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54화 (54/201)

새옹지마 (1)

페가수스전 마지막 경기를 마친 후 송석현은 바로 짐을 쌌다.

송석현은 김인환과 함께 서울로 향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크게 안 다치셨다며?”

“……예.”

김인환은 서울로 가는 내내 송석현을 위로했다.

두 사람은 서울 터미널에서 내렸다.

“저는 이대로 병원에 가려고요. 나중에 들어가기 전에 제가 연락할게요.”

“병원에 같이 가.”

“형이요?”

“그래, 후배 어머님이 다치셨는데 병문안하러 가야지.”

“아니에요, 괜찮아요. 병원에 오래 계실 것도 아닌데.”

“그래도 사람 도리가 그게 아니지. 가자. 병원만 잠깐 들렀다 갈게.”

김인환은 송석현의 만류에도 병원까지 동행했다.

김인환은 병원 입구에서 과일과 음료 세트 하나씩을 사 들고 병실로 향했다.

똑똑.

송석현은 2인실 병실의 문을 열었다.

거기엔 송석현의 어머니가 누워 있었다.

“엄마.”

어머니 옆에는 동생 송철현이 앉아 있었다.

“오지 말라니까. 쉬지 뭐 하러 왔어.”

송석현의 어머니가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송석현은 일어나지 말라며 손사래 쳤다.

송석현의 어머니는 송석현과 입씨름하다 김인환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석현이 같은 팀 선배 김인환이라고 합니다.”

김인환은 바로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어머님이 편찮으시다고 해서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 이렇게 찾아뵀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우리 석현이 선배구나. 석현아, 엄마 좀 일으켜 봐라.”

“아닙니다, 어머님. 누워 계십쇼. 인사만 드리고 가려 했습니다. 우선 이거.”

김인환은 과일과 음료를 송철현에게 건넸다.

“어머님 허리 다치셨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예, 예. 괜찮아요. 내가 허리가 이래서 일어나기가 힘드네요. 미안해요, 내가.”

“아닙니다, 어머님. 저는 인사드렸으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부디 쾌차하십쇼.”

“벌써 가려고요?”

“정말 인사만 드리려고 온 겁니다. 아, 맞다.”

김인환이 송석현을 가리켰다.

“석현이가 요새 우리 팀에서 제일 잘합니다. 아마 곧 1군에 가게 될 겁니다. 석현이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앞으로 스타가 될 친굽니다.”

“우리 석현이가요?”

“네! 이건 정말입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송석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형도 참.”

“석현아, 그럼 난 가 볼게. 내일 복귀할 때 보자.”

송석현의 어머니가 송석현을 팔로 툭툭 쳤다.

“이대로 보내면 어쩌니. 저기 과일이랑 먹을 거 좀 있다.”

“아닙니다, 어머님. 전 정말 여기서…….”

드르륵.

그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정미남과 김영석이었다.

“어, 석현아.”

“야, 니들은 여기 왜 있어?”

“너 온다기에 우리도 맞춰 나왔지.”

뒤이어 김나영도 두 사람을 따라 들어왔다.

김인환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들어오는 김나영을 보았다.

김인환은 숨이 멎은 채 눈을 깜박였다.

“너까지 왔어?”

김나영은 문 앞의 김인환을 보지도 않은 채 송석현만 바라봤다.

“진~짜 얼굴 보기 힘들다. 너는 어디 뭐 해외 취업이라도 했니?”

* * *

송석현이 온다는 소식에 세 친구들까지 모두 모였다.

일찍 간다던 김인환은 어물거리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송석현은 김인환을 세 사람에게 소개시켰다.

다섯 사람은 휴게실에서 음료수 한 잔씩을 뽑고 자리에 앉았다.

“형, 엄마가 잠깐만 오라는데?”

“알았어. 잠깐만.”

송석현은 앉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나영도 송석현을 따라 일어섰다.

김인환이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덥석.

그때 정미남이 김인환의 손을 만졌다.

“와! 손도 진짜 크시네요. 저보다도 크신데요?”

“어? 손?”

김인환이 큰 눈을 깜박였다.

“역시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장사라는 타이틀이 괜히 있는 게 아니네요. 와, 알통 봐. 알통도 진짜 대박이네. 영석아, 인환이 형이 나보다 더 팔 굵은 거 같지 않냐?”

“내가 보기에도 좀 그런 거 같은데?”

“이야, 이게 프로구나. 프로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 형은 3대 몇 치세요?”

“3대?”

김인환은 3대라는 소리에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하이바 기준인가?”

* * *

김나영은 송석현을 따라 병실까지 들어갔다.

송석현은 잠시 할 말이 있다며 김나영을 멈춰 세웠다.

“잠깐만. 금방 얘기하고 나올게.”

