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29화 (29/201)

Solo

한국에 돌아왔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송석현은 집에 하루 묵었다가 다시 2군 구장으로 복귀했다.

김형석은 정식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일본행을 준비했다.

김정률과 김인환은 스프링캠프를 위해 또 출국했다.

재활군에 남은 투수라곤 고창현 하나.

고창현도 구단과 은퇴를 협의 중이었다.

남은 재활군은 이일석, 고영진, 한진철 셋.

이 중 이일석은 36세, 한진철은 38세.

방출 대상이었다.

고영진만 재활에 매진했다.

일곱으로 시작한 재활군이 이젠 둘.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반길 수 없는 미래였다.

* * *

“들어.”

김형석은 일본으로 가기 전 송석현을 불러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감사합니다.”

송석현은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떠먹었다.

“크, 맛있는데요?”

“그렇지? 여기 국물이 끝내준다니까.”

두 사람이 먹는 음식은 녹두 삼계탕이었다.

“많이 먹고 힘내야지, 석현이.”

“감사합니다, 선배님.”

“힘들지?”

“아닙니다. 힘든 거 하나도 없습니다.”

“안 힘들긴. 나도 나가고 정률이도 스캠 가고. 다들 은퇴까지 했으니 너도 머리가 아플 거 아니냐?”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김형석은 닭 다리 하나를 주욱 찢어 살을 발랐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지금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지금 재활군 몇 남았지?”

“저까지 둘입니다.”

“영진이랑 너랑 이렇게 둘인가?”

“예.”

“그럼 오히려 잘됐네. 지금은 재활군을 끌고 가는 것도 좀 그렇잖아? 아마 너희 두 사람, 머지않아 2군으로 올려서 쇼 케이스 할 거야. 스캠 중에 할지, 시즌 중에 할지는 몰라도 길어야 서너 달? 서너 달 안에는 무조건 한 번 올릴 거야. 지금 2군이…… 음…….”

김형석이 고기를 뜯다 말고 인상을 찌푸렸다.

“애매하지. 2군이 성적은 잘 나오는데 그렇다고 막 특급 유망주다, 이런 애들은 없어. 네 차례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릴 순 있어. 하지만 일단 두각을 나타내면 금방 주목받을 수 있어. 아…… 스읍.”

김형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는 포수라도 좀 힘들려나.”

“…….”

“2군 훈련에만 참여해도 다들 네 진가를 알아볼 텐데. 일단 기다려 봐. 재활군이 유야무야되면 2군에 합류하게 될 테니까. 네 타격이야 이미 수준급이니 너를 안 써 보려야 안 써 볼 수가 없겠지.”

“예, 뭐, 기다려 봐야죠.”

“그래, 열심히 해 봐. 고트가 치고 올라가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의외로 빈 구석이 좀 있어서 자리 잡으면 오래갈 수 있어. 나중에는 너무 쓸놈쓸이라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서도…….”

김형석이 턱으로 송석현의 그릇을 가리켰다.

“뭐 해? 먹자.”

“예.”

“많이 먹고 힘내라. 기죽지도 말고, 여기서 포기하지도 말고. 너도 알지? 지금 명단 다 나와서 다른 팀에 가고 싶어도 못 가. 어찌 됐든 여기서 쇼부를 쳐 봐.”

두 사람은 식사가 끝난 후 커피를 한 잔씩 뽑아 길을 걸었다.

김형석은 커피를 후후 불어 가며 마셨다.

“선배님, 일본 언제 가십니까?”

“사흘 후에.”

“빨리 가시네요.”

“여기 있어 봐야 뭐 할 게 있다고. 정해졌으면 빨리빨리 해야지.”

김형석은 그새 커피를 다 마시곤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너는 진짜 잘할 거야. 네 나이에, 아니 지금 야구판에서 너처럼 야구 공부 열심히 하는 애들도 드물 거다. 낭중지추라고 하지 않냐. 조금만 기다려. 금방 너 뚫고 나올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힘내라, 힘. 파이팅.”

김형석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떴다.

송석현은 남은 커피를 홀짝였다.

“후, 이제 진짜 혼자네.”

* * *

스프링캠프 동안 2군이라고 놀지 않는다.

