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33화 (33/201)

This is Real

송석현이 배트를 살짝 흔들었다.

방망이 무게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900g 이하로 추정됐다. 평소 쓰던 방망이보다 100g 이상 차이가 난다.

“후우우우우.”

송석현이 숨을 내뱉었다.

원하진 않지만 쇼 케이스가 됐다.

김정률이 감싸고도는 후배로 찍혀 2군 생활 내내 피곤해질지, 아니면 ‘역시 뭔가가 있어서 그랬구나.’ 하고 평가받을지는 이 자리 하나로 판가름 난다.

“던질까?”

“예, 부탁드립니다.”

김정률은 검지와 중지를 딱 붙였다.

좋은 배팅볼은 포수가 투수에게 송구하듯 던져야 한다.

탕!

김정률이 공을 던지자마자 송석현의 배트가 돌았다.

공은 그대로 좌측 담장을 한참을 넘어갔다.

“……?”

두말할 것도 없이 까마득하게 담장을 넘어서는 공.

좌중이 조용해졌다.

“너무 가벼운데.”

송석현이 배트를 휙휙 휘둘렀다.

배트가 가볍다 보니 타점이 앞에서 생겨 당겨 치기가 됐다.

프리배팅은 밀어 치는 게 우선이라 우익수 방향을 보고 친 건데 100g의 차이는 만만히 볼 게 아니었다.

탕!

탕!

탕!

송석현은 다음 공부터는 우익수 방향으로 밀어 쳤다.

밀어 친다고 했지만 워닝 트랙 근처로 떨어지거나 담장을 넘어갔다.

무거운 배트로 칠 때와는 달리 비거리는 줄었지만 밀어 쳐서 담장을 넘기는 공이 나온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

박수나 환호는 없었다.

침묵의 바다.

송석현은 침묵의 아우성에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흠흠.”

김정률이 배팅 네트를 벗어나 씨익 웃었다.

송석현은 그라운드를 보고 있어서 뒤편을 볼 수 없지만 김정률은 달랐다.

송석현에게 쏠린 시선은 처음과 사뭇 달랐다.

“수고했어.”

김정률이 송석현을 어깨동무하며 배터 박스를 벗어났다.

감독은 손뼉을 서너 번 치면서 송석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름이 송석현이라고 했지?”

* * *

겨우 프리배팅 하나였다.

송석현에 대한 왈가왈부는 없었다.

김정률 백으로 들어왔느니, 고졸 신고 포수니 하는 말은 단숨에 정리됐다.

포수로서의 실력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힘 하나만으로도 김인환에 이어 팀 내 확고한 두 번째 선수였다.

어느 팀에나 거포도 있고 힘만 좋은 타자도 있지만 최소한 2군 내에선 송석현과 어깨를 나란히 할 타자는 없었다.

어나 더 레벨이라는 김인환을 제외한다면.

“더 빨리! 빨리!”

프리배팅이 끝난 후 배터리코치는 송석현을 따로 불러 블로킹 연습을 시켰다.

배터리코치가 땀을 흘릴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이었다.

훈련이 끝나자 배터리코치가 미소 지었다.

“이 정도면 블로킹 기본기는 돼 있네. 연습할 방법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된 거야?”

송석현은 포수 마스크를 벗었다.

“테니스공 가지고 벽에 튕겨 가면서 연습했습니다.”

“테니스공?”

“네, 테니스공이 익숙해지면 탱탱볼로 연습했고요.”

“그래? 하하하.”

배터리코치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올드 스쿨이구만. 옛날에 나도 그런 식으로 훈련을 했는데 말이야. 요새도 그런 훈련을 하나?”

“제가 포변을 한 지 얼마 안 돼서 연습량이 부족해 혼자서도 훈련할 방법이 없나 찾다 보니까 이렇게 무식하게 하게 됐습니다.”

“무식하긴 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방법 중에는 최고지. 그런데 포변 한 지 얼마 안 됐다고?”

“네, 고 2 때부터 미트를 잡았습니다.”

“고 2? 그러면 이제 3년도 안 됐어?”

“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하하하. 이야, 평생 포수 한 놈들 중에 너보다 못한 애들도 수두룩해. 아, 그러면 너 전에 포지션은 뭐였어?”

“저는 투수였습니다.”

“투수라고? 내야수도 아니고 투수? 투수가 포수라……. 특이한 케이스네. 그러면 송구는 좀 자신 있겠네.”

“이런 말씀 드리기 부끄럽지만 아직도 어깨는 싱싱합니다.”

