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22화 (22/201)

연습 경기

“여기서 연습 경기요?”

김정률이 되물었다.

“다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가볍게 실력 검증의 시간을 갖는 게 좋잖아요. 여기가 오키나와 아닙니까? 일본 프로 선수들도 이쪽으로 개인 훈련하러 많이 옵니다. 이맘때면 여기서 자체 연습 경기를 많이 해요. 독립야구단이나 사회인야구단에서 말이죠.”

히로토 코치의 말에 김인환이 손을 들었다.

“저희가 프론데 괜히 같이해서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요?”

“아, 그건 걱정하지 마요. 공식 경기도 아니고, 현지에 훈련하러 온 프로 팀 선수들도 함께 연습하는 거라 실력 차이는 대동소이합니다. 그리고 한국과 달리 일본 아마야구 수준은 꽤 높습니다. 높은 레벨에서는 놀랄 만한 선수들도 있어요. 프로 팀에 들어가기 위해서 준비하는 선수들도 많거든요.”

송석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도 일본 독립리그로 오기 위해 준비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저희가 들어갈 수 있을까요?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마침 제가 봐주던 친구들이 이쪽에서 훈련 중이에요. 제가 여기에 있다고 하니까 다들 궁금해하더라고요. 제가 혹시나 하고 물어봤는데 자리를 비워 줄 수 있을 거 같다고 하네요.”

김정률이 김인환을 바라봤다.

“어때?”

“전 상관없어요. 형은요?”

“나는…… 음…….”

김정률이 송석현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우리 막내도 경기 한번 뛰어 봐야지. 그래, 가자. 연습 경긴데 살짝 긴장 좀 하고 오자. 막내야, 자신 있냐?”

“예? 자신까지는…….”

“해 봐. 너 오랫동안 경기 못 뛰었잖아. 그러면 코치님, 자리 한번 만들어 주세요. 참가하겠습니다.”

“그럼 일정 잡아 볼게요.”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연습 경기.

프로 팀도 아니고 정식 경기도 아니다.

송석현은 가슴에 손을 올려놨다.

두근두근.

오랜만에 피가 도는 게 느껴졌다.

* * *

그날 저녁.

선수와 코치, 통역까지 일곱.

휴식일을 앞두고 거한 저녁 식사를 맞았다.

히로토 코치는 핸드폰을 꺼내 보더니 밝게 웃었다.

“모레에 경기가 잡혔네요. 오후 경긴데 소프트뱅크 선수들도 참여한답니다.”

“소뱅에서요? 프로 팀이?”

송석현이 놀라 되물었다.

“아아, 놀라지 마. 1군 선수 하나랑 2군 선수 세 명 정도가 참가하는 거야. 아마 우리 팀이 아니라 상대 팀으로 들어갈 거 같아.”

“1군 선수면 장난 아니겠는데요…….”

“료스케가 딱 여기 김인환 선수 같은 케이스야. 장타력은 상당하지. 나랑 같이 2군에서 담금질해서 성적이 꽤 좋아졌어. 작년 하반기에 1군 올라와서 아마 3할 4푼을 쳤나…….”

“와, 엄청 잘했네요.”

“근데 몇 타석 안 섰어. 아마 11타석? 12타석? 그래도 녀석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지.”

김정률이 땀을 닦는 시늉을 했다.

“이거 큰일 났네. 개망신당해서 뉴스에 나오는 거 아니야?”

김인환이 말했다.

“저는 좋은데요. 레벨로 따지면 프로 2군 수준보다는 좀 낫잖아요? 한번 시험해 보기 딱 좋은 거 같아요.”

“나는 좀 쉴까? 형석아, 네가 한국 프로야구 투수의 실력을 보여 줘라. 고트의 필승조 김형석 출격!”

김형석은 허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허리 나가기 일보 직전이야. 훈련도 제대로 못하는데 무슨 경기를 뛰냐?”

“역시 좀 힘든가?”

“따뜻한 데서 운동 좀 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퍽이나. 똑같네. 아무래도 봄이 오기 전에 짐 싸야 할 거 같다.”

김정률이 입맛을 다셨다.

“수술을 해야 하나?”

