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그날은 재수가 좋은 날이었다.
고 1, 다른 학교라면 후보로 경기만 지켜봐야 할 나이.
송석현은 마운드에 올라 완봉승을 거뒀다.
고등학교에서도 자기 공이 통한다는 사실이 짜릿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머니가 슈퍼를 운영하기에 오늘 경기를 못 봤다는 거?
송석현은 한시라도 빨리 오늘의 승리를 자랑하러 슈퍼로 달렸다.
“너도 나 무시하냐! 어? 무시해!”
“무시가 아니라……. 알겠어요. 바꿔 줄게요, 바꿔 줄게. 그러니 좀 나가요. 손님 있잖아요.”
슈퍼에 다가가자 고함이 들렸다.
송석현은 걸음을 빨리 재촉했다.
“이거, 이거도 내가 가져간다.”
“아니 그건 왜 가져가요! 그게 얼마짜린데!”
“이런 씨발! 야! 네가 잘못을 했으면 배상을 해야 할 거 아냐!”
송석현의 눈에 얼굴이 붉어진 남자가 소주병을 든 게 보였다.
그 앞에서 어머니가 쩔쩔매고 있었다.
“엄마!”
송석현이 어머니를 부르면서 남자 앞을 가로막았다.
남자는 덩치 큰 남자가 나타나자 뒷걸음질 쳤다.
“뭐, 뭐야?”
“엄마, 뭐야? 무슨 일이야?”
어머니는 당황해선 손사래 쳤다.
“됐다, 됐어. 들어가. 별일 아니야. 들어가.”
“뭔데? 무슨 일인데?”
“쓰읍. 들어가라니까. 넌 집에나 가, 얼른.”
“무슨 일인지 알아야 가지.”
송석현이 남자를 정면에서 노려봤다.
익숙한 얼굴.
근처 슈퍼를 돌아다니며 행패를 부리는 남자였다.
생활 보호 대상자라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해도 훈방으로 풀려 나오기 일쑤라 근처 가게에선 골칫덩이였다.
그래도 보통 3,000원어치, 5,000원어치 외상 달아 놓고 떼먹는 수준이라 다들 알음알음 넘어갔다.
오늘처럼 행패 부리는 건 송석현은 처음 봤다.
“야, 가라. 애들은 가, 인마.”
“아저씨, 무슨 일인데요? 뭐가 불만이에요? 말씀해 보세요.”
“스읍! 떽! 가, 인마! 얼른 가!”
송석현의 어머니도 송석현의 등을 떠밀었다.
“가, 얼른. 집에서 보자. 응? 아저씨. 알았어, 알았어. 그거 가지고 가. 얼른 가요.”
남자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진작 그럴 것이지. 물건을 잘못 팔았으면 미안합니다~ 해야지. 어디 손님한테 고개를 빳빳이 들어! 손님이 왕이다 몰라?”
송석현은 심호흡했다.
어차피 술주정뱅이다.
엮여 봐야 나만 손해다.
하지만 어머니한테 함부로 하는 건 참기 힘들다.
“아저씨, 받을 거 다 받았으면 가세요. 그리고 다시 여기 오지 마세요. 다음엔 돈 가지고 와요, 돈. 아저씨 정부에서 돈 따박따박 받으면서 왜 돈을 안 내고 남의 물건을 가져가요? 그거 도둑질이에요. 아니, 강도질이지.”
어머니가 놀라 송석현을 만류했다.
“너는 얼른 집에 가라니까!”
“뭐, 뭐야? 강도질? 이 새끼가!”
남자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더니 송석현의 멱살을 잡았다.
송석현은 남자의 팔꿈치를 한쪽으로 돌려 남자를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어이쿠!”
남자는 바닥에 쓰러지면서 앓는 소리를 했다.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동네 사람들! 어린놈이 사람 팹니다! 사람을 패요! 이 슈퍼에서 사람을 팹니다!”
송석현은 멱살을 탁탁 털었다.
“엄마, 들어가. 그리고 저 아저씨 다시 오면 나한테 말해. 그땐 진짜-!”
“너! 얼른 집에 가지 못해? 어른 일에 끼어들지 말랬지! 괜히 이런 일에 휘말리지 마! 이런 건 엄마 일이야!”
“저런 놈은 약해 보이고 잘해 주면 더 엉겨 붙는다니까. 저런 놈이 우리 슈퍼 다니면 오던 손님도 떨어져 나가. 진상 부리면 얄짤 없이…….”
“어어, 안 돼!”
어머니의 비명.
송석현은 뒤통수를 간지럽히는 수상한 인기척에 몸을 돌렸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팔이 저릿했다.
