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시 (10)
김인환의 대활약.
혼자 2홈런 7타점을 쓸어 담았다.
2군 여포라는 소리는 매일 듣던 소리였지만 이번만큼은 김인환도 활짝 웃었다.
다르다.
여태까지와 다르다.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이 짐을 쌌다.
“네가 보기엔 어때? 이제 좀 잘 적응한 거 같아?”
김인환이 송석현에 옆에 달라붙어 꼬치꼬치 캐물었다.
“오늘 형 성적 보면 알죠. 오늘 좋았어요. 완전 구우우웃! 됐죠?”
“야 야, 장난치지 말고, 진짜로.”
“진짜 좋아요. 형은 타격 폼에 문제 같은 거 없다니까요. 지금처럼 공 보고 공 치면 돼요. ‘지금처럼’. 대신 언제나 풀스윙으로 당겨요.”
“당기라고? 밀어 치는 게 아니라?”
“이미 형은 인 앤드 아웃 스윙이 몸에 뱄잖아요. 팔꿈치가 떨어져서 나가는 거 아니면 형은 언제나 풀스윙하는 게 맞아요. 아무리 형이 괴물이라지만 1군에 올라가서도 그 배트로 밀어서 홈런 치는 건 쉽지 않을걸요. 게다가 우리 팀 구장이 잠실인데.”
“그……래? 무조건 풀스윙?”
“풀스윙. 공 보고 공 치기. 형은 그 두 개만 기억해요. 나중에 팔꿈치 떨어지면 그거 붙이는 것만 연습하고요.”
“팔꿈치, 팔꿈치. 그것만 기억하면 되겠다. 그치?”
송석현과 김인환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와중에 누군가 헛기침했다.
“인환이가 좋은 코치님을 뒀구만.”
낯선 목소리에 송석현과 김인환이 고개를 돌렸다.
“어? 선배님.”
김인환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낯선 목소리는 정용욱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은. 아까 인사했잖아.”
“정률이 형은 아까 먼저 들어갔는데.”
“그래? 노가리나 좀 까려고 왔구만, 벌써 갔데.”
“공 던진 날은 원래 일찍 들어가요.”
“몸 관리는 참 프로야, 프로.”
정용욱은 송석현에게 눈을 돌렸다.
“오늘 포수 잘하더라. 잘 봤어.”
“네, 감사합니다.”
“송석현, 맞지?”
“네? 맞습니다. 제 이름도 기억해 주시고, 감사합니다.”
“별것도 아닌데 오버는. 오늘 너 경기 재밌게 하더라. 투수의 투구 템포가 오늘 미쳤던데. 네가 유도한 거지?”
“유도는 아니고 투수와 상의한 후에 결정한 부분입니다.”
“사인은 서로 교환하기는 했냐? 아주 숨 돌릴 틈도 없더만.”
“예, 했습니다.”
“언제?”
“공 받으면서요.”
정용욱이 피식 웃었다.
“그게 사인 교환이야? 사인 주입 아니냐?”
“그렇게 해야 투구 템포를 끌어 올릴 수 있어서요…….”
송석현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대선배이자 리그 최고의 포수 정용욱의 말에는 무게감이 실리는 법이다.
“어쩐지. 미친 듯이 빠르더만. 그런데 몸 쪽 직구는 왜 그렇게 많이 던진 거야? 투수 공도 빠르지 않은데.”
“공이 빠르지 않아서 더 몸 쪽 공을 던졌습니다.”
“그러다 한 방 맞으면 어쩌려고?”
“공이 빠르면 바깥쪽 공만 던져도 통하지만 공이 느리면 몸 쪽 공을 던져야 바깥쪽 공을 살릴 수 있으니까요.”
“맞아도 어쩔 수 없다?”
“글래빈처럼 주야장천 바깥쪽 공만 던질 수 있는 투수는 없으니까요.”
정용욱은 손을 들어 송석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누가 너 가르쳐 줬냐? 누구한테 배웠어?”
“그게…….”
김인환이 말했다.
“석현이가 사정이 있어서 되는대로 배웠습니다.”
“그래? 그럼 독학이야?”
“독학이라고 하는 건 그렇고, 그냥 명확하지 않다…… 정도 아닐까요?”
송석현이 말했다.
“이거저거 되는대로 공부하고 주워들었습니다.”
“재밌네, 재밌어. 요샌 포수도 독학하나.”
정용욱이 뒷짐을 지었다.
“너 1군 올라오면 재밌겠다, 후후. 신언이도 똥줄이 타겠어. 아, 일혁이가 제일 먼저 똥줄 타려나.”
