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코치와 헤어지고 집으로 오는 길.
송석현은 핸드폰을 들었다.
코치가 적어 준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 곧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신고 선수로 포수를 뽑으신다고 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누구시죠?
“아, 제가 이기성 코치님한테 연락처를 받았는데요.”
-이기성, 이기성……. 아아, 현성이 후배구나. 음, 알았어요. 여기로 메일 주소 보낼 테니까 이력서 보낼 수 있어요?
“예! 알겠습니다.”
송석현은 집으로 가자마자 이력서를 메일로 보냈다.
메일을 보낸 지 채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전화가 왔다.
-아, 잘 봤어요. 포수 경력은 짧네요?
“아, 예. 하지만 열심히 연습을 해서…….”
-괜찮아요. 포구는 할 줄 알죠?
“예? 예, 그럼요. 물론입니다.”
-공만 잡을 줄 알면 돼요. 내가 약도 보내 줄 테니까 이리로 와요.
“아…… 언제쯤 가면 될까요?”
-오늘은 늦었고. 내일 오후에 봅시다. 오후에 오면 연락해요.
“예, 알겠습니다!”
-그래요. 내일 봐요.
송석현은 전화를 끊었다.
통화 시간은 1분 42초.
송석현은 제 볼을 매만졌다.
길다면 긴 시간 속을 끓인 문제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뭐지……?”
* * *
송석현은 가게로 가 정미남을 만났다.
정미남은 송석현의 얘기를 듣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쉬웠다고?”
“어, 그냥 오라는데?”
“테스트받으러 오라는 건가?”
“그건 못 물어봤어. 일단 오라고만 하고 전화 끊더라.”
“다른 말은 없었고?”
“공 받을 줄 아냐고 묻던데?”
“네 경력이나 사건 같은 건 안 물어?”
“전혀. 일절 없어.”
“……정말 사정이 급한가? 너무 쉬운데.”
“너도 찝찝하지? 너무 훅 풀려서.”
“뭐…….”
정미남은 입맛을 다셨다.
그동안 속을 끓인 게 우스울 정도로 쏜살같이 일이 풀렸다.
“아니 뭐, 원래 이런 거잖아. 겨우 신고 선순데. 너무 안 풀린 게 이상했던 거지. 네 실력에 신고 선수도 한참 아쉽지. 안 그래?”
“그……런가?”
“야, 너나 나나 원래 신고 선수 되는 게 문제였지, 신고 선수도 못 되는 건 문젯거리도 아니었잖아.”
“후, 아무튼 일본 안 가도 돼서 다행이네. 회화 달달 외운다고 뒈지는 줄 알았는데.”
“아, 너 그 코치님한테 전화드렸어?”
“일단 합격을 해야 전화를 드릴 거 아니냐, 지금은 합격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가서 테스트해서 떨어지면 어떡해?”
“네 실력에? 행여나. 그쪽도 어지간히 급해서 사람 찾는 거 같은데 너를 깔까 봐?”
“아, 기껏 찬스가 왔는데 여기서 삼진당하는 거 아니겠지?”
“야, 야. 천하의 송석현이 왜 이렇게 쫄아?”
“아씨. 내일 바로 오라고 하니까 훈련할 시간도 없고, 애매하네. 어떡하지. 옷은 뭐 입고 가냐?”
“오버하지 마. 그냥 추리닝 입고 가. 아니면 우리 유니폼을 입든가. 야, 오늘은 그냥 집에서 잠 푹 자라. 테스트한다는 말도 없었다고 하면 그냥 뽑는다는 얘기일 거야.”
“그렇겠지?”
“그럴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 * *
송석현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눈을 감은 건 새벽 4시.
눈을 뜬 건 아침 9시.
송석현은 일어나자마자 목욕재계를 한 뒤 유니폼을 입었다.
유니폼 앞에는 ‘우진’이라고 쓰여 있었다.
고 1 때는 유니폼을 입고 투수로 전국을 호령했다.
고 2 때는 정미남과 함께 종일 구르고 또 굴렀다.
고 3 때는 드디어 다시 한번 제대로 활약하나 싶었는데…….
송석현은 유니폼 앞에 붙은 ‘우진’이라는 이름을 쓰다듬었다.
