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24화 (24/201)

HIT!

“투수 교체.”

6회 초.

스코어는 7-4.

오키나와 베어가 1회부터 벌려 놓은 격차를 유지했다.

히어로 매직에서도 더는 점수 차를 두고 볼 수 없었다.

“아…….”

송석현은 몸을 풀다 말고 탄식했다.

투수는 타이세이.

소프트뱅크에서 현재 차기 마무리로 키우고 있다는 포크볼러.

일본의 포크볼러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하는 수준급 실력이다.

2군이라고 해도 구단에서 차기 마무리로 점찍었다면 한국의 웬만한 1군 불펜 이상이면 이상이지 이하는 아니었다.

“하필 내 차례에…….”

송석현이 울상을 지었다.

손맛을 보려나 싶었는데 하필 타이세이.

오키나와 베어 감독도 타이세이가 나오자 김인환을 일찍 뺀 걸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팡!

팡!

팡!

타이세이는 나오자마자 삼구 삼진으로 원아웃을 잡았다.

얼핏 봐도 직구가 140km/h 이상.

어쩌면 145km/h도 가능한 수준이었다.

스트라이크아웃!

스트라이크아웃!

타이세이는 세 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냈다.

타이세이 직구에 타자들은 배트를 맞히는 데 급급했다.

포크볼 하나 없이 세 타자 연속 삼진.

송석현은 자기까지 타순이 안 온 걸 다행으로 여겼다.

“그럼 형은 간다. 잘 준비해 두고 있어.”

“네, 힘내세요!”

김정률이 송석현의 배웅을 받으며 마운드에 올랐다.

계획에도 없던 연습 경기.

갑작스러운 언더핸드 투구.

입스를 극복하는 과정이라지만 투수가 마운드에 서면 가슴이 끓기 마련이다.

지기 싫다.

질 수 없다.

“후우.”

김정률이 송진을 손바닥에 묻혔다.

같은 송진인데 뒤에 야수를 두고, 타자를 본 채 송진을 날리자 웃음이 나왔다.

“파이팅!”

송석현의 큰 외침과 함께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타자는 히로시.

소프트뱅크에서 1군 내야 유틸을 맡는 선수였다.

체형과 체격만 봐선 야구 선수보단 육상이나 체조 선수같이 날렵했다.

“첫 타자부터 골치 아프네.”

일본 프로야구 1군 내야 유틸이라면 한국에선 1군 레귤러 수준이다.

딱 봐도 발 빠르고 작전 수행에 능한 타자.

투수를 괴롭힐 줄 아는 타자가 첫 타자로 나오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흐읍.”

김정률이 숨을 크게 들이켜며 와인드업했다.

투수는 생각이 복잡하면 안 된다.

공을 던지기 전에 이미 다음 공을 생각해 둬야 한다.

템포는 항상 빠르게.

김정률의 철칙이었다.

“읏차!”

김정률이 기합과 함께 공을 던졌다.

김정률은 최근 팔 각도가 사이드와 비슷할 정도로 올라왔으나 지금은 손이 바닥을 긁을 정도로 낮았다.

타자에게 조금이라도 지저분한 공을 던지겠다는 심산이었다.

꽈악.

공이 타자 무릎 높이로 날아오자 타자가 배트를 움켜쥐었다.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려라.

야구의 격언이다.

선두 타자라면 공을 더 지켜볼 수 있지만, 프로 통산 100승 이상을 거둔 투수에게 안타를 칠 기회다.

히로시가 짧게 가볍게 배트를 내밀었다.

탁!

배트와 공이 만나는 순간.

공이 삼유간을 뚫었다.

“아나, 그걸 치네.”

김정률이 입맛을 다셨다.

존 아래로 꽉 차는 직구.

초구로는 잘 안 건드는 공인데 타자가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파이팅!”

송석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률이 다음 타자를 맞았다.

1구를 던지자마자 히로시가 2루로 도루했다.

김정률은 신경을 끄고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했다.

팡!

두 번째 타자에겐 볼넷.

김정률의 표정엔 여유가 있었다.

“병살을 노리는 거겠죠?”

송석현의 질문에 김인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애초에 선발투수야. 복잡하게 안 가. 효율적으로 하는 걸 좋아하지.”

김정률은 다음 타자에겐 초구로 병살을 뺏었다.

히로시는 3루에서 걸음을 멈췄다.

“역시 한국이라도 프로는 다르네.”

다음 타석에 들어오는 료스케가 배트를 어깨에 멨다.

재활 중이라 들었는데 기어코 아웃 카운트를 늘리는 노하우가 남달랐다.

역시 베테랑은 다르구나, 싶었다.

“1점도 주기 싫은데.”

