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45화 (45/201)

줄탁동시 (2)

다행이다.

웨일스 포수의 심정이었다.

구인선의 부족한 제구는 타자의 몸 쪽이 아니라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로 날아왔다.

스윽.

타자는 배트에 시동을 걸었다.

됐다.

참기만 하던 타자가 이제야 속는다.

탕!

“……?”

포수는 영문을 몰랐다.

바운드되다시피 한 공은 건드렸는데 땅볼이 아니라 우익수 키를 넘기는 장타다.

송석현은 배트를 던지고 넉넉하게 2루에 안착했다.

“하.”

구인선은 이를 꽉 문 채 한숨을 쉬었다.

짝, 짝, 짝.

고트 벤치에서 박수가 나왔다.

송석현에게 안타를 내준 구인선은 제구 난조로 볼넷 두 개를 헌납하더니 싹쓸이 안타로 3점을 내줬다.

웨일스 벤치에선 구인선을 강판시켰다.

컨디션 조절차 경기를 뛰는 만큼 더 공을 던질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하아, 씨바.”

구인선이 글러브를 벤치에 던져 버렸다.

구인선의 다음 투수가 추가 점수 없이 이닝을 마무리했지만, 구인선은 여전히 씩씩거렸다.

구인선은 포수가 벤치에 들어오자마자 물었다.

“내 공이 보이나?”

“뭐가?”

“직구랑 포크랑 구분이 되냐고.”

“에이, 그게 되나. 그게 되면 여태 어떻게 네가 밥 벌어먹고 살았다고.”

“그치? 아니지?”

“아니야. 그냥 운 좋게 친 거야.”

“존나 찜찜하네. 저놈이 내 공을 다 골라내는 거 같단 말이야.”

6회 초.

웨일스는 선두 타자 조양선으로 타선이 이어졌다.

안타와 볼넷 이후 세 번째 타석.

송석현은 초구부터 몸 쪽 공을 요구했다.

탁!

타자는 초구를 힘껏 당겼다.

3루수에게 공이 흘렀으나 3루수는 스텝이 꼬여 공을 던지지 못했다.

“쏘리.”

3루수가 투수에게 사과하자 투수도 기분 좋게 웃었다.

“괜찮아, 괜찮아. 별거 아냐.”

발 빠른 주자가 1루에 서자 투수는 주자를 똑바로 봤다.

좌완 투수의 장점은 1루 주자 견제가 용이하다는 데 있다.

물론 그렇다고 도루를 다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타앗!

투수가 초구를 던지기 무섭게 주자가 달렸다.

리드 폭은 길지 않았으나 전진오의 공이 빠르지 않고 주자는 발이 빠르기에 시도한 도루였다.

팡!

타자가 스윙을 했으나 바깥쪽으로 빠진 공에 헛스윙이었다.

송석현은 공을 잡자마자 2루로 던졌다.

조양선은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

촤아아악!

주자가 흙먼지를 흩날리며 슬라이딩을 했으나…….

-아웃!

야수의 글러브가 주자의 손과 베이스 사이를 막고 있었다.

“야스!”

정진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야수의 실책 이후 포수의 2루 송구 아웃.

조양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흙먼지를 털어 냈다.

“쟤 어깨 좋네.”

조양선의 말에 2루수가 웃었다.

“쟤가 구속만 150km/h이 넘어요. 어지간하면 도루하지 마세요.”

“오바는. 무슨 150km/h이야? 내가 타이밍이 좀 늦은 거야.”

“그러면 한 번 더 도루해 보세요. 그럼 아시게 될 건데.”

웨일스의 감독은 송석현의 송구를 보고 난 뒤 배터리코치를 불렀다.

“어때?”

“송구 속도만 보면 특 A급입니다.”

“배트 돌리는 것도 그렇고 송구도 그렇고, 어디서 저런 놈이 툭 튀어나왔대?”

“어떻게 운 좋게 신고 선수로 뽑았답니다.”

“참 나, 양선이가 아웃됐으면 다른 애들은 오늘 도루도 못하겠네.”

정진오는 안타 두 개를 내줬으나 병살을 유도하며 실점 없이 이닝을 끝냈다.

감독은 정진오를 바꾸려 했지만 투수코치가 만류했다.

“오늘 같은 날 더 밀고 나가야 합니다. 진오가 더 크게 될 수 있는 타이밍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조금 더 끌고 가 보자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불펜 준비시키고.”

“네, 감사합니다.”

송석현이 포수 마스크를 벗고 자리에 앉았다.

