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20화 (20/201)

히로토 코치

“반갑습니다. 가와바타 히로토라고 합니다.”

김정률이 소개한 남자는 젊었다.

아무리 많이 쳐도 마흔이나 됐을까.

폭 넓게 보면 김정률과 동갑이나 아래로도 보였다.

“통역까지 불렀어?”

김형석은 히로토 코치가 젊은 것보다 어리바리하게 생긴 통역에게 더 관심을 뒀다.

“통역 불러야지. 안 그러면 어떻게 티칭을 받게?”

“돈 많이 썼네…….”

“너한테 내란 얘기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마.”

“낼 돈도 없다.”

히로토 코치는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나눴다.

“여기에 계신 분들이 프로 팀 선수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김정률이 대신 대답했다.

“예, 그럼요. 맞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는 동안 김정률 선수의 입스를 고치는 데 주력할 테지만, 시간이 나면 여러분들도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든 좋으니까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히로토 코치는 훈련 전에 먼저 자기 이력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나이는 34세. 원래는 일본 소프트뱅크 2군 컨디셔닝코치를 하다 현재는 개인 레슨샵을 준비하고 있다.

프로 1군까지 밟은 선수지만 부상으로 빨리 은퇴하고 코치의 길로 들어섰다.

프로 입단은 투수로 했으나 이후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이력이 있었다.

“에…… 그러면, 우리 황 코치님이 인환이랑 형석이 봐주시고 석현이는 나랑 형석이 공 던질 때 좀 도와주는 거로 하자. 어때?”

“예, 저는 괜찮습니다.”

“좋아. 그럼 오늘부터 짧고 굵게 본전 뽑고 가자!”

히로토 코치는 먼저 김정률과 송석현을 불러 피칭을 주문했다.

김정률은 연습해 왔던 대로 언더로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송석현이 목소리를 크게 키우며 김정률의 흥을 돋웠다.

김정률은 연달아 다섯 개의 공을 더 던졌다.

공은 전부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왔다.

“그만. 잘 봤습니다.”

히로토 코치는 마운드를 향해 걸어갔다.

김정률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눈 코치가 송석현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포수가 보기엔 어때요? 공 괜찮아 보여요?”

“저요? 예, 제가 보기엔 공 끝에 힘이 있습니다.”

“음, 제가 보기에도 공은 좋았어요. 입스라고 했는데 어떤 부분에서 문제인 거죠?”

김정률이 말했다.

“지금은 팔이랑 어깨가 괜찮아서 공을 던지는 건데 통증 때문에 자꾸 공을 제대로 채질 못합니다. 그래서 공을 제대로 존에 못 넣고 있어요.”

“그러면 입스라기보단 부상의 문젠데.”

“지금은 통증이 없는데도 공을 채는 게 좀…… 그래요. 제대로 챌 수가 없어요.”

“부상 트라우마 같은 거네요. 혹시 타자가 있으면 공을 못 던지는 건가요?”

“아직 라이브 배팅은 해 본 적이 없어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한번 해 볼까요? 타자 한 분만 데려와 주실래요?”

송석현이 김인환을 불렀다.

김인환은 히로토 코치의 얘기를 듣더니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섰다.

“공을 칠 필요는 없습니다. 타석에 적당히 떨어져서 치는 자세만 취해 주세요.”

“네.”

김정률은 오랜만에 타석의 타자를 상대로 마운드에 섰다.

김정률은 송진 가루를 손에 툭툭 튕겼다.

“이게 뭐라고 떨리네.”

김정률이 웃으면서 분위기를 바꾸려 했지만 웃는 사람은 없었다.

“야, 홈런 치면 안 된다.”

“안 쳐요.”

“안타도 치지 마.”

“안 칩니다.”

김인환과 썰렁한 농담을 주고받은 김정률이 와인드업을 했다.

송석현은 존 한가운데로 미트를 내밀었다.

슉!

김정률의 팔이 땅을 스치며 공을 던졌다.

공은 잠시 떠오르는 듯하다가 아래로 가라앉으며 존에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송석현이 김인환의 눈치를 보며 스트라이크를 외쳤다.

“음.”

김인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요. 세 개만 더 던져 볼까요?”

코치의 요구대로 김인환은 연달아 공을 던졌다.

