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 (2)
그날 오후.
송석현은 병원으로 온 동생과 교대했다.
터미널 입구에 도착하자 김인환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 벌써 왔어요?”
“나도 조금 전에 왔어. 넌? 어머니 괜찮으시고?”
“예, 뭐 괜찮으시대요.”
“다행이네. 아직 버스 시간 있는데 뭐 좀 먹을까?”
“아, 맞다. 그것보다 형.”
“응? 왜?”
“잠깐 저랑 어디 좀 같이 가요.”
“어딜?”
“시간 오래 안 걸려요. 얼른.”
송석현이 김인환의 손목을 붙잡았다.
두 사람이 함께 간 곳은 터미널 근처 안과였다.
김인환이 머뭇거렸지만, 송석현은 안과로 밀어 넣었다.
“시력검사 좀 하러 왔는데요.”
“네, 잠시만 앉아 계세요.”
김인환은 자리에 앉으면서 구레나룻을 긁적였다.
“웬 안과야, 안과는. 우리 집안은 웬만해선 병원 가는 일 없어. 다 건강해. 눈도 다 좋아.”
“건강한 거랑 시력은 상관없죠. 한번 시력검사 해 봐요.”
“괜찮은데.”
“금방이에요. 여기까지 왔으니까 얼른 하고 가요. 버스 시간도 많이 남았잖아요.”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10분이나 지났을까.
김인환은 당황한 얼굴로 의사를 바라봤다.
“난시라고요?”
“왼쪽 눈은 괜찮은데 오른쪽 눈에 난시가 좀 있네요. 시력도 왼쪽 0.8, 오른쪽 0.3. 왼쪽 눈이야 그렇다 치고 오른쪽 눈이 이 정도면 일상생활에서 답답한 게 있었을 텐데, 괜찮으셨어요?”
“어…… 그게…….”
“이 정도면 안경을 끼는 게 좋습니다. 야구 선수시라면서요? 제가 야구는 잘 몰라도 야구도 공 보는 게 중요하지 않나요?”
김인환은 바로 안경 전문점에 가 안경을 맞췄다.
안경은 검은 뿔테였다.
김인환은 안경을 쓰자 와, 하고 웃었다.
“진짜 잘 보이네. 신기한데?”
“형은 그동안 대체 어떻게 야구 한 거예요? 눈이 이 정도면 잘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나도 몰랐지. 우리 집에 안경 낀 사람도 없고, 다들 눈이 좋으니까.”
“형은 좌타자라 특히 우세안인 오른쪽 눈이 더 중요한데, 오른쪽 눈 시력도 안 좋고 난시까지 있었으면 진짜 최악 아니에요? 여태까지 친 게 더 이상해요.”
“내 눈이 왜 이렇게 갑자기 나빠졌지?”
“형 혹시 게임 해요?”
“요새 게임은 안 하고……. 아, 맞다. 나 저녁에 핸드폰 많이 해서 그런가?”
“불 꺼 놓고 핸드폰 보고?”
“어, 어.”
“그러니까 눈이 그렇게 나빠지죠. 앞으로는 절대 그런 거 하지 마요. 형 눈 더 나빠져요.”
“그러게. 와, 눈이 언제 이렇게 나빠졌지?”
김인환은 안경을 벗었다 쓰길 반복했다.
“신세계네. 너무 잘 보여. 와, 신기하다.”
김인환은 안경을 쓴 자신을 거울을 통해 봤다.
“어색하네, 안경 쓰니까.”
“적응될 거예요.”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이런 것도 모르고 은퇴했을 거야.”
“형이 둔한 거죠. 어떻게 이렇게 모를 수가 있어요?”
“안경 쓸 생각을 못 해 봐서……. 내가 바보 같았네.”
두 사람은 안경점을 나와 숙소로 복귀했다.
김정률은 김인환을 보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 너 뭐야? 웬 안경 코스프레?”
김인환은 머쓱해선 고개를 숙였다.
“알고 보니까 제가 눈이 나빴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그동안은 몰랐어?”