김인환은 송석현 옆으로 와 앉더니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아까 못 물어봤는데.”

“뭘요?”

“너 구인선 포크 어떻게 친 거야? 아니, 아까부터 어떻게 골랐어? 그냥 상대가 던질 타이밍을 알았던 거야? 아니면 보고 골랐어?”

“그거야 뭐…… 보이니까요.”

“보인다고?”

“네, 보이잖아요. 회전이 저렇게 없으면 직구랑 구분이 쉽죠.”

“저게 보여?”

“저게 안 보인다고요? 회전이 저렇게 적은데?”

김인환은 송석현을 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송석현을 한 번 보고 웨일스의 벤치를 한 번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치겠네. 난 안 보여.”

“실밥이 안 보여요?”

“어, 잘 모르겠어.”

“……형, 시력이 얼마예요?”

“몰라. 예전에 잴 땐 1.0은 나왔던 거 같은데.”

“예전에 제가 타이세이의 포크볼을 쳤을 땐 정통 포크볼이라 톱스핀이 걸려 들어와서 회전수만으론 구분하긴 어려웠는데, 저 공은 회전수가 너무 적어서 확 구분돼요.”

“넌 그것만 보고 공을 고른 거야?”

송석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뇨. 그건 확인용이죠.”

“그러면? 그 전에 알았어?”

“네.”

“어떻게? 쿠세가 뭔데? 무슨 쿠세가 있는데?”

“아뇨. 저 선배는 쿠세가 없어요. 애초에 포크볼은 쿠세가 많을 수 있는 구질도 아니고요.”

“그럼?”

“쿠세는 없는데 표정이 있잖아요. 감정이 표정에 잘 드러나는 스타일이에요. 자기 공을 믿으니까 저러나 본데, 투수가 표정이 다양하면 타자 입장에선 땡큐죠. 그것도 다 정본데.”

“아, 대가리 아파.”

김인환이 머리를 주물렀다.

다른 선수가 김인환에게 나갈 준비를 하라고 귀띔했다.

“형, 생각은 경기 끝나고 해요. 지금은 경기에만 집중해요, 집중.”

“……하, 알았다.”

김인환이 자리를 떴다.

김정률은 기다렸다는 듯이 송석현의 옆에 앉았다.

“네 덕에 오늘은 나 개점 휴업할 거 같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보니까 오늘 진오가 쭉 던질 거 같아. 불펜 몸 푸는 것도 이제야 미적거리면서 한 명 나가잖냐.”

“진오 형이 잘 던지는 거죠, 뭐. 제가 무슨.”

“뭔 수를 부려서 진오가 저렇게 날아다니냐?”

“수는요. 진오 형이 그냥 잘 던지는 거죠.”

“에이, 말해 봐. 뭔 수가 있었을 거 아냐.”

송석현은 이마를 긁적였다.

“수는 아니고…… 지표를 보니까 진오 형 RPM이 최고 2,600까지 나오더라고요. 평균 2,400~2,500 이상 나오고요. 회전수가 좋다는 거죠. 그런데 딱히 구위로 찍어 누르지도 못한다는 건 디셉션이나 제구, 레퍼토리의 문제 같아서 당장 바꿀 수 없는 디셉션이랑 제구는 냅두고 레퍼토리를 바꿔 봤어요.”

“그래서 몸 쪽 공을 많이 던진 거야?”

“공 회전수가 높다는 건 브레이킹볼이 잘 먹힌다는 뜻이잖아요. 그럼 커브가 좋을 테니까 몸 쪽 높은 공으로 타자를 타석에서 떨어뜨려 놓고 바깥쪽 커브로 카운트 먹는 거죠.”

“슬라이더는? 오늘 슬라이더 거의 안 던지더라. 슬라이더 써먹어 보지?”

“안 그래도 다음 이닝부터 써 보려고요. 벌써 타순이 세 번째 도는 거니까 레퍼토리 바꿔야죠.”

“그러면 레퍼토리 추가하려고 아끼고 있었어?”

“커브가 통하는지 안 통하는지 보고 슬라이더를 넣을지 안 넣을지 정하려고 한 거죠.”

“하, 짜식.”

김정률이 송석현에게 헤드록했다.

“아, 아. 아파요.”

“넌 여기서 배울 게 없다. 빨리 1군으로 가야겠어.”

“보내 줘야 가죠.”

“넌 갈 수밖에 없어, 무조건.”

구인선 다음의 투수는 최고 구속 155km/h의 투수였다.