정용욱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든 뒤 자리를 떴다.
김인환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지? 괜히 시비를 걸고 가네.”
“……시비는 아닌 거 같아요. 악의는 없어 보이던데.”
“가자. 오늘 형 기분도 좋은데 맛있는 거나 먹자.”
“오오, 형 오늘 고기 사 주는 거예요?”
“고기가 문제냐? 먹고 싶은 거 말해 봐. 형이 다 사 줄게.”
“일단 고기부터 시작하시죠. 고기, 고기, 고기!”
* * *
저녁 시간 전.
김인환은 감독의 호출에 감독실로 향했다.
구창현 감독은 코치들과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인환이, 들어와.”
감독은 김인환에게 자리를 내줬다.
김인환은 영문을 몰라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앉아.”
감독의 권유에 옆에 있던 배터리코치가 말했다.
“부담스러워서 어디 앉겠습니까? 다들 불편한 사람투성인데.”
“그런가? 하하. 그럼 인환이 거기 서서 들어.”
“네, 알겠습니다.”
“2군 기간 다 채우고 너 바로 1군으로 갈 거야. 1군에서 특별 지시가 내려왔어. 요새 네 성적 좋다고 그대로 컨디션 잘 유지시켜서 올려 보내란다. 대규의 몸 상태가 별로야. 아마 너 1군 올라갈 때 되면 둘이 교대할 거 같아.”
“벌써 올라갑니까? 내려온 지 얼마 안 됐는데요?”
“그러게 누가 그렇게 잘하래? 하하. 너 풀스윙 돌리는 거 영상으로 보내 주니까 1군에서 바로 올라오라고 성화더라.”
“아…….”
김인환이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감독은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놨다.
“어허, 반응이 왜 이래. 시원찮네. 1군 싫어?”
“아니요. 아닙니다. 조금 더 여기서 연습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그만하면 됐지. 여기서 네가 더 할 게 뭐 있냐?”
“제가 많이 부족해서요.”
“겸손은. 됐어, 인마. 그리고 우리 1군도 지금 상황이 별로 안 좋다. 너도 귀가 있으니 들었을 거 아니냐. 잘하면 바로바로 올라가서 써먹어야 돼. 그러니까 컨디션 조절 잘해서 이번엔 1군 붙박이로 있어라. 좀 오래 있으란 얘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네, 알겠습니다.”
“그래그래, 나가 봐. 몸 관리 잘하고. 술 먹지 말고. 어?”
“네.”
김인환은 그대로 나가려다 발걸음을 멈췄다.
몸을 돌린 김인환이 말했다.
“저…… 외람된 말씀이지만 정률이 형하고 석현이는 1군에서 소식이 없을까요?”
감독은 어깨를 으쓱했다.
“두 사람도 조만간 연락이 올 거야. 우리가 매일같이 1군에 올려야 한다고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거든.”
“아, 그렇습니까?”
김인환의 얼굴이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김인환이 감독실을 나갔다.
감독은 웃었다.
“웬일이래. 맨날 진지하고 죽상이던 놈이 이제는 웃고 다니네.”
“그러게요. 인환이는 너무 진지한 게 탈이었는데 요새는 좀 애가 웃고 다니고 그러네요.”
“저놈은 생각이 너무 많아. 타자가 머리가 복잡하면 더 안 되거든.”
배터리코치 김태우가 말했다.
“석현이가 들어온 후로 셋이서 잘 어울리고 다니는데 서로 죽이 잘 맞나 봅니다.”
“850g 배트를 쓰라고 한 것도 석현이가 말한 거라면서?”
“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여러모로 석현이가 시너지가 좋아. 정률이 입스 고치는 데 아이디어도 줬다고 하고.”
“복덩이가 들어온 거 같습니다. 드디어 우리도 막힌 혈을 뚫고 우승하는 거 아닙니까?”
“선수 하나 들어왔다고 우승하면 죄다 우승하게?”
“피닉스는 했잖습니까? 만년 꼴찌도 했는데 우리라고 못하겠습니까?”
“거긴 김영훈이 있잖아. 그 미친놈 데려와. 그럼 나도 우승할 테니까. 투수랑 포수랑 같아? 그 미친놈은 혼자서 1, 3, 5선발 뛰는 놈이잖아. 으으, 생각만 해도 무섭네.”
“혼자 잘하는 투수도 무섭지만 석현이는 복덩인데요. 저는 석현이가 이대로 커 준다면 앞으로 무조건 우승권이라고 봅니다.”
“그건 그때 생각하자고.”
