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41화 (41/201)

장대희의 손을 떠난 공은 살짝 위로 솟았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12-6 커브.

소위 폭포수 커브라고 하는 각이 큰 커브였다.

투수가 직구와 슬라이더로 카운터를 늘려 왔기에 타이밍을 늦추는 커브는 시의적절했다.

타자가 예상하지 않았다면.

부우우웅.

바람을 찢는 스윙 소리.

한가운데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커브.

송석현의 배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공을 걷어 올렸다.

펑!

“넘어간다! 넘어간다! 넘어간다! 넘어간다아아아아!”

“홈런! 홈런! 홈런!”

“넘어갔다아!”

좌측 담장을 넘기고도 쭉 뻗어 가는 홈런이었다.

어림잡아도 최소 비거리 130m 이상.

송석현은 배트를 던지며 장대희를 봤다.

장대희는 송석현과 눈이 마주치자 모자를 내려 눌러썼다.

“와! 대박이네, 저놈.”

“씨바, 봤어? 공 부서진 거 아냐?”

“송석현! 석현이 최고다!”

끝내기 홈런.

송석현이 홈플레이트로 들어오자 선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끝내기 세리머니를 했다.

2군이라도 프로의 경기다.

8-0으로 시작한 경기를 10-11로 역전했다.

흔치 않은 대역전극.

고트 선수들이 소리 질렀다.

송석현은 그저 빙긋, 한 번 웃었다.

“초대형 포수 맞죠?”

고트의 배터리코치가 감독에게 슬쩍 말했다.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키운 거냐, 잘 큰 놈이었던 거야?”

“둘 다죠. 싱싱한 대어를 제가 더 키운 거죠.”

“겸손이 없구만, 겸손이.”

“지금이 겸손 부릴 땝니까? 지분 경쟁 들어가야죠.”

감독이 배터리코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동안 맘고생이 심했을 텐데, 이젠 한시름 놓을 수 있겠어.”

“제 공을 주장하긴 겸연쩍지만 이제야 제 몫을 한 거 같네요.”

“결승타까지 회장님이 보고 가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낭중지추라고 하잖습니까? 딱 한 달만 2군에서 성적을 올리면 1군에서도 안 쓰고 배기겠어요?”

“글쎄올시다.”

감독은 입맛을 다셨다.

“우리 감독님이 어디 보통 분이던가?”

고트가 승리의 세리머니를 하는 사이, 울브스에선 짐을 챙겨 벤치를 떠났다.

포수는 가방을 둘러메며 장대희에게 물었다.

“아깐 왜 제구가 흔들렸어?”

“아…… 그냥 컨디션이…….”

“넌 그 정도로 공 날리는 타입 아니잖아?”

“죄송합니다, 선배님.”

“아니다. 뭐, 홈런 맞은 게 네 잘못도 아니고. 내 리드 탓도 있으니까.”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집중해. 아까 빈볼 위험했어. 빈볼은 말이다, 타자에게도 사망 선고지만 투수라고 멀쩡하지 않아. 빈볼 맞혀서 입스 걸리고, 트라우마 걸리는 애들 많아. 괜히 몸 쪽 하이볼 잘 안 쓰는 거 아니야.”

“예.”

“후.”

포수가 장대희를 똑바로 봤다.

장대희는 포수의 눈을 피했다.

포수는 장대희의 등을 두드렸다.

“됐다. 가자.”

“네, 알겠습니다.”

장대희는 떠나기 전 고개를 돌려 고트의 벤치를 봤다.

송석현은 선수들에게 둘러싸여 환호를 받고 있었다.

“…….”

장대희는 모자를 깊게, 더 깊게 눌러쓰곤 벤치를 떠났다.

* * *

송석현은 숙소로 와 씻고 누웠다.

손을 펴 얼굴에 가져다 대자, 굳은살이 가득했다.

홈런에 취한 손이 아직도 떨렸다.

똑똑.

“네.”

“형 들어간다.”

“네, 들어오세요.”

김정률이 문을 열곤 박스를 내밀었다.

치킨 박스였다.

뒤이어 피자 박스도 들어왔다.

“오늘 같은 날은 축하해야지?”

송석현과 김정률, 김인환이 각각 치킨과 피자를 들고 왔다.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아 피자를 한 조각씩 물었다.

“석현쓰. 축하, 축하. 오늘 홈런까지 회장님이 봤으면 아주 뽀뻭뜨할 뻔했오오.”

김정률의 과장된 연기에 송석현이 픽 웃었다.

“실책 안 한 게 어디예요.”

“아까 포수 송구 방해, 그거 노린 거지?”

송석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으로 노린 거예요.”

“이야, 새끼. 하여간 똑똑하다니까. 그런 걸 어떻게 생각했데?”

“1군이면 몰라도 2군에서까지 그렇게 빡빡하게 규정을 이용할 거 같지는 않더라고요. 타자도 별 의식 없이 스윙도 크게 하고 스윙 후에도 배터 박스 쪽으로 몸이 빠져서 해 볼 만하다 생각했어요.”