“오늘 하루 잘 부탁한다. 마지막 작별 인사, 서로 서운하지 않게 할 수 있게 도와줘라.”
송석현은 혹시 몰라 가방에 장비를 바리바리 싼 후에 짐을 챙겨 나갔다.
가는 길은 멀었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후 시외버스를 탔다. 1시간 남짓 시외버스를 탄 후에는 다시 또 일반 버스를 탔다.
일반 버스에서 내리자 장장 3시간 가까운 여정이 끝났다.
“대박 머네…….”
경기도라서 금방일 줄 알았는데 벌써 몸이 녹초가 됐다.
송석현은 심호흡을 한 뒤 전화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어제 연락드린 송석현이라고 하는데요…….”
-지금 어디예요?
“여기 버스 정류장입니다. 정문 앞에서 내렸습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큰길 타고 쭉 올라와요. 그러면 주차장이 보일 텐데 주차장 옆에 실내 야구장이 있거든요? 그리로 와요. 나도 그리로 갈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송석현은 큰길을 따라 올라갔다.
자금력으로는 어느 팀에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고트답게 2군 경기장의 규모며 시설은 화려했다.
정식 야구장만 두 개에 실내 야구장 하나, 그 외에 숙소와 실내 연습장까지 합치면 작은 놀이동산에 온 듯했다.
송석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실내 야구장으로 향하는 사이 저 멀리 누군가 털레털레 걸어오는 게 보였다.
배가 조금 나오고 안경을 낀 남자였는데, 머리가 조금 까져서 햇빛에 반사됐다.
송석현은 주차장 앞에서 두 손을 모은 채 기다렸다.
“송석현 씨?”
남자는 오자마자 송석현에게 말을 걸었다.
송석현은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우진고의 송석현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반가워요. 내가 나이 한참 많으니까 말 놔도 되죠?”
“예, 편하게 놓으세요.”
“그래, 나는 박기덕이고 여기서 운영지원팀을 맡고 있어. 1군에서 파견된 인력 같은 거지. 뭐 계속 2군에만 있긴 하지만…….”
박기덕은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갑자기 포수 TO가 생겨서 말이야. 지금은 다들 계약이 돼 있거나 진학을 해서 포수 구하기 힘들었는데 어떻게 딱 아다리가 맞네. 일단 자리를 좀 옮길까?”
“예.”
박기덕은 송석현과 함께 실내 야구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누구지? 추천했다는 사람이?”
“일신중학교 코치 이기성 선배님입니다.”
“아, 현성이 후배. 현성이 후배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친분은 없었는데 어떻게 제가 팀을 구한다는 걸 아시고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래? 친분이 없어? 오오, 그렇구나. 그래서 추천을 했구나.”
“네?”
“아냐. 뭐, 대충 봤는데 대학은 안 간 건가?”
“……못 갔습니다.”
“왜? 대학은 웬만해선 다 갈 수 있는데.”
“가정 형편도 있고 해서요.”
“아, 그래. 사정이 급해서 그렇구나. 으음.”
박기덕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왕이면 대졸이면 더 좋았는데. 고졸은 우리가 좀 미안하거든. 그래도 뭐, 딱히 할 게 없으니까 우리 쪽에 지원한 거잖아. 그치?”
“……네.”
“그러면 뭐, 경험 쌓는다고 생각하고 하면 되겠네.”
박기덕은 실내 야구장에 딸린 작은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불도 꺼져 있었다.
박기덕은 불을 켠 후에 히터를 켰다.
“일단 앉아. 밥은 먹었어?”
“아니요, 아직.”
“그래? 배고프겠네. 식당 가서 밥 먹을래? 점심시간이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너 먹을 건 있을 건데.”
“괜찮습니다. 배 안 고픕니다.”
“그러면 패스하고.”
박기덕은 다리를 꼬고선 송석현을 바라봤다.
“일단 간단하게 설명할게. 너, 우리 구단에 대해선 알고 있지?”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뭐 간단하네. 길게 설명 안 할게. 너는 재활군 포수를 맡게 될 거야. 그동안 2군 포수가 재활군을 도왔는데 재활군 사이즈가 좀 커져서 전담 포수가 필요했거든.”
“재활군……요?”
“응, 일은 많이 안 힘들 거야. 다들 부상에서 회복하는 중이라 공 던지는 시간 자체는 그렇게 많지 않아. 넌 공 잘 잡아 주고 파이팅 잘해 주고, 그러면 돼.”
