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동시 (6)
개인 훈련하던 선수들도 숙소로 돌아간 시간.
송석현과 김인환은 실내 연습장의 불을 켰다.
“형, 배트 줘 봐요.”
“이거?”
송석현은 김인환이 건넨 배트를 받았다.
“형은 지금 타격 폼은 큰 문제가 없어요. 극단적인 클로즈드 스트라이드도 고쳤고, 타석에 바짝 붙는 습관도 고쳤고…….”
“그런데 지금은 몸 쪽도 바깥쪽도 둘 다 못 치잖아.”
“솔직하게 말하면 그건 타격 폼 문제가 아니라 형 스타일 때문이죠. 형은 일단 눈에 보이면 배트가 나가잖아요. 그쵸?”
“그……렇지.”
“인 앤드 아웃 스윙은 좋은데 형은 선구안이나 컨택 모두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에요. 이 선구안이나 컨택은 아예 못 고칠 수도 있고, 고치더라도 긴 시간이 필요하죠.”
“그럼 방법이 없어?”
“정석은 아니어도 대처법은 있어요.”
“대처법?”
김인환의 목소리가 커졌다.
“어떤 대처법인데?”
“꼼수지만 배트를 더 가벼운 걸 쓰는 거죠. 극단적으로 850g을 쓰면 좀 더 나아질 순 있죠.”
“850g? 그렇게나 가볍게?”
“네, 톱타자가 쓰는 배트를 쓰게 되면 스윙 스피드가 빨라지겠죠? 형이 가벼운 배트로 인 앤드 아웃 스윙을 한다면 공을 더 오래 보고 칠 수 있잖아요. 몸 쪽 공도 더 빨리 반응할 수 있고요.”
“그래서 장타가 나올까?”
“형은 야구방망이 거꾸로 들고 쳐도 홈런이 나올걸요. 형은 형 파워를 너무 모르는 거 같아요.”
송석현은 김인환의 자세를 따라 했다.
“어차피 선구도 힘들고 컨택도 힘들면 욕심내지 말고 확실하게 하자고요. 바깥쪽 꽉 차는 공은 버리되 스트라이크존에 오는 공은 웬만하면 그냥 쳐요. 어차피 팔꿈치를 바짝 붙이면 바깥쪽이 꽉 찬 공은 못 치니까 이건 금방 감을 잡을 거예요. 히팅 포인트를 형이 생각하는 것보다 공 한두 개는 뒤에다 두고 보이는 공은 다 쳐 버려요. 생각하지 말고 보고 쳐요. 보고 치고, 보고 치고.”
김인환이 큰 눈을 끔벅거렸다.
“카운트를 생각하지 말고?”
“네, 형은 그냥 본능적으로 치는 게 맞아요. 0-2라도 풀스윙으로 치세요. 생각하지 말고 반응, 오로지 반응. 형은 타격 폼에 큰 단점이 없어요. 스트라이드만 너무 넓게 벌리지 말고 지금처럼만 쳐요. 아, 850g 배트는 구하기 쉽지 않을 테니까 내일 그것부터 구해 봐요.”
송석현이 김인환에게 배트를 건넸다.
김인환은 배트를 붕붕 휘둘렀다.
“정말 타격 폼엔 문제가 없는 거야?”
“네, 형은 생각이 많아서 몸이 둔해지는 거예요. 머리를 비우고 공을 정확하게 맞힌다, 이것만 생각하세요. 공 보고 공 치기. 아, 대신 타석에선 꼭 앞에 서요. 공 오래 보겠다고 뒤에 서지 말고. 앞에서 봐야 변화구가 휘기 전에 칠 수 있어요. 그게 형한테는 더 유리할 거예요. 뭐…… 이거 말곤 더 없어요. 끝. 완전 끝. 더는 사족.”
“……정말 이게 끝?”
“네, 이게 끝이에요. 더는 필요 없어요.”
“이렇게 쉽게?”
“말은 쉽죠. 형이 850g 배트에 적응하려면 한참은 걸릴걸요.”
* * *
다음 날 아침.
송석현은 그날도 후보라고 귀띔받았다.
“나중에 7회 이후에 올라오는 거로 알고 있어.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오전 훈련 시간.
김인환은 선수들을 수소문해 850g 배트를 찾았다.
주문한 배트가 오면 더 사 주기로 약속한 후 850g 배트로 연습에 들어갔다.
탕!
탕!
탕!
송석현은 배팅 케이지 뒤에서 입을 떡 벌렸다.
“사람이 아니야…….”
김인환은 850g 배트로 밀어서 홈런을 쳤다.
