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gun (1)
KPBL의 2군은 크게 북부리그와 남부리그, 두 리그로 나눠서 운영된다.
남부리그는 대전 피닉스, 광주 불스, 대구 스콜피언, 부산 폭스, 경찰청 다섯 팀이 참가했다.
전통의 강팀 대구 스콜피언은 오랫동안 남부리그에서도 강팀으로 군림했다.
이에 반해 북부리그는 뚜렷한 강자가 없었다.
1.5군 선수들이 가장 많다는 고트도 강력했지만 다른 팀도 만만치 않았다.
5년간 세 번의 우승을 한 수원 페가수스.
여덟 개 구단 중 가장 유망주를 잘 키운다는 서울 울브스.
전통의 짠물 수비 인천 웨일스.
네 개 구단 외에도 다크호스 같은 팀이 있었으니…….
육군 상무 팀이었다.
젊고 뛰어난 선수들이 대거 입단하면 2부리그의 최강자가 됐고, 좋은 선수들이 빠지면 금세 하위권으로 떨어졌다.
2013년의 상무는 유망주의 요람이었다.
국가 대표 출신이자 차기 서울 울브스의 에이스로 꼽히는 좌완 파이어볼러 김영곤이 마운드를 지켰다.
페가수스에서 일찌감치 차기 선발감으로 키우는 황준표, 웨일스의 차기 안방마님으로 꼽는 박상연까지.
23세 이하로 한정하면 상무의 배터리는 열 개 구단을 통틀어 최고였다.
타선으로 눈을 돌리면 페가수스의 차기 유격수 방정욱도 있었다.
페가수스의 센터 라인은 역대 모든 팀을 통틀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으로 평가됐다.
역대 최강 센터 라인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유격수 차기 후보.
상무라는 조건 덕에 뎁스에 문제가 있었지만 올해 상무는 역대 최고의 팀 중 하나였다.
* * *
“주목.”
상무의 감독이 뒷짐을 지었다.
선수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선 차렷 자세로 섰다.
“오늘 방송 오는 거 알고 있지?”
“네!”
“많은 거 주문 안 한다. 쪽팔릴 일 만들지 말자. 이기라는 말도 안 해. 내 얼굴에 먹칠할 일 없어야 할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네!”
“니들 카메라 왔다고 들떠서 호들갑 떨지 마라. 마음이 붕 뜨면 동작은 굼뜨게 돼 있어. 오버하지 마. 어?”
“예! 알겠습니다!”
“좋아. 니들이 잘하면 앞으로 2군 경기도 주기적으로 방송에 타게 될 거야. 내가 힘들게 윗선을 설득해서 진행한 일이야. 나만 좋은 게 아니라 너희들한테도 좋은 일이잖아. 어? 그러니까 제대로, 제대로 하자.”
“예! 알겠습니다!”
KPBL은 2군 경기, 아마추어 경기 지원을 위한 사업을 준비했다.
다름 아닌 중계 경기.
그동안 꾸준히 2군 경기도 중계하려 시도했지만 스포츠 방송사에선 난색을 표했다.
시청률이 문제였다.
KPBL은 방향을 돌려 인터넷 방송 등과 손잡고 시범적으로 중계 경기를 준비했다. 여건상 모든 2군 경기를 중계할 순 없었다.
KPBL이 가장 먼저 눈독을 들인 팀은 상무였다.
현재 상무는 올해 유망주가 대거 입단해 강팀인 데다 일반 야구팬들도 알 만한 선수들도 많았다.
북부리그가 서울-경기 팀 위주로 모여 있어서 중계가 편하다는 것도 큰 이유였다.
감독이 자리를 뜨자 선수들도 자세를 풀었다.
“이야, 오늘 팀도 딱 좋네. 고트.”
“고트면 할 만하지. 지금 1군에서 내려온 애들도 없잖아?”
“2군 고정 멤버들이면 어렵지 않지.”
“오늘 시원하게 이겨 줘야 감독님 면도 세워 드리고 우리도 TV에 대문짝만 하게 나오겠네.”
“라인업도 좋지 않아? 오늘 영곤이가 선발이잖아.”
“야, 선크림 더 없냐? 이거 더 발라야 하는데.”
상무 선수들이 잡담을 하며 몸을 풀었다.
고트 선수들은 버스를 타고 상무 경기장으로 가는 중이었다.
송석현은 버스 창가에 앉아 수첩을 보고 있었다.
