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헤드 플레이어
때는 2012년.
“파이팅!”
“가자! 우진!”
“하나, 둘, 셋! 우진고 파이팅!”
봄볕이 초록 그라운드에 드리운다.
5월.
고교야구에선 주말리그가 한창인 시즌.
주말리그 전반기 마지막 경기가 오늘이었다.
마지막 경기답게 관중석엔 스카우터들이 대거 몰렸다.
프로 팀 지명이 지상 명제인 고교야구 선수들에겐 오늘 경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후우우우.”
마운드 위의 투수가 숨을 고른다.
봄인데도 투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하다.
전광판의 점수는 6-5.
카운트는 3-2.
투수 이름은 장대희라고 찍혀 있었다.
투수는 모자를 벗어 땀을 한번 닦았다.
타자도 손을 들어 타석에서 벗어났다.
타자가 배트에 살짝 금이 갔다고 어필하며 배트를 바꾸러 간 사이, 중계진이 말했다.
“에…… 장대희 선수 지금 매우 중요한 공 하나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확인하니까 중계석에 장혁진 선수, 아 은퇴했으니까 선수는 아니죠. 장혁진 전 코치라고 불러야 하나요?”
“허허, 이미 은퇴한 선수라고 해도 장혁진 선수라고 불리는 게 본인에게 더 좋지 않겠어요?”
“예, 그렇군요. 장혁진 선수가 시즌 내내 보이지 않아서 오늘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국 아버지의 마음은 다 똑같나 봅니다. 이렇게 얼굴을 비치네요.”
“부전자전, 호부 밑에 견자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불스의 레전드로 프로야구를 풍미한 장혁진 선수의 아들이 이렇게 큰 활약을 하는 걸 보고 있자니, 참 흥미진진합니다. 현재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도 눈여겨보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투수죠.”
“예, 중학교 때부터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서 어떤 고등학교로 진학하느냐 말들이 많았는데, 신생 팀인 우진고로 가서 당시엔 놀라움이 컸죠?”
“그렇습니다. 명문 팀에서 엄청나게 콜을 했거든요. 하지만 아버지 장혁진 선수의 입김이 셌다고 합니다. 우진고가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 러브콜을 보냈는데 그게 통한 거죠.”
“예, 그래서 덕분에 우진고가 3년 만에 주말리그 우승의 목전에 와 있나 봅니다. 우수한 선수들이 당시에 우진고에 많이 갔어요. 그쵸?”
“예, 그렇습니다. 지금 포수를 보고 있는 송석현 선수도 중학교 때 엄청난 선수였지 않습니까? 사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초고교급 선수, 메이저리그로 직행할 선수로 송석현 선수가 꼽혔는데……. 예, 뭐 아시겠지만 부상으로 투수를 은퇴하고 말았죠. 만약에 송석현 선수가 건재했다면 우진고의 비약은 1년은 더 빨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 참 안타까운 일이었죠. 그리고 놀라운 일이고요. 포수라는 게 하루 이틀 만에 완성되는 포지션이 아니잖습니까? 야구 포지션 중에 가장 어렵고 힘든 자리가 포순데 부상 이후 1년 만에 포수 주전 자리를 꿰찼어요.”
“허허허, 야잘잘이란 말이 요새 유행이라죠? 야구는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 정말 전형적인 천재예요. 어떻게 포수라는 포지션에 이렇게 빨리 적응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타격도 준수해요. 부상으로 쉬었다는데 3할을 넘게 치고 있습니다. 아직 포수로서 기본기가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프로에서도 충분히 탐낼 수 있는 재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타자가 이제 들어오네요. 시간을 많이 끌었어요.”
주말리그 전반기 마지막 경기는 이례적으로 프로야구 중계진이 나와 있었다.
야구협회에서 고교야구 부흥을 위해 중요 경기가 있는 날에는 최대한 프로야구와 일정이 겹치지 않게 조정한 덕이었다.
TV로도 중계되는 경기.
관중석에선 프로야구, 대학야구, 메이저리그 스카우터까지 진을 치며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우우우.”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일부러 시간을 끄는 뻔한 작전에 우진고 응원석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우진고는 첫 결승인 만큼,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장을 포함해 교직원과 재단 이사들까지 모조리 참석하고 있었다.
팡팡.
포수가 미트를 손으로 치면서 타자를 곁눈질했다.
타자는 상아고의 박무진.
영악하고 지능적인 선수다.
