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수로 승승장구-5화 (5/201)

자신만만

“미쳤냐?”

정미남은 송석현의 얘기를 듣자마자 입에서 불을 뿜었다.

“야, 이 미친놈아! 나랑 장사나 하자니까! 무슨 신고 선수야, 신고 선수는! 너 고졸 신고 선수가 뭔지 몰라서 그러냐?”

송석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알아. 나도 잘 알고 있어.”

“안다고? 너 신고 선수 하면 대학야구도 못하는 거 알면서 그래?”

“어차피 대학 갈 생각도 없었는데, 뭐.”

“야, 야!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 거랑 없는 거랑은 천지 차이지. 그리고 고졸 신고 선수가 어떤 대접을 받는지 알잖아. 뭐야, 그 인도에 있는 계급. 그거.”

“카스트?”

“그래, 그거. 그거 밑바닥 인생이 고졸 신고 선수야. 대졸은 그래도 한번 긁어 보기라도 하지, 고졸은 긁어 보지도 않고 버린다니까. 하, 너도 들은 게 있을 거 아니야. 안 그래?”

송석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나도 잘 알고 있다니까. 내가 몰라서 그러는 줄 아냐?”

“아는 놈이 그래? 갑자기 웬 신고 선수야? 고졸 신고로 방출되면 다른 팀에 가기도 힘들고, 가도 또 방출 1순위야. 그냥 시간 낭비라고, 시간 낭비!”

송석현이 손가락을 들어 주변을 가리켰다.

정미남은 카페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는 걸 느끼곤 고개를 까닥 숙였다.

“죄송합니다.”

“목소리 낮춰. 왜 위화감을 조성하냐? 네 얼굴만으로도 위화감은 충분하거든?”

“하, 씨바. 답답해서 그러지.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너무하잖아. 나랑 일절 상의도 없이 벌써 원서 접수했다는 건 더 빡치고.”

“야, 네 말대로 고졸 신고가 어떤 대접 받는지 나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어. 하층민 오브 하층민. 긁지도 않고 버리는 복권. 알아, 나도 안다고. 그래서 뭐? 그래 봐야 1년 아니냐? 고졸 신고로 끽해야 1년이 맥시멈이잖아. 그때까지 안 터지면 답도 없는 거고. 1군 데뷔 못하고 최장으로 고졸 신고가 버틴 게 2년으로 알고 있는데, 맞냐?”

“하, 그래. 파리 목숨이지. 말이 2년이지, 보통은 1년 못 채우고 나가는 게 태반이다.”

“그래, 그거야.”

송석현이 손가락을 튕겼다.

“설령 시간 낭비라고 해도 1년 남짓이야. 1년 정도는 더 도전해 봐도 되잖아.”

“그럴 거면 그냥 대학을 가. 전문대 가면 2년 후면 나올 수 있잖아.”

“야, 그것도 내가 스카우트가 돼야 가는 거지. 너도 내 사정 알면서 그러냐. 그리고 요새 전문대가 더 박 터지는 거 몰라? 애매한 애들이 4년제에 가고 한 끗으로 드래프트에서 떨어진 애들이 전문대에 가는 건데, 내가 지금 어떻게 전문대를 가냐?”

“보찌라도 찔러주든가.”

“보찌? 뇌물?”

“그래, 돈 주면 넣어 주겠다는 데가 없겠냐? 나만 해도 돈 주면 받아 주겠다는 데가 두 군데야. 하물며 너는? 나보다 네가 훨씬 낫잖아.”

“하.”

송석현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장난하냐? 일단 우리 집에 돈도 없을뿐더러, 나한테 그런 제의조차 안 온 거 보면 모르겠어? 돈 받고 선수 뽑는 건 조용히, 아무도 모르고, 스무~스하게 넘어가야 하는데 내가 가 봐라. 어? 저기 뭐 있나? 쟤를 데려가? 저 덜떨어진 애를? 돈 준 거 아니야? 백 퍼 이 소리 나온다. 나는 완전 똥 묻은 개라고. 누가 날 데리고 가?”

“그런 놈이 신고 선수는 한다고 지랄이냐, 지랄이! 그 개고생을 왜 한다고 지랄이야, 진짜.”

정미남은 캐러멜마키아토를 단숨에 마셨다.

“너 그렇게 단거 좋아하다 당 걸려. 작작 먹어라, 이제 운동도 안 하는 놈이.”

“너 때문에 속 터져서 그런다, 속 터져서.”

“속 터질 것도 많다. 심플하잖아. 야구 하고 싶어서 한다는데 그게 뭐?”

“하, 너 갑자기 마음이 바뀐 이유가 뭐야? 너 야구 싫다며? 지겹다며?”

