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울브스전 이후로 송석현의 출장 비율이 조금씩 높아졌다.
감독은 송석현에게 후반 2~3이닝을 맡기면서 송석현의 실력을 검증했다.
“벌써 자기 혼자 사인을 낼 수 있을 정도란 거지?”
배터리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출장 이닝을 더 늘려도 될 거 같아요.”
“음, 그러면 다음 웨일스전 한 경기는 송석현에게 다 맡겨 볼까?”
“웨일스전이면 며칠 안 남았는데요.”
“그 전까지 잘 조여고 닦고 해 봐. 그게 우리 김 코치의 역할이잖아.”
* *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송석현은 배터리코치와 면담 후 연신 감사 인사를 하며 방을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던 김인환이 씨익 웃었다.
“뭔데? 뭔데 그래?”
“아, 다음 웨일스전에 저한테 한 경기를 맡겨 보시겠대요.”
“오오, 벌써?”
“네, 사인도 웬만하면 저보고 내라고 하시는데요.”
“축하해. 너도 점점 빛을 보는구나.”
“빛은요, 뭐. 아직 한 경긴데. 대신 매일 미팅해야 돼요. 전력 분석 자료 다 외우고 복기하고…… 후. 일이 엄청 늘었어요.”
“검증이지, 검증. 한 경기 잘하면 두 경기, 세 경기가 될 거야.”
김인환과 송석현이 사무실을 나와 구장을 걸었다.
김인환은 걷다가 말고 서선 한숨을 쉬었다.
“왜 그래요, 형?”
최근 김정률, 김인환과 친해지면서 송석현은 선배가 아니라 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석현아, 너는 내가 1군 올라갈 수 있을 거 같냐?”
“형요? 당연하죠. 왜 못 올라가요? 지금 성적도 판타스틱하잖아요.”
“그거야 지표만 그런 거지. 승부를 아예 안 하니까.”
“그만큼 형이 세니까 피하는 거죠.”
“글쎄, 2군에서야 그렇지만 1군에서도 그럴까? 지금은 아예 승부를 안 하니까 선구안이 맞는지 안 맞는지도 모르겠어.”
송석현이 걸음을 멈췄다.
“형, 불안해요?”
김인환은 한숨을 쉬었다.
“너도 그렇고 정률이 형도, 다 제 몫을 해 나가는데 나는 뭐 하나 싶다. 빨리 군대나 갔으면 좋겠는데 구단에서는 허락도 안 해 주고.”
“…….”
송석현이 미간을 좁힌 채 고개를 숙였다.
김인환은 송석현을 힐끗 봤다.
“솔직하게 말해 봐. 네가 보기에도 나 지금 좀 불안하지?”
“음…….”
“괜찮아. 솔직하게 말해 줘.”
송석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송석현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형, 형은 형이 어떤 타자라고 생각해요?”
“나?”
“네, 형이 스스로 생각하는 형요.”
“나는…….”
김인환이 쉽게 말하지 못했다.
내가 보는 나.
남이 보는 나라면 익숙하지만 내가 보는 나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말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약점이 많은 타자. 변화구에 약한 타자.”
“장점은요?”
“그야 힘이 좀 세다는 거.”
송석현은 침음을 흘렸다.
“포수로서 제가 보는 형은 좀 달라요. 약점이 많고 변화구에도 약한 건 맞는데 형의 장점은 힘보다 반응에 있어요.”
“내가? 반응?”
“네, 형의 구종별 타격 지표를 보면 직구 타율이 4할이 넘어요.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직구 OPS는 10할이 넘고요. 근데 문제는 투수들이 형한테 던지는 직구가 대부분 볼이에요. 바깥쪽으로 빠지는 직구.”
“내가 직구에 그렇게 강하다고……?”
김인환은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직구를 잘 치는 거 같긴 한데 그 정도인 줄 몰랐네.”
“형은 지금 바깥쪽 변화구를 치려고 타석에 바짝 붙잖아요. 그쵸? 스탠스도 몸 쪽으로 닫아 버리고. 그러면 몸 쪽에는 약하지만 바깥쪽엔 강해지죠. 아예 몸 쪽 공을 버리는 거죠.”
“그야 그렇지.”
“이게 지금은 통하는데 1군에서도 통할까, 이게 형의 고민인데……. 그걸 저한테 물어보는 거잖아요.”