“음, 그렇다면 한번 볼까? 공 던질 수 있지?”

“예, 물론이죠.”

“그럼 한번 던져 봐. 마운드로 올라가 봐. 구속이 얼마나 나오는지 보자.”

배터리코치는 미트를 들고 홈플레이트로 향했다.

송석현은 프로텍터를 벗고선 마운드로 향했다.

팡팡!

“던져 봐. 일단 몸 좀 풀어 보자.”

송석현은 어깨를 휙휙 돌렸다.

마운드에서 제대로 공을 안 던진 지 오래다.

송구 훈련을 하면서 어깨 단련은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와인드업으로 던지는 것과 송구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후우우.”

송석현이 숨을 가볍게 내뱉었다.

몸에 힘을 빼야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다.

송석현은 다리를 살짝 든 후 공을 던졌다.

팡!

“오, 좋네. 130km/h은 나오겠어.”

송석현은 점점 스트라이드를 넓혔다.

투수가 아닌 만큼 스트라이드를 여섯 발자국 이상은 뻗지 않았다.

여섯 발자국 반에서 일곱 발자국이 투수가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구속을 최대치로 올리기 위한 최적의 스트라이드였다.

송석현이 스트라이드를 넓히자 공도 절로 빨라졌다.

“야, 스피드건 가져와 봐라.”

배터리코치의 말에 뒤에서 구경하던 컨디셔닝코치가 스피드건을 가져왔다.

“어, 정 코치. 속도 좀 재 봐. 속도가 꽤 나오는데?”

배터리코치가 송석현을 향해 크게 외쳤다.

“제대로 한번 던져 봐! 여기다 꽂아 봐!”

“네, 알겠습니다.”

송석현은 허리를 좌우로 돌렸다.

피칭의 핵심은 두 가지다.

스트라이드를 얼마나 넓게 가져가느냐.

옆구리 스트레치를 얼마나 길게 가져가느냐.

다리를 더 멀리 뻗을수록, 골반 라인과 어깨 라인의 비틀림이 깊을수록 구속과 구위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여태 스트라이드를 넓혔다면 이제는 옆구리의 비틀림을 키울 때다.

“던지겠습니다.”

“던져, 던져.”

배터리코치가 미트를 내밀었다.

송석현의 어깨를 보아하니 최소한 130km/h 후반이 가능하다.

이 정도면 강견이다.

포수 중에 투수로 포변 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타고난 어깨에 송구 연습을 하면서 구속이 올라가자 구단에서 투수로 포변을 시킨 경우였다.

140~150km/h까지 나오는 구속이 포수 출신 투수의 특징이었다.

송석현은 반대 케이스지만 마운드에서 140km/h 이상이 나온다면 송구에 대한 걱정은 일절 지울 수 있다.

“후우우.”

송석현이 몸에 힘을 빼고 다리를 가슴까지 올렸다.

키킹, 스트라이드, 스트레치, 몸통 회전, 릴리스 포인트를 최대한 앞에 끌고 와 때리기.

평생을 해 온 투수 루틴이 몸을 지배했다.

팡!

공을 잡은 배터리코치가 움찔했다.

방금은 공을 잡은 게 아니다.

미트 안으로 공이 빨려 들어갔다.

“……145km/h.”

컨디셔닝코치가 중얼거렸다.

“미쳤네.”

배터리코치는 공을 잡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 뭐냐? 이 공 뭐야? 너 투수 할 때 구속 얼마까지 나왔어?”

송석현이 눈동자를 위로 올렸다.

“공식적으론 158km/h까지 나왔던 거 같습니다.”

“……148km/h를 잘못 말한 거 아니지?”

“근데 그것도 좀 스피드건이 뻥튀기 된 거라 3~5km/h는 빼야 할 겁니다.”

배터리코치가 고개를 돌려 컨디셔닝코치와 눈을 마주쳤다.

“저거 미친놈이네.”

“그러게요. 진짜 미친놈인데요?”

“저 구속이면 투수를 해야지 왜 포수를 하는 거야?”

배터리코치가 다시 쪼그리고 앉았다.

“야, 공 계속 던져 봐. 얼마나 나오는지 보자.”

팡!

기다렸다는 듯 송석현이 공을 쏘았다.

“148km/h.”

“…….”

“마스크랑 프로텍터 가져올까요?”

“……가져다줘. 그리고 미트 이거보다 더 두꺼운 거 어디 없나?”