송석현이 팔짱을 꼈다. 카페의 음악은 음울한 재즈풍의 노래로 바뀌었다.

“뭐…… 여기서 포기하기가 좀 그래. 야구로 인생 대박은 아니어도 사람 노릇은 해야 할 필요가 생겼어.”

“사람 노릇은 뭐야?”

“그런 게 있어. 뭐, 그냥 아직 미련이 남았다고 하자. 새빠지게 개고생했는데 그냥 이대로 그만두면 아깝잖아. 내가 실력이 떨어지거나 잘못해서 픽 안 된 거면 미련이라도 안 남는데 내 잘못도 아닌데, 내가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픽 안 된 거잖아. 아쉬워서 그래. 다시 생각해도 너무, 너무, 너~~~무 아쉬워서 그래.”

“허.”

정미남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진짜 서운하네. 나랑 같이 일이나 하자니까 웬 신고 선수야?”

“씨바, 나도 염치가 있지. 너한테 언제까지 손을 벌리냐? 그리고 어차피 신고 선수 아니면 나 군대나 가려고 했어. 내가 너랑 같이 일해 봐라. 너희 부모님도 나를 좋게 보시겠어? 너한테 짐이라고 생각하시지.”

“얀마. 우리 엄마, 아빠가 널 얼마나 좋아하시는데 그렇게 서운하게 말하냐?”

“누가 뭐래도 내 자식이 최고야. 너희 부모님이 나 좋게 봐 주시는 건 아는데, 내가 계속 너한테 걸리적거리면 그게 좋게만 보이시겠니? 그러면 너랑 내 사이도 더 어색해져. 너 야구 그만둘 때도 쉽지 않았잖아?”

“아냐. 존나 쉬웠는데?”

“개소리하네. 영석이가 너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는 얘기 다 했는데?”

정미남이 이를 갈았다.

“아, 김영석 그 새끼. 입 존나 싸네, 진짜.”

“같이 일하는 건 나중에 해도 돼. 우리가 원 데이, 투 데이 보고 빠이빠이 할 거 아니잖아? 어?”

“……하, 그럼 나도 지원할까? 신고?”

“헛소리하지 마라. 지 입으로 신고 선수 거지 같다고 인정해 놓고 왜 지원한데?”

“야, 너만 해? 나도 같이하면 되잖아.”

“너는 이미 가게 물려받기로 해 놓고선 무슨……. 너 그러면 내 입장만 더 곤란해진다니까. 그리고 너야말로 운동 제대로 쉬었잖아. 그런데 갑자기 무슨 신고 선수야?”

“너는 안 쉬었냐?”

“그래도 난 한두 달 전까진 훈련했어. 요새 아예 손을 놔서 그렇지.”

“하, 씨……. 그럼 너 진짜 나랑 같이 일 안 하는 거야?”

“나중에. 나중에 하자.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야구에 전념하려고.”

정미남은 눈으로 송석현의 커피를 가리켰다.

송석현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정미남은 송석현의 커피도 단숨에 비웠다.

“후. 속 타네, 진짜. 너 영석이랑 나영이한테는 얘기했어?”

“아니. 뭐 하러 얘기해? 우선 너한테만 얘기하는 거야.”

“영석이야 그렇다 치고 나영이 걔 또 난리 칠 텐데. 걔 요새 알잖아. 아휴, 장난 아니야.”

“그건 그렇더라. 살벌해, 아주. 무서워. 으으으.”

“그러니까 왜 굳이 그런 고난의 길을 간다고, 쯧쯧. 이해가 안 간다, 안 가.”

* * *

네 친구가 모였을 때 송석현은 신고 선수 얘기를 꺼냈다.

여태 틱틱거리던 김나영은 오히려 담담했다.

“그래? 그럼 어디로 가는데? 서울? 아니면 지방까지 가?”

“이, 일단 합격해 봐야 알겠지만 수도권 구단이 세 개니까 수도권 가능성이 좀 크지.”

“오오, 그래? 나쁘지 않네?”

김나영의 담담한 반응에 김영석과 정미남은 당황한 눈치였다.

김영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고졸 신고 선수를 왜 하면 안 되는지 일장 연설을 늘어놨다.

“요새 트렌드는 대졸 신고 선수야. 드래프트는 고졸로 하고, 신고는 대졸로 뽑는다고. 드래프트로 뽑은 애들은 가능성을 보고 뽑지만 신고 선수는 즉전감으로 뽑아. 옛날에, 뭐 2000년대까지는 연습생 신화 이런 게 남아 있었지만 그것도 아주, 아주 드물었어. 게다가 지금은 씨가 말랐다니까. 몇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게 고졸 신고 선순데 그것도 다 인맥으로 뽑아 가는 거야. 애매한, 그러니까 한 13~14라운드 수준의 애들 중에 스태프나 프런트랑 인연이 닿는 애들을 데리고 가는 게 다라니까.”

