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759)화 (760/763)

 아빠.""

 응?""

 제논년이 뭐야?""

 ··· ···""

 그것과 별개로 수치사하는 건 어쩔 수 없지. 나는 릴리의 질문에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적어도 지구는 예수님께서 승천한 후에 서력기원이 사용된 걸로 아는데, 나는 살아생전 그 모습을 지켜봤다."

 과연 예수께서는 이걸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승천하고 난 후에 만남을 가진다면 직접 물어봐야 될 듯했다."

 흠. 흠. 헌데 마리.""

 네. 말씀하세요. 여왕님.""

 아델리아까지 출산을 한다면······ 다음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겠느냐?""

 릴리를 부둥부둥하는 도중에 아르웬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나는 그 말에 귀를 쫑긋거렸다."

 아델리아는 마리의 설득으로 아이를 가졌지만, 그다음부터는 사실상 아르웬이 순번이다."

 아르웬도 이를 알고 있었기에 은근히 기대감을 가진 채 질문한 거고."

 어머. 여왕님. 여왕님이 추구하는 건 공평 아니었나요?""

 하지만 쉽게 넘어갈 세실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장난의 기회라 여겼는지 잔망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러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아르웬. 나는 다음에 나올 말을 예측하고 릴리의 귀를 살포시 막아버렸다."

 릴리는 내가 귀를 막자 눈을 똘망똘망하게 뜬다. 어쩜 이리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아르웬 님의 차례가 온다면 다른 분들도 평등하게 아이를 가져야죠.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내, 내가 어, 언제 그랬느냐!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상하다. 전 분명 비슷한 요지의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세실리는 많이 들었겠지. 아르웬이 심심찮게 뱉었던 엘프식 공산주의 발언 말이다."

 아르웬도 그에 대해 할 말이 없었는지 얼굴만 빨갛게 붉힐 뿐이었다. 세실리는 그걸 보며 키득키득거렸고."

 난 못 들었는데? 아르웬 여왕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어?""

 그게 있지······""

 아, 안 된다! 말하지 말거라! 듣는 사람이 오해할 수도 있지 않느냐!""

 결국 아르웬이 먼저 백기를 듦으로써 주제는 종료되었다. 조만간 엘프식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알지 않을까."

 아무튼 아르웬 여왕님이 원하실 때 아이작에게 부탁하세요. 대신 저도 둘째는 없으니 첫째까지만 허락할 수 있어요.""

 나도 거기까지는 욕심을 부리지 않느니라. 단지 아이작의 아이를 갖고 싶을 뿐이지.""

 음······ 그런데 있잖아.""

 그때 조용히 앉아만 있던 아델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에 아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아델리아는 크게 부풀어오른 배를 살살 쓰다듬으며 의문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만약 우리 중에 쌍둥이나 그 이상을 임신하면 어떻게 해?""

 뭐?""

 쌍둥이?""

 응. 쌍둥이.""

 쌍둥이라는 말에 아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두 알다시피 쌍둥이를 임신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하지만 확률이 낮은 거지, 쌍둥이는 의외로 자주 볼 수 있는 편이다. 확률의 오묘한 세계라고 봐야겠지."

 그러니 우리 중에도 누군가 쌍둥이를 임신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뜻이다. 더구나 사람도 많지 않은가."

 마리는 아델리아가 꽤 일리 있는 의견을 꺼내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일수록 마리가 먼저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야 된다. 안 그러면 체계(?)에 큰 혼란이 올 테니까."

 누군가 쌍둥이를 가진다면······ 나는 물론이고, 세실리랑 아델 언니도 아이를 가져야지. 다른 사람들은 한 명씩 가지고. 이래야 공정할 테니까.""

 아이작이 고생하지 않을까?""

 내 알바야? 자기가 책임진다잖아. 우리는 그냥 즐기면 돼.""

 알빠노를 시전하는 마리. 하지만 할 말이 없다는 게 슬픈 일이다."

 내가 책임지겠다고 다짐했으니 반드시 책임을 져야겠지. 피곤해서 쉰다는 변명조차 통하지 않았다."

 피곤해도 아랫도리만 세우면 생체딜도처럼 사용하더라. 나도 그에 흥분해서 자연스레 거사를 치르게 되고."

 더구나 몸이 하나인지라 한꺼번에 상대하기도 힘들다. 누누이 언급했으나 분신을 얻고 싶은 이유 중 하나다."

 아빠. 아빠.""

 응. 릴리.""