“이 정도면 바로 1군으로 가도 되겠는데?”

“1군에 가면 이런 꼼수가 통하겠어요? 오늘이야 다들 생각을 안 했으니까 그런 거죠.”

김인환이 송석현에게 콜라를 따라 줬다.

“너 아까 그 커브 말이야.”

“네.”

“노린 거야? 타이밍 완벽하던데?”

송석현은 콜라를 먹으려다 말고 대답했다.

“오게 되면 커브라고 생각했어요.”

“직구가 오면 그냥 삼진 먹고?”

“아뇨. 직구가 온다면 바깥쪽 직구일 건데, 제 배트가 기니까 타이밍 늦어도 치기만 하면 파울 정도는 얻어 낼 수 있을 거라곤 생각했어요. 커브일 가능성을 한 70% 이상 두긴 했죠.”

“왜 커브야? 이유가 있어?”

송석현은 콜라를 벌컥벌컥 마셨다.

“일단 제가 투수를 잘 아니까요. 같은 우진고 출신이었고 걔는 소심한 놈이거든요. 아까도 빈볼을 던지려다가 저랑 눈 마주치니까 못 던졌어요.”

“빈볼? 아까 그게? 빠진 거 아니었어?”

“아마 빈볼이었을 거예요.”

“야! 그런데 넌 그냥 가만히 있었어?”

송석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걔 공이 빠지면 모를까, 작정하고 빈볼을 못 던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걔가 왜 너한테 빈볼을 던지는데?”

“이유는 저도 잘 몰라요. 저한테 나쁜 감정이 있구나, 정도? 걔는 소심한데 또 나름 치밀해요. 그래서 앞선 타자들한테 빠지는 공을 계속 던진 거예요. 빌드업이죠. 그리고 나한테 빈볼 꽝. 아마 저랑 눈 안 마주쳤다면 정말 빈볼 던졌을 수도 있죠.”

“헐.”

“와.”

김정률과 김인환이 혀를 내둘렀다.

“너 미친 거야? 빈볼을 던질 수도 있는데 가만있는다고?”

“걔처럼 똑똑한데 소심한 놈은 자기가 한 짓을 들킬 거 같으면 절대 나서지 못해요. 특히 걔는 더.”

김인환이 송석현의 어깨를 잡았다.

“그래도 앞으론 조심해. 그러지 마. 너무 위험하잖아.”

송석현은 김인환의 진지한 표정에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네, 앞으론 조심하겠습니다.”

“빈볼은 한 번 당하면 타자 인생이 아니라 그냥 인생 자체가 쫑날 수 있어. 그런 도박 하지 마.”

“네.”

김정률이 말했다.

“넌 무조건 확신했어? 백 프로?”

“네, 걔는 소심하고 똑똑한 데다 아버지 눈치를 엄청 보거든요. 아마 일이 커지면 아버지한테 불려 가서 혼날까 봐 걱정했을 거예요.”

“파파보인가?”

“그런 경향이 있죠.”

“그래서 커브라고 생각했다……?”

“포수 입장에서 생각하면 당연히 커브죠. 어린 신인 투수가 제구가 안 되고, 빈볼까지 던질 뻔했어요. 만루 상황에 투수는 파이어볼러. 몸 쪽 공을 요구할 리는 없고 제일 쉬운 건 바깥쪽 직구겠죠. 제가 포수라면 여기서 한 번 더 틀 거라고 봤어요. 제구가 안 되는데 바깥쪽 직구가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올지, 안 들어올지 모르잖아요? 바깥쪽 직구도 애매하다면 차라리 커브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죠. 커브가 직구보다 컨트롤도 더 쉽고, 계속 빠른 공만 보여 줬으니까 타자 타이밍을 뺏기도 좋고.”

“커브를 여태 안 던지다 처음 던지면 공이 완전히 풀릴 수 있는데?”

“어차피 제구 안 되는 직구에 희망을 거는 것보단 그쪽이 훨씬 낫죠. 그리고 포수도 다시 직구를 요구하긴 찜찜했을 거예요. 눈치 빠른 포수라면 만에 하나 투수가 일부러 빈볼을 노린 거 아닌가,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면 괜히 직구를 요구해서 일 터지는 것보단 커브를 요구하는 게 마음 편하지 않겠어요?”

김인환이 입을 떡 벌렸다.

김정률은 먹던 피자를 내려 두곤 생각에 잠겼다.

“그 짧은 순간에 그걸 다 생각했어?”

김인환의 감탄에 송석현은 고개를 저었다.

“타석에선 감으로 찍는 거죠. 생각은 벤치에서, 대기 타석에서 선택지 몇 개를 뽑아 두고 타석에서 상황을 보고 선택지 중에 하나를 감으로 뽑는 거예요.”