곁눈질로 포수를 힐끔 쳐다보는 건 물론, 포수의 발소리 하나에도 귀를 기울이며 편법과 합법 사이를 줄다리기하는 타자다.
‘사인 체인지.’
포수 송석현은 투수와 사인을 교환했다.
2사 만루 상황. 안타 하나면 역전이 나온다.
타자는 철저하게 밀어 치기로 대응할 거다.
타자가 기다리는 공은 바깥쪽 변화구.
바깥쪽 변화구는 포수가 몸을 움직여야 안정적인 포구를 할 수 있는 만큼, 약간의 발소리도 상대에게 의도가 읽힐 수 있다.
바깥쪽 공을 유도하는 척, 발을 놀리면서 결정구는 몸 쪽 하이 패스트볼.
설령 치더라도 먹힌 볼이 나올 테고, 원아웃만 잡으면 게임은 끝이다.
‘몸 쪽 직구.’
포수가 몸 쪽으로 사인을 바꿨다.
투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몇 번이고 사인을 바꿨기에 서로 헷갈릴 수 없다.
투수는 마른침을 삼킨다.
포수는 몸에 힘을 빼고 발뒤꿈치를 살짝 든다.
포수로서 스카우터들에게 눈도장을 받을 수 있는 확실한 기회.
투수가 와인드업하자 포수가 살짝 바깥쪽으로 몸을 뺀다.
타자의 보텀 핸드 어깨가 벌써 안쪽으로 빠진다.
바깥쪽을 노린다는 신호다.
‘됐어!’
포수는 얼른 다시 타자 쪽으로 몸을 옮기며 미트를 살짝 든다.
스트라이크가 아니어도 된다.
타자 어깨가 벌써 나간다는 건 마음이 급하다는 얘기다.
무조건 스윙이다.
공을 맞히더라도 무조건 아웃이다.
팟!
투수가 공을 던진다.
직구 구속만 150km/h가 나오는 파이어볼러.
힘이 떨어졌다고 해도 145km/h 이상이 나오는 투수.
전국구 톱으로 불렸던 송석현이 떠난 지금 고교야구 톱 3로 불리는 투수.
장대희가 작정하고 던지는 직구는 노리지 않으면 칠 수 없다.
“어?”
송석현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몸 쪽으로 붙어 와야 하는 공인데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로 온다.
몰린 공인가 싶은데 바깥쪽으로 빠진다.
전형적인 슬라이더 궤적.
장대희의 슬라이더는 횡으로 많이 휜다.
공은 점점 바깥쪽으로 빠진다.
타자의 배트는 이미 나갔다.
송석현도 급하게 몸을 반대로 날렸다.
반대 투구.
아니, 사인 미스.
대체 왜 바깥쪽 슬라이더를?
송석현은 미트를 쭉 내밀었다.
맞더라도 단타로만 끝나면 아직 동점이다.
공은 바깥쪽으로 쭉 빠졌고 타자의 배트는 공을 정확히 노렸다.
부웅.
타자의 배트조차 쫓아가지 못하는 바깥쪽으로 완전히 빠지는 슬라이더.
헛스윙이었다.
그리고…….
“아! 포수가 놓쳤어요! 패스트볼! 포일입니다!”
“주자 달립니다! 3루 주자! 3루 주자 홈인!”
“2루 주자까지 뛰고 있어요! 2루 주자 지금 3루 밟고! 밟고! 포수가 투수에게 공을 던집니다! 태그! 태그! 태그…… 못했어요! 타이밍이 늦었습니다! 아! 끝났습니다! 상아고! 상아고가 5-6이라는 스코어를 마지막 9회 2사에서 역전하고 맙니다!”
“이거 참,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상아고의 우승은 이상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의 마무리는 아니죠. 끝내기 실책이라뇨. 아무리 고교야구라지만 이런 기본기의 미숙함은 너무 안타깝습니다.”
“아무래도 포수로서 짧은 훈련 시간이 독이었을까요. 투수는 완벽하게 타자를 헛스윙시켰는데 이 공을 잡지 못하면서 우진고가 창단 3년 만에 우승 트로피의 코앞까지 갔다가 놓칩니다.”
“아쉽습니다, 송석현 선수. 짧은 시간 안에 포수로서 성장한 건 대견한 일이지만 이런 기본적인 포구를 놓친 건…… 아…….”
“참 아쉽죠?”