송석현이 병실로 들어가자 어머니가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어, 엄마. 왜?”

“자, 이거.”

송석현의 어머니가 송석현의 손을 잡았다.

송석현이 손을 펴자 10만 원이 들려 있었다.

“오늘 애들 데리고 맛있는 거 사 먹어.”

“됐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알아서 할게.”

“어휴, 쟤들이 매일 병원에 와서 엄마 병간호해 줬어. 특히 나영이는 매일 아침에 왔다 갔어.”

“나영이가?”

“그래, 불편한 거 있으면 같은 여자끼리 있는 게 낫다면서 매일 오더라. 얼마나 미안했는지 아니?”

“아…….”

송석현이 콧잔등을 긁적였다.

“엄마 그냥 허리 좀 삐끗한 게 다야. 다른 데 다친 데 없어. 곧 퇴원할 거고.”

“무슨 소리야? 철현이한테 들었는데 엄마 이번에 무릎이랑 발목도 다쳐서 당분간 쉬어야 한다며?”

“철현이가 오버하는 거야. 어차피 슈퍼 일인데 힘든 게 뭐가 있겠니, 앉아 있는 게 단데. 가게를 너무 오래 비워 두면 안 좋아. 쉬엄쉬엄 일하면 돼.”

“됐어. 그러다 엄마 골병들어. 그러지 말고 쉴 때 쉬어. 부족하겠지만 내 월급도 있잖아. 그거랑 그동안 모아 뒀던 돈이랑 하면 당분간은 괜찮잖아.”

“됐다, 됐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그런 거로 쉬면 대한민국에 누가 일하고 사니?”

“아, 좀. 고집 그만 부리고.”

“엄마가 중병 걸린 사람도 아니고 이거 복대하고 다니면 돼. 괜찮아. 그것보다 오늘은 꼭 친구들한테 맛있는 거 사 줘. 그리고 집에 가서 자. 여긴 철현이가 보기로 했어.”

“내가 봐야지. 철현이도 여기 매일 있었을 텐데.”

“엄마 모레면 퇴원이야. 너 운동도 힘든데 이런 데서 자면 몸살 난다. 네가 여기 있으면 엄마 마음이 더 불편해.”

“됐어. 오늘은 내가 여기 있을게. 철현이도 하루 쉬어야지.”

송석현은 어머니의 거듭된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휴, 그러면 오늘 애들한테 맛있는 거라도 사 주고 와. 그것도 안 할 거면 그냥 집에 가.”

“……알았어. 애들 저녁 비싼 걸로 먹일게.”

“그래, 나영이한테 고맙다고 말 전해 주고.”

“응.”

송석현이 병실에서 나왔다.

김나영은 병실 반대쪽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어머니 어떠셔?”

“괜찮지. 나보다 네가 더 잘 알 거 아냐. 매일 왔다면서?”

“그래 봐야 며칠 됐다고.”

“고맙다.”

“고맙긴. 어머니도 우리 아빠 다쳐서 병원에 계실 때 나 밥해 주시고 재워 주셨잖아.”

“그래도. 그게 언제 적인데.”

김나영이 몸을 바로 세웠다.

“잠깐 산책 좀 하고 올까?”

“산책? 다 같이 저녁 먹고 오자. 안 그래도 엄마가 너희 저녁 먹이라고 돈도 주셨어.”

“……그래? 어…… 그러면 간식이라도 좀 사 올까?”

“웬 간식?”

“같이 온 너희 선배도 그렇고 철현이랑 어머니도 그렇고 입 심심할까 봐.”

“곧 밥 먹으러 갈 건데 굳이…….”

송석현의 말이 끝나기 전에 김나영이 송석현의 팔을 낚아챘다.

“얼른 가자.”

“뭐…… 그래. 알았어.”

김나영이 송석현의 팔을 꼭 끌어당기자 송석현이 어깨를 슬쩍 뺐다.

두 사람은 꼭 붙어서 1층 편의점까지 다녀왔다.

두 사람이 간식을 사서 다시 올라오는데 송석현이 주머니를 뒤졌다.

“아, 씨. 핸드폰 놓고 왔네. 간식 좀 가져다줘. 나 핸드폰 갖고 올게.”

“핸드폰……?”

김나영은 잠시 고민하더니 송석현의 등을 떠밀었다.

“네가 간식 가져다줘. 내가 핸드폰 갖고 올게. 어차피 나 살 것도 있고.”

“그래? 그럼 부탁 좀 할게.”

김나영은 편의점으로 가 알바생에게 핸드폰을 찾았다.

알바생이 핸드폰을 건넸다.

김나영은 핸드폰을 열었다.

싱긋.

핸드폰 액정에 비친 김나영은 웃고 있었다.