“제 왼쪽 눈은 정상이고 오른쪽 눈이 0.3에 난시까지 있대요. 그러니까 모르죠. 보통 두 눈을 다 뜨고 다니지 한쪽 눈만 뜨고 다니는 사람 없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너도 참 미련하다. 어떻게 시력이 그렇게 떨어질 때까지 모르냐?”
“뭐…… 미련한 건 저도 변명할 말이 없어요. 석현이 따라 안과에 안 갔으면 계속 모를 뻔했어요.”
“석현이가 은인이네. 넌 석현이한테 아침저녁마다 절하고 살아라.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 석현이가 니네 집 조상님이라도 되냐?”
“저도 항상 고마운 마음은 갖고 있습니다.”
“석현이 너는 어떻게 안과 데려간 거야?”
“형이 저번에 눈이 좀 안 보이는 거 같다, 이런 식으로 얘기해서 시간이 남는 김에 안과 한번 가 봤어요, 혹시나 하고.”
“너도 놀랐겠다. 인환이가 저렇게 미련하구나, 하고.”
“설마 했는데 진짜일 줄은.”
김인환은 안경을 매만지더니 방으로 들어가 배트를 가져왔다.
“배트는 왜?”
김정률의 물음에 김인환이 배트를 쓰다듬었다.
“한번 쳐 보게요. 효과가 있나 없나, 피칭 머신으로 돌려 봐야죠.”
“마음도 급하다. 쉬는 날인데 그냥 쉬어.”
“그냥 쳐 보고만 올게요.”
김인환이 자리를 떴다.
김정률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럴 때 보면 애야, 애. 참 나.”
송석현은 김인환이 간 걸 확인하곤 김정률 옆에 앉았다.
“선배님.”
“왜?”
“물어볼 게 있는데요.”
“그래그래, 물어봐.”
“저 1군에 가게 되면 월급도 바로 오르죠? 1군 최저 연봉 기준으로.”
“그렇지. 일수로 계산하나 그럴걸.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네, 난 FA라 너희랑은 산정 방식이 달라서.”
“어쨌든 월급 인상은 확실한 거죠?”
“그치. 근데 왜 갑자기? 1군 간다고 생각하니까 벌써 돈 쓸 궁리 하는 거야?”
“돈 쓸 궁리가 아니라…….”
송석현은 한숨을 푹 쉬었다.
“저희 어머니가 다치신 거 때문에 슈퍼를 접어야 할 거 같아요. 그럼 앞으로 제가 돈을 벌어야 하거든요. 지금 2군 월급으론 많이 부족하지만 1군 월급이면 세 식구가 어느 정도 먹고살 순 있을 거 같아서요.”
“그 정도로 많이 다치셨어?”
“많이 다치신 건 아닌데, 이번에 검사하니까 어머니가 골다공증이 심해서 조심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슈퍼는 아무래도 물건을 들고 나르는 일이 많아서 위험하잖아요.”
“아버지는?”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어요. 저랑 엄마랑 동생, 이렇게 있어요.”
“아이고, 그럼 네가 가장이 된 거야?”
“지금은…… 그렇죠.”
“집에 여유가 없구나?”
“제가 운동하면서 집안 살림을 많이 까먹었어요. 요새 슈퍼가 예전만큼 잘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열심히 벌어야죠.”
“당분간 생활비는 있고?”
“몇 달 정도는 괜찮을 거 같아요. 그 안에 1군 빨리 가야죠.”
“음…… 너도 고생이 많네.”
“고생은요. 제가 뻘짓 해서 다치지만 않았으면 집안 살림도 펴는 건데. 후, 제 탓이죠.”
“다친 게 네 탓이냐? 자책은. 그래…… 흠.”
“아무튼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송석현은 김정률에게 인사한 뒤 자리를 떴다.
김정률은 턱을 매만졌다.
“어린 놈이 참.”
* * *
다음 날 아침.
송석현은 새벽 늦게야 잠이 들어 곤히 자고 있었다. 노크 소리만 크지 않았다면 세상모르고 잤을 일이다.