빠른 공과 슬라이더로 승부를 보는 전형적인 불펜 강속구 투수.

문제는 제구가 들쭉날쭉이라 탄탄한 투수진을 자랑하는 웨일스에선 2군을 전전하는 형편이었다.

김인환의 타석.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김인환은 바깥쪽 직구, 슬라이더 두 개 연속 스트라이크를 뺏긴 후 몸 쪽 직구에 꼼짝도 못하고 삼진을 먹었다.

삼구 삼진.

김인환은 배트를 든 채 벤치로 걸어왔다.

“아무리 봐도 난 모르겠다.”

김인환은 풀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형, 코스가 너무 좋았어요.”

“코스고 뭐고 이도 저도 아닌 거 같아, 난.”

송석현은 김인환에게 몇 마디 더 건네고 싶었지만 공수 교대였다.

상대 첫 타자는 심수경.

정진오가 오늘 힘들어하는 타자였다.

송석현은 초구 몸 쪽 높은 공을 요구했다.

정진오는 잠시 움찔했지만 끝내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심수경은 미동이 없었다.

움찔한다거나 놓쳐서 아쉽다는 표현도 없었다.

송석현은 심수경을 보면서 다시 사인을 냈다.

‘직구, 몸 쪽 하이.’

정진오는 모자를 고쳐 쓰며 뜸을 들였다.

에둘러 마음을 표현했지만 송석현은 강했다.

‘직구, 몸 쪽 하이.’

“하.”

정진오는 한숨 한 번을 쉬곤 몸 쪽 높은 공을 던졌다.

몸 쪽 공이라지만 조금 몰린 공.

정진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스트라이크!

이번에도 심수경은 움직이지 않았다.

미동도 없었다.

“후, 심장 떨어지겠네.”

정진오가 가슴을 쓸어내리다 다음 사인을 보곤 딸꾹질했다.

‘커브, 몸 쪽.’

좌완 투수 정진오 우타자 심수경.

백도어 커브도 아니고 좌투수가 우타자에게 프론트 도어 커브를 던진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사인이다.

정진오는 이번만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커브, 몸 쪽.’

‘안 된다고.’

‘커브, 몸 쪽.’

‘안 된다니까.’

‘커브, 몸 쪽.’

네 번 연속 같은 사인에 정진오도 이번에는 참기 어려웠다. 마음 같아선 송석현에게 쏘아붙이고 싶었다.

“투수, 속행해!”

심판의 외침에 정진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송석현은 다시 사인을 내지 않았다.

말없이 앉아만 있을 뿐인데 숨이 막힌다.

다른 공을 던질까, 싶다가도 포수 마스크 안의 송석현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몰라 망설여졌다.

“아이 씨.”

완봉을 하면 좋겠지만, 맞아도 1점이다.

오늘 송석현이 잘 이끌어 줬으니 한 번의 똥고집은 눈감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핏.

정진오는 최대한 손목을 많이 감아서 커브를 던졌다.

손목을 감을수록 타자가 커브라는 걸 쉽게 눈치챈다.

근래에는 정통파 커브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지만, 좋은 커브는 알아도 치기 어려운 법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공을 던진 정진오는 놀랐다.

루킹 삼진.

심수경은 말없이 타석에서 물러섰다.

“……뭐지?”

자신이 삼진을 잡았지만 자신도 모르겠다는 표정.

몸 쪽에 꽉 찬 커브였기에 타자 눈에는 더더욱 잘 들어왔을 터다.

생소한 볼 배합 때문일까, 아니면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정진오는 타자에게 달려가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건 누가 봐도 포수 사인이지?”

고트의 감독이 배터리코치에게 물었다.

“……그럴 테죠?”

“……미쳤구나, 석현이가.”

“하지만 먹혔네요.”

“김 코치.”

“네.”

“김 코치라면 저런 사인을 낼 수 있어?”

배터리코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하죠, 저런 미친 짓은.”

“김 코치도 안 하고 나도 못 하는데 우리 감독님은 저걸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

배터리코치가 입을 다물었다.

감독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아이고, 머리야. 김 코치가 볼 배합을 다시 가르쳐 줘. 쟤 저렇게 사인 냈다간 1군에서 바로 아웃이잖아. 알지?”

“……후, 알겠습니다.”

감독과 코치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정진오는 안타 후 병살로 이닝을 마감했다.

감독은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 정진오와 미소 짓는 송석현을 번갈아 봤다.

“물건은 물건인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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