“나는 내가 타석에서 생각이 너무 많다고 여겨 왔는데 그냥 잡생각이었네……. 나도 너처럼 그런 생각을 했어야 하는데.”

“왜 그래요, 형도 오늘 4타수 3출루 했으면서.”

“그거야 다 볼넷이잖아.”

“공을 골라낸 거잖아요.”

“난 너처럼 생각해서 공을 고르는 게 아니라 존 안에 안 들어오면 안 친다, 이것만 생각하거든.”

“그것도 방법이에요. 형은 반응 속도가 빠르잖아요.”

“내가 너무 생각 없이 배트를 휘두르는가 싶기도 하고.”

김정률이 손뼉을 두 번 쳤다.

“자, 자. 잡설 그만하고. 이제 만찬을 좀 즐기자. 석현이 첫 홈런 친 날이고 경기도 이겼잖아. 기쁜 날 아니야?”

“네, 감사히 먹겠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김정률과 김인환이 자리를 떴다.

김정률은 소화를 이유로 김인환과 숙소 주변을 걸었다.

“인환아.”

“네.”

“요새 야구 재밌지 않냐?”

김인환는 침음만 흘렸다.

“왜? 너는 재미없어? 야구 잘되는데도?”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뭐가 고민이야?”

“석현이처럼 생각하는 야구를 해야 하는데, 전 그냥 냅다 휘두르는 야구를 하는 거 같아서요…….”

“다 스타일이 있는 거지, 갑자기 스타일을 바꿀 수 있나. 네 스타일로 답을 찾아.”

“……공을 좀 쳐야 타격 지표가 쌓이는데 이렇게 볼넷만 얻어 내서 1군에 올라나 갈까요?”

“마음 편히 가져. 기회는 금방 와. 머지않아 너랑 나랑, 석현이가 1군 올라갈 날이 올 거야. 그러면 야구가 꽤 재밌을 거 같다.”

“형은 요새 잘하니까 그럴 수 있죠.”

“너도 자신감을 가져. 힘 하나만큼은 대한민국 최고 아니냐.”

김정률이 뒷짐을 진 채 하늘을 봤다.

“요새 야구가 참 재밌다. 앞으로 더 재밌을 거 같아서 더 재밌고.”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재밌는 말?”

“네?”

* * *

[김정률 복귀 시동? 2군 첫 복귀 경기 무실점]

[언더핸드로 변한 김정률. 과연 도박은 성공할 것인가?]

[김정률, 독한 각오로 변한 이유]

[오늘의 야구계 핫 이슈 동영상 ‘150km/h짜리 송구 보러 오세요.’]

김정률의 언더 변신은 알음알음 야구계에 소문은 있었으나 재활이라는 이름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김정률이 2군에서 정식으로 언더핸드로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한때 고트의 에이스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우완 파이어볼러였던 만큼 김정률의 언더핸드의 변신은 야구계의 핫 이슈로 떠올랐다.

야구 정보 프로그램은 물론, 야구 커뮤니티에서도 김정률의 도박이 성공할 수 있는지 찬반 논란이 거셌다.

고트의 팬 페이지 ‘푸른목장’에선 김정률의 얘기보다 다른 얘기가 더 핫했다.

└이거 실화야?

└진짜 150km/h은 되겠는데?

└쟤 누구야? 우리가 저런 포수가 있었다고?!!?!?!

└우리 포수 농사는 망한 거 아니었나? 그래서 비싼 돈 주고 박신언 업어 온 건데.

└송석현. 신고 선수임. 우진고 출신. 몇 년 전에 메이저리그 가니 마니 했던 투수임.

└투수라고? 몇 년 전까지? 그런데 어떻게 포수를 하는 거야?

└그래서 신고인가 봄.

└그래서 어깨가 좋구나.

└하긴, 다 잘하면 저 어깨에 바로 1라운드 지명이지. 포수 한 지 3년도 안 됐다는 건데 어깨 원툴인가 봄.

└쟤를 언제 길러서 쓰냐?

└길러서 쓸 수나 있으면 다행이게? 어깨 원툴이면 그냥 투수를 다시 시키는 게 좋을 듯.

└그래도 포수로 쓰는 거 보면 이유가 있겠지. 지켜봅시다, 우리.

└10년 넘게 지켜봐서 키운 게 서일혁 하난데 지켜볼 게 더 있나요? 우린 포수 못 키웁니다. 노답임. 2군 코치들 봐요. 전부 코트, 고트, 고트. 다 고트 출신임. 고트 애들 취직 자리 마련해 주려고 2군 만든 건데 뭘 바람. 그냥 빨리 투수로 포변시켜야 함. 우리는 절대 애들 못 기름.

└하긴, 김인환만 봐도…….

└쟤는 투수 포변 해야겠네.

└우리가 무슨 포수 유망주야. 그런 거 없음. 투수나 해라. 우리 벌써 불펜 달린다.

좋든 싫든, 송석현의 송구 영상 하나로 고트 팬들은 송석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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