“찾아볼게요. 아, 연 코치님도 부를까요?”

“그건 좀 보류. 일단 보류.”

* * *

2군 감독실.

훈련이 끝나고 감독과 코치들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단연 화제의 중심은 송석현이었다.

“이거 투수 해야 돼요. 투수를 그만뒀다는데 155km/h 던지는 놈이에요. 무조건 투수 시켜야죠.”

투수코치 연우식의 말이었다.

“본인이 팔꿈치 미세 통증 때문에 공을 많이 던질 수 없다는데 무슨 투수야, 투수는.”

배터리코치 김태우의 말이었다.

“그러면 마무리로 키우면 되죠.”

“본인이 직접 투수가 싫다고, 포수 하고 싶다고 여태 연습해 왔는데 무슨 투수냐고. 그리고 병원에서도 이유를 모른다고 했잖아. 선수 생명을 생각해야지.”

“그거는 제대로 정밀 검사를 안 해서 그렇죠. 이제라도 정밀 검사해서 원인을 찾아 해결하면 돼요.”

“에헤이, 석현이도 다 해 봤겠지.”

“물어봤습니까?”

“어허, 연 코치. 왜 이렇게 공격적이야? 본인이 투수를 원하는 게 아니잖아.”

“일단 검사부터 하고 애를 잘 설득해 봐야죠. 여태 투수 한 세월이 포수 한 세월보다 몇 배는 더 긴데 투수 시키는 게 맞아요.”

이때 조용하던 타격코치가 입을 열었다.

“저…… 제 생각에는 일단 타격 능력이 있는 만큼 투수보단 야수 파트로 키우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아까 홈런 보셨잖아요. 밀어서 홈런 치는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에요. 걔는 타고난 장사라니까요. 인환이보단 못해도 아마 1, 2군 통틀어서 힘은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겁니다. 걔는 무조건 타자 해야 돼요. 그리고 가능하면 외야수 쪽으로 키우는 게 좋다고 봅니다.”

“외야수?”

“뭐, 외야?”

투수코치와 배터리코치 둘 다 눈을 부라렸다.

타격코치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강견에다 거포잖아요. 딱 외야수죠. 좌익수, 아니 우익수에 딱 박아 놓고 키우면 최고 아닙니까? 3번, 4번 치는 타자가 강견에 외야수다. 그럼 게임 끝났죠. 아까 걔 파워 생각하면 잠실에서도 30홈런 칠 수 있는 타자예요.”

“와, 답답하네. 강 코치. 딱~ 봐도 모르겠어? 인환이 케이스를 생각해 봐. 힘만 좋은 걸 수도 있어. 투수 잘하던 애들이 타격도 잘하는 경우 많잖아? 괜히 인환이처럼 기대 걸었다가 허송세월하면 피차 힘들어져. 이건 투수로 가야 돼. 일단 정밀 검사 받는 걸 먼저 하고 선발로 키울 건가, 마무리로 키울 건가를 고민해야지. 안 그래?”

“포수를 왜 자꾸 다른 데로 빼 가려고 하는 거야? 석현이 본인이 포수에 대한 애착이 강해요. 왜 다들 선수의 본심을 왜곡하는 거냐고.”

가만히 있던 구창현 감독이 입을 열었다.

“그만, 그만. 다들 진정 좀 해 봐.”

구창현 감독이 나서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2군 코칭스태프 중 컨디셔닝코치를 제외하곤 전부 고트 출신이었다. 코칭스태프이기 전에 선후배 관계이고, 구창현은 이 중 최고참이었다.

“일단 정리 좀 하자. 송석현이 진짜배기라는 건 다들 동의하지?”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나도 지금 생각해 봤어. 김 코치, 걔 포수로서 기본기는 어땠어?”

“아직 다 안 살펴봤지만 포구나 블로킹은 기본 이상입니다.”

“사심 빼고 말해 봐. 작년까지 고딩이었던 놈인데 기본기가 착실하다고?”

“진짜라니까요. 왼쪽 무릎 빼는 스킬이 아직 없어서 그렇지 백업 포수로는 손색없어요.”

“그렇다면 포수로서 자질은 확실하다는 거네? 이제 포수 3년 찬데, 그 정도면.”

“냉정하게 따지면 이제 포수 2년 정도 한 건데 저 실력이면 대형 포수 재목이라는 거죠.”

“으음, 진짜 사심 없이 얘기하는 거지?”

“아이, 좀 믿어요, 믿어.”

“그게 진짜면 정말 대형 포수감이라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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