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데뷔
“포수 교체?”
울브스 감독은 풋, 웃었다.
“저쪽도 진심인가 본데.”
“저기 포수 지환이 말고는 장병준이랑 박장현 정도일 건데 둘 다 지환이보다 나은 게 하나 없는 애들인데요.”
“둘 중에 어깨가 좋은 놈이 있나 보지.”
“글쎄요……. 제가 가진 데이터로는 지환이가 포수로선 제일 낫습니다.”
유례없는 포수 교체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김정률만 고개를 벤치에 돌린 채 웃었다.
“짜식, 형 도우러 오는 거냐?”
송석현은 마지막으로 마스크를 찬 후 그라운드로 향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였다.
송석현은 등골이 간질거렸다.
“……!”
벤치에 앉아 있던 장대희는 전광판의 송석현 이름을 확인하자 눈이 커졌다.
“송석현이 누구야?”
“쟤는 뭔데?”
“쌩짜 신인인가?”
울브스 벤치에선 송석현이 누군지 서로 물어 추궁했다.
“어디서 주워 온 앤가 본데.”
“신고로 받은 앤가?”
느슨해진 그라운드 분위기처럼 회장도 긴장의 끈이 풀렸다. 한창 재밌더니 점점 졸전으로 가고 있다. 상대 도루를 막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여태 내가 퍼부은 돈이 얼만데…….
회장이 작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차라리 김영훈 하나 영입하는 게 낫지.”
“예?”
“김 비서, 차 준비시켜. 슬슬 일어나지.”
“네, 회장님.”
송석현이 자리를 잡자 김정률이 공이 든 손을 흔들었다.
송석현은 고개 한 번 끄덕하는 거로 인사를 대신했다.
무사 주자 1, 3루.
타석에는 3번 타자.
울브스는 1, 2군 격차가 적은 팀이다.
2군 3번 타자라고 해도 어느 팀에 가도 1군 말석에는 이름을 올릴 선수들이다.
‘안쪽, 싱커.’
송석현의 첫 사인에 김정률이 고개를 저었다.
상대는 도루를 노리고 있다.
언더핸드라는 태생적인 큰 투구 폼, 140km/h이 넘지 않는 구속.
바깥쪽으로 공을 던져야 2루 송구에 용이하다는 건 라이트 야구팬도 아는 상식이다.
반대로 타자 몸 쪽으로 공을 던지면 타자 때문에 송구에 방해된다. 타자가 일부러 헛스윙하는 것도 포수의 송구를 방해하기 위함이다.
고트 벤치에선 사인이 없었다.
위기의 순간이지만 송석현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자는 심산이었다.
‘다른 사인으로.’
‘안쪽, 싱커.’
김정률이 인상을 썼다.
왜 저런 고집을 부리지?
‘안쪽, 싱커.’
송석현이 다시 사인을 냈다.
김정률은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무사 1, 3루다.
만루를 채우고 1점과 병살을 바꾸는 게 현재는 최선일 수 있다.
자신이 주자를 전혀 견제하지 못하는 꼴이 되겠지만, 냉정하게 팀을 위해 보자면 만루 작전이 지금은 최선이다.
‘오케이.’
김정률은 셋업 포지션에서 뜸을 들였다.
1루 견제를 빨리 하지 못할 거라면 타이밍이라도 쉽게 주면 안 된다.
팟!
김정률이 공을 던지자마자 주자가 2루로 뛰었다.
김정률은 몸 쪽으로 던지려던 공이 몸 쪽으로 더 빠지는 걸 봤다. 안 그래도 송구가 어려운데 더 어렵게 돼 버렸다.
타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헛스윙을 크게 했다.
팡.
포수가 공을 잡은 시점에 이미 1루 주자는 절반 이상 가 버렸다.
공을 던지면 안 되는 상황.
송석현은 앞발을 한 발 빼면서 송구 자세를 취했다.
“아!”
고트의 배터리코치가 탄식을 내뱉었다.
이미 늦었다.
던지면 3루 주자가 홈을 밟을 수 있다.
강견이라 해도 타이밍이 늦으면 별수 없다.
지금 2루에 던지면 3루 주자가 홈을 노릴 수 있다.
고트 선수들도 탄식을 내뱉은 그때였다.
툭.
살짝 무언가를 스치는 소리와 함께 송석현이 그대로 멈췄다.
“타자 몸에 맞았습니다.”
송석현이 고개를 돌려 심판을 봤다.
“타자가 송구를 방해했습니다.”
타자 장기훈은 움찔해선 아무 말도 못 했다.
타자의 발이 타석을 벗어나 나와 있었다.