“아하함, 누구세요?”
“형이다. 문 열어.”
“……정률 선배님?”
“어, 문 열어 봐.”
송석현이 문을 열자 김정률이 운동복을 차려입고 서 있었다.
“……?”
송석현이 영문을 몰라 졸린 눈을 비볐다.
“뭐 해? 아침 운동 하자. 형 공 받아 줘야지.”
“……지금요? 지금…… 7시도 안 됐는데.”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먼저 먹는 법이야. 알지? 얼른 옷 차려입어. 얼른.”
“어…… 알겠습니다.”
송석현은 꾸벅꾸벅 졸면서 옷을 차려입었다.
김정률은 찬물로 세수한 송석현의 볼을 마구 비볐다.
“잠 좀 깨, 인마. 가자, 얼른.”
송석현은 아침부터 김정률과 운동을 함께했다.
운동장을 두 바퀴 돌고, 스트레칭을 하고, 롱 토스까지 마쳤다. 김정률의 공을 받아 가며 1시간 남짓의 짧은 훈련을 마쳤다.
아침 훈련이 끝나자 김정률이 송석현에게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이리 와 봐.”
송석현이 다가오자 김정률이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자, 수고비.”
“……네? 수고비요?”
“오늘 고생했다. 앞으로도 계속 형이랑 아침 일찍 훈련하자. 형은 네가 공 받는 게 제일 편해. 그러니까 네가 아침에 나와서 형 공 받아 줘라.”
송석현이 손사래 쳤다.
“공이야 받는데 무슨 수고비예요? 괜찮습니다.”
“어허. 받아, 인마. 어른이 주는데, 짜식이.”
“정말 괜찮은데…….”
“쓰읍, 짜식이.”
송석현이 봉투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봉투는 유독 얇았다.
송석현이 그대로 봉투를 접어 뒷주머니에 넣으려 하자 김정률이 말렸다.
“어허, 돈을 위험하게 뒷주머니에 넣는 놈이 어딨어? 형 성의 무시하냐?”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넣을 데가 없어서.”
“그러면 가슴에 꼭 끌어안고 가.”
“……네.”
송석현은 숙소까지 봉투를 꼭 끌어안고 갔다.
지나가던 직원들과 선수들이 무슨 일이냐고 키득거렸다.
“정률 선배님 심부름입니다.”
송석현은 방에 도착해서야 봉투를 열어 봤다.
봉투에는 세 장의 지폐가 들어 있었다.
지폐의 색깔은 파란색도, 초록색도 아니었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송석현은 단위를 확인하더니 눈을 비볐다.
“어우, 눈이 뭐가 잘못됐나.”
다시 단위를 확인해 봤다.
“……?”
화장실에서 찬물로 얼굴을 박박 씻은 후에 다시 확인해 봤다.
“뭐야, 이거.”
송석현은 그대로 봉투를 들고 김정률을 찾아갔다.
“선배님!”
“아 씨, 깜짝아. 아, 뜨거워!”
김정률은 샤워를 마치고 은밀한 부위를 드라이기로 말리던 중이었다.
“뭐야, 인마. 놀라게.”
“이거 뭔가 잘못된 거 같습니다.”
“뭐가?”
“단위가요.”
“맞아. 그것보다 문이나 좀 닫아라.”
송석현이 문을 닫았다.
“아니, 단위가 이상하잖습니까? 선배님이 아무래도 실수하신 거 같습니다.”
김정률은 드라이기를 올려놓고선 수건으로 하체를 감싸 맸다.
“내가 어제저녁에 부탁해서 받아 놓은 건데 틀렸겠냐?”
“맞다구요?”
“이휴. 앉아 봐, 인마.”
김정률은 얼굴이 붉어진 송석현을 침대에 앉혔다.
“형이 그냥 주는 거 아니야. 빌려주는 거야. 나중에 1군에 가서 돈을 벌게 되면 그때 갚아.”
“그래도 이건 너무 큰돈이에요.”