 릴리도 동생이 생기는 거야?""

 응. 많이 생길 거야.""

 생각해보면 아리엘이 첫째, 그레이스가 둘째, 릴리가 셋째다."

 만약 순번 상관없이 숨풍숨풍 낳았다면 족보가 꽤 꼬였지 않았을까."

 훗날 아이들이 아빠는 한 명인데 엄마는 왜 이렇게 많아? 라고 물어봤을 때 난처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히 여태까지 태어난 아이들이 인식 자체는 잘하고 있다는 것.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무던히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진짜 쌍둥이라도 태어나면 또 쥐어짜이겠네.'"

 그나마 아델리아는 몸을 사리겠지. 엘리스를 낳은지 얼마 안 됐을 테니까."

 나는 릴리를 부둥부둥거리면서 마음을 치유했다. 릴리도 내 뺨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사랑스러움을 표출했다."

 똑똑똑-"

 [아이작 님. 케이트입니다. 필히 전해야 할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때 밖에서 케이트가 정중히 노크했다. 나는 릴리의 뺨에 뽀뽀를 퍼붓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정답게 걸즈 토크를 이어가던 부인들도 대화를 멈추고 문 쪽을 쳐다봤다."

 끼익-"

 이윽고 천천히 열리는 문. 문 뒤에는 케이트와 전혀 의외의 사람이 함께 서 있었다."

 체리? 체리까지 왔네?""

 웬일이야?'"

 체리였다. 케이트와 함께 성서를 공동집필한 것으로 유력시되는 사람."

 진정한 의미의 스토킹을 완수한 체리는 케이트와 나란히 서 있었다."

 모두 여기 계셨군요.""

 케이트는 침실에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부인들도 함께 있자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헌데 그녀의 두 손이 얹어진 곳이 조금······ 이상하다."

 왜 이상하다 말했냐면 케이트의 두 손이 아랫배에 얹어져 있었거든."

 무엇보다 케이트의 얼굴. 정말 행복하다는 미소와 함께 뺨이 은은한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설마?'"

 내가 그걸 보고 불안한 마음을 가졌을 때, 다른 부인들은 설마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케이트 씨. 혹시······""

 ······네.""

 마리의 질문에 케이트가 살짝 부끄러워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리엘 님에게도 확인을 받았습니다. 저 또한 아이작 님의 아이를 가졌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약간 머리가 띵해지는 순간이었지만."

 그것도 쌍둥이를.""

 ······쌍둥이?""

 쌍둥이······ 라고요?""

 쌍둥이라는 말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지난번 라오스의 상태를 확인하고 케이트와 몸을 섞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아무 말도 없길래 시원하게 했건만 그것이 트리거였던 모양이다."

 왜 말하지 않았냐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내가 원했던 거고, 케이트는 그걸 따라줬을 뿐이니."

 게다가 케이트는 원래부터 본인의 주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말해주지 않는 이상 넘어가더라."

 이게 말이 되냐고 하겠지만 과거, 그녀는 파멸적인 성지식을 자랑한 적이 있다. 애당초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았고."

 네. 그래서 아이작 님께 부탁하러 왔습니다. 제가 아이작 님의 아이를 가졌으니, 체리에게도 축복을 전해달라고. 혹시 안 되겠습니까?""

 저, 저는······ 괜찮은데 케이트 씨께서······""

 변명하지 않아도 돼요, 체리. 체리도 그걸 위해 온 거잖아요?""

 ··· ···""

 체리는 케이트의 지적에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내렸다. 얼굴이 완전히 붉어진 걸 보면 내심 원하는 듯했다."

 나는 그들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아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때마침 아내들의 시선도 나를 향해 있다."

 아빠.""

 ······응. 릴리.""

 추워.""

 싸늘한 시선을 릴리도 느낀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거려주다가 본심을 말했다."

 아빠도 추워.""

 아이작? 잠깐 얘기 좀 할까? 말이 아니라 몸으로.""

 부인들은 참지 않았다."

 아무튼 그 이후에도 다사다난한 일이 생겼고."

 [제논년 25년. 제논 아이작께서 또다른 창조를 시작하시다.]"

 기나긴 휴식 끝에 나는 또다른 출발을 시작했다."

 세상에 지구처럼 서력기원 비슷한 년도가 생기고, 모든 나라가 통일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제논년'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욕 같은 어감이 있었기에 살짝 수정했다. 제논년에서 제논력으로."

