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7화 (7/201)

두 번째 기회

딸각, 딸각.

정미남은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의 머리는 스포츠머리보다 조금 길었지만 새집을 지어 엉망이었다.

정미남은 눈을 껌벅거리면서 밥을 삼켰다.

이를 본 정미남의 아버지가 헛기침했다.

“흠흠. 어제도 늦게 잤냐?”

정미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조금?”

“요새 맨날 늦다. 석현이 때문에 그러냐?”

석현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여동생 정희연의 귀가 쫑긋했다.

“훈련도 좀 도와주고 얘기도 좀 하고 그러다 보니 늦었어.”

“후, 석현이는 어쩐다디? 스크린 야구장에서 훈련이 되긴 된대?”

“자긴 괜찮데. 공 받아 볼 수 있는 게 어디냐고 그러더라고.”

“네가 보기엔 어때?”

“모르겠어. 그게 도움이 될까 싶은데 또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없을 거 같고.”

여동생이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요새 석현 오빠가 뭐, 우리 가게에서 훈련해?”

정미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도 도와주고 훈련도 하고 겸사겸사.”

“왜 우리 가게에서 한대?”

“이제 졸업인데 더는 학교에서 비비기도 힘들잖아. 사실 석현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학교에 너무 많기도 하고. 뭐, 그래서 겸사겸사.”

“가게에서 훈련이 되나?”

“나도 잘 모르겠다. 훈련이라기보단…… 음…… 불안해서 그런 거 아닐까 싶다.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으니까.”

“그래?”

정미남의 아버지가 말했다.

“석현이는 꼭 신고 선수를 하겠다는 거지?”

“신고 선수가 아니면 독립야구라도 뛰겠대. 국내에서 힘들면 일본에 가서라도 하겠다고 하던데?”

정희연의 눈이 커졌다.

“일본? 오빠가 일본을 간다고?”

“야, 왜 네가 놀라냐, 석현이가 일본에 가는데?”

“갑자기 왜 일본에 간대?”

“야구 선수를 계속하고 싶으면 가는 거지.”

“아니, 왜 한국에서 안 하는데!”

“…….”

식탁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정미남의 아버지가 헛기침했다.

“밥풀 다 튄다. 다 큰 처녀가 칠칠치 못하게 그래서 쓰냐?”

“……미안, 아빠.”

“미남아, 네가 보기엔 어떠냐? 가능성 있겠냐?”

“실력으로 보면 가능성은 있는데……. 뭐, 보여 준 게 있어야지. 보여 줄 기회도 없고. 신고 선수 이력서는 광탈이니 답이 없어. 다른 일을 찾았으면 하는데 고집이 세네. 계속 야구 하겠다고 하고.”

“석현이네 어머니도 속 많이 끓이겠다. 허, 참.”

정미남의 어머니도 말을 거들었다.

“그러게. 별일 없었으면 지금쯤 동네에 현수막 몇 개씩은 붙었을 텐데.”

“안됐어, 안됐어. 석현이 애 참 싹싹하고 성실한데 스텝 하나가 꼬이니까 계속 꼬이네.”

“미남아. 네가 석현이 잘 챙겨 줘라. 석현이 지금 방황하는 걸 수도 있어. 여태 야구를 했는데 안 되니까 얼마나 답답하겠어. 안 되는 거 알면서도 매달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본인이 야구에 뜻이 있다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그냥 고집 부리는 거면 네가 잘 달래 봐라. 석현이가 장남이고 이제 가장인데 억지만 부려서 되겠어?”

정미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잘 얘기해 볼게요.”

아침 식사는 그렇게 끝났다.

식사를 마친 정미남이 학교 갈 준비를 했다.

방에서 가방을 챙기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뭔데?”

“오빠, 잠깐만.”

정희연이 문을 열면서 헤헤, 웃었다.

정미남의 이마가 바로 구겨졌다.

“갑자기 목소리를 왜 그렇게 내냐? 뭔데, 그 거지 같은 웃음은?”

“……후우.”

정희연은 숨을 한번 내뱉더니 다시 웃었다.

“오빠, 나도 가게 일을 좀 도와줄까?”

“뭔 소리야? 생전 가게 근처도 안 오더니 갑자기 왜? 석현이 때문에 그러냐?”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닌데. 나도 좀 가업을 도와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너 내년이면 고 3이야. 안 그래도 학원까지 다녀야 하는데 무슨 시간이 있어서 일을 도와줘? 엄마한테 허락 맡았어? 내가 가서 물어봐?”