-김영곤. 22세. 직구, 슬라이더 투 피치. 다른 팀에선 최소 토종 3선발 수준. 직구와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 위협적. 구위는 A급. 제구는 B급 이하. 스태미나도 훌륭함. 23세 이하 유망주 중에선 A급.
-몸 쪽 제구 미흡. 타석에 바짝 붙어 타격하는 게 해답이나 구위가 좋아 큰 효과를 못 봤음.
-홍대성. 20세. 직구, 슬라이더, 체인지업. 2013년 고트 1라운더. 계약금 6억. 2013년 투수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투수. 직구 구위는 A급. 제구도 B급 이상. 횡으로 빠지는 슬라이더는 인상적이지 못함. 체인지업도 평균 이하.
“내 것도 보고 있어?”
송석현은 옆에서 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눈꺼풀이 눈의 반은 차지해 보이는 남자, 홍대성이었다.
“앉아도 되지?”
“그래.”
송석현은 옆자리를 비웠다.
홍대성은 옆에 털썩 앉더니 한숨을 쉬었다.
“코치님이 너랑 얘기를 좀 하라고 해서.”
“그래? 무슨 얘기?”
“경기 전에 이런저런 얘기.”
송석현이 수첩을 덮었다.
“넌 뭐 할 얘기 있어?”
“아니, 넌?”
“투수가 없으면 포수도 없지.”
“그래? 음…… 그러면 나 여기 좀 있다가 갈게. 그래야 코치님한테 할 말이 있지.”
“그래, 그렇게 해.”
홍대성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송석현은 수첩을 열어 펜을 들었다.
-1번 타자 홍진섭. 발이 빠름. 방망이는 짧게 잡지만 배트가 돌아 나옴. 키킹이 큼. 바깥쪽과 안쪽 모두에게 약점. 떨어지는 공은 잘 침.
-해결 : 몸 쪽. 바깥쪽은 결정구로. 빠른 공으로 승부.
-2번 타자 방정욱. 수준급 타자. 장타가 부족하지만 선구안도 좋고 컨택도…….
“넌 참 열심히 쓴다.”
홍대성이 눈을 슬쩍 떴다.
“뭘 그렇게 열심히 써? 야구는 열심히 하면 그만인데.”
“상대 팀에 대해 알아 둬야지. 지피지기 백전불태잖아. 이기든, 지든 일단 알아 놓는 건 포수의 기본이야.”
“이야, 대단하다. 이러니까 다들 송석현, 송석현 하는구나.”
송석현이 말없이 홍대성을 쳐다봤다.
홍대성은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 놀리려고 하는 거 아니고. 안 그래도 진필 형도 그렇고 판석이 형이랑 천운이 형, 진오 형 다들 너랑 하고 나면 좋다고 하니까 신기했거든.”
“신기할 것도 많네.”
“포수가 열심히 공부하니까 나도 마음이 편하네. 어떻게, 오늘 우리 전략은 뭐야?”
“전략?”
“오늘 방송에 나온다는데 나도 좀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어?”
송석현은 펜을 내려놨다.
“그럼 내가 던지라는 대로만 던져.”
“뭐야, 너무 독선적이네.”
“오늘 경기에 관심 없는 투수한테 무슨 할 말이 있어? 포수가 하라는 대로 해.”
“야, 내가 왜 경기에 관심이 없냐?”
“관심이 있었으면 어제 나랑 오늘 경기 어떻게 할지 얘기했겠지.”
“그거야…….”
“관심 없는데 억지로 관심 있는 척하지 마. 나도 억지로 관심 있는 척하는 애한테 억지로 받아 주는 척하기 힘들어. 너 어차피 포수가 던지라는 대로 던지는 타입이잖아.”
“뭐…… 그건 그렇지.”
“네가 생각해서 던지는 거 아니면 포수를 믿고 던져.”
“내가 너 믿어도 되냐? 오늘 경기 잘할 수 있어?”
“믿고 안 믿고는 네 마음에 달렸지. 넌 마운드에서 최선을 다해. 난 홈 플레이트에서 최선을 다할 테니까.”
“그건 믿음직스럽네.”
홍대성이 송석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 잘해 보자.”
송석현도 홍대성의 손을 잡았다.
“그래, 잘해 보자.”
“너 믿고 던져 볼게. 그럼 됐지?”
“믿지만 말고 너도 나한테 믿음을 줘라. 공 잘 던져 봐.”
“오늘 김영곤이 올라온다는데 홈런도 한 방 때려 줘라, 나 승리 좀 올리게.”
