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11화 (11/201)

배웅

송석현이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건장한 사내 두 명이 언덕을 타고 올라오는 게 보였다.

송석현은 두 사람이 누군지 대번 알 수 있었다.

‘김정률, 김인환.’

김정률은 고교 시절부터 에이스로 불렸으며 고트의 1라운드 지명 후엔 토종 1선발로 활약했다.

큰 키와 강속구를 지닌 우완 파이어볼러의 정석 같은 인물.

김인환은 고교 시절 한 경기 두 번 만루 홈런을 치면서 고교야구의 스타가 된 인물이다.

고트는 좌타 거포라는 조건에 대번 1라운드 지명권을 아끼지 않았다.

송석현은 슬리퍼를 끌면서 언덕배기를 올라가는 두 사람을 지켜봤다.

“1라운더 두 명이 2군에?”

* * *

집으로 돌아온 송석현은 바로 정미남을 만났다.

정미남은 헐레벌떡 뛰어와선 빨리 결과를 얘기하라고 채근했다.

“그냥 가니까 합격이야. 테스트도 없더라.”

“진짜? 호, 다행이다, 다행이야. 잘됐네. 역시 잘 풀릴 줄 알았어.”

정미남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좀 이상해.”

“뭐가?”

“2군이 아니라 재활군이래. 재활군 포수라나. 재활군도 포수가 필요한가 싶은데 공 잡아 줄 사람이 필요해서 뽑는 거래.”

“재활군? 그러면 부상당한 투수들 봐주는 건가?”

“그런가 봐. 뭐 자세하게 설명도 안 해 줘서 뭔지는 잘 모르겠더라. 그냥 알았다고 하고 나왔어.”

“재활군 포수……?”

정미남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것도 있나.”

“그러게 말이다. 처음 들어, 그런 거.”

“불펜 포수 이런 건가?”

“그런 걸 수도 있고. 그러면 프런트 직원 아니야? 불펜 포수는 정식 선수로 등록도 안 되잖아.”

“그런가……?”

송석현과 정미남이 눈을 마주쳤다.

“에이, 아니겠지. 2군 선수 등록보다 프런트 직원 되는 게 훨씬 어려운 일 아니야? 그런데 테스트도 없이 합격시켰으면 그런 건 아닐 거야.”

정미남의 위로에 송석현은 입맛을 다셨다.

“그렇겠지?”

“그럴 거야. 아마 급하게 뽑는다고 했으니까 뭐…… 어느 정도 자리 잡히면 너 부르지 않을까?”

“그런데 나 2군 갈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자리가 나야 올라올 수 있다던데.”

“그래, 자리가 나면 올라갈 수 있다는 건 어쨌든 선수라는 거잖아. 불펜 포수랑은 다른 거야.”

“으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겠지?”

“그럼. 그럴 거야.”

두 사람은 서로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속마음 한쪽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은 피할 수 없었다.

재활군 포수.

고교야구 선수들은 처음 듣는 포지션이었다.

정미남은 일부러 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영훈도 배팅볼 투수부터 시작했잖아. 그런데도 피닉스 멱살 잡고 하드캐리 했는데 뭘. 2군이라고 해도 시즌 시작하면 또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자리만 생기면 네 실력 쇼케이스 해 줘. 너 그럴 실력 되잖아.”

“김영훈이랑 나랑 비교가 되냐? 혼자서 한국시리즈 4승 한 투순데.”

“너도 할 수 있다는 거지. 어쨌든 너도 프로에 들어간 거잖아. 기회 올 거야. 너무 쫄지 마라.”

“흠…… 그래, 뭐. 벌써부터 쫄 필요는 없지.”

“잘될 거야. 일단 구단도 좋잖아, 고트.”

* * *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고트는 별로야…….”

다음 날,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송석현은 고트에 신고 선수로 입단했다고 알렸다.

김나영은 축하했지만, 김영석은 입맛을 다셨다.

“뭐가 별로야? 집도 가깝고 구단도 크고, 시설도 좋다며? 다 좋지 왜?”

김나영이 짜증을 냈다.