“좋습니다!”

“굿!”

“좋아요!”

송석현은 공을 받으면서 목소리를 더 크게 냈다.

타자가 기분 나쁠 순 있지만, 김인환의 성격이나 두 사람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 김인환이 기분 나빠할 거 같진 않았다.

“잠깐, 잠깐만요.”

히로토 코치는 통역과 함께 다시 마운드에 올라갔다.

송석현은 이번엔 히로토 코치의 부름이 없었는데도 마운드로 향했다.

김인환도 얼결에 따라 마운드로 갔다.

“지금 공을 던지는 거 보면 입스라는 걸 못 믿겠어요. 구속이 느려서 그렇지, 공도 좋고 밸런스도 괜찮아요.”

“그런가요?”

김정률의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지금까지는 아주 완벽한 재활 코스를 밟은 거예요. 이제 여기서부터 점점 팔을 올려 가면서 다시 오버핸드로 돌아가는 길만 남았어요. 지금까진 흠잡을 데 없어요.”

“아, 그 정돈가요? 하하.”

김정률이 모자를 고쳐 썼다.

얼굴은 싱글벙글, 광대가 씰룩였다.

히로토 코치는 고개를 돌려 송석현을 봤다.

“이 훈련법을 제안했다고요?”

“예, 우연히 책을 보다가 발견해서요. 이후엔 인터넷을 뒤져 가며 자세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히로토 코치는 입을 다물더니 콧바람을 뱉어 냈다.

“고마워요.”

히로토 코치의 인사에 송석현이 당황해 손사래 쳤다.

“예? 아니, 제가 뭘…….”

“일본에서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데 한국에서, 그것도 고교야구 선수가 제 이론에 관심을 둘 거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여태껏 제가 매달려서 누굴 가르쳤지, 누군가 제게 가르침을 청한 건 처음이거든요. 정말 고마워요.”

“아니요. 제가 감사하죠, 그런 좋은 방법을 알려 주셔서.”

히로토 코치가 쓴웃음을 지었다.

“일본에선 의심만 받았는데 한국에선 이렇게 어린 선수도 제 방법을 믿어 주네요. 제가 부족할 따름이겠지만…….”

히로토 코치는 뒷말은 붙이지 않았다.

송석현은 히로토 코치가 하지 않은 말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프로 전적 대부분이 2군인 선수.

1군에서조차 자기 포지션이 확고하지 않았던 선수.

타격, 수비, 투수 코치가 아닌 컨디셔닝코치.

34세의 어린 나이.

아마 한국에서도 똑같은 유형의 코치가 있다면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았을 거다.

입스 극복 훈련이라는 보기 드문 드릴 때문에 송석현도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지명도도 부족한데 책을 출간할 정도라면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데 목말랐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것도 인연이니 저도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겠습니다!”

히로토 코치의 지휘 아래 김정률의 훈련은 계속됐다.

김정률은 공을 던지기보단 팔 스윙부터 무게중심 이동 등 기본 훈련을 반복했다.

며칠 동안 김정률은 히로토 코치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이했다.

송석현은 김형석, 김인환과 함께 훈련했는데, 김형석은 훈련을 하다가도 잠시 쉬는 경우가 잦았다.

나흘간의 훈련 후 하루의 휴식일.

송석현은 조식을 먹기 위해 아침부터 식당으로 향했다.

“오, 오하이오 고자이마스.”

송석현은 통역을 대동하지 않은 히로토 코치를 보자 버벅거렸다.

“오하이오.”

히로토 코치가 씨익 웃더니 손으로 테이블을 가리켰다.

히로토 코치가 가리킨 곳에는 통역이 이미 앉아 있었다.

“아……하하, 다행이네요.”

통역 없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까마득했던 송석현이 웃었다.

두 사람이 식사를 받아 자리로 돌아왔다.

“석현, 쉬는 날인데도 일찍 일어났네?”

히로토 코치의 물음에 송석현이 우물거리며 답했다.

“예, 오늘 가볍게 러닝 하고 여기 구경이라도 좀 다니려고요, 일본은 처음이라.”

“쉬는 날에도 훈련?”

“그냥 막 쉬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뛰는 게 낫거든요. 훈련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죠.”