김정률은 료스케를 보자 모자를 고쳐 썼다.

차기 4번 타자감이라면 힘은 이미 보증됐다.

어설픈 공은 맞으면 넘어간다.

김정률은 초구부터 몸 쪽에 공을 붙였다.

탁!

료스케는 몸 쪽으로 오는 공이 뚝 떨어지자 내던 배트로 툭 걷어 냈다.

이를 본 송석현이 한숨을 쉬었다.

“배트 컨트롤이 장난 아니네요…….”

“잘하네.”

김인환이 턱을 매만졌다.

배트를 내는 와중에 공이 떨어지자 파울을 만들었다.

자신이라면 무조건 헛스윙이었다.

“4번 타자감이라더니 배트 컨트롤은 웬만한 리드오프보다 낫네.”

“일본 애들이 야구 저변은 탄탄하네요.”

“뎁스가 다르긴 하지.”

한국도 메이저리그 수준의 톱클래스를 배출해 내고 있다.

문제는 뎁스.

야구를 하는 고등학교만 4천 개가 넘는다.

동아리를 포함한 숫자라지만 한국은 동아리를 포함해도 백 개가 넘지 않을 거다.

압도적인 저변 차이에도 톱클래스를 배출해 내는 한국도 대단하지만 애초에 한국과 일본의 야구 저변, 야구 인프라 차이는 메우기 힘든 간극이 있었다.

일본 프로 2군이면 한국에선 1군 안에는 충분히 들어간다.

“후.”

김정률은 송진을 불어 날렸다.

료스케의 배트 컨트롤이 심상치 않다.

한국 111승 투수가 2군 타자에게 점수를 내는 걸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악!”

김정률이 기합과 함께 공을 던졌다.

이번엔 바깥쪽 낮은 공.

료스케는 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낮게 빠졌지만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줬다.

“나이스!”

송석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

료스케가 인상을 찌푸렸다.

공 하나면 이닝 종료.

송석현이 두 손을 모았다.

탁!

탁!

탁!

탁!

결정구를 기대했지만 료스케는 끈질기게 커트, 커트했다.

료스케를 상대로 13구째 승부.

풀카운트.

마땅한 결정구가 없는 김정률이 진땀을 흘렸다.

료스케는 방망이를 짧게 잡고 배트를 빙빙 돌렸다.

“악!”

김정률이 공을 던지는 순간 김인환이 탄식을 내뱉었다.

높다.

실투.

료스케의 배트가 이번엔 풀스윙했다.

톡.

“플라이! 플라이!”

김정률은 하늘 높이 뜬 공을 가리켰다.

2루수는 발을 살짝 움직여 자리를 잡았다.

턱.

-아웃!

김정률이 글러브를 치며 웃었다.

“좋았으!”

이닝이 끝나자 송석현과 김인환이 나와서 기다렸다.

송석현은 김정률에게 엄지를 세워 보였다.

“와, 마지막 공은 예술인데요?”

“좋았냐?”

“예, 실툰 줄 알았어요.”

“커브야, 커브. 원래는 더 낮게 제구하려고 했는데 너무 떠 버렸어.”

“공이 위로 쓱 살아 가던데요?”

“그러게. 생각보다 공이 더 솟구치네. 이거 재밌는데, 커브? 언더로 던지니까 공이 좀 신기하게 가네.”

“커브 던지려고 계속 낮은 공으로 승부하신 거죠?”

김정률이 웃었다.

“짜식, 포수라고 투수 속마음을 읽을 줄 아네.”

“볼 배합이 너무 좋았어요.”

“싱커가 생각보다 밋밋하네. 프로한테는 안 통하려나.”

김정률이 자리에 앉았다.

송석현은 자기 배트를 쥐고 벤치 앞으로 걸어갔다.

“혹시 싱커, 직구 그립으로 던지세요?”

“손가락 붙여서 던지지. 왜?”

“투심 그립처럼 던져 보시는 건 어떠세요? 싱커가 떨어지는 공이잖아요. 체인지업(저회전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통칭할 때 체인지업이라고도 말한다. 포크나 스플리터도 체인지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을 떨어뜨리려면 회전이 적어야 하잖아요. 그럼 손가락을 떨어뜨려서 회전을 덜 먹히게 하면 유효 회전수가 적어져서 더 떨어지지 않을까요?”

“투심?”

“예, 언더핸드 투수들은 투심 그립으로 싱커를 많이 던지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아하.”

김정률은 오버핸드 투수답게 싱커를 역회전 공으로 생각해 슬라이더 그립으로 반대쪽 회전을 주며 던졌다.

“아, 내가 왜 그걸 안 물어봤지? 어제 그걸 물어봤어야 하는데.”