헛스윙만 하고 몸을 빼야 하는데 주자의 진루를 보느라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타자 송구 방해. 볼 데드. 타자 아웃. 주자 귀루.”
심판도 귀로 공이 스치는 소리를 들었다.
포수의 확신, 타자의 우물쭈물한 태도는 심판의 판단에 힘을 실었다.
“하하하하.”
김정률은 웃음이 터졌다.
양 팀 벤치에선 무슨 일인가 싶어 수군거렸다.
타자의 포수 송구 방해는 좀체 드문 일이라 양 팀 벤치에선 타자가 큰 실수를 했나 보다, 생각했다.
김정률은 달랐다.
송석현이 일부러 몸 쪽 싱커를 집요하게 요구한 이유가 명확해졌다.
“와, 어린 놈의 자식이 똑똑하기까지 하네.”
김정률은 훈련 기간 동안 피칭에 공을 들이는 게 우선이었다.
주자 견제는 부족했다.
송석현이 강견이라 해도 김정률이 주자 견제를 못한다면 주자를 잡기 쉽지 않다.
양 팀 벤치는 물론 그라운드의 선수들까지 도루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하다 생각하면 느슨해진다.
도루를 막기 어렵다면 다른 방법으로 이득을 취해야 한다.
송석현이 택한 건 몸 쪽 싱커.
타자가 몸 쪽 싱커를 건드려 땅볼을 만든다면 타자 주자만 아웃시키는 게 아니라 3루 주자까지 발을 묶을 수 있다.
만약에 타자가 안 친다면?
어쩔 수 없이 1루 주자를 2루로 보내야 한다.
단, 타자가 별다른 생각 없이 헛스윙하면서 타석 밖으로 몸을 내민다면 포수 송구 방해를 유도할 수 있다.
3번 타자 장기훈이 타석에서 스윙할 때마다 몸이 휘청거리는 걸 보고 도박을 걸었다.
타자의 포수 송구 방해는 자주 나오지 않는다.
느슨한 상황에선 타자가 포수 송구 방해를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을 거다.
하물며 여긴 2군이다.
실력을 키우는 게 우선인 2군에선 세세한 야구 규칙을 염두에 두는 플레이까진 하지 않는다.
송석현의 첫 선택은 실리와 운을 노린 한 수였다.
투수였기에, 송석현을 신뢰했기에 김정률은 송석현의 한 수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
회장이 몸을 일으키려다 멈췄다.
타자의 포수 송구 방해.
회장은 매일 야구를 챙겨 보진 않아도 저런 케이스가 흔치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바뀐 포수가 초구부터 포수 송구 방해를 얻어 냈다.
우연일까?
“쟤는 누구야?”
회장의 손가락질에 사장은 말을 더듬었다.
“저, 그게, 그…….”
“됐어. 모르겠지.”
“죄송합니다, 회장님.”
사장은 ‘2군 사정에 훤한 직원을 미리 대동할걸.’ 하고 후회했다.
뒤늦게 저 멀리서 기웃거리는 2군 프런트 직원 하나를 손가락으로 불렀다.
“음.”
회장은 턱을 매만졌다.
노린 걸까?
타자 주자는 4번 양승원이었다.
1군과 2군을 오가는 거포로, 자주 트레이드 매물에 올라오는 선수였다.
김정률은 단 한 번의 사인 만에 송석현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다졌다.
‘자, 다음 사인은?’
‘커브. 바깥쪽 하이볼.’
‘오케이.’
송석현이 결정했다면 고민할 필요 없다.
저 어린 놈의 자식은 피지컬만 좋은 게 아니라 똑똑하다.
자기보다 야구에 대해 더 해박한데 똑똑하기까지 하다면 오래 생각할 게 뭔가.
자신은 그저 포수의 미트를 보고 힘껏 던지면 된다.
타앗!
이번에도 주자는 1루에 뛰었다.
타자는 솟아오르는 커브에 흠칫해 배트를 내지 못했다.
송석현이 공을 잡았을 때 주자는 어느덧 절반.
송석현의 발은 이미 앞으로 나와 있었다.
팟!
송석현은 투수의 머리 위 가상의 점을 향해 힘껏 던졌다.
포수는 2루를 보고 던지면 안 된다.
홈과 2루의 가상선과 마운드가 만나는 점.
포수의 표적은 가상의 점이다.
팡!
-아웃!
“…….”
“…….”
공을 잡은 야수도, 아웃당한 주자도 어이가 없어 그대로 멈췄다.
2루수가 글러브를 뻗을 필요도 없이 글러브에 공이 박혔다.
주자는 그대로 슬라이딩하면서 아웃.
우기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이 완벽한 아웃 타이밍.
“우와.”
“저거 뭐야?”