“잠깐, 잠깐. 지금 엄마한테 가려고?”

“어, 네가 헛소리한다고 말해야지.”

“아아아, 오빠.”

“스읍. 안 꺼지냐? 어디서 석현이한테 엉겨 붙을라고. 석현이 안 그래도 심난해. 너 아니어도 충분히 대가리 아픈 놈이야. 괜히 너까지 석현이 괴롭히지 말고 서로 갈 길 갑시다.”

정미남이 가방을 챙겨 방을 나서려 하자 정희연이 앞을 막았다.

“비키라고, 좀.”

“오빠! 좀 협조적으로 나오면 안 되냐?”

“뭘 협조적으로 해. 석현이는 너한테 관심 없다니까?”

“아, 진짜. 내가 뭘 한 게 없는데 석현이 오빠가 나한테 관심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아서라, 아서. 지금 석현이 눈에 너 같은 게 들어오겠냐? 아, 진짜 입막하지 말고 저리 좀 꺼져.”

정미남은 정희연을 옆으로 밀치곤 방을 나갔다.

정희연은 심술 난 얼굴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오빠라는 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 * *

쏴아아아아.

비가 와서 손님도 뜸한 날.

정미남과 송석현은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오늘 운수를 보니까 귀인이 온다는데 귀인이 비였나 보네.”

송석현의 얘기에 정미남은 다른 얘기를 꺼냈다.

“너 진짜 일본에 갈 생각이야?”

송석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국에선 아무래도 야구 하기 힘들 거 같다. 일본에서 커리어 좀 쌓고 돌아오는 거 말곤 답이 없어.”

“……후, 너 일본에 연고도 없잖아.”

“있어야 가냐?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일본 쪽에서 날 쓰겠어? 일단 거기 가서 알바라도 하면서 기다려야지.”

“독한 놈. 너 가면 최소 2~3년 각 아니냐?”

“야구단 들어가기도 쉽지 않을 거고, 가더라도 커리어 쌓으려면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적어도 1년 이상은 걸리겠지, 뭐.”

“그래 봐야 신고 선순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냐?”

“그게 몇 년이라고.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언제 하겠어? 너 이번에 피닉스 김영훈 인터뷰 못 봤어? 자기가 어릴 때 야구 포기해서 시간 붕 뜬 게 세상 아쉽다잖아. 포기하는 것보단 늦는 게 훨씬 낫다.”

“어머니한테는 말씀드렸냐?”

“……아직. 지금 준비해서 내년에 갈 거니까, 아직 시간은 있어.”

“어머니가 허락하실까?”

“몰라. 하든 안 하든 난 갈 거야.”

“네가?”

정미남은 놀란 눈으로 송석현을 쳐다봤다.

“너희 어머니 말씀을 무시하겠다고?”

“이번만큼은 그럴 거야. 엄마가 말리든 응원하든 상관없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송석현은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봤다.

“빗소리 좋다. 우리 정미남 사장님한테는 미안하지만 오늘 한가해서 더 좋네.”

“나도 한가해서 좋아, 인마. 그리고 아직 사장도 아니고.”

“어차피 곧 사장 될 놈이 무슨. 미리 축하한다, 정 사장. 아, 그러면 너희 아버님이 회장님 되시는 거야?”

두 사람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너 일본에 가기 전까진 열심히 놀아 놔야 하는데 이렇게 만날 여기에 붙어 있으면 놀 시간이나 있겠어? 너도 일본에 가기 전에 할 거 있으면 다 해 놔. 애들한테도 말해야 할 거 아냐.”

“영석이나 나영이나 수능 때문에 정신 있겠냐? 수능 끝나면 걔들도 걔들대로 또 놀아야지. 괜히 나 위로해 준답시고 걔들이 내 눈치 보는 거 싫다. 일본에 가기 전에 며칠만 딱 놀다가 갈 거야. 나도 일본에 가기 전에 일본어 공부하려면 시간 빠듯하기도 하고.”

“서운하겠네, 영석이랑 나영이.”

“서운하라지. 캠퍼스 라이프 시작하면 내 생각할 틈이 있겠어? 노느라 금방 잊을걸.”

“야, 서운하게 그렇게 말하냐?”