김영석은 김나영의 짜증에도 상관없이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김정률하고 김인환이 2군에 있는 팀이 고트야. 고트 콘셉트가 뭐냐? 사서 써야, 사서 써. 해마다 FA 지르는 게 일인 구단이라고. 2군 선수가 1군 올라가는 거 개 어렵다, 그거. 김정률하고 김인환 봐. 김정률은 부상 후에 부진했다고 2군 박아서 올리질 않고, 김인환은 붕붕이긴 해도 힘은 진퉁인데 1군에서 몇 경기 쓰다 내리고, 몇 경기 쓰다 내리고 하잖아.”

정미남이 말했다.

“그래서? 당장 1군 가는 게 어려울까 봐 고트가 별로라는 거야? 에이, 그건 아니지. 그래도 어느 팀이든 잘하면 1군 올려서 실력은 검증한다. 일단 잘하는 게 목표지, 뭐 벌써 그런 걸 걱정하냐?”

“아니, 아니. 잘하는 거 자체가 없다는 얘기야. FA로 좋은 선수를 1군에 영입해. 그러면 애매하게 밀린 선수들은 2군에 갈 거 아냐? 고트 2군은 여덟 개 구단 중에 가장 뎁스가 두껍고 센 팀이라는 얘기야. 2군에서 주전 박고 활약하는 게 쉽지 않을 거다. 아…… 이왕이면 피닉스나 폭스, 불스 이런 데를 갔어야 하는데.”

“너는 잔칫날에 초를 치냐, 재수 없게.”

“안타까워서 그러지. 신고 선수는 하루라도 빨리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김나영이 테이블을 탁 쳤다.

“아이, 진짜. 김영석.”

김영석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좋은 날에는 좋은 말만 하자. 어?”

“……내가 나쁜 말 한 건 아닌데.”

“스읍.”

“……미안.”

송석현이 말했다.

“영석이가 나 걱정해 주는 건 알고 있어. 나도 조금 불안한 것도 있고. 그래도 어쩌냐, 지금은 이게 베스튼데. 일단 잘해 봐야지. 나한테 기회가 오면 잘 받아먹을 수 있게 준비 잘해 놔야지.”

“그래그래, 그런 마인드 좋다. 이왕 시작한 거면 좋게, 좋게 생각해야지.”

“그러면 넌 12월 1일 날 입소하는 거야?”

“응, 안내문 보니까 조금 더 일찍 들어와도 된다고는 하는데 일단 맞춰서 가게. 나 혼자 일찍 들어가도 뭐 할 것도 없고.”

“12월이면 얼마 안 남았네…….”

“그동안 공부 좀 하고 러닝이나 뛰어 놔야지.”

김나영이 말했다.

“그러면 외출은 할 수 있는 거지?”

“응, 신청하면 할 수 있어. 고트가 외출, 외박은 좀 자유로운 편이라니까 너희랑 자주 볼 수 있을 거야.”

“그래, 그건 잘됐다. 역시 집이랑 가까워야 좋다니까.”

김영석이 중얼거렸다.

“이왕이면 뎁스 얇은 데가 더 좋은데.”

송석현이 말했다.

“오늘은 내가 합격했으니까 합격 턱 쏠 거야. 먹고 싶은 거 먹어, 10만 원 내에서. 내 용돈 몰빵이다, 이거. 추가는 없어!”

* * *

식사를 마치고 송석현은 김나영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김나영은 연신 배를 두드렸다.

“잘~ 먹었다.”

“웬일로 너 많이 먹냐? 부대찌개를 그렇게 좋아했어?”

“이렇게 들어가는 날도 있는 거지, 왜? 수능도 끝났겠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데 불만 있어?”

“그냥 신기해서 물어봤다, 어쩜 그렇게 잘 먹는지.”

주홍색 가로등 불빛 아래로 작은 눈송이들이 흩날렸다.

김나영은 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벌써 눈이 내리네.”

“진눈깨비인가 봐.”

“신기하다. 올해 첫눈인가?”

“이런 것도 첫눈으로 쳐주나?”

김나영은 손을 꼭 말아 쥐었다.

“아무튼 다시 한번 축하해, 너 합격한 거.”

“오늘 몇 번 축하받냐? 아무튼 고맙다. 너도 이제 곧 성적 발표지? 뭐, 특별한 거 없으면 너도 서울대에 가는 거지?”

“난 서울대 아니어도 되는데 집에선 무조건 가라네.”

“무조건 가야지, 네 성적이 나오는데.”

“난 사실 대학은 어딜 가도 상관없어, 어차피 바로 공무원 준비할 거라.”

