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35화 (35/201)

배터리

고트 2군 실내 연습장.

송석현과 배터리코치 김태우가 공을 잔뜩 쌓아 두곤 훈련 중이었다.

“후아.”

송석현이 포수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땀이 비 오듯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좋아. 잠깐 쉬자고.”

배터리코치 김태우가 허리를 폈다.

송석현이 다리를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직 안 끝났어.”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어때? 오늘 더 할 체력은 되겠어?”

“이따 식사하고 좀 쉬면 채워질 거 같습니다.”

“역시 젊음이 좋네. 체력이 좋아.”

송석현은 실내 연습장 한편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리그가 개막하면 2군도 리그가 시작된다.

송석현은 김태우의 선택을 받은 후 일대일 밀착 훈련에 들어갔다.

다른 선수들은 2군 시합에 나갈 때 송석현은 훈련 또 훈련이었다.

“자, 이거.”

김태우가 송석현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송석현은 뚜껑을 따자마자 허겁지겁 비웠다.

김태우는 송석현 옆에 앉았다.

“되지?”

“예?”

“많이 힘들 거야. 그래도 반사 신경이 좋아서 블로킹은 더 가르칠 게 없다.”

“아닙니다. 아직 턱도 없이 부족한데요.”

“연습에선 보여 줄 거 다 보여 줬어. 이걸 시합에서 보여 줄 수 있냐, 없냐의 차이지. 생각보다 탱탱볼 훈련이 도움이 됐나 봐?”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죠.”

김태우가 벽에 머리를 기댔다.

송석현은 빈 물통을 옆에 내려놨다.

“포수는 잘해도 티가 안 나고 못하면 팀이 무너지는 자리야. 건물의 기초지, 기초. 땅속에 묻혀 아예 안 보이는 기초. 포수가 흔들리지 않아야 투수가 너를 믿을 수 있어.”

“예, 알고 있습니다.”

“포수는 기본이 탄탄해야 돼. 단순히 포구와 블로킹만 잘하는 게 아니라 심판도 봐야 하고 투수도 봐야 하고 주자, 수비, 타자도 봐야 돼. 내가 타석마다 꼭 하라는 게 뭐가 있었지?”

“심판에게 스트라이크존이 잘 보이는지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자세는?”

“발꿈치는 공 하나 넣을 정도만, 무릎 뒤에도 손 하나 들어갈 정도만.”

“모든 게 힘이 들면 나도 모르게 무너지기 마련이야. 의식적으로 체크하지 않으면 잊어먹기 십상이지.”

김태우는 송석현을 바라봤다.

“이제는 왼 다리를 꿇고 공을 받는 것도 많이 늘었어. 왼 다리를 꿇느냐, 안 꿇느냐가 아마와 프로의 차이야. 포수 왼편으로 오는 공을 스트라이크로 잡으려면 왼 다리가 접혀 있어야 돼. 겨드랑이도 살짝 띄워야 하고. 포수가 왼쪽에 오는 공을 스트라이크로 못 잡으면 아무리 잘해도 80점이야. 최악은 떨어지는 공을 덮는 놈이고.”

“저는 지금 괜찮습니까?”

“지금은 완벽하지. 하지만 이것도 경기에 나가 봐야 알 수 있는 거야. 주자가 나가도 과연 네가 미트질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네 어깨가 아무리 좋아도 송구도 다른 문제야. 기본기도 부족한 포수도 많지만 기본기가 탄탄해도 실전에선 써먹기 힘든 애들도 있어. 멘탈의 문제지. 2루 송구하지 말아야 할 때 참을 수 있느냐, 심판이 존으로 장난질해도 넘어갈 수 있느냐…….”

“음.”

“2주면 됐어. 이제는 경기에 나가면서 점점 수정해 나가야지.”

송석현의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씀은……?”

“일단 2, 3이닝 정도 소화하면서 예열해 보자. 완벽하게 준비해서 보내는 것보단 실전을 치러 가며 수정해 나가는 게 좋아.”

송석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감사합니다, 코치님.”

“그동안 훈련을 군말 없이 버텨서 내가 일찍 올리자고 하는 거야. 혼자서도 기본기를 어떻게 이만큼 잘 쌓았나 모르겠네. 누가 도와준 거 아니야?”

“아닙니다. 코치님이 잘 이끌어 주신 덕입니다.”