송석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러면 저는 계속 재활군만 맡게 되나요?”
“뭐, 그렇지.”
“저는 경기에 안 나갑니까?”
“경기? 글쎄. 포수가 부족하면 나갈 수도 있지.”
“부족……하면요?”
“어, 어쨌든 2군 선수단이니까.”
“……예.”
“정식 출근은 12월 1일부터 가능해. 연봉은 2,400에 맞출 거고, 기본적인 물품은 지원하지만 추가적으로 나가는 건 사비로 충당해. 물론 넌 방망이가 깨져 나갈 일이 없으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유니폼은 너 출근하는 날 바로 지급될 거고…… 또 뭐 있더라…….”
박기덕은 메모지를 꺼내 끼적끼적 무언가를 적었다.
“아, 2군 수칙. 우린 다른 팀보단 좀 널널해. 그래도 외박할 땐 미리 얘기해야 돼. 무단이탈은 당연히 안 되고, 음주운전, 도박, 폭행, 절도, 강도, 성폭행 등 범죄를 저질러도 안 돼. 이 정도는 다 알잖아. 그치?”
“……네.”
“에이, 이 정도만 알면 됐지. 정식 계약서는 너 첫 출근 날 쓰게 될 거야. 아, 신인은 12월에도 합숙하는 데 문제없거든? 그러니까 짐 잘 챙겨서 오고. 최소한 한 달 치는 싸 오는 게 좋을 거야. 집에 자주 가는 것도 일이거든.”
박기덕은 펜을 내려놨다.
“설명은 여기까지 됐고. 궁금한 거 있어?”
“……아닙니다. 없습니다.”
“아, 맞다. 이메일도 하나 갈 거야. 안내문이니까 그거 참고하면 돼.”
“네.”
“그러면…… 됐어. 보니까 성실해 보이네. 몸도 좋아 보이고.”
“저기…… 테스트는 안 합니까?”
“테스트? 아, 해야 하나……. 너 공 잡을 줄 알잖아? 주전 포수였다면서?”
“네, 그건 그런데요.”
“어디 다쳤어? 부상 있나?”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러면 됐어. 네 관상에 ‘나 성실해요.’라고 쓰여 있구만, 하하.”
“예?”
“오늘은 이만 가 봐. 12월 1일 날 보자. 아침 일찍부터 오지 마. 괜히 첫날부터 잘 보인다고 아침 일찍 와서 발 동동거리지 말고 지정한 시간에 늦지만 않게 와.”
“……네.”
“그래, 그럼 가 봐.”
송석현은 눈알을 좌우로 굴렸다.
“지금 이렇게 가면 되는 겁니까?”
“어, 그렇지.”
“다 끝난 건가요? 저 합격입니까?”
“그렇다니까. 합격! 내가 합격 도장이라도 찍어 줘?”
“아니요. 그건 아닌데, 너무 좀……. 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아, 너 집은 어디야? 서울인가?”
“예, 서울입니다.”
“그럼 됐네. 집도 가깝고 좋네. 조심히 가. 앞으로 잘해 보자고.”
“예.”
송석현은 다시 가방―장비가 잔뜩 든 더블백―을 들고 실내 야구장 밖으로 나섰다.
주차장을 지나 큰길에 들어서자 송석현은 자리에 서서 몸을 돌렸다.
뒤에는 큰 야구장 두 개와 우뚝 솟은 큰 건물 하나가 보였다.
“……이게 끝이라고?”
머리가 복잡했다.
박기덕과 얘기한 시간이 10분이나 되었을까.
박기덕은 밀린 방학 숙제를 하듯 후딱 일을 처리했다.
재활군은 뭐고, 2군 코칭스태프의 테스트 하나 없이 운영팀 직원 혼자서 오케이 사인 하나 낸 게 전부라니.
2군 감독까진 아니어도 코치라도 봤어야 하지 않은가?
묻고 싶은 것도, 따지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차마 면전에선 하지 못했다.
여기가 마지막 기회이고 자신과 아무 연고도 없는 이기성 코치가 추천한 자리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아 우선 고개만 끄덕이고 나왔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송석현은 처음 2군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와는 다르게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털레털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