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32화 (32/201)

오함마 나가신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김정률은 송석현을 데리고 2군 감독실을 먼저 찾았다.

2군 감독 구창현은 신문을 보다 말곤 고개를 들었다.

“어, 정률이. 오랜만이네.”

“잘 지내셨어요?”

“나야, 뭐 별거 있나. 넌 어때? 팔 또 도졌다며?”

김정률이 자기 팔을 휘휘 돌리면서 웃었다.

“괜찮습니다. 부상이 아니라 단순 타박상이었어요.”

“그거 다행이네. 지금은 안 아파?”

“네, 좀 괜찮아졌습니다.”

“좀 괜찮아진 거야, 정말 괜찮아진 거야?”

“지금은 통증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컨디션 최곱니다.”

“오, 그래? 그거 다행이네.”

구창현은 김정률 뒤에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는 송석현을 턱으로 가리켰다.

“쟤가 걔야?”

“아, 석현아. 인사드려라.”

송석현이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송석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오, 그래그래. 패기가 있네. 스무 살이라고 그랬나?”

“네, 이번에 고졸 신고로 들어온 친굽니다.”

“고졸 신고가 요새는 많이 드문데 말이야. 너 전담 포수라고 그랬지?”

“네.”

“으음, 경기에 지장 있는 실력은 아니겠지? 그러면 아무리 네 요청이라고 해도 좀 곤란해. 포수가 실격이면 경기 자체가 안 된단 말이야.”

“걱정하지 마십쇼. 이 친구 기본기 돼 있습니다. 일단 연습하면서 한번 보세요.”

“그래, 뭐, 한번 보자고.”

김정률과 송석현이 인사를 마치고 감독실을 나왔다.

송석현은 그제야 숨을 크게 쉬었다.

“후아, 저 잘못한 거 없겠죠?”

“잘못한 게 어딨어? 그런 거 없어. 잘했어. 어차피 너는 이런 데 들어가면 뭐 주도적으로 말하고 거시기 할 짬도 안 돼. 가만히 있는 게 최고야.”

“어후, 이거 은근 떨리는데요.”

“떨리긴. 앞으로 매일 볼 사인데.”

김정률과 송석현은 자리를 이동했다.

두 사람의 행선지는 경기장이었다.

송석현은 매일같이 보지만 훈련을 위해 온 건 처음이었다.

두리번거리면서 경기장 내부를 지나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더그아웃 밖에는 선수들이 이미 도열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김정률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그라운드에 나타났다.

몸을 풀던 선수들이 자리를 잡고 김정률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래그래, 오랜만이네. 잘 지냈지?”

김정률은 코치들에게 가 인사를 건네고 송석현을 소개시켰다.

고트의 에이스였고, 평생을 고트에서 뛴 김정률의 영향력은 최소한 2군에서만큼은 절대적이었다.

“어어, 체격은 좋네.”

2군의 배터리코치 김태우는 송석현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고 손을 만졌다.

“키는 이 정도면 적당하고, 손도 두툼한 게 좋네. 몸만 보면 포수로서 제격이야. 고졸이라고 했는데 몸만 보면 웬만한 대졸 애들보다 나은데?”

송석현이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래, 뭐…… 한번 보자. 너도 경기에 나가려면 최소한 기본은 해야 할 거 아냐. 그치?”

“예, 그렇습니다.”

“너 혼자서 뭐 했어? 혼자서 연습이 돼?”

“부족하게나마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했습니다.”

“포수가 공을 잡아야 포순데 재활군에 투수가 몇 있어야 말이지. 블로킹도 연습해야 하고 사인도 외워야 하고 작전도 익혀야 하는데 혼자서 뭐 할 수 있는 게 있나. 배트나 좀 휘둘렀겠지.”

김정률이 배터리코치에게 다가가 생글생글 웃었다.

“그러니 코치님이 많은 지도 편달해 주셔야죠. 백지에 예쁜 그림 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네가 부탁하지 않아도 내 일이야. 난 내가 할 건 확실하게 할 거야. 이왕이면 조금 더 빨리 오지. 단체 훈련을 빼먹었으니 아까운 시간만 날렸잖아.”

“부족한 만큼 더 열심히 할 겁니다. 그치, 석현아?”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됐다. 가서 합류해. 먼저 몸 풀고 단체 훈련한 다음에 포지션별로 훈련할 거야. 가 봐.”

송석현이 배터리코치에게 인사한 후 자리에서 물러섰다.

김정률은 송석현에게 어깨동무하며 속삭였다.

“배코 중에는 나름 잘한다고 소문난 코치야. 잘 배워 둬.”