“큰돈이지. 그래도 한 가족이 1년 동안 쓸 돈이라고 치면 그렇게까지 큰돈은 아니야. 일단 그걸로 1년은 버텨. 그동안 넌 운동만 열심히 해. 그러면 1군 저절로 갈 테니까.”
“아니…… 그게……. 그래도 그렇죠. 이렇게 큰돈을 저한테 주시면 어떡해요?”
송석현이 봉투의 돈을 꺼냈다.
세 장짜리 수표.
수표에는 천만 원정이 찍혀 있었다.
“이건 너무 커요.”
“아무리 야구 잘해도 넌 어린애야. 네 나이에 가장 노릇 한다고 신경 쓰면 잘될 것도 안 돼. 어머니 병원비도 들어갈 거고, 네 동생 학원비도 들어갈 거 아니냐. 네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그걸 짜내서 다 커버하려고 하냐? 받아 둬. 그걸로 생활비도 드리고 동생 용돈도 줘. 지갑에 돈이 없으면 사람이 여유도 없다. 운동 열심히 하는 거랑 여유 없는 건 다른 거야. 그러다 다쳐. 오버 페이스 하면 꼭 탈 나.”
“선배님…….”
“내가 너한테 도움 받은 것도 있고, 앞으로 너랑 같이 여기서 운동할 건데 후배가 어려운 걸 그냥 넘겨서야 쓰겠냐? 내 면도 안 서고, 존심도 있고.”
송석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렇게 고마우면 열심히 해. 열심히 해서 형 은퇴 전에 우승 반지나 하나 끼워 줘라. 형은 돈도 두둑하게 벌었잖냐. 이제 반지를 끼워야 성공한 삶 아니겠어? 그러니까, 그 돈 받고 운동 열심히 해. 네가 열심히 해서 우승시키면 형이 그 돈은 안 받을게. 어때? 의욕 팍팍 생기지?”
송석현이 고개를 푹 숙였다.
김정률은 송석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우리 집 가장 노릇 해서 네 맘 잘 안다.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철드는 것도 안 좋아. 책임은 나이 먹으면 어쩔 수 없이 짊어지게 돼 있어. 미리 질 필요 없어. 형이랑 운동만 열심히 하자.”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리고 이거.”
김정률은 서랍에서 봉투 하나를 더 꺼냈다.
“어제 내가 너 도와준다니까 인환이도 너 돕겠다고 돈 뽑아서 나한테 주더라. 짜식이 이런 건 나처럼 대놓고 줘야 하는데 걔가 숫기가 없어. 보니까 한 삼백 들었더라.”
“인환이 형이요?”
“나보다 인환이 돈이 더 큰돈이야. 나야 있는 놈이 넣어 주는 거지만, 인환이는 연봉도 적은데 너한테 주는 거 아니냐. 인환이한테 고맙다고 꼭 얘기해라.”
“이 돈까진 못 받아요. 이미 돈은 충분해요.”
“받아, 인마.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 너 펑펑 쓰라고 주는 돈 아니야. 집에 갖다드려. 내 돈은 받고 인환이 돈은 안 받으면 인환이가 얼마나 서운하겠냐?”
“아…… 그래도 이건…….”
김정률이 송석현의 머리를 헝클었다.
“인마, 받을 땐 받아. 나중에 네가 더 크게 갚으면 되지. 같이 열심히 해서 반지 끼워 보자. 어?”
송석현이 울먹였다.
김정률이 일부러 큰 소리로 웃었다.
“우냐? 울어?”
“아, 안 우는데요…….”
“사내새끼가 울기는. 이제 가, 인마. 형 말리던 거 마저 말려야 돼.”
송석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꼭 은혜 갚겠습니다.”
“은혜는 반지로 갚아라. 앙?”
송석현은 눈이 벌게져선 방으로 돌아왔다.
샤아아아아아.
샤워기를 틀어 놓고 송석현은 한참을 서 있었다.
책상 앞으로 돌아온 송석현이 의자에 앉았다.
송석현은 펜을 꺼내 공책에다 한 줄을 적었다.
-믿음에 보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