“허리 수술한 놈이 무슨 투수를 해? 게다가 나 원래 잠수함이야. 잠수함의 생명은 허리야. 옆구리로 던져도 아프다, 아파.”

“사이드도 소용없어?”

“그래,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이번 전지훈련은 은퇴식이 될 거 같다.”

얘기를 듣고 있던 히로토 코치가 말했다.

“일본에서 재활 병원을 다녀 보는 건 어때요? 여기 재활 시스템이 잘돼 있어요.”

김정률이 맞장구쳤다.

“그래, 그 생각을 못 했네. 여기서 병원 한번 가 봐. 여기는 또 다를지 누가 알아?”

“어차피 망한 거 같은데 굳이 뭘…….”

“야, 그래도 한번 가 봐. 그거 돈 얼마나 든다고, 짜식이.”

“돈도 돈이지만 그냥 다 귀찮다. 아프니까 다 귀찮아.”

“아프니까 병원을 가야지, 인마.”

김정률과 김형석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히로토 코치가 김형석에게 말했다.

“그럼 내일 나랑 같이 가요. 내일 어차피 휴식일이니 상관없잖아요.”

“아, 그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됩니다.”

“혼자 가라고 하면 안 갈 거잖아요. 아프면 병원에 가야죠. 내일 저랑 같이 가죠.”

히로토 코치의 말에 김형석은 더는 거절하지 못했다.

식사가 끝난 후.

모두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었다.

김정률은 침대에서 뒤척거리더니 옷을 챙겨 입고 방을 나섰다.

송석현이 화장실에 나왔을 땐 김정률이 나간 후였다.

“어디 가셨지?”

송석현도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김정률의 행방은 금세 찾아낼 수 있었다.

숙소 뒤편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이렇게. 이렇게 그립을 잡으면 돼.”

“이렇게? 이렇게 던진다고?”

“그래, 그립은 큰 차이 안 나. 대신 손목을 탁 채는 느낌으로.”

송석현은 나서지 않고 고개만 배꼼 내밀었다.

김정률과 김형석이 서로 마주 보고 얘기 중이었다.

“이렇게 하면 커브라는 거지?”

“그래, 그런데 오버가 던지는 커브랑은 달라. 약간 떠오르는 공이라고 할까?”

“떠올라?”

“언더가 공을 던지면 자연스럽게 싱커처럼 떨어지잖아? 커브를 던지면 떨어져야 할 공이 살아서 위로 솟구치는 기분이야. 스핀이 잘 먹으면 바깥쪽으로 많이 휘기도 하는데 사이드처럼 많이 휘진 않아. 그러니까…… 잠수함의 커브는 슬라이더 비슷하게 들어간다고 해야 하나? 각이 작은 느린 슬라이더?”

“뭐야, 그게. 최악인데? 구리잖아.”

“꼭 그런 게 아니야. 잠수함은 공이 떨어지는 게 기본이잖아. 그런데 공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훅 솟아오른다고 해 봐. 타자는 잠수함 공이 떨어지니까 기본적으로 퍼 올리려고 하는데 공이 위로 솟구치잖아. 제대로 못 맞히면 바로 뜬공이야.”

“그건 신기한데? 싱커로 땅볼 유도하고 커브로 뜬공 유도하고.”

“애초에 언더로 던져서 빠른 공을 던지는 건 쉽지 않아. 그러면 맞춰 잡아야지.”

“오케이, 오케이. 대충 알겠네. 이렇게 던지면 떠오르는 공이 나온다는 거지?”

김정률은 공을 몇 번 손안에서 가져 놀더니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건 왜 물어? 네가 언더로 전향할 것도 아니고.”

“한일전 아니냐, 한일전. 연습 경기라고 해도 대충 하면 안 되지. 필살기 하난 가져가야 하지 않겠어?”

“네 공으로 애들 이겨 먹으려고? 너 지금 구속 130은 나오냐?”

“그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연습 경기야, 연습 경기. 대충 해. 오버하다 다치는 거야.”

“아이고, 잔소리는. 알았다, 알았어. 야, 다른 건 없어? 다른 꿀팁?”

송석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김정률과 김형석이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잘해야겠는데…….”