“빈말은. 일주일 내로 경기에 올릴 거야. 이제부턴 훈련량도 줄이고 밥 잘 먹고, 잘 자 둬. 포수는 무조건 많이 먹고 많이 자는 게 최고다. 포수가 체력이 떨어지면 그 팀은 무너지는 거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송석현이 샤워기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따뜻한 물이 온몸을 감싼다.

드디어 첫 경기.

2군 경기라지만 프로의 경기.

송석현의 손이 떨렸다.

일주일 내라고 했으니 울브스전 아니면 페가수스전일 터다.

“드디어……!”

* * *

다음 날 아침 시간.

송석현은 김인환, 김정률과 2군 식당에서 아침을 함께했다.

“축하한다.”

“그래, 축하한다.”

“아직 결정된 거 아니에요. 코치님이 건의해 보시겠다고 하신 거라…….”

김정률이 피식 웃었다.

“그게 결정한 거지. 뭐, 대단한 거라고 2~3이닝 올리는 데 복잡할 게 뭐 있어. 코치가 한번 해 보자고 하면 감독도 웬만해선 오케이 하는 거야. 다들 네 실력을 봤는데 여기서 더 뺄 필요가 있어?”

“그래도 아직 포수로서 많이 부족한 걸 아니까 좀 그래요, 제가 제대로 배운 기간이 너무 짧아서.”

“여기 2군이야. 2군은 실력을 쌓는 자리야. 다들 얻어터지면서 배우는 거야. 못하면 연습으로 메꾸면 될 일이지 네가 쫄 일은 아니지.”

“그럴까요?”

“일주일 내라고 했으니…….”

김인환이 말했다.

“아마 울브스전일 가능성이 크겠네.”

“울브스요?”

“일단 우리 홈이기도 하고, 페가수스보단 울브스가 좀 낫지. 처음으로 포수 신인을 데뷔시키는 거라면 좀 덜 부담스러운 자리를 주지 않을까?”

“듣고 보니 그쪽이 개연성이 더 있긴 하네요.”

김정률이 손가락을 튀겼다.

“아, 거기에 우진고 투수 있지? 드래프트 1픽이라고 시끄러웠던 애 있잖아.”

김인환이 답했다.

“장대희요?”

“그래, 장대희. 장혁진 아들. 같은 우진고면 동기끼리 만날 수도 있겠네.”

송석현의 표정이 굳었다.

장대희.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다.

“우진고에서 프로로 간 애들이 얼마 없다며? 오랜만에 친구도 만나고 좋겠네.”

“예, 뭐…….”

“몸 관리 잘해라. 경기에 나간다고 또 오버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너, 아침에도 훈련이지?”

“예, 이거 먹고 잠깐 방에 들렀다가 또 나가야 돼요.”

“눈치껏 몸 관리하면서 해.”

“안 그래도 코치님이 훈련량을 조절해 주시기로 했어요.”

“그래도 네 몸이니까 네가 잘 관리하라는 거지.”

“넵. 그럼 전 이것만 먹고 나가겠습니다.”

송석현이 남은 밥을 싹싹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송석현이 떠난 자리에 김정률과 김인환 둘만 남았다.

“뭔가 순식간이네요. 처음에 여기에 왔을 땐 어버버거리더니.”

“그러게 말이야. 재활군이 해체되면 앞으로 뭐 먹고 살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풀리네.”

“후우, 석현이는 잘하겠죠?”

“쟤는 멘탈적으로도 센 놈이라 잘 적응할 거야. 그래도 포수라는 게 하루 이틀 만에 될 일이 아니니 좀 두고 봐야지.”

“하긴, 고졸 포수면 1~2년은 익히는 게 맞는 말이긴 한데 석현이라 기대가 되네요. 타격이 워낙 좋잖아요.”

“너는. 너는 뭐 안 좋냐?”

“저야 뭐…….”

김인환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너도 다시 자세 고치고 성적이 좋아지고 있잖아.”

“그래 봐야 2군인데요.”

“너 지금 출루율만 5할이 넘지 않냐?”

“투수들이 승부를 피하니까요.”

“예전에는 승부를 피해도 알아서 네가 방망이를 붕붕 휘둘렀는데 요샌 그렇진 않잖아.”

“그래 봐야 뭐…….”