“…….”

송석현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 얘기한 거지? 더 없어?”

“고졸 신고 선수의 미래에 대해서 얘기해 줄까?”

“됐어, 됐고요. 뭐 내가 야구 선수지 네가 야구 선수냐? 어떻게 네가 야구 선수보다 프로 돌아가는 걸 더 잘 아냐?”

김영석이 안경을 추켜올렸다.

“내가 활동하는 커뮤가 몇 갠데. 거기에 프런트랑 선출들도 있다니까. 웬만한 건 빠삭하게 다 꿰고 있지.”

“하여간. 너는 야구를 키보드로 하지?”

“뭐래, 좁밥이. 너 나한테 <마구야구> 개발리잖아.”

“그건 게임이고.”

“허이고, 좋겠습니다. 야구 선수가 일반인한테 야구 게임 개발려서 참 좋겠어요.”

“이런, 씨바. 야, 함 더 붙든가.”

“예, 21전 0승 21패 씨.”

“치사하게 넌 그걸 다 세냐?”

김나영은 다리를 꼰 채 음료수를 쭉쭉 빨았다. 정미남은 답답한지 김나영의 발을 툭툭 쳤다.

“넌 뭐 할 말 없어?”

“나? 내가 뭘?”

“아니, 너는 잘 몰라서 그러나? 신고 선수 되면 얼마나 힘든데. 그거 완전 노예야, 노예.”

“아, 할 말은 있네. 너 수도권만 벗어나지 마. 어차피 너도 수도권 희망한다며?”

“그거야 집도 가깝고 하니까.”

“그럼 됐어. 난 할 말 끝.”

“헐.”

정미남과 김영석은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김나영을 바라봤다.

김나영은 두 사람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 자. 호들갑 끝났지? 이제 너희는 나 응원이나 해 줘. 지금 지원서 싹 돌렸으니까 곧 연락 올 거야. 난 다시 내일부터 훈련 들어간다. 미남이는 좀 도와줘. 영석이랑 나영이는 어차피 수능 준비해야 하니까 니들은 니들 할 일만 하면 돼.”

“그래, 열심히 해.”

“아……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알았다, 알았어. 후, 뭐 지가 곧 죽어도 하겠다는데. 해라, 해. 내가 도와줄게.”

“땡큐. 땡큐 베리 마치!”

김나영은 다리를 까닥거리면서 송석현을 바라봤다.

“야, 근데 너희 어머니한테는 말했어? 너 신고 선수 한다는 거?”

“아직. 일단 되고 말하려고.”

“왜? 지금 말하지. 어머니 걱정하시겠다.”

“괜히 김새게 미리 말하는 것보단 그게 나을 거 같아서.”

“음…… 그래? 그래. 뭐, 알아서 하겠지.”

김영석은 혀를 찼다.

“근데 너희들 놓치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말이야……. 신고 선수라고 해도 그거 아무나 가는 거 아니다. 은근히 들어가기 힘들어.”

정미남은 씨익 웃었다.

“그래도 석현이 정도면 최소한 고교 포수 중에선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내가 자부할 수 있다. 얘 실력은 진짜배기야. 좀 쉬었다고 해도 신고 선수 지원자 중에 얘보다 포수 잘하는 얘는 드물걸.”

송석현이 말했다.

“야, 나 정도면 솔직히 괜찮지 않냐? 경기는 얼마 안 되지만 도루 저지율 100%, 타율 7할인데?”

“인간적으로 10게임은 채우고 말해라. 공식전이 10경기도 안 되는데 무슨.”

“그래도 타율이 7할이잖아. 홈런만 해도 세 개 깠는데.”

“솔직히 우리 대진운 개 좋았잖아. 그건 생각 안 하냐?”

“……아무튼. 이런 건 가산점 안 되나?”

김영석이 정미남과 송석현의 말을 잘랐다.

“그게 아니라, 너희들이 착각하는 건 좀 다른 거야.”

정미남과 송석현이 동시에 말했다.

“뭐?”

김영석은 정미남과 송석현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진짜 몰라? 테스트는 아무나 보는 줄 알아? 서류는 통과해야 할 거 아냐. 석현이처럼 경기 기록도 별로 없고 안 좋은 이미지가 박혀 있는데 서류 통과가 쉬울 거 같아?”

송석현은 멍한 얼굴로 물었다.

“……어? 그거 지원서 넣으면 다 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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