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50화 (50/201)

줄탁동시 (7)

“아하하하하함.”

정용욱은 길게 하품하며 프로텍터를 챙겨 입었다.

“식곤증인가. 졸리네.”

정용욱이 입을 쩝쩝거렸다.

“아저씨,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정신 차리셔야지.”

2군의 배터리코치 이만성이 정용욱의 정강이를 툭툭 건드렸다.

“아, 뭐 하는 거야?”

“기운 좀 차려라, 기운 좀. 어떻게 만사 다 구찮아 하냐?”

“봄이라 그래. 봄에는 다 사람이 늘어지고 하는 거지.”

“여름은 안 늘어지고?”

“여름도 늘어지는 거고, 봄도 늘어지고, 가을도 늘어지고, 겨울도 늘어지고~.”

“아이 씨. 장난 까냐?”

정용욱이 허리를 세워 스트레칭했다.

“1군에 말이나 잘해 줘. 나 몸 거뜬하다고. 괜찮다고.”

“그건 내 소관이야. 네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거다.”

“에헤이, 적당히 좀 하시지. 피곤하게 왜 이랴? 꼭 내가 경기를 뛰어야긋어?”

“네가 경기에 뛰어야 내가 컨디션을 체크할 거 아냐.”

“아이 참, 우리 같이 지낸 세월이 얼만데. 그건 척하면 척이어야지.”

“이놈아.”

코치가 정용욱 옆에 앉았다.

“너도 이제 서른서이여. 포수로는 환갑이다 이거여, 인마. 몸 관리 잘해서 은퇴해야 하지 않겠냐? 뭐 그렇게 마음이 급해, 급하긴. 적어도 서른다섯까진 정상급으로 뛰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관리를 칼같이 해야 할 거 아니냐.”

“지금이나 서른다섯이나 몇 년 차이라고. 뛸 수 있을 때 열심히 뛰고 은퇴하면 되지.”

“너 나이 좀 생각해. 어린애도 아니고 자꾸 홈 블로킹하지 말고 적당히 비켜 주고 좀 해라. 너 그러다 뇌진탕 와. 뇌진탕 오면 야구 못해.”

“아유, 노친네. 나보다 몇 살 더 많다고 유세는.”

“아무튼, 난 네가 확실하게 뛸 몸 상태가 아니다 싶으면 절대 좋은 말 못 해 준다. 1군에 올라가고 싶으면 여기서 제대로 보여 줘, 너 후유증 같은 거 전혀 없고 쌩쌩하다고.”

“아, 형. 그래서 나 경기 다 뛰라고?”

“그래, 2군 경기도 소화 못하는 몸 상태면 1군에 가면 안 되지.”

“체력 떨어져, 체력. 체력 아껴야지. 2군에서 체력을 아껴야 1군에서 쓰지. 2군은 그냥 몸 관리하는 데 아냐.”

“야, 요새 어린 아해들도 잘하거든? 제대로 해. 몸에 이상 있으면 반드시 얘기하고.”

코치가 자리를 떴다.

정용욱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아휴, 내 팔자야. 뭐 이렇게 시어머니가 많아.”

포수 마스크까지 다 챙겨 입은 정용욱이 코치를 향해 외쳤다.

“형! 그냥 깔끔하게 오늘 경기 괜찮으면 이상 없다고 얘기하는 거다! 알았지?”

“봐서!”

* * *

페가수스 1차전.

고트의 투수는 임진필.

24세의 군필 투수로 2군 로테이션을 책임지는 투수였다.

1군에선 아직 뚜렷한 성과를 못 냈지만 2군에서만큼은 고트의 1선발이라 불리고 있다.

-플레이볼!

1회는 타자의 이닝이다.

많은 투수들은 1회를 가장 어려워한다.

타자가 투수의 공에 낯설수록 투수의 성적이 좋은 것과 별도로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에 익숙해지기 위한 시간이 1회다.

좋은 투수라도 1회엔 의외의 일격을 맞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번처럼.

“하아.”

선발투수 임진필이 모자를 벗어 땀을 닦았다.

1사 주자 1, 3루.

볼넷, 도루, 안타로 득점권 상황.

타석에는 4번 타자 정용욱이 나왔다.

“아우, 진짜. 적당히 뒤에다 꽂지 왜 4번이야, 귀찮게.”

정용욱은 졸린 눈을 비벼 가며 타석에 섰다.

“빨리빨리 하자. 넘 질질 끌지 말고. 응?”

정용욱은 포수로 나온 정지환에게 알은체를 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나오셨는데 좋은 공 드려야죠.”

정용욱은 배트를 느슨하게 쥐고선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송석현은 정용욱의 타석에 눈을 빛냈다.

슬라이더, 바깥쪽 아래.

포수의 리드대로 투수가 공을 던졌지만 결과는 포수의 뜻대로 나오지 않았다.

