같은 공이 오면 똑같은 코스라도 방정욱은 삼진이다. 다만 똑같은 공을 던질 수 있냐는 게 문제다.
홍대성은 과시하듯 크게 와인드업 하곤 공을 뿌렸다.
-스트라이크! 아웃!
“와! 방금 공은 정말 좋았습니다!”
“바깥쪽에 꽉 차는 공이었습니다. 저런 공은 배트가 나갈 수가 없죠. 저렇게 제구가 잘된 빠른 공을 어떻게 치겠습니까?”
“안쪽으로 공 두 개를 찔러 넣고 바깥으로 빠른 공 하나. 정말 완벽했습니다.”
송석현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엉망이다.
경기 도중에 투구 폼을 바꿨는데 제구가 될 리 없다.
송석현은 타임을 요청하고 마운드로 올라갔다.
“왜?”
홍대성이 눈을 반짝이며 해맑게 물었다.
“미쳤냐? 경기 도중에 투구 폼을 바꿔?”
“네가 손 낮춰 보라며.”
“그건 연습할 때의 얘기지.”
“낮추니까 공이 더 잘 가는 거 같아. 재밌어.”
“그래서 계속 그렇게 던지려고?”
“어, 뭔가 전과는 달라. 구속은 비슷한데 공이 더…… 찰져.”
송석현은 오른손에 힘을 꽉 줬다.
“하아.”
홍대성을 바라보다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네가 내 말을 듣겠냐? 해 보고 싶은 대로 해 봐. 단, 나랑 상의 없이 뭐 하지 마. 경기 도중에 투구 폼을 바꾸는 놈이 어딨어?”
“여기?”
송석현은 혀를 한번 차고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투수가 아무리 개인주의에 쪄든 종족이라지만 저 정도면 정신병이다.
제멋대로인 투수를 경기 도중에 어찌할 건가?
송석현은 자리로 돌아왔다.
‘직구, 한가운데.’
분명 아까보단 탄착군이 작아졌지만 여전히 제구는 랜덤이다.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가 있는가?
그냥 미트를 내밀고 어디로 올지 모르는 공을 마중 나가면 될 일이다.
“좋았으.”
홍대성이 초구부터 153km/h의 직구를 찔러 넣었다.
코스는 한가운데.
타자는 눈을 크게 뜨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우 씨, 빠른데.”
송석현은 그저 미트를 가만히 댔다.
사인도 없었다.
홍대성의 입꼬리가 점점 위로 올라갔다.
“재밌네. 야구 재밌어.”
3번 타자 삼구 삼진.
송석현은 미트를 가운데에 대고 있었지만 공은 몸 쪽, 바깥쪽으로 제멋대로 날아왔다.
“하. 빨리 1군을 가든가 해야지, 원.”
송석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포수 후면 관중석.
안경을 낀 남자가 노트북이 아닌 송석현을 바라봤다.
노트북엔 ‘굿 스포츠’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야, 오늘 대박인데?”
남자의 이름은 석수일.
굿 스포츠의 기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