“알겠습니다. 선배님이 끌어 주셨는데 욕 안 먹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정률은 직접 선수들에게 송석현을 소개시켰다.

최고참인 김정률이 나서자 일사천리였다.

소개가 끝난 후 훈련이 시작됐다.

처음엔 간단한 스트레칭이었다.

이후론 미니 게임, 맨몸 운동, 순발력 훈련을 하면서 점점 피치를 올렸다.

몸이 풀리자 다음 코스는 프리배팅이었다.

김정률은 송석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쇼 타임.

타자들이 줄지어 배팅장에 들어섰다.

탁!

탁!

탁!

타자들이 공을 치자 대부분 워닝 트랙 전에 잡혔다.

고트는 전통적으로 거포가 부족했다.

큰 잠실구장을 쓰는 만큼 홈런 타자 대신 중장거리형 타자 수집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2군에도 홈런 타자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홈런을 친 건 모든 타자를 다 합쳐도 단 넷이었다. 그마저도 담장 하나 겨우 넘기는 수준이었다.

“쯧쯧, 인환이가 없으니까 홈런도 안 나오네.”

타격코치가 혀를 내둘렀다.

다른 코치들도 한숨을 쉬었다.

“없어, 없어. 장타가 너무 없어. 어떻게 당겨 쳐도 홈런이 이렇게 안 나와?”

“겨울이라 그런가 보지.”

“겨울이라고 해도 그렇지. 인환이는 밀어서도 홈런 쭉쭉 치더구만.”

“김인환이잖아. 그래도 재완이랑 동화는 홈런 몇 개 깠잖아?”

“쟤네 둘만 그나마 체면치레한 거지. 요새 애들이 우리 때보다 체격은 커졌는데 파워는 더 준 거 같아.”

코치들이 쑥덕거리는 사이, 마지막으로 송석현이 나왔다.

선수들은 다음 훈련을 위해 슬슬 자리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스무 살 신고 선수의 훈련을 눈여겨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정률 하나만 제외한다면.

“석현이 파이팅! 크게 날려 봐!”

송석현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대선배가 끼고 도는 후배는 다른 선배들의 미움을 받기 좋은 포지션이다.

김정률이 자신을 꽂아 준 거나 진배없으나 여기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한다면 무능한 낙하산으로 꽂혀 2군 생활도 어려워질 거라는 건 눈을 감아도 뻔히 보이는 현실이었다.

“후우우우.”

송석현이 자기 배트를 꺼냈다.

남들보다 2인치는 긴 배트.

지금 송석현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면 ‘배트가 좀 길구나. 이상하다.’라고 생각했을 터지만 관심을 두는 이가 없었다.

“준비됐어?”

“네.”

송석현은 다리를 어깨너비보다 조금 넓게 벌리고 톱 핸드를 뒤로 감았다.

“스트레치, 스트레치, 스트레치.”

송석현은 세 단어를 중얼거린 후 숨을 골랐다.

“간다.”

배팅볼 투수가 공을 던졌다.

송석현은 남들보다 조금 늦게, 포수가 있다면 미트에 들어갔을 타이밍에 배트를 냈다.

탕!

우타자 송석현이 밀어 친 타구가 우익 선상으로 쭉 뻗어 나갔다.

배팅볼을 던지던 투수가 둔탁한 소리에 놀라 고개를 뒤로 돌렸다.

퉁, 퉁, 퉁, 퉁.

담장을 가뿐하게 넘긴 공이 관중석에 툭 떨어져 튕겼다.

“……뭐야?”

공을 던진 투수마저 눈을 의심했다.

완전히 밀렸다고 생각한 타이밍이었다.

공도 당기는 게 아니라 밀어 쳤다.

히팅 포지션이라도 위로 높여서 어퍼스윙이었다면 이해라도 할 텐데 자신의 눈으로 보기엔 레벨스윙에 가까웠다.

원래라면 잘해야 워닝 트랙 가까이 떨어져야 할 공이 담장을 넘어갔다.

짝, 짝, 짝, 짝.

김정률이 일부러 큰 박수를 보내며 외쳤다.

“홈런! 좋았어! 한 방 더 가자!”

홈런이란 소리에 다른 훈련을 준비 중이던 선수들과 코치가 고개를 돌렸다.

스무 살 신고가 홈런?

송석현이 키는 185cm에 조금 못 미쳤다.

체격은 단단했지만 190cm에 다다르는 거포들도 있는 만큼 체격만으로는 홈런을 빵빵 칠 거라고 예상하긴 힘들었다.

한데 첫 타석부터 홈런이라는 건 당최 이해하기 힘들었다.

“저, 공을 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송석현의 부탁에 배팅볼 투수가 정신을 차렸다.