2군 선수 중에 쓸 만한 선수들은 스프링캠프로 가지만 국내에 남는 선수들도 수십 명이었다.

2군 선수들은 국내에 남아 실내 연습장에서 연습을 했다.

근래에는 2군도 따로 스프링캠프를 가기도 하지만 고트는 국내 훈련으로 대신했다.

송석현은 2군 훈련 참여를 기대했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대책 없이 길어졌다.

시즌 시작까진 두 달이 채 안 남은 상황.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

송석현은 자기만의 계획을 짰다.

“우리 한번 친해져 볼까?”

송석현은 일본에서 썼던 1kg짜리 36인치 배트를 집어 들었다. 무겁게 느껴지는 배트가 가벼워지려면 훈련, 또 훈련밖에 없었다.

송석현은 아침에는 웨이트, 점심과 저녁에는 타격 훈련에 매진했다.

처음으로 타격을 배울 때처럼 스텝을 디디고 골반 회전, 스트레치, 어깨 회전을 반복했다.

배트가 가볍게 느껴질 때까지 기본을 반복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어느덧 2월도 끝나 갔다.

스프링캠프 마무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반가운 얼굴이 아침부터 송석현의 방을 찾았다.

“굿모닝!”

“선배님?”

김정률이었다.

“하하하, 잘 지냈냐?”

김정률은 그새 얼굴이 더 타서 돌아왔다.

송석현은 반가움 반, 놀라움 반이 섞인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벌써 스캠 끝나신 거예요?”

“일단 들어가자. 어후, 아직 춥네.”

“아, 예. 들어오세요.”

김정률이 방으로 들어왔다.

송석현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김정률에게 건넸다.

“땡큐, 땡큐.”

“어떻게 되신 거예요? 스캠 아직 안 끝난 거 아니에요?”

“어, 이제 오키나와에서 다들 열심히 하고 있지. 오키나와 리그 중일 거야.”

“그런데 왜 선배님은……?”

김정률이 자기 어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송석현은 설마, 하는 눈으로 김정률을 바라봤다.

“선배님 혹시……?”

“별건 아니야. 뭐, 바보같이 공을 밟아서 미끄러졌는데 어깨에 멍이 들었거든.”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아. 공 던지는 데 큰 지장은 없어. 의사가 쉬어야 한다고 하니까 감독이 가라고 하데. 뭐 그래서 온 거야.”

“정말 안 아프신 거죠?”

김정률이 어깨를 빙빙 돌렸다.

“아예는 아니고. 조금?”

“아…….”

송석현은 말을 아꼈다.

김정률이 또 부상을 입었다면 사실상 은퇴다.

누가 김정률을 데려가겠는가.

김정률이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들었다.

“아무래도 나 이제 오버로는 못 던질 거 같다. 팔 각도가 올라가니까 점점 통증이 생기네.”

“많이 아프십니까?”

“좀. 조금 많이.”

김정률이 피식 웃었다.

“우습게 됐어. 입스를 고쳤다고 기사까지 났는데 또 부상이네. 본의 아니게 양치기 소년이 돼 버렸으. 감독이 이젠 날 영영 안 쓸 거 같더라. 아주 빡쳤더라고.”

“…….”

“하아, 그래서 뭐, 내가 널 끌어 주겠다는 약속이 공수표가 될 수도 있다, 이거야.”

송석현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때가 되면 기회가 올 테니까요. 그것보다 선배님, 팔 통증은 지금 어떠신 겁니까?”

“괜찮대. 의사 말로는 피로가 쌓인 거라고 하더라. 좀 쉬면 괜찮다는데 팔 각도를 올려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피로가 쌓여서 힘든 건지, 오버로 던지면 아픈 건지 알 수가 있나.”

“아무래도 오버핸드가 팔과 어깨에 부담이 많이 갈 수밖에 없죠. 구속이 가장 많이 나오는 폼이니까요.”

“그러게. 이제는 내 인생에서 140km/h는 없나 보다, 후후.”

김정률이 팔을 휙휙 휘둘렀다.

“그러면 이참에 언더핸드로 변신? 어떠냐? 형 공 좋지 않아?”

“좋죠. 선배님 싱커는 훌륭합니다.”

“너라면 어때? 바로 실전에서 쓸 수 있겠어?”