김정률이 자기 머리를 툭 쳤다.

“그럼 전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다다음 타석이라서요.”

“어, 어. 그래. 잘하고 와. 한 방 멋있게 쳐라.”

“넵.”

송석현이 대기 타석에 나갔다.

앞선 타자는 잔뜩 긴장한 채 타석에 딱 붙었다.

투수는 여전히 타이세이.

송석현은 타이세이의 투구 폼에 맞춰 스윙 타이밍을 잡았다.

팡!

“직구는 빠르네.”

얼핏 봐선 145km/h 정도.

1월 달에 145km/h라는 건 직구가 150km/h를 상회하는 파이어볼러라는 얘기다.

저기에 포크볼이 더해지면…….

부웅!

타자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2구째 포크볼에 여지없이 헛스윙.

투수의 첫 포크볼이었다.

“포크볼도 빨라.”

포크볼 구속은 135~140km/h 정도.

구속으로 직구와 포크를 구분하긴 어려웠다.

-스트라이크아웃!

타자가 또 포크볼에 헛스윙했다.

타자는 아쉬움 하나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확실한 실력 차.

송석현이 배트링을 빼고 타석에 들어섰다.

“파이팅! 한 방 치자!”

“석현이 파이팅!”

김정률이 목소리를 높이자 김인환도 따라서 응원했다.

송석현이 배트를 휘두르며 타석에 들어섰다.

“음?”

송석현이 자세를 잡자 타이세이가 한쪽 눈을 찡그렸다.

스탠스가 짧다.

히팅 포지션도 미들, 레벨 스윙을 한다는 얘기였다.

전형적인 단타를 노리는 리드오프의 폼이었다.

팡팡!

포수가 미트를 때렸다.

신경 쓰지 말고 미트에만 집중하라는 신호였다.

타자는 이제 막 프로에 입단한 신인.

젖비린내 풀풀 풍기는 어린애다.

깊게 생각할 필요 없다.

이미 앞선 타자들을 손쉽게 요리했다.

‘직구. 몸 쪽 하이 볼.’

타이세이의 직구는 빠르고 묵직했다.

스탠스도 좁고 히팅 포지션도 낮다면 포크볼을 노리고 들어왔다는 게 포수의 판단이었다.

떨어지는 변화구를 노리는 타자에겐 몸 쪽 공으로 겁을 줄 필요가 있다.

‘접수.’

타이세이는 공에 자신 있었다.

제구가 문제지 구위와 볼 끝은 이미 인정받았다.

히로토 코치를 만나 투구 폼 교정에 들어가면서 제구도 좋아지고 있다.

“후우.”

타이세이가 무릎을 가슴팍까지 올렸다.

이를 본 히로토 코치가 눈살을 찌푸렸다.

교정 전의 폼이다.

투수가 키킹을 높게 하면 구속을 올릴 수 있지만, 제구에 어려움을 겪는다.

히로토 코치는 타이세이의 키킹과 손의 높이를 낮춰 제구력 향상을 도왔다.

교정 전의 타이세이는 극단적일 만큼 오버핸드 투수였다.

엎어치기 하듯 뿌리는 공은 150km/h를 가뿐하게 넘었다.

여기에 떨어지는 포크볼에 타자는 속수무책.

제구만 됐다면 당장 1군 마무리로 붙박이가 됐을 거다.

타이세이가 예전 폼으로 공을 던진다는 건 제구를 신경 쓰지 않고 구위로 송석현을 찍어 누르겠다는 심산이었다.

“핫!”

타이세이가 이를 악물며 공을 뿌렸다.

몸 쪽이 아니라 정중앙에 오는 공.

몰린 공이었지만 얼핏 봐도 145km/h는 가뿐하게 넘었다. 아직 젖비린내도 안 빠진 고등학생이 치기엔 너무나 버거운.

탕!

송석현은 주저 없이 배트를 돌렸다.

팔꿈치를 붙이고 코킹(손목과 배트의 각)을 180도 가까이 펼쳤다.

“우와…….”

좌익수로 나와 있던 료스케는 저 멀리 점으로 보이는 공을 보며 따라갈 생각조차 못 했다.

공은 료스케의 머리를 한참이나 넘어 담장을 넘어갔다.

담장을 넘어 쭉쭉 뻗어 나갔다.

사람들은 공이 어디로 떨어지는지도 보지 못했다.

송석현이 배트를 얌전히 내려놓고 뛰었다.

“…….”

환호는 없었다.

호들갑도 없었다.

히어로 매직, 오키나와 베어 선수들은 홀린 듯 담장을 바라봤다.

장외 홈런.

타이세이는 넋 나간 얼굴로 2루를 밟는 송석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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