“어, 어. 알았어.”

투수가 다시 정중앙으로 공을 던졌다.

우연인지 아닌지 이 공으로 판가름 나리라.

탕!

아까보다 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우익 선상으로 날아갔다.

조금 전처럼 공이 뒤늦게 맞았지만 담장을 쉽게 넘어가는 공이었다.

“뭐야. 쟤 뭐야?”

코치들도 뒤늦게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배터 박스 쪽으로 걸어왔다.

탕!

탕!

탕!

탕!

우익수, 우익수, 중견수, 중견수.

송석현이 치는 공은 우익 선상부터 시작해 점점 왼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이 왼쪽으로 갈수록 비거리도 늘어났다.

치는 공마다 홈런이 나오자 배터 박스 쪽으로 선수들이 우르르 몰렸다.

쾅!

쾅!

쾅!

오함마로 쇠못을 콘크리트 바닥에 우겨 박듯 귀를 때리는 소리와 함께 공이 좌측 담장을 넘어 한참을 뻗어 갔다.

홈런, 홈런, 홈런 그리고 홈런.

“수고하셨습니다.”

프리배팅이 끝나자 송석현이 배팅볼 투수에게 고개를 숙였다.

투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담장과 송석현을 번갈아 봤다.

“……뭐가 좀 큰일이 생긴 거 같지 않아?”

타격코치의 말에 다른 코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인환이 말고 여기서 전부 다 담장을 넘긴 놈은 없었지?”

“최소한 우리 2군에는 없었지.”

“밀어서 넘기는 거 봤어?”

“봤어. 똑똑히 봤지.”

“이거 잘하면…….”

코치들끼리 눈빛을 교환했다.

“어이, 송석현. 송석현 맞지?”

그때 배터 박스로 구창현 2군 감독이 나타났다.

송석현은 감독을 보자 얼른 자세를 고쳐 섰다.

“네, 감독님. 송석현 맞습니다.”

“어, 힘이 아주 좋네. 장사야, 장사. 이제 보니 몸이 딴딴해 보인다, 야.”

감독은 송석현의 가슴을 쿡쿡 찔러 보더니 송석현의 배트를 집어 들었다.

“어이구야. 이거 뭐 펑고 배트야? 왜 이렇게 길고 또 무거워?”

“원래는 연습용 배틉니다. 일본에서 제가 써 보고 제 손에 맞는 거 같아서 쓰고 있습니다.”

“야, 이거 어디 시합 나가서 쓰겠어? 이거 휘두르다가 팔 나가겠다.”

감독이 배트를 들어 보이자 코치들과 선수들도 배트를 보기 위해 다가왔다.

가장 먼저 타격코치 강연태가 배트를 집어 들었다.

“확실히 좀 희한하네. 무거운 펑고 배트 같은데.”

코치의 말에 선수들끼리 수군거렸다.

“아무리 첫날이라고 해도 저런 걸로 유치하게 홈런을 조작하려고 그러냐?”

“여기가 뭐 홈런 쇼 케이스 장도 아니고, 훈련을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펑고 배트로 홈런 치는 놈이 세상 어딨어?”

“쟤도 참 개념이 없다. 정률 선배가 감싸 주니까 나사 빠진 거 아니야?”

“그러면 그렇지, 뭔가 이상하다고 했어. 홈런이 이렇게 빵빵 터질 리가 있나.”

김정률은 뒤에서 선수들이 수군거리는 걸 들었다.

타격코치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배트를 송석현에게 건넸다.

“이런 건 연습할 때나 써. 배팅할 땐 제대로 된 걸 쓰고.”

이때 김정률이 다른 타자가 들고 있던 배트를 슥 뺏어서 송석현에게 다가갔다.

“석현아, 이 배트로 한번 쳐 볼래? 어때?”

“지금요?”

“어, 내가 공 던져 줄게. 한번 쳐 봐.”

송석현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김정률이 공을 들고 배터 박스 앞에 섰다.

송석현은 감독과 코치를 번갈아 보면서 어찌해야 할지 살폈다.

코치가 한발 물러섰다.

“뭐…… 한번 해 봐.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해 봐.”

다른 사람이었다면 훈련을 방해한다고 한 소리 들었겠지만 누구도 아닌 김정률이었다.

코치는 김정률이 송석현을 과하게 감싼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된 송석현의 실력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송석현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시작부터 너무 주목받는다.

기껏 무거운 배트에 다 적응해 놨는데 다시 가벼운 배트를 쥐어야 한다.

송석현은 자신을 보는 눈빛들을 바라보며 타석에 들어섰다.

“그럼 한번 쳐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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