“음…… 그래?”

히로토 코치가 국을 먹다 말고 송석현을 봤다.

“그럼 오늘은 내가 네 훈련을 좀 봐줄까?”

“저요? 저를요?”

“그래, 그동안 내가 너희들 봐준다고 했는데 너희들은 따로 요청한 게 없잖아. 너는 막내라 눈치 보여서 더 못했을 테고. 오늘은 쉬는 날이니 내가 널 도와줘도 문제 될 건 없지 않을까?”

송석현은 말 대신 통역의 눈치를 봤다.

통역도 쉬는 날이라고 좋아했을 텐데 졸지에 추가 근무를 하는 셈이었다.

시간 단위가 아니라 기간 단위로 돈을 받았으니 문제는 없겠지만 눈치가 보였다.

“쉬는 날이고 하니 오전에만 잠깐 좀 하는 게 어떨까?”

히로토 코치는 통역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통역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밥 먹는 데만 집중했다.

“그……러면 저도 좋죠.”

“그래? 잘됐네. 내가 꼭 한번 널 봐주고 싶었거든. 얼른 먹고 갈까?”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훈련장으로 향했다.

얼결에 따라나선 통역은 울상이었다.

“아직 프로 경기에는 데뷔 못했다고 했나?”

“네, 아직.”

“스프링캠프는 참여할 수 있고?”

“……힘들 거 같아요.”

히로토 코치는 송석현을 토닥거렸다.

“쉽지 않지. 박탈감, 나도 이해해. 1군에 올라가는 것만큼 2군에서 버티는 것도 어려워. 그래도 힘내. 짧은 기간이지만 내가 많이 도와줄 테니까.”

히로토 코치는 토스배팅부터 시작했다.

송석현은 가볍게 툭툭 공을 쳐 냈다.

공 대여섯 개를 쳐 냈을까.

히로토 코치가 공을 던지지 않고 멈췄다.

“타격 폼이 특이하네. 어디서 배운 거야?”

“아, 이거요? 베이브 루스 영상을 보고 따라 한 겁니다.”

“베이브 루스?”

“예, 팔꿈치를 몸에 붙이고 임택트 순간에 코킹(배트와 손목 사이의 각)을 늘리더라고요. CSR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들어는 본 거 같은데…….”

“베이브 루스도 그렇고 미국에선 많이 쓰는 타격 폼이라 저도 한번 해 본 겁니다.”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라?”

“책도 읽고, 인터넷도 보고, 영상도 찾고 하는 거죠. 그런 다음에 영상을 찍어서 돌려 보고.”

히로토 코치가 혀를 내둘렀다.

“이제 20세라고 하지 않았어?”

“예, 맞습니다.”

“20세가 이렇게 연구를 한다고?”

“연구라기보단, 친구가 워낙 야구에 대해 깊게 파고드는 걸 좋아해서 옆에 있다 보니 귀동냥으로 들은 게 많습니다. 제가 싫다고 해도 친구들이 제 훈련을 돕는다고 난리를 쳐서 뭐 어쩔 수 없이 한 것도 많아요.”

“나도 어지간히 공부를 해 왔다고 했는데 20세, 네 나이 때는 턱도 없는 일이었어. 대단하다. 그 정도 열정과 노력이면 반드시 1군에 데뷔할 수 있을 거야.”

“칭찬 감사합니다. 제가 남들보다 몇 발자국 뒤졌으면 더 열심히 해야죠. 실력이 떨어져서 발버둥 치는 건데 이런 걸로 칭찬받으니 좀 쑥스럽습니다.”

히로토 코치가 배트를 쥐었다.

송석현이 한 그대로 스윙을 하더니 아, 하고 감탄했다.

“확실히 이렇게 하니까 톱 핸드의 힘이 제한돼서 배트가 뒤집히질 않네. 스윙 궤적이 타원형으로 길어지니까 컨택트 면적도 넓어지고 고개가 고정되는데도 도움이 돼. 역시 메이저리그란 말인가……. 내 티칭을 반 이상으로 줄일 수 있겠어.”

송석현과 히로토 코치가 훈련을 마칠 때쯤이었다.

통역은 저 멀리 걸어오는 김인환과 김정률을 보며 한숨을 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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