“내가 이번에 일 겪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참 냉정하고 계산적이구나. 손해 볼 거 같으면 가차 없잖아. 누구 하나 내 편 들어 주는 사람 없었어. 처음엔 억울했는데 이제는 받아들여지더라. 어른이 되면 계산적이여야 하는구나. 냉정해야 하는구나.”

송석현이 말했다.

“나도 어른이 되는 연습 중이야. 나영이나 영석이는 명문대 가는 거 확정이잖아. 너는 젊은 사장이고. 나랑 인생이 달라. 너희들한테 뒤처지지 않으려면 나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겠냐?”

“송석현, 너 여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송석현은 피식 웃었다.

“똥폼은. 인상 쓰지 마.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우리 집에 돈이 있냐, 백이 있냐. 지금 나는 배운 기술도 없고 대학도 못 가는 운동부 출신의 고졸이야. 솔직히 이 루트의 태반은 딱 건달 아니냐? 남들이 건달로 빠질 때 내가 내 몸 하나 건사하려면 열심히 살아야지. 존나 열심히 살아야지. 일본에 가는 게 뭐가 대수야. 일본이 아니라 달나라를 가라고 해도 가서 해야지.”

“꼭 야구여야 하는 거냐? 다른 길도 있을 거 아냐.”

“지금은 야구 말고 더 없잖아. 그리고 너한테 계속 신세질 수도 없고.”

“신세는. 친구끼리 그런 말을 하냐, 서운하게.”

“서운할 것도 많다. 너한텐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 그래도 고마운 거랑 내 일 알아서 하는 거랑은 다른 거지.”

띠링.

그때 문이 열리면서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알바가 손님을 받는 사이, 송석현이 몸을 일으켰다.

“괜히 마음 쓰지 마. 뭘 그렇게 안타까워하냐? 다들 열심히 살아. 나도 열심히 사는 거고.”

“너 일본에 가면 자주 못 볼 거 아니냐. 아쉬워서 그러지.”

“아쉽긴. 친구라며? 일본에 간다고 영영 못 볼 것도 아닌데.”

“후, 그건 그렇긴 한데……. 평생 같이 붙어 있다가 떨어질 생각 하니 존나 아쉽네.”

“아, 오바. 우리가 부부야? 닭살 돋네.”

“나 네 배터리였어. 네 마누라였다고. 마누라 버리고 가니까 좋냐?”

“꺼져. 흐흐. 어우, 소름. 너 여기에 있을 거야? 손님 안 받아?”

“그래, 가자. 일하자, 일!”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자 손님은 더 오지 않았다.

송석현은 한쪽 구석에서 배팅볼을 쳤다.

쾅! 쾅! 쾅!

마치 망치를 치듯 공을 칠 때마다 홈런이 터졌다.

송석현은 배트를 내려놓곤 잠시 숨을 골랐다.

짝짝짝.

“오우, 자세가 퍼펙트한데?”

송석현이 자기 뒤에서 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까 손님으로 왔던 아저씨였다.

“알바가 무슨 자세가 이렇게 좋아요? 야구 좀 했어요?”

“아…… 예, 예. 곧 졸업반인데 야구부였습니다.”

“오오, 그래요? 그런데 여기서 알바를 해요? 시간이 되나?”

송석현은 입맛을 다셨다.

“제가 뽑힌 데가 없어 가지고…….”

“뽑힌 데가 없어요? 폼이 아주 좋던데? 힘도 좋고.”

“칭찬 감사합니다.”

“아니, 아니에요. 빈말이 아니라 진짜 좋은데. 혹시 이름 물어봐도 돼요?”

송석현은 잠시 머뭇거렸다.

“송석현입니다. 우진고의 송석현.”

“우진고 송석현, 우진고 송석현……. 왜 낯이 익지? 좀 들어 본 거 같은데. 우진고면 요새 핫한 고등학굔데. 아아, 우진고 송석현! 기억났다. 맞네. 그 본헤드…….”

남자는 활짝 웃다가 굳었다.

송석현은 말없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남자는 멋쩍게 웃다가 품속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 속에서 나온 건 명함 하나였다.

“아, 나는 다른 게 아니라 이런 사람이에요. 나도 야구를 했던 사람이라 석현 군 폼이 예사롭지 않아서 물어본 거예요.”

송석현은 명함을 받아 들었다.

명함에는 일신중학교 코치 이기성이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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