“저 새끼 저거 어디서 나온 거야?”
“씨발, 저거 뭐냐?”
가장 먼저 혼란에 빠진 건 울브스 벤치였다.
김정률의 타이밍을 완전히 뺏진 못했어도 김정률을 상대로 도루를 전부 성공시켰다.
웬만하면 세이프라고 봤는데 엇비슷한 아웃도 아니고 한 타이밍 빠른 아웃이다.
“…….”
장대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모두가 송석현에 집중하느라 장대희를 보진 못했다.
“쟤 뭐지? 뭐 하던 놈이야?”
회장의 물음에 사장이 자신이 데려온 직원, 박기덕 대리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아, 저 친구가 송석현이라고 이번에 입단한 신입입니다.”
“신인 선수라고?”
“예.”
“몇 라운더지? 어디 학교고?”
“신고로 들어왔습니다. 학교는 우진곱니다.”
“우진고? 신고?”
회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우진고라고? 그런 데가 있었나?”
“새로 생긴 학굡니다. 최근에 꽤 잘나가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쟤가 신고라고?”
“네, 그렇습니다.”
“저런 애가?”
“네.”
“어떻게?”
“……네?”
“어떻게 저런 애를 안 뽑아? 우리 스카우터 누구야?”
사장은 예상치 못하게 튄 불똥에 입술이 메말랐다.
“됐어. 뽑았으면 됐지.”
회장은 또 금세 기분이 풀려 웃었다.
사장은 가슴을 움켜쥐고 싶었다.
“송석현이라고 했나? 물건 하나 건졌구만. 어깨는 진짜배기야. 저놈 공은 잘 치나?”
박기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는 보지 못했지만 2군에서도 힘이 장사라고 소문이 났답니다.”
“힘도 좋아? 하하하하하하하!”
회장은 처음으로 목청이 보이도록 웃었다.
“우진고라고 하면 고졸인가?”
“예, 이제 스무 살입니다.”
“스무 살이라고? 흐흐흐, 어리구만, 어려. 한참 어리구만.”
“아직 부족하지만 가능성이 충분한 선숩니다.”
“재밌는 친구가 들어왔구만, 하하.”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지. 오늘은 이만하면 된 거 같은데.”
“그러면 모시겠습니다.”
사장은 이때다 싶어 얼른 앞장섰다.
회장이 기분 좋을 때 야구장을 벗어나야 한다.
여기서 또 경기가 기울어지면 회장의 기분은 바닥이 아니라 지하 저 어디까지 내려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야구는 참 재밌단 말이지.”
회장은 김정률이 아웃 카운트 하나를 따내면서 이닝을 마무리하는 것까지 확인하곤 경기장을 떠났다.
“와아아! 너 죽이더라.”
“송석현, 어깨 진퉁인데?”
“대박. 축하한다.”
송석현이 벤치로 들어오자 선수들은 첫 데뷔를 축하했다.
첫 데뷔부터 도장을 쾅쾅 찍었으니 더 할 말이 있으랴.
송석현은 그제야 조금 웃었다.
“감사합니다.”
“리드 좋았다.”
김정률이 송석현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송석현이 엄지를 추켜세웠다.
“공이 진짜 좋더라고요. 와, 커브가 예술이던데요.”
“짜식, 그랬냐? 하하하.”
배터리코치가 송석현에게 와서 어깨를 한 번 두드렸다.
“좋았어. 팝타임이 더 빨라진 거 같던데. 이번에는 1.8초대에 넉넉하게 들어왔겠어.”
“그런가요? 저는 별생각 없이 던져서.”
“그래, 뭐, 포수가 홈플레이트에 앉아서 팝타입 같은 걸 생각하면 안 되지. 잘했다. 연습보다 더 잘하네.”
“감사합니다. 코치님 덕분입니다.”
울브스 벤치는 경기 초와 달리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김정률에게 득점이 꽉 막혔다.
도루로 활로를 뚫고 있었는데 새로 들어온 포수의 어깨가 상상 이상이다.
“한 150km/h도 나오겠던데.”
감독의 말에 배터리코치가 떫은 감 먹은 얼굴을 했다.
“이따 어떻게든 도루 한 번 더 해 봐. 쟤 팝타임 재.”
“예, 알겠습니다.”
감독이 한숨을 쉬었다.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오는 거야?”
감독의 한숨 뒤로 장대희가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감독은 손가락을 탁탁 튀기더니 장대희를 지목했다.
“몸 풀어. 나갈 준비 해라.”
“……네? 아, 예. 알겠습니다.”
장대희가 몸을 일으키며 고트 벤치를 노려봤다.
송석현.
송석현.
송석현.
장대희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