조용히 있던 투수코치가 말했다.
“정률이가 마무리하고 인환이가 4번 뛰고 석현이가 포수 보면…… 라인업은 최고네요. 인환이랑 석현이 둘 다 터지면 우승 못할 수가 있겠습니까?”
감독이 파하하 웃으면서 제 가슴을 툭툭 쳤다.
“우승 못해도 둘 다 터지면 우리가 할 건 다 한 거지. 아, 그러면 내 공이 제일 큰 거 아냐? 2군에서 세 명을 키워 내는 건데. 차기 감독은 내 자리가 되겠네. 안 그래? 하하.”
“꿈이라도 크게 꿔야죠. 저희도 다 같이 감독님을 따라 1군에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 듣기만 해도 좋네. 듣기만 해도 좋아.”
* * *
김인환은 감독실에서 나와 양손으로 두 볼을 비볐다.
김인환은 마냥 웃지 않았다.
그날 저녁.
김인환은 김정률, 송석현과 함께 단골 고깃집으로 향했다.
“자, 석현이 많이 먹어라.”
김인환은 고기를 죄다 걷어서 송석현 앞 접시에 올렸다.
젓가락을 내밀던 김정률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야, 너 이런 걸로 노인네 차별하는 거 있냐?”
“형 거 있잖아요, 여기.”
“난 이게 먹고 싶었다고. 이게 더 잘 익고 탐스러워 보였다고.”
송석현이 고기를 집어 김정률 앞 접시에 올렸다.
“드세요, 선배님.”
“됐어. 이러면 핵 찌질해 보이잖아.”
“그러면 제가 다 먹을까요?”
“그건 네가 너무 싸가지 없어 보이지 않니?”
세 사람이 고기로 어느 정도 배를 채웠을 때였다.
김인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곧 1군에 갈 거 같아요. 아마 다음 주 정도?”
“1군 콜업도 아니고 뭐 그렇게 길어? 코치님이 얘기한 거야?”
“감독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그러면 확실하구만. 축하한다. 이번엔 가서 잘해라. 내려오지 마, 인마. 거기서 뿌리박아. 아주 뿌리를 쫙쫙 내리라고.”
“그래야죠. 같이 올라가면 좋은데 저만 올라가니까 미안하고 그러네요.”
“웃기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 나도 곧 올라갈 거거든? 석현이도 그렇고. 안 그러냐?”
송석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는 조금 더 여기서 묵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 너는 여기서 더 묵히면 썩어, 썩어. 지금 제일 잘 익었어. 그치, 인환아?”
“석현이도 곧 올라갈 거예요. 아까 감독님한에 여쭤봤는데 형이랑 석현이도 곧 1군에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어요.”
“석현이는 이미 보여 줄 거 다 보여 줬어. 지금 올려야지. 여기서 뭘 증명해? 용욱이 형이랑 붙어서 오늘 이겼잖아. 안 그래?”
송석현이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뭘 이겨요? 팀이 이긴 거지.”
“야, 맞대결해서 이기면 이긴 거야.”
“저랑 선배님이랑 비교가 되나요. 오늘만 해도 볼 네댓 개는 스트라이크로 만들던데요. 제가 본 것만 그 정도니 아마 그보다 더하시겠죠.”
“형 미트질이 같은 편이 보면 신묘한 손짓인데 적으로 만나면 양아치 같다니까.”
“그게 기술이죠. 정용욱 선배님 프레이밍이 톱클래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검색하다 보니까 저번 WBC 분석 기사를 봤는데 프레이밍 점수가 2위던데요. 1위랑도 큰 차이 안 나고 3위랑은 차원이 다른 2위던데.”
“형이 얍삽하게 잘하긴 해.”
“얍삽한 게 아니라 고급 스킬입니다. 저는 그거 따라가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몰라요.”
“야 야, 석현아. 너는 용욱이 형을 제쳐야 1군에 올라갈 거야? 너 정도 되면 올라가야지. 가서 배우는 거야. 오늘 용욱이 형도 너 보면서 뜨끔한 적 많을걸. 세월에 장사 없다고 생각할 거야. 20세 신입 포수가 이 정도라니……! 두둥!”
세 사람은 1차 고깃집에서 모임을 마쳤다.
모두 오늘 경기를 뛴 덕에 일찍 가서 쉬자고 뜻을 모았다.
숙소로 가는 길.
송석현은 걸려 온 전화의 발신자를 확인했다.
동생 송철현이었다.
“잠시만요.”
송석현이 한쪽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어, 왜? 무슨 일이야?”
송석현은 철현의 말에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