김인환은 공이 쭉쭉 뻗어 나갈 때마다 히팅 포인트를 뒤로, 더 뒤로 당겼다.
히팅 포인트를 당길 수 있을 만큼 당겼지만 김인환의 공은 연신 포물선을 그리며 담장을 넘었다.
“쟤도 진짜 대단해. 그치?”
김정률이 어느샌가 옆에 와 있었다.
송석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환이 형은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저 미친 힘이야말로 역대급 재능이라는 거.”
“본인만 모르지, 본인만.”
“제가 저 정도 힘이 있었다면 당장 메이저로 갔을 건데.”
김정률이 송석현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다 탈 난다. 양심이 있어야지.”
“네? 갑자기 무슨 양심요?”
웨일스와의 3차전.
김인환은 4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고트는 시작부터 연속 안타로 무사 만루를 만들었다.
김인환의 타석.
투수는 군 제대 후 올해 팀에 복귀한 투수였다.
투수 강팀 웨일스에서 선발 유망주로 일찌감치 점찍고 키우는 투수였다.
“네가 보기엔 어때? 치겠어?”
김정률의 물음에 송석현은 눈동자를 위로 올렸다.
“커브도 좋고 체인지업도 괜찮고. 어떻게 보면 선배한테 가장 까다로운 투수죠. 슬라이더면 직구 치러 나가다 얻어걸릴 수라도 있는데 커브랑 체인지업은 헛스윙이 자주 나와서. 저 투수 체인지업 제구가 별로라서 그렇지 낙폭도 좋던데.”
“아까 1군 애들한테 연락이 왔는데 오늘 1군에서 대규가 좀 다쳤나 봐. 병원에서 진찰 중인데 부상이 좀 심하면 아마 1군 콜업이 있겠지?”
“대규라면…… 최대규 선배님요?”
“그래, 우리 팀 1루수.”
“그럼 오늘내일 인환이 형, 1군 가겠네요.”
“그게 또 확정은 아니야.”
“왜요? 인환이 형이 올라가는 거 아니에요?”
“저번에 올라갔을 때 성과가 영 별로였잖아. 어쩌면 명성이나 태윤이가 갈 수도 있어. 특히 태윤이는 1군 경험치를 먹을 때가 됐지.”
“태윤이 형은…… 잘하죠. 눈 야구도 되고 좌타자에 수비도 괜찮은 1루수면 요새 트렌드에도 맞고요.”
“장타툴이 좀 아쉽긴 해도 1군에 가면 제 몫은 해 줄 애니까. 인환이처럼 도박 픽은 아니라는 거지.”
김정률은 0-2로 몰린 김인환을 바라봤다.
“인환이가 2군에서라도 빵빵 터져야 1군 경험치도 많이 받을 텐데. 요새는 여기서도 홈런이 너무 적어. 여기서 출루율을 높여 봐야 1군에선 홈런을 보지 출루율을 보진 않으니까.”
김정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웨일스 투수가 공을 던졌다.
공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
한가운데로 오다 뚝 떨어지는 공이었다.
김인환은 벌써 배트에 시동이 걸렸다.
“아이구.”
김정률이 삼진을 예상한 그때, 김인환은 무릎을 꿇고 공을 걷어 올렸다.
무게중심이 무너진 스윙.
공은 높은 각도로 떠서 우익수와 중견수 방향으로 향했다.
“마이! 마이!”
중견수가 큰 소리로 자신의 공임을 외쳤다.
중견수는 여유롭게 뒷걸음질하며 글러브를 내밀었다.
“어? 어? 어?”
중견수의 외침.
떨어져야 할 공이 담장 위 30cm 높이로 넘어갔다.
“우와!”
“와와아아아!”
“홈런! 홈런!”
“저게 홈런이야? 저게 홈런이라고?”
하체가 무너지며 급하게 퍼 올린 공이었다.
발사각이 적어도 30도, 어쩌면 40도도 넘을 만큼 크게 떠오른 공이었다.
야구장에서 가장 먼 거리, 홈플레이트와 중앙 담장 사이를 가로지른 공이 담장을 넘었다.
“……되네?”
김인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방망이를 들고 1루로 뛰었다.
코치가 기겁해선 소리쳤다.
“야! 방망이!”
김인환은 코치의 목소리에 놀라 방망이를 던지려 하다 움찔했다.
김인환은 방망이를 아이를 내려놓듯 땅에 살포시 내려놓은 후 베이스를 밟았다.
“……쟤는 사람이 아니라니까.”
“저 파워는 인간계가 아닌 건 확실해요.”
고트의 벤치는 열기로 끓어올랐다.