“아쉽죠. 아쉽습니다. 오늘 귀한 분들도 많이 와 주셨고 웬만한 스카우터들은 다 왔는데 이런 모습은 결코 좋지 못해요. 팀에도 안 좋은 모습이지만 본인에게도 매우 안 좋습니다.”
“조금 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요, 우진고는 포수가 직접 사인을 낸다고 합니다. 감독이 송석현 포수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나 봐요. 보통은 벤치에서 사인을 내는데 말이죠.”
“분명 바깥쪽으로 몸을 뺐거든요. 그런데 다시 역동작을 하면서 본인이 바깥쪽 공에 대응하지 못했어요. 이게 소위 겉멋, 겉멋이 들어서 그런 겁니다. 메이저리그나 프로야구를 보면 포수들이 발놀림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지 않습니까? 그게 타자에게 정보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 그런 건데 아마야구 포수들은 별 의미 없이 발을 놀리는 게 문젭니다. 그게 오히려 독이 됐어요.”
“마지막 장면은 아쉽게 됐지만 상아고가 주말리그 전반기 우승을 하면서 다시 한번 트로피 하나를 추가하게 됩니다.”
“우진고 입장에서는 아쉽겠지만 후반기를 노려야죠. 아직 봉황대기, 청룡기, 대통령 대회 많이 남아 있어요. 다시 한번 전열을 가다듬고 도전하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라운드에선 상아고 선수들이 기쁨의 포옹을 나눴다.
우진고 선수들은 넋이 나간 채 고개를 떨어뜨렸다.
포수 송석현은 얼이 빠진 얼굴로 투수를 바라봤다.
투수 장대희는 송석현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결정적인 순간, 사인을 헷갈렸을까?
게다가 마지막…… 투수 백업할 때 송석현은 제대로 송구했다.
분명 아웃 타이밍이었다.
투수가 역동작으로 태그하지 않았다면 아웃이었다.
투수의 당시 행동이 당최 이해 가지 않는다.
대체 왜?
송석현의 귀에 욕과 함성이 뒤섞여 들린다.
오늘 경기를 위해 우진고의 학생들은 물론 교직원, 이사회, 학부모까지 죄다 모였다.
스카우터들이 보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중계되는 경기였다.
한데 완전히 망쳤다.
오늘 경기는 완전히 망쳤다.
남들이 보기에 이건 포수의 잘못이다.
투수의 공이 바운드된 것도 아니고, 폭투도 아니었는데 잡지 못했다.
포수가 바깥쪽으로 몸을 움직여 놓고도 공을 잡지 못했다.
억울해.
억울하다.
자기 잘못이 아닌데, 투수가 잘못 던진 건데 억울하다.
자기를 원망스럽게 쏘아보는 눈들이 느껴진다. 자신을 응원하고 아껴 주던 감독의 탄식이 귀에 들린다. 저 멀리서 노심초사하며 자신을 지켜봤을 어머니의 울음이 보이지 않아도 생생하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 * *
봄을 훌쩍 넘기고 여름이 다가왔다. 야구 선수라면 그라운드를 누벼야 할 황금 같은 시간.
송석현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자고 있었다.
“으아아악!”
비명과 함께 송석현이 눈을 떴다.
“후우, 후우. 후우. 후우.”
이마에는 땀이 흥건하다.
이불까지 땀이 묻어 있다.
송석현이 손을 들어 땀을 닦았다.
“하.”
마른침을 삼켰다.
또 꿈이다.
며칠 잠잠하다 했는데 또 같은 꿈이다.
송석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세면대 앞 거울을 봤다.
“후우.”
수염은 제대로 깎지 않아 지저분했다. 그새 살이 쪄서 볼이 포동하다. 머리는 다듬지 않아 밤톨머리처럼 너저분했다.
송석현은 얼굴을 닦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자 검색어에 장대희의 이름이 보였다.
-장대희! 한국에 남나?
-메이저냐, 한국이냐. 장대희의 선택은?
-울브스의 첫 번째 선택은 장대희.
-울브스의 선택은 어떻게 평가될까?
송석현은 책상 달력을 바라봤다.
오늘은 드래프트 날.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자신을 택한 팀은 없었다.
그날, 그 경기 이후 송석현의 별명은 본헤드 플레이어.
포수 경력도 짧고 부상이 있으며, 결정적 실책까지 저지른 본헤드 플레이어를 지명하는 팀은 없었다.
띠리리링.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