“그게 내 마음대로 되냐?”
“안 되면 말고. 아니면 내가 점수 한 점도 안 줘 버리지 뭐.”
송석현과 홍대성이 서로 픽 웃었다.
차는 오래지 않아 경기장에 도착했다.
경기장엔 카메라와 해설 위원까지 와 있었다.
방송국 카메라와 비교하면 숫자도 성능도 부족했지만, 2군 선수들에게 중계방송은 반가운 행사였다.
먼저 훈련이 끝난 상무는 그라운드 밖에서 쉬고 있었다.
고트 선수들도 하나둘 훈련에 나섰다.
팡! 팡! 팡! 팡!
고트 선수 중 단연코 가장 눈길을 끈 건 김인환이었다.
이제는 프리 배팅에서도 풀스윙했다.
빗맞은 공도 담장 가까이 날아가는 플라이 공이 나왔다.
이를 본 상무의 투수 김영곤은 고개를 내저었다.
“힘은 진짜 무식하게 세다니까.”
이에 반해 송석현은 가볍게 밀어 치면서 컨디션만 조절했다.
프리 배팅이 끝난 후 김인환은 송석현에게 왜 짧게 치냐 물었다.
“오늘 투수 공이 빠르니까요. 최대한 타이밍을 뒤에다 두고 쳐 봤어요.”
경기 시작 시간이 되자 관중석이 어수선해졌다.
개인 방송 플랫폼을 이용한 생중계 경기이니만큼 기자들까지 와서 착석했다.
KPBL이 부탁해서 어쩔 수 없이 온 자리였겠지만 2군 선수들은 벌써 긴장해선 연신 기자들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플레이볼!
고트의 공격부터 시작했다.
1번 타자는 김승환.
고트의 중견수이자 작년까지 상무에 있었던 선수다.
1라운더 출신이지만 어느덧 25세.
2군에서 발군의 활약을 하고 있지만 1군 호출이 없었다.
관중석 한편에 마련한 부스에선 캐스터와 해설 위원이 나란히 앉아 구색을 맞췄다.
“경기 시작합니다. 오늘 경기 양상은 어떻게 흘러갈 거라고 보시나요?”
“예…… 상무의 투수 김영곤 선수는 20세에 국가 대표에 뽑힌 선숩니다. 팀 분배 때문에 뽑힌 것도 있지만 그만큼 잘하는 선수거든요. 아마 타순이 최소한 한 번 이상은 돌아야 선수들이 적응하지 않을까 싶네요. 일단 공을 많이 보는 게 중요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아! 초구를 치네요. 우익수 앞 안타. 안탑니다.”
“지금은 안타가 나왔지만 운이 좋은 안타가 나왔습니다. 텍사스 안타거든요. 선두 타자라면 조금 더 공을 봐 줬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김승환이 1루에 나가자 투수는 슬쩍 1루를 바라봤다.
기습적인 견제 그리고 귀루.
김승환은 슬라이딩도 아니고 서서 귀루했다.
“김승환 선수가 리드를 많이 가져가지 않네요. 병살을 피하려면 리드 폭을 넓혀 주는 게 중요한데요.”
투수는 1구로 바깥쪽 직구를 던졌다.
타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깥쪽에 밀어 쳤다.
주자는 그대로 달려 3루까지 진루했다.
무사 1-3루.
투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공을 받았다.
“놀랍네요. 첫 타자와 두 번째 타자 모두 초구를 받아쳤습니다.”
“보통은 1회 선두 타자로 나오면 공을 오래 지켜보는 게 정석이거든요. 하지만 오늘 고트는 아주 공격적입니다.”
“그리고 3번 타자로 김인환 선수가 나옵니다. 김인환 선수 힘은 진짜 리그 최고 아닙니까?”
“리그 최고가 아니라 역대 최고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파워가 있는 타자죠. 잠실에서도 밀어서 연타석 홈런을 때려 낸 타잡니다. 웬만한 플라이볼도 김인환 선수한테 맞으면 홈런이죠.”
“아마 정확도가 조금만 더 높았다면 1군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김인환 선수, 아직 어리니까 충분히 시간은 있습니다.”
김영곤이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는 시간이 길어졌다.
무사 1-3루에 타자는 김인환.
김인환이 고개를 돌려 대기 타석을 봤다.
대기 타석엔 오늘 4번으로 낙점된 송석현이 배트링을 낀 채 몸을 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