눈을 감았지만 얼굴에 무언가가 부딪쳤다.
“석현아!”
어머니의 목소리가 갈라지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송석현은 눈을 떠 무슨 일인지 살폈다.
“어, 어, 어…….”
남자의 손에는 깨진 술병이 들려 있고, 바닥에는 술병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송석현은 팔꿈치가 아릿했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 이 미친놈이!”
송석현의 눈에 불이 튀었다.
찰나지만 무슨 일인지 바로 이해가 갔다.
술주정뱅이가 술병으로 자기를 때리려고 했고, 송석현은 본능적으로 팔로 막다가 팔꿈치를 다쳤다.
남자는 피를 보자 얼이 빠져선 뒷걸음질 쳤다.
송석현의 분기탱천한 표정을 보자 몸을 돌려 달아났다.
“석현아! 석현아! 참아! 참아라!”
송석현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남자를 쫓기 위해 달렸다.
남자도 죽기 살기로 달렸다. 뒤를 돌아보면서도 미친 듯이 달렸다.
추격적은 길지 않았다.
남자가 골목 한 모퉁이를 돌기 전에 끝났다.
끼이이이이이익!
쾅!
1톤 트럭이 급하게 차를 세웠다.
송석현이 걸음을 멈췄다.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이 날아가는 걸 두 눈으로 봤다.
쿵, 쿵, 쿵, 쿵.
사람이 차에 치여 날아가다 땅에 떨어져도 몇 바퀴를 구른다는 걸 처음 알았다.
사람의 몸이 이렇게도 가볍구나, 사람 머리가 축구공처럼 통통 튕길 수도 있구나.
“……아아.”
팔꿈치가 아려 왔다.
팔꿈치의 통증도 심상치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큰일이 터졌음을 깨달았다.
단순 상해가 아니다.
어쩌면, 어쩌면…….
송석현은 고개를 흔들어 회상에서 깨어났다.
당시 사건으로 경찰에도 불려 가고 학교도 잠시 시끄러웠다. 경찰은 송석현에게 죄가 없다며 위로했지만 죄책감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문제는 죄책감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저 팔꿈치 피부가 좀 찢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팔꿈치가 아렸다.
정밀 검사를 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공은 던질 수 있었지만 많이 던지면 팔이 사시나무 떨리듯 아팠다.
공을 조금만 던져도 제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았다.
공을 던질수록 더 심해졌다.
고 2에 올라갈 때야 깨달았다.
투수로서 가망이 없다는 걸.
“내가 빨리 그 양반한테 줄 거 주고 얼른 보냈으면 그럴 일 없었다. 다 내 욕심이야. 그 몇천 원 때문에 애 인생을 망쳤어.”
“아니야. 아니야, 엄마. 왜 그래? 그 사람 잘못이지, 엄마 잘못이 아니잖아. 어떤 아들이 엄마한테 행패 부리는 남자를 가만히 둬?”
“우리 석현이 불쌍해서 어쩌누……. 나 때문에 좋아하던 야구도 못하게 되고……. 다 내 탓이야, 다 내 탓이다. 흐으윽, 흑흑. 죽어도 너희 아빠 볼 면목이 없다. 내가 죄인이야. 흑흑, 흑, 흐윽.”
“엄마…….”
송석현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소리를 죽인 채 침대에 다시 누웠다.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공을 던지지 못하는 투수.
고 3 드래프트 데이까진 1년 남짓 남은 상황.
다른 포지션을 연습한다고 한들, 1년 안에 프로로 드래프트되긴 어려웠다.
유일한 희망은 대학 진학 후 프로 진출.
집안 사정상 대학에 진학하려면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남은 건 야구를 포기하거나 죽기 살기로 다른 포지션으로 프로 데뷔를 노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진고가 신생 팀이라지만 좋은 선수들을 전학으로 입단시킨 후라 당장 들어갈 포지션도 없었다.
그때 나선 게 정미남이었다.
초중고 동창이자 자신의 안방마님.
정미남은 레귤러 포수에도 간당간당한 실력이었지만 송석현 덕분에 함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진학이 수월했던 데는 포수는 누구나 다 꺼리는 기피 포지션이라는 이유도 컸다.
우진고엔 전문 백업 포수도 없을 정도였다.
정미남은 송석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백업 포수 자리를 추천했다.
전국을 뒤져도 포수는 많지 않다.
포수라는 포지션이 힘들지만 그만큼 선수들이 적어 프로 진출 가능성도 높다.
송석현과 정미남은 서로의 훈련을 오랫동안 도와 왔기에 포수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다.