김인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보기엔 통할 거 같아?”
송석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투수들이 승부를 안 하니 형이 정말 바깥쪽 변화구에 강한지, 약한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뭔데?”
“형은 형의 최고 장점인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직구를 버렸어요. 형의 약점인 바깥쪽 변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죠.”
“그거야…… 너도 그런 식으로 해 보라고 조언했던 거 아냐?”
송석현이 고개를 저었다.
“꼭 그 방법 말고도 다른 방법도 있죠. 극단적으로 클로즈드스탠스를 하기보단 스퀘어 정도로만 해도 바깥쪽 공은 충분히 칠 수 있죠.”
“그러면 바깥쪽에 꽉 찬 변화구를 못 치는데?”
“아뇨. 칠 수 있어요. 형이 못 치는 건 정말 바깥쪽 존을 넓게 보는 주심 스트라이크존 기준으로도 꽉 차는 볼이에요. 형은 그런 볼까지 치려고 하는 거잖아요. 아니에요?”
김인환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이내 우물거렸다.
“그런 거 같기도 해.”
“그냥 바깥쪽에 꽉 차서 들어오는 공은 버려요. ‘아, 투수가 잘 던졌구나.’ 하고 인정하고 넘어가요. 스트존의 바깥쪽 5분의 1을 버려도 나머지 5분의 4로 먹고살면 되잖아요.”
“내가 버리고 싶다고 해도 그게 되나…… 나도 모르게 몸이 따라 나가는데. 그게 되면 나도 이런 고민 안 하지.”
“팔꿈치를 붙여서 스윙해요. 훈련하고 의식적으로도 치면 바깥쪽에 많이 빠지는 공은 아예 배트가 닿지 않으니까 점점 배트가 안 나갈 거예요.”
“음…….”
송석현은 입맛을 다셨다.
“까마득한 후배가 그냥 주제 모르고 하는 말이니까 웃어넘겨도 돼요. 형도 형 스타일이 있으니까.”
“아냐, 아냐. 그런 건 아니고.”
“저는 투수 입장에서, 포수 입장에서 본 형이 필요한 부분을 얘기해 본 거예요. 형이 바깥쪽 공을 완벽히 공략할 수 있으면 지금 그대로 가면 좋겠죠.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훈련 부족이 문제인지, 아니면 그냥 방향 자체가 문제인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 테니까요.”
송석현과 헤어진 후 김인환은 홀로 걷고 또 걸었다.
저녁 식사까지 잊었다.
달이 뜨고 별이 뜰 때까지 걸었다.
“나는…… 어떤 타자지?”
* * *
“자.”
배터리코치 김태우가 송석현에게 USB를 건넸다.
“웨일스 선발투수 구인선이랑 다른 선수들 자료야. 일단 네가 보고 분석하고 결과 정리해 봐. 경기 전날에는 나랑 같이 또 분석할 테지만, 너도 너 스스로 공부해 봐야 할 거 아냐.”
“예, 알겠습니다.”
“너도 알겠지만, 이런 건 밖으로 퍼지면 안 되는 거 알지? 자료 분석실에서만 봐라, 꼭.”
“네.”
송석현은 배터리코치에게 받은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자료에는 선수의 특징, 장단점, 투구 영상, 통산 기록이 빼곡했다.
송석현이 가장 먼저 살펴본 건 웨일스 선발투수 구인선이었다.
-이름 : 구인선.
-포지션 : 투수
-나이 : 30세.
-주요 사항 : 좌완, 최고 구속 152km/h, 현재 웨일스의 4~5선발 중엔 최고의 카드.
-제구 : 중하
-구질 : 포심 패스트볼(62%), 슬라이더(25%), 스플리터(13%)
-장점 : 이닝 이터. 구위가 좋다는 평. 디셉션도 좋다는 평이 있다.
-단점 : 컨디션에 따라 제구가 들쭉날쭉함.
-공략할 지점 : 슬라이더와 스플리터가 좋은 평을 받는다. 카운트에 몰리기 전에 공략하는 게 주효.
스카우팅 리포트와는 달리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전력 분석 보고서였다.
한 장을 넘기자 구속, 카운트별 구종 선택, 상하 무브먼트, 좌우 무브먼트, 피칭 존, 통산 기록 등이 줄줄이 나왔다.
“와…… 프로는 다르구나.”