순식간에 볼 카운트 3-0.

정용욱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빨리 하자니까, 참. 포수가 생각이 너무 많으면 머리가 꼬인다니까.”

정지환은 손가락을 들어 왼쪽 허벅지를 가리켰다.

몸 쪽 공.

스트라이크를 줘도 바깥쪽 직구 같은 뻔한 공을 줄 순 없다.

투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을 던졌다.

탕!

정용욱은 한쪽 다리를 바깥쪽으로 젖히면서 몸을 뒤로 눕혔다.

공은 그대로 좌측 담장을 훌쩍 넘겼다.

3점 홈런.

정용욱이 배트를 던졌다.

“거봐. 빨리 승부 안 하면 네가 몰리는 거라니까.”

정용욱이 터벅거리며 1루로 뛰었다.

정지환은 입술을 꽉 깨물곤 숨을 몰아쉬었다.

송석현은 홈으로 들어오는 정용욱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넌 우리 팀이 맞았는데 좋아하는 거 같다?”

김정률의 말에 송석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럴 리가.”

“방금은 너무 리드가 뻔했어. 그치?”

“음…….”

송석현은 듣는 귀를 의식해서 어깨만 으쓱했다.

투수 임진필은 1회에 석 점을 내줬지만 추가점은 내주지 않았다.

2회.

김인환이 선두 타자로 나왔다.

정용욱은 타석의 김인환을 보더니 픽 웃었다.

“인환아.”

“네?”

“넌 또 타격 폼이 바뀌었냐?”

“아…… 예.”

“적당히 하라고 해라, 적당히. 너도 아니다 싶으면 거절하고. 너는 대충 쳐도 홈런인 놈인데 무슨 대단한 타자를 만들려고 그러는지, 원. 니네 구단도 너무해. 그치?”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긴. 위로하는 의미로다가 한가운데 직구 줄게. 잘 쳐 봐.”

정용욱은 몸 쪽 직구 사인을 내면서 바로 던지라는 사인도 같이 냈다.

김인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투수가 공을 던졌다.

팡!

대포 소리가 있다면 이럴까?

양쪽 벤치뿐만 아니라 관중석까지 울리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공은 직선으로 우측 담장을 넘었다.

김인환은 자신이 친 공을 보고 자신의 배트를 한번 봤다.

“……대박. 또 되네.”

김인환은 1루로 가기 전 정용욱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악의 없는 감사 표시에 정용욱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2회 솔로 홈런을 내줬지만 페가수스는 추가 점수 없이 막아 냈다.

정용욱이 벤치로 돌아오자 배터리코치가 물었다.

“초구부터 웬 한복판 직구를 줬어?”

“약속을 해서?”

“뭔 약속?”

“한복판 직구를 준다고 했거든.”

코치가 정색했다.

“무슨 그런 약속을 하냐? 그런 거 장난으로라도 하지 마라. 위험한 짓이야.”

“아니야, 그런 거. 원래 쟤가 굼뜬 놈이라서 한가운데로 준다고 해도 고민 고민하다 못 치는 놈인데 오늘은 그냥 미친놈처럼 달려들어서 치네.”

“그렇게 치기 좋은 공이 오면 누구라도 치지.”

“그 공을 여태 안 치던 놈이거든. 좋은 공을 안 치고 꼭 코너에 몰려선 빠지는 공을 치고 나가는 놈인데. 다음 타석에선 진지하게 해 줘야겠어.”

“김인환이 주가 올려 주지 마. 쟤한테 정면 승부하는 애들이 어딨냐?”

“에헤이, 정용욱이를 뭘로 보고. 정면 승부해서 내가 삼진 잡아 볼게. 그럼 내일 경기는 쉬고 모레 콜업시키는 거로 가는 거다?”

“내기야?”

“일종의 내기지.”

“안 받아. 김인환이 삼진이 얼마나 많은데.”

“좋아. 그럼 안타 하나라도 주면 내가 형 말 군말 없이 따르기로.”

“그러면 콜. 김인환이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인다. 쉽지 않을걸.”

정용욱이 픽 웃었다.

“나 정용욱이야. 나를 뭘로 보고.”

벤치의 송석현은 미트를 쥐고 혼자 이리저리 손을 움직였다.

정용욱의 캐칭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따라 했다.

김인환은 땀을 닦으며 송석현 옆에 앉았다.

“혼자 뭐 해?”

“아, 정용욱 선배님은 어떤 자세로 잡는지 해 보고 있어요.”

“그게 차이가 있어? 다 같은 거 아니야?”

“다르죠. 정용욱 선배님은 몸은 안 움직이고 팔만 움직여서 미트질 하잖아요. 이게 엄청 어렵다니까요. 특히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 대각선으로 잡아서 쳐 올리는 건 고급 기술이에요.”

“그래? 음, 난 잘 모르니까.”