“공무원? 갑자기 웬 공무원이야? 서울대에 가면 취직도 프리패스 아니냐?”

“행시 준비하려고. 5급 공무원.”

“공부를 또 하게? 안 쉬고?”

“들어 보니까 애초에 공부하려면 고 3 끝나고 바로 하는 게 좋대, 대학 생활 놀 거 다 놀고 시작하면 다시 공부하기 힘들다고 해서. 차라리 고 3 때 바로 하면 공부하던 습관이 몸에 배서 쉽다더라고.”

“이야, 대단하다, 행시라니. 내가 친구는 잘 뒀네.”

김나영은 땅에 떨어져 녹아내리는 눈송이를 내려다봤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어.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어쩌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고. 한 2년 해 보고 안 되면 복학해서 학교 다니려고.”

“그래, 서울댄데. 시험에서 떨어져도 서울대 졸업하면 끝났지, 뭐. 걱정 없다, 넌.”

“그러니까 너도 열심히 해. 열심히 해서 1군 데뷔해. 나도 열심히 해서 시험 합격할 테니까.”

“부담은. 알았어. 열심히 할게. 아주 쉬지 않고 열~심히 하마. 너나 나나 빨리 성공하자. 성공해서 우리도 아파트 사고 좋은 차도 끌고 그러자.”

김나영은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너 소원 빌었어?”

“소원? 갑자기?”

“첫눈이잖아. 소원 빌어야지.”

“……그런 거야? 첫눈 오면 소원 비는 건가?”

“빨리 빌어.”

김나영이 눈을 감았다.

송석현도 따라서 눈을 감았다.

“다 빌었어?”

“어, 빌었어.”

“넌 뭐라고 빌었어? 1군 데뷔?”

“아니, 그냥 내년에는 꼭 제대로 야구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어. 야구만 제대로 한다면야 내 실력이면 1군도 금방이지. 그러는 너는? 너는 뭐 빌었어?”

김나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걷던 길을 쭉 내걸을 뿐이었다.

“야, 치사하게 나만 말하냐?”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김나영의 얼굴 위로 드리웠다.

* * *

송석현은 집에도 신고 선수로 입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생은 축하했으나 어머니의 얼굴은 어두웠다.

“내가 잘 모르긴 해도 신고 선수 그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던데.”

“괜찮아. 똑같이 선수야, 선수. 내가 더 열심히만 하면 별문제 없어.”

“후우.”

어머니는 별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저 한숨, 또 한숨뿐.

송석현은 어머니가 무슨 말을 아끼는지 잘 알기에 억지로 더 크게 미소를 보였다.

“서울 구단이고 고트는 그래도 나름 명문이라 나 좋은 데 잘 들어간 거야. 뭐, 내년 상반기까지 잘하면 후반기에는 1군 데뷔할 수도 있어. 듣자 하니 고트가 중간층이 약하다고 하네? 자리가 비면 나한테도 한번 기회는 올 거 같아.”

송철현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다른 포지션, 예를 들어 투수라면 모를까 20세 고졸 신고 포수에게 1군 데뷔 기회는 귀하다.

그러나 송석현이 어머니 귀에 듣기 좋은 소리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입을 꾹 다문 것이다.

“그래, 알았다. 이왕 하기로 했으니 열심히 해 봐라.”

“알았어. 걱정하지 마. 잘할 테니까.”

세 식구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갔다.

송석현은 송철현을 방으로 따로 불렀다.

“철현아, 형이 나가면 이제 집안에 남자는 너 혼자야. 무슨 말인지 알아?”

“음…… 내가 앞으로 잘해야 한다는 거?”

“너는 네 할 일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 엄마 앞에서 말이나 행동 조심해. 괜히 걱정 끼쳐 드리지 마. 나 무조건 잘 풀릴 거니까, 나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냥 잘되고 있다고만 말해.”

“……알았어. 최대한 좋게 좋게 얘기할게.”

“그래, 괜히 엄마 속 끓여 봐야 좋을 게 있냐?”

“형이야말로 힘내. 형이 제일 힘들 거잖아.”

“나?”

송석현이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형은 무조건 성공할 거야. 잘할 거야. 야잘잘이잖아. 야구는 원래 잘하는 놈이 잘하는 거야, 인마.”

12월 1일은 쏜살같이 다가왔다.

송석현은 아침 일찍 짐을 챙기고 집을 나왔다.

배웅하는 어머니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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