송석현이 생각한 것보다 포수가 보는 전력 분석 보고서는 세밀했다.
송석현은 직접 구인석의 피칭 장면을 보면서 보고서의 내용과 맞춰 봤다.
“음.”
송석현이 턱을 긁적였다.
용병과 토종 1선발을 빼면 웨일스에서 최고의 투수라는 평은 토종 2선발이라는 얘기다.
국내 선발투수 기준으로 줄 세우면 20~30위권 내의 투수.
제구가 좋지 않은데도 삼진이 많고, 토종 2선발로 평가받는다.
단점이 명확한데도 장점을 극대화시켰다.
딸깍.
딸깍.
딸깍.
송석현은 몇 번이고 같은 피칭 영상을 돌려 봤다.
한 영상을 다 본 후에는 다른 영상을 또 반복해서 봤다.
“공은 좋은데…….”
송석현의 눈동자에 구인석의 공을 던지는 장면이 정면으로 비쳤다.
* * *
“잘 봤어?”
“네, 열심히 봤습니다.”
배터리코치는 시합 전 송석현을 미팅룸으로 따로 불렀다.
“그래서, 네 생각은? 우리 투수를 어떤 식으로 리드할 거고, 상대 배터리의 장점과 단점이 뭐라고 생각해?”
“일단 우리 팀 선발투수 정진오 선배님의 경우 다양한 구질을 가지고 있지만 확실한 위닝샷은 없습니다. 선배님의 경우 삼진도 많지 많고 볼넷도 많지 않은 타입입니다. 웨일스는 장타자가 적고 교타자가 많은 만큼 시프트를 적극 활용해서 공격적으로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맞춰 잡자는 거지?”
“네, 장타가 부족한 팀은 잔루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에 연연하지 않고 승부를 빨리 가져가는 게 좋습니다.”
“그러다 장작 쌓고서 장타 맞으면 어쩌려고?”
“어차피 야구는 확률입니다. 맞으면 어쩔 수 없죠. 우리 패도 상대 패도 뻔하다면 진흙탕 싸움으로 가야죠.”
배터리코치가 웃었다.
“시원시원해서 좋다. 막상 올라가면 네가 네 말대로 할지는 모르겠다만, 듣기에는 나쁘지 않네.”
“제가 생각한 게 있는데, 정진오 선배님이 투구 간격이 좀 긴 편입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투구 간격을 줄일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습니다. 의도적으로 10~15초 정도까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그래. 발상은 좋네.”
배터리코치가 손가락을 탁 튀겼다.
“열심히 준비한 티가 난다.”
“많이 부족합니다.”
“혼자서 이 정도로 깊게 팠으면 나머진 안 봐도 되겠네. 내일 아침에 전력 분석 한 번 더 해 보고 경기 들어가 보자. 어때?”
“네, 좋습니다.”
송석현은 처음으로 선수, 코치와 함께 미팅룸에 들어가 팀 공식 전력 분석에 참가했다.
모든 선수가 전력 분석실에 들어가서 참여하진 않는다.
모든 선수가 전력 분석 자료를 받아 보지만, 전력 분석실에서 또 한 번 미팅에 참여하는 건 주전 선수 몇몇에 한했다.
전력 분석 시간은 나이와 연차에 상관없이 토론이 자유로웠다.
타자는 타자 입장에서 상대 투수, 타자, 야수에 대해 짧은 멘트를 남겼고 투수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시각이 다른 만큼 서로 보지 못한 부분은 토론을 통해 드러낼 수 있었다.
매번 하는 전력 분석이고 자주 만나는 팀이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로 알고 있는 사항을 점검하고 유의 사항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짝, 짝.
“자, 그럼 오늘도 파이팅 하자.”
“수고하셨습니다.”
송석현은 심호흡을 크게 했다.
인천 웨일스.
바닷가 팀답게 짠물 야구로 유명했다.
탄탄한 수비, 조직력, 작전, 투수력으로 유명했으나 언제나 장타자가 기근이었다.
최근 드래프트부터 장타자를 상위 라운드부터 싹쓸이하다시피 데려갔다.
약점 극복을 위한 과감한 시도였지만 아직까진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없었다.
큰 한 방은 없지만 끈끈한 팀.
과연 2군도 1군처럼 끈끈할지 궁금했다.
“해 보자. 할 수 있다.”
송석현은 제 뺨을 툭툭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