“아직 전 그 정도까진 아니라서. 떨어지는 공을 덮지 않는 것도 쉽지 않아요.”

“네가 못한다고 하니까 뭔가 신선하다. 뭐든 다 잘할 거 같은데.”

“에헤이, 형. 그런 장난 하지 마요. 얼마나 부담되는데.”

김인환이 음료수를 단숨에 비웠다.

“하, 가벼운 배트로 하니까 진짜 뭔가 휙휙 배트가 넘어가는 게 기분 좋네. 확실히 잘돼. 다 네 덕이다.”

“형이 잘하니까 그런 거죠, 내 덕은 무슨. 대한민국의 어떤 타자를 세워 놔도 그 배트로 몸 쪽에 붙은 공을 홈런으로 못 쳐 내요. 그냥 형이라서 하는 거예요.”

“아이고, 송 코치님, 그렇습니까? 그래도 송 코치님 지분이 반은 아니겠습니까?”

“코치님들 들어요. 그런 얘기 좀 하지 마요.”

“아, 미안. 조심할게.”

송석현은 미트를 낀 채 경기에 집중했다.

정용욱은 1회 홈런 이후 안타는 없었지만 볼넷을 얻어 냈다.

송석현은 정용욱이 스트라이크 콜을 잡아낼 때마다 펜을 들었다.

몸 쪽 공을 잡을 때 어깨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평소 때와 캐칭 때 발뒤꿈치를 얼마나 드는지,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프레이밍으로 끌어당기는지 기록했다.

“하.”

기록을 본 송석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김정률이 물었다.

“왜? 왜 또 그래?”

“투수가 빠지는 공 열 개를 던지면 정용욱 선배님은 최소 두세 개는 스트라이크로 만들어요. 공 한 개 이상 빠지는 거 아니면 스트라이크를 만드는 거 같아요.”

“용욱이 형 미트질이야 유명하지. 국제 대회에 나가서도 미트질로 삼진 만든다니까.”

“아, 선배님도 같이 국대 나가서 뛰셨겠네요.”

“형도 국대였어. 지금은 좀 많이 멀어졌지만.”

김정률이 송석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포수에 대해 잘 모르지만 투수로서 용욱이 형에 대해 얘기할 순 있지. 용욱이 형의 몸 기울기를 봐. 그게 키포인트일 거다. 살짝 오른쪽으로 몸을 틀 때가 있고, 왼쪽으로 틀 때가 있어. 송구하기 좋은 각을 만들려는 이유가 첫 번째지만 그렇게 몸을 틀면 심판도 스트라이크존을 헷갈리거든. 포수가 몸을 3루 쪽으로 틀었는데 우타자 기준 바깥쪽으로 꽉 찬 공이 들어왔다고 쳐 봐.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와도 심판 눈에는 뭔가 좀 벗어난 거 같거든. 용욱이 형이 이걸 잘해. 도사지, 도사.”

“와, 그건 생각을 못 했는데.”

“이런 건 책에 안 나올걸. 노하우니까.”

“오, 적어야겠다. 몸을 좌우로 틀어서 스트라이크존을 흔들어라.”

“그리고 또 하나 얘기하자면, 형은 공 받기 전에 잔동작이 많은 편이야. 얌전하게 사인 내고 공 받지 않아. 이러면 공 받을 때 몸이 살짝 움직여도 티가 잘 안 나. 미트질 때문에 그런 건지, 자연스러운 동작의 일환인지. 그런 것도 노하우가 될 수 있겠지. 물론 용욱이 형은 여기에 더해서 공 받기 전에는 잔발 치다가 공을 받을 땐 딱 몸을 고정시키고 팔만 움직여서 받지. 그럼 심판은 더 헷갈린다니까.”

“와, 선배님도 정말 많이 아시네요.”

“뭐, 한때 영혼의 파트너였으니까. 지금은 내가 나가리 됐지만.”

송석현이 수첩에 열심히 적었다.

“아무리 봐도 전 포수로서 너무 부족하네요. 정용욱 선배님이랑 비교하면, 하…….”

“국대 넘버원 포수랑 비교하면 누구나 다 그럴 거다. 어린 놈이 오바는. 하여튼 눈이 저 머리 꼭대기에 있다니까.”

송석현이 수첩을 덮었다.

“그래도 한번 해 보고 싶어요. 코치님한테 부탁해서 내일은 꼭 포수로 뛰게 해 달라고 부탁드릴 거예요.”

“용욱이 형이랑 일기토를 하겠다? 그거 재밌기는 하겠네. 현 국대 넘버원 포수 대 차기 국대 넘버원 포수.”

“그런 얘기 하시면 제 손발이 다 오그라든다니까요.”

“하하, 이따가 나 용욱이 형에게 찾아가서도 얘기할 거야. 차기 국대 넘버원 포수가 형이랑 맞다이 뜨고 싶어 한다고.”

“……장난이죠?”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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