* * *

얼결에 김인환까지 껴서 다섯 명이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다섯 사람은 각각 따로 헤어졌다.

김인환은 미적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송석현이 병원에 돌아와 병실로 가려 할 때 간호사가 그를 불렀다.

“512호 조애라 환자분 보호자님 되시나요?”

“네, 맞는데요.”

“모레 퇴원이신 건 알고 계시죠?”

“네, 그렇게 들었습니다.”

“재활 일정을 예약해야 하는데 아직 대답이 없으셔서요. 모레에 퇴원 수속을 밟으면서 하시겠어요, 아니면 내일 아침에 상담하시겠어요?”

“재활요?”

“네, 어머님이 골다공증이 심하셔서 당분간 조심하시면서 재활 병행하셔야 하거든요. 그건 아시죠?”

송석현은 간호사와 얘기를 마친 후 전화기를 들었다.

수신자는 동생이었다.

-어, 형. 왜?

“너 집이야?”

-어, 난 집에 왔지.

“후, 너 왜 말 안 했어? 엄마 앞으로 일하면 안 된다며.”

-……어떻게 알았어?

“내가 바보냐? 간호사가 알려 주더라. 앞으로 무거운 거 들거나 무리하면 안 된다며. 이번에는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골다공증이 심해서 또 이런 일 있으면 위험하다고 하던데.”

동생이 쭈뼛거렸다.

-엄마가 형한테는 당분간 말하지 말라고 해서…….

“그래도 얘기해야지. 다른 일은 몰라도 슈퍼면 짐 들고 나르고 안 할 수가 없는데 엄마가 앞으로 슈퍼를 어떻게 하냐? 너도 그렇고, 나도 도울 수가 없는데.”

-…….

동생은 말이 없었다.

송석현은 한숨을 푹 쉬었다.

“됐다. 내가 너한테 화를 낼 게 아닌데.”

-미안해, 형.

“미안할 것도 많다. 내가 엄마랑 얘기해 볼 테니까 넌 걱정하지 마. 대신 앞으로 무슨 일이든 형한테는 숨김없이 재깍재깍 알려. 알았어?”

-……응.

송석현은 병실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벌써 잠이 들었다.

송석현은 어머니를 한참 보다 간이침대에 누웠다.

새벽 내내 송석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 * *

다음 날 아침.

송석현은 어머니에게 간호사에게 들은 얘기를 꺼냈다.

“엄마 재활하고 슈퍼는 그만둬.”

“뭐?”

“골다공증엔 근육을 키워야 한다며. 병원 다니면서 재활해. 슈퍼 판 돈이면 우리 가족 1, 2년은 먹고살 수 있잖아. 나도 내년이면 1군에 갈 수 있어. 그러면 연봉 5,000만 원 이상은 받을 거야. 괜히 병 키우지 말고 병원에서 하란 대로 해.”

“쌩돈 들어간다, 쌩돈. 슈퍼를 왜 파니? 그거 팔면 앞으로 뭐 해 먹고 살려고.”

“슈퍼는 내가 또 차려 줄게. 지금은 안 돼. 일단 팔아.”

“그렇게 쉽게 결정하는 게 아니야.”

“나중에 엄마 잘못되는 게 더 큰일이야. 일단 슈퍼 접는 거로 해.”

“석현아.”

“엄마, 나 운동선수야. 운동선수는 멘탈이 가장 중요한 거 몰라? 마음이 편안하지 않으면 운동 못 해. 특히 야구는 더 멘탈이 중요한 거 알지?”

장래 얘기가 나오자 어머니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

“그러니까 내가 하자는 대로 해. 슈퍼 팔면 그대로 얼마는 건질 거 아냐.”

“후, 요새는 슈퍼 하겠다는 사람도 없어서 권리금도 못 받아.”

“그래도 물건 정리하면…….”

“그것도 외상 까는 거 생각해야지.”

“저축해 둔 건 있을 거잖아.”

“……너희 아빠 그렇게 되고 너희 둘 키우는 것도 벅찼어.”

“하긴, 내 앞으로 돈도 많이 들어갔네.”

빠듯한 집안에서 운동선수를 키우는 건 집안 뿌리를 흔드는 거나 진배없었다.

어머니와 얘기할수록 송석현은 자신이 아직 어리구나, 뼈저리게 체감했다.

“일단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내 월급이 많진 않아도 당분간 생활비 대는 건 문제없을 거야.”

“너는?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빨리 1군에 가야지. 1군에 가면 연봉도 올라. 그건 걱정하지 마.”

자신만만한 말과 달리 송석현은 병실에서 나오는 순간 풀이 죽었다.

송석현이 손을 펴 자신의 손바닥을 봤다.

손바닥엔 굳은살이 가득했다.

송석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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