“짜샤, 너도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 석현이 봐라. 걔가 고졸 신고로 들어왔다고 남 눈치 보면서 쩔쩔매디? 어차피 스포츠는 마인드가 반이야. 평소에만 그렇게 얌전하게 굴지 말고 타석에서도 침착해 봐. 타석에선 뭐가 그리 급하냐?”

“쩝, 그게 제 마음대로 안 돼요.”

“자꾸 뭘 보여 주려고 하니까 그렇지. 차근차근 하나씩 해 봐. 석현이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포텐만 터지면 뭐, 리그 폭격기 수준이잖아.”

김인환은 구레나룻을 긁적였다.

“저한테 포텐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저 힘만 좋은 거 아닐까요?”

“힘 좋은 것만 해도 이미 반은 끝난 거야. 나머지 반은 천천히 채우면 되지.”

“후우우, 코치님은 일단 저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확신이 안 서요.”

“그러면 송 코치님을 찾아가세요.”

“송 코치님요? 누군데요?”

김인환이 눈을 깜박거렸다.

김정률은 밥을 먹다가 말고 키득거렸다.

“석현이, 인마. 석현이가 아는 게 많잖냐. 이론적으로 따지자면 여기 클럽 하우스에서 석현이보다 야구에 대해서 잡학다식한 놈은 없을걸. 너도 석현이랑 하면서 뭘 깨달아서 타격 폼을 바꾼 거 아냐. 석현이랑 더 붙어 있으면 또 모르지, 더 깨달을 게 있을 수도.”

“음, 그럴까요? 석현이가 괜히 불편해하진 않겠죠?”

“좀 불편하면 어쩔 거야. 좀 도와 달라는데 안 도와주겠어?”

“불편하면 제가 좀 미안하니까 그렇죠…….”

김정률이 수저를 내려놨다.

“어이, 김인환.”

“예?”

김정률이 목소리를 낮게 깔자 김인환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좀 편하게, 편하게 해. 넌 항상 세상만사 진지하고 격식도 너무 따져. 나한테도 그래. 형이면 형이고 선배면 선배지, 내가 형이라고 부르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못 고치고 있잖아. 너 그거 좋은 거 아냐. 자꾸 벽 쌓고 진지 빨지 마. 석현이랑 친해졌잖아. 그럼 살갑게 굴어. 형, 동생 하고 지내. 형이 동생한테 부탁 좀 할 수 있지. 미안하면 맛있는 거 사 주고 그러면 돼. 뭐 그렇게 일일이 다 진지하냐?”

김인환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김정률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정도로 착한 것도 병이다, 병. 릴렉스 하자. 편하게 가자. 석현이랑 이런저런 얘기도 나눠. 꼭 일 있어야 얘기 나누면 그게 더 정 없어, 인마.”

“……죄송합니다.”

“쓰읍, 그런 말도 하지 말고. 이럴 땐 그냥 넉살 좋게 ‘아, 알았어요. 앞으로는 잘할게요.’ 이러면 돼. 정색 그만 빨라고.”

“……네.”

“너도 이거 다 먹고 석현이한테 가 봐. 오전 훈련까진 좀 시간이 있을 테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옆에 붙어서 얘기해 봐. 코치들한테 얻을 게 없으면 네가 책을 보든, 인터넷을 하든, 남한테 물어보든 다 해 봐야지. 안 그래?”

“네.”

“그래, 알았으면 얼른 먹고 일어서. 나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스읍. ‘네, 형.’ 그렇게 해.”

김인환이 입술을 오므렸다.

“네, 형.”

“그래, 얼른 먹고 일어서.”

김인환은 밥을 순식간에 비우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를 뜰 땐 어색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갈게요, 형.”

“그래, 가 봐.”

김인환이 자리를 뜨자 김정률이 수저를 내려놨다.

“저놈 멘탈이 석현이 반만 따라갔으면 리그 폭격했겠구만. 덩치가 아깝다.”

김정률이 남은 밥을 대충 긁어먹고 자리를 뜨려는데 앞에 누가 턱 하니 앉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투수코치 연우식이었다.

“어, 형. 굿모닝.”

“일어서려고?”

“네, 형이 웬일로 일찍 일어났데요?”

“겸사겸사. 그것보다 정률아.”

“네, 왜요?”

“너도 이제 마운드에 올라가야지. 준비됐냐? 자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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