만루 홈런 자체보다 무릎을 꿇고 친 공이 중앙 담장을 넘어간 사건에 대한 열광이었다.
김인환은 벤치에 들어오자마자 송석현을 찾았다.
“야, 된다.”
“뭐가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치니까 돼.”
송석현은 어이가 없어 허허 웃었다.
“형이니까 되죠. 누가 그렇게 쳐서 홈런을 만들어요? 형 파워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드물걸요.”
“신기하네. 진짜 치니까 날아가.”
“형 타격 폼에는 문제가 없는 거 알았죠? 그냥 공 보고 공 쳐요. 못 치는 공이면 패스하면 되죠.”
김인환은 그날 경기에 홈런 하나를 더 추가했다.
4타수 2안타, 2홈런.
김정률도 2이닝을 나와 무실점 경기를 마쳤다.
송석현은 8회부터 들어가 1타석에 섰으나 루킹 삼진으로 물러섰다.
송석현이 삼진 후 벤치로 들어오자 김인환이 물었다.
“0-2인데 그냥 치지, 왜 참았어?”
“밑으로 빠지는 공이었잖아요.”
“비슷하면 나가지 그랬어?”
“중요한 순간이면 모를까, 웬만하면 제 존에서 벗어나는 건 안 쳐요.”
“나보곤 보이는 대로 치라며?”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잖아요.”
그날 저녁.
김인환의 1군 콜업은 없었다.
최대규의 부상이 크지 않아 1군 백업 멤버로 며칠 더 버티는 거로 결정 났다.
김정률은 김인환에게 이러한 사실을 귀띔하며 위로했다.
김인환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잘됐네요. 안 그래도 지금 1군 올라가는 거 싫었는데.”
“1군이 싫다고?”
“적어도 조금은 더 묵히고 올라가고 싶어요. 지금 딱 감이 왔거든요.”
다음 경기는 페가수스전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오전 훈련 후 휴식하는 사이 상대 팀인 페가수스가 야구장에 들어섰다.
송석현은 상대 팀을 구경하다 한 사람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 눈을 비볐다.
“정용욱?”
배터리코치 김태우가 송석현을 보고 웃었다.
“못 볼 사람이라도 봤냐? 왜 그렇게 놀라?”
“정용욱 선배님이 왜 여기 있습니까?”
“저번에 홈 충돌해서 2군에서 좀 쉬고 있었어. 1군 올라갈 채비 하는 중이지.”
“그럼 오늘 경기 뛰는 겁니까?”
“아마도? 글쎄, 이름만 올리는 건지 오늘 뛰는 건지 모르겠다.”
송석현은 정용욱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체격도 그리 크지 않고, 공대 어디서 볼 법한 흔한 얼굴이었다. 안경에 약간 벗겨진 머리까지 더하면 야구선수라고 말해도 믿기 어려운 외모였다.
외모와 달리 정용욱은 현역 최고의 포수이자 역대 최고의 포수 계보를 잇는 리빙 레전드였다.
철벽 블로킹과 감쪽같은 프레이밍만으로도 최고의 포수라 불리기에 손색없지만 장타력까지 있었다.
홈런 서른 개가 넘는 시즌만 세 번이 있었고, 통산 OPS도 872였다.
“뚫어지겠다. 고만 봐라.”
코치의 말에 송석현이 눈을 돌렸다.
“코치님.”
“왜?”
“혹시 정용욱 선배님 오늘 나오시면 내일 저 선발은 아니어도 이닝이라도 많이 뛰게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코치는 씨익 웃었다.
“새파랗게 어린 놈이 벌써 한 따까리 해 보고 싶냐?”
“그냥 선배님이랑 같은 경기에 뛰고 싶습니다.”
“너도 요 며칠 좀 쉬었으니 선발 한번 나갈 때도 됐지. 내가 확실하게 말은 못 하겠다. 그래도 오늘 정용욱이 나오면 네 말대로 감독님한테는 얘기해 볼게.”
“감사합니다, 코치님.”
송석현은 코치에게 연신 인사를 했다.
정용욱은 느릿느릿하게 걸어 나와 몸을 풀고 있었다.
송석현은 정용욱을 보며 1군에 빨리 콜업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겼다.
지금 1군에 있었다면 후보의 후보로 경기만 구경하고 있을 시간이다.
정용욱과 맞대결은 꿈도 못 꾼다.
지금 정용욱과 자신을 비교하면 가늠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을 거다.
비교가 되리라는 건 알고 있지만 정용욱과 꼭 붙어 보고 싶다.
현역 최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지금 자신의 객관적인 위치도 드러날 거 아니겠는가.
“오늘 꼭 나오십쇼,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