송석현은 정미남과 함께 포수 훈련에 매진했다. 잠도 줄여 가며 악착같이 매달렸다.
그렇게 반년 만에 괜찮다는 평을 받았고 어느덧 정미남을 넘어섰다.
정미남은 기다렸다는 듯 꾀병을 핑계로 포수 자리를 송석현에게 넘겼다.
송석현이 화까지 냈으나 정미남은 웃어넘겼다.
-너랑 같이하는 게 아니면 뭐 하러 내가 이 힘든 야구를 하냐? 난 네 공을 받으려고 여기 온 거야. 나는 너만큼 야구 좋아하질 않아. 그러니 네가 야구 하는 게 맞아. 실력도 네가 낫고.
그날 송석현은 밤새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정미남은 백업 포수라는 이름으로 팀과 함께했을 뿐, 사실상 야구에서 손을 놨다.
송석현은 더 죽기 살기로 연습했다.
동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디며 고교 포수로서 레귤러 이상의 실력까지 키웠다.
고 3 때 시합에 나서기만 하면 스카우터들도 우진고의 송석현을 수첩에 적을 거라 확신했다. 못해도 드래프트 9순위, 잘하면 상위 순번까지 꿈꿀 정도로 마음이 부풀었다.
그때 본헤드 플레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을 거다.
“…….”
송석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가를 타고 눈물이 쪼르르 흘렀다.
이불을 머리 위로 올려 뒤집어썼다.
* * *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학교를 안 가도 되는 날이지만, 송석현에겐 이러나저러나 의미 없는 날이었다.
송석현은 면도를 하고 머리에 왁스를 발랐다.
장롱 안에서 양복을 꺼내 입곤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맸다.
식탁에는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국은 냄비 안에 있다. 데워서 꼭 먹어.]
송석현은 어머니가 쓴 메모지를 품에 넣고선 집을 나섰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1시간을 내달렸다.
송석현이 내린 곳은 납골당.
송석현은 숨을 고르곤 납골당으로 들어갔다.
“아빠, 나 왔어. 아들내미 왔습니다.”
송석현이 사진을 보며 씨익 웃었다.
유골 옆에는 가족사진과 독사진 그리고 독수리 모양의 인형, 사인된 야구공이 있었다.
“잘 지냈어? 바쁘지도 않으면서 이제야 왔네. 미안해.”
송석현은 억지로 미소를 보였다.
“난 그럭저럭 잘 지내. 뭐…… 인생이 조금 꼬인 거 같은 거 빼곤 다 좋아. 하하, 고딩이 인생 운운하니까 좀 웃기긴 하네. 하하.”
송석현은 눈썹을 긁적거렸다.
“참…… 야구 선수 되는 게 어렵다. 쉽지 않아. 후우, 남들은 다 쉽게 사는데 왜 나는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 하, 그러니까 그때 아빠가 나한테 야구 선수 되라고 부추기지 말았어야 돼. 그냥 공부했으면 좀 편했을걸. 에이, 이건 아빠도 지분 있는 거야. 그치? 하하.”
송석현은 이후로 말이 없었다.
묵묵부답.
사진 속의 아버지는 활짝 웃기만 할 뿐이었다.
“뭐…… 음…… 그래도 한 번 더 해 보려고. 솔직히 나도 할 만큼 했으니까 아빠한테 나중에 할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엄마를 생각하지 못했네. 이대로 그만두면 엄마한테 평생 한이 될 거 아냐? 엄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고. 내가 백날 아니라고 해 봐야 엄마가 내 말을 들을 리도 없고. 어차피 시작한 거, 조금 더 해 보고 그만둬도 되잖아. 난 대학도 안 가고, 젊으니까. 그치? 맞지, 아빠?”
송석현은 대답 없는 아버지 사진을 보더니 아버지를 따라 웃었다.
“알았어. 맞는 거다. 진짜 맞는 거야. 이번엔 아빠가 정말 많이 도와줘. 응? 좀만 도와줘라. 부탁할게. 아빠가 나 야구 선수 만드는 게 꿈이었다며. 그러면 좀 도와줘야지. 내가 로또 번호 알려 달라고 안 하잖아. 열심히 할게. 나 야구 선수 할 수 있는 기회만 줘. 꼭이야. 이번엔 꼭. 꼭.”
송석현은 아버지 사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음에 또 올게. 그땐 독립야구단이라도 들어가서 올 테니까 기다려. 약속할게.”
송석현이 발걸음을 옮겼다.
또각또각 소리가 납골당을 울렸다.
송석현이 떠난 자리, 故 송기철의 사진은 여전히 활짝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