“디셉션만 조금 수정하면 좋은 공이 될 거 같습니다.”

“아아, 디셉션. 지금은 별로야?”

“아무래도 재활을 위해서 공을 던진 거라 디셉션에 신경 쓰진 않으셨잖아요. 조금만 수정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김정률이 언더핸드로 공 던지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 시즌 개막 전까지 언더로 한번 해 볼까?”

“음.”

“어때, 네 생각은?”

송석현은 섣불리 말하지 않았다.

쉽게 입을 뗄 수 없었다.

장고 끝에 송석현이 입을 열었다.

“한 번 폼을 바꾸면 다시 돌아가는 건 더 어려워질 텐데요.”

“알아, 나도.”

“언더와 오버는 너무 극과 극이라 다시 오버로 돌아가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건 각오하고 있지. 내가 오버로 던져도 구속이 142km/h가 최고더라. 어깨 빠지게 던져도 말이야. 날 풀린다고 해도 145km/h가 최고일 거고, 그렇다는 건 평균이 140km/h 왔다 갔다 한다는 건데 그런 공으로 뭐 되겠어? 경쟁력이 없지. 그러면 아예 언더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요새는 정통 언더핸드도 드물고 또 무엇보다 어깨와 팔꿈치가 안 아프거든. 내가 이래 봬도 허리랑 하체가 튼튼해. 언더 던지기 딱 좋지.”

“후우우우, 선배님 뜻이 정해지셨다면 뜻대로 하셔야죠.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얼마든지 돕겠습니다.”

김정률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너도 요새 할 게 없지? 투수들이 죄다 나가 버렸으니.”

“……열심히 개인 훈련하고 있습니다.”

“포수가 투수 공을 잡아야 하는데 말이야. 그치?”

“그건 좀 아쉽긴 합니다. 아니, 많이 아쉽습니다.”

“잘됐네. 그러면 우리 둘이서 한번 투닥투닥 해 보자. 시즌 개막하면 어쨌든 우리 둘 다 2군 경기는 뛰게 돼 있어. 거기서 성적이 잘 나오면 1군 기회가 생기지 않겠냐?”

“네, 그랬으면 좋겠네요.”

김정률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였다.

송석현은 영문을 몰라 김정률을 바라봤다.

“너는 나를 도와줘. 나는 너를 도와줄 테니까. 서로 상부상조하자.”

송석현이 김정률의 손을 잡았다.

“제가 뭐 도와드릴 게 있다고……. 그래도 뭐든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송석현과 김정률은 둘만의 훈련 시간을 가졌다.

김정률은 본격적으로 언더핸드로 변모했다.

송석현은 김정률의 디셉션을 계속 수정해 줬다.

김정률은 싱커와 커브, 단 두 구질만 익혀 나갔다.

송석현이 김정률과 함께하면서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천재.

평생 오버핸드로 던지던 투수가 언더핸드로 바뀌는 데 석 달도 걸리지 않았다.

선발 111승의 레전드 투수는 그저 공을 잘 던져서 되는 게 아니었다.

타고난 운동 신경, 감각이 무엇인지 실감케 했다.

스프링캠프 기간이 끝나고 시범 경기의 시즌이 돌아왔다.

짧은 시범 경기가 끝나면 시즌이 시작된다.

송석현은 구단 입단 후 처음으로 1군 경기를 라이브로 보는 날이었다.

“시작됐다.”

송석현과 김정률은 함께 앉아 TV를 틀었다.

상대는 대전 피닉스.

선공은 서울 고트 차례였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피닉스 선발로 나온 정광우는 세 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포효했다.

“김영훈이 없다고 정광우가 대장 노릇을 하는구만. 웬일이래.”

1회 말.

고트의 투수로 올라온 이창훈도 만만치 않았다.

세 타자 연속 범타 처리.

공 일곱 개로 타자를 농락했다.

“잘 봐 둬. 네가 1군에 가면 쟤랑 호흡을 맞춰야 하니까.”

2회 초.

4번 타자로 김인환이 나왔다.

송석현은 허리를 세우고 집중했다.

겨우내 실력을 기른 김인환이 스프링캠프까지 거쳤다.

얼마나 변했을까.

얼마나 무서운 타자로 변신했을까.

김인환이 타석에 들어서자 송석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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