송석현은 귀를 만지작거렸다.

침대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 * *

김형석은 히로토 코치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김정률, 김인환, 송석현은 오전 운동만 하고 숙소에서 푹 쉬었다. 연습 경기라지만 경기에서 지고 싶은 선수는 없다. 전지훈련으로 지친 몸을 휴식으로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방편이었다.

세 사람은 오후 내내 쉬다가 저녁을 함께했다.

“형석이는 정밀 검사를 더 받고 온다네. 내일 히로토 코치만 따로 오기로 했어.”

김정률의 말에 김인환이 물었다.

“어디 많이 안 좋은 거예요?”

“그건 잘 모르지. 하지만 좋진 않겠지, 애가 저렇게 골골대는데.”

“안 그래도 요새 더 아프다고 하던데.”

“투수가 공을 안 던질 수 없고, 공을 던지면 아프고. 후우우, 이게 참.”

“몇 년 유독 많이 던졌죠.”

“불펜이 잘 던지면 이게 문제야. 너무 써. 막 써. 언더핸드는 허리에 부담이 많이 가서 관리를 더 해 줘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어.”

“형석이 형도 아직 한창 젊은데.”

“그러게 말이다. 이러다 정말 은퇴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

식사 자리는 금세 무거워졌다.

송석현은 말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아, 그리고 석현아.”

“네?”

“히로토 코치가 문자 보냈는데 아무래도 넌 내일 출전이 쉽지 않을 수 있대. 포지션이 포수라 다른 사람이 맡기는 어려울 거 같다고.”

“아…….”

송석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포수는 그라운드의 사령관이다.

머릿속에 팀의 작전, 사인을 모두 외우고 있어야 한다.

투수를 다독이고 팀을 다잡는 것도 포수의 역할이다.

혹시나 하고 기대를 가졌지만, 역시나 포수로 용병이 뛰는 건 아마야구에서도 쉽지 않을 일이었다.

“그래도 기회가 되면 너한테 한두 타석이라도 기회를 달라고 부탁해 놨다니까 너무 실망하진 말고.”

“예, 뭐, 괜찮습니다. 아직 경기를 뛰기엔 부족하기도 하고 뭐……. 괜찮습니다.”

송석현은 실망한 티를 감추려 애썼다.

김정률과 김인환은 위로의 한마디를 해 줬다.

날이 밝자 송석현은 가장 먼저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김정률은 뒤늦게 일어나선 눈을 비볐다.

“뭘 벌써 준비를 해 놔?”

“그래도 미리 준비를 해 놔야죠. 코치님은 언제 오세요?”

“출발 전에는 미리 온다고 했는데……. 으음, 기다려 봐. 전화해 볼게.”

히로토 코치는 이미 도착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김정률이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하는 사이, 송석현은 짐을 챙겨 1층으로 내려갔다.

“오셨습니까, 코치님.”

송석현이 인사하며 주변을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통역도 옆에 앉아 있었다.

“아, 벌써 내려와? 시간도 아직 안 됐는데.”

“가만있기가 뭐해서 일찍 내려왔습니다.”

“그래?”

히로토 코치는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

“혹시…… 들었나? 아무래도 오늘 너 경기 뛰기 쉽지 않을 수 있어.”

“네, 들었습니다.”

“미안하네. 기회를 주고 싶었는데 포수 자리라는 게 좀…….”

“괜찮습니다. 포수 자리가 원래 그러잖습니까.”

“그래도 내가 한두 타석이라도 들어설 수 있도록 말은 해 놨어.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웬만하면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볼게.”

“아닙니다. 무리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될 겁니다.”

히로토 코치는 연신 미안해했고, 송석현은 몇 번이나 만류했다.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김정률과 김인환이 내려왔다.

“그럼 우리 갈까요?”

연습 경기가 치러지는 구장은 차로 30여 분 거리.

차에서 내리자 이미 도착한 선수들이 몸을 푸는 게 보였다. 유니폼도 제각각이었지만 분위기는 밝았다.

히로토 코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선수로 보이는 남자 셋이 그를 보고 달려왔다.

“잘 지내셨어요, 코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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