 나중에 그 제논마저 제외하고 몇 년도 라고 부르겠지만 아직 멀고도 먼 상황이다. 마음 같아서는 루미너스로 바꾸고 싶다."

 하지만 루미너스가 다스린 세대가 '기원전'이고, 그 이후를 '기원후'처럼 취급해서 의미가 없었다."

 오죽하면 제논력 이전의 연도를 무어라 지정해야 할까 의논을 나눌 정도다."

 아무튼 아이작이 말실수 한번으로 퍼져나간 연도법. 그리고 연도법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은 것들이 있다."

 이봐. 가르츠. 오늘도 심판을 보러 가는 거야?""

 예. 그렇습니다.""

 돈은 누구한테 걸면 돼?""

 저도 그건 모릅니다.""

 가르츠는 선배의 물음에 특유의 딱딱한 목소리로 답했다. 심판을 보러 간다는 건 당연하게도 마이샬 영지다."

 본래는 아이작이 심판을 보는 편이었지만, 아무래도 위상이 위상이다보니 다른 사람에 맡긴 상황이다."

 가르츠가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이며, 다른 심판들의 교육을 맡고 있기도 하다."

 사실상 아이작 다음의 축구 심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 때문에 다른 의미로 그의 명예가 높아지고 있다."

 물론 명예가 높아지는 것과 별개로 아직까지 사인본을 못 받았다는 것이 함정이다."

 그러지 말고. 나 다른 놈이랑 내기했단 말이야. 오늘 원주민 팀과 이주민 팀의 대결이라며?""

 혹시 매수하시는 겁니까?""

 그건 절대 아니야. 우리가 미쳤다고 매수를 해?""

 가르츠의 의심 섞인 질문에 리퍼 단원이 화들짝 놀랐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매수라도 한다면 자신은 물론이요, 가르츠까지 인생이 끝난다."

 사상 최초의 심판이 아이작이었기에 그의 명성을 더럽히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정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과연 이 기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스포츠와 종교가 깊숙히 연관돼 있다보니 조심하는 기류가 많다."

 그래봤자 막상 시합이 시작되면 심판을 욕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지만. 우스갯소리로 마족이 심판을 봐야된다는 말이 있다."

 심판을 본다면 어느 팀에게나 사이좋게 욕을 먹을 것이며 멘탈 단련에 좋을 거라는 식으로 말이다."

 내가 말하는 건 근황 정도야. 너는 제논 님께서 아예 심판으로 임명했잖아? 그때문에 성지를 자주 들락거리고.""

 그것과 별개로 어떤 팀이 유리한지는 모릅니다.""

 에잉······ 알았어. 나중에 결과만 알려줘.""

 가르츠의 대답에 리퍼 단원은 아쉬움을 뒤로 하며 자리를 떠났다."

 가르츠는 그가 떠남과 동시에 텔레포트로 마이샬 영지로 이동했다."

 헬리움과 마이샬 영지의 거리는 꽤 먼 편이라 텔레포트를 여러 번 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에 이동하려면 세실리처럼 무지막지한 마력을 가져야 가능하다."

 자!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오늘은 10퍼센트 할인을······!""

 여기 팀을 상징하는 깃발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보면서 먹기 좋은 간식거리도······!""

 마이샬 영지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부산스러움이 느껴졌다. 부산스러움과 활기가 오묘히 섞여 생동감이 넘쳐났다."

 남녀노소, 종족, 신분을 가리지 않고 경기를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 축구는 마이샬 영지의 명물로 남았다."

 정확히는 종주국이라고 봐야겠지. 시간이 흘러 축구는 전세계가 즐기는 스포츠로 발전할 수 있었다."

 종교계에서 탄압은커녕 장려하고 있을 뿐더러 제논교에서는 아예 전도하는 방법 중 하나다."

 대도시가 아닌, 시골처럼 외전 곳에 찾아가 포교를 한 뒤 축구공을 하나 던져주는 식으로."

 이게 무슨 전도라고 할 수 있지만,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과거, 악마 숭배자도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여 마을 몇몇을 집단으로 세뇌시킨 전적이 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어마어마하게 발전했구나.'"

 가르츠는 대도시 못지 않게 성장한 마이샬 영지를 둘러봤다. 문화 도시인만큼 외양이 정말 아름답다."

 분명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도 몇 채 없었던 시골이었는데 지금은 문화의 시작점으로 변모했다."

 테르스 공화국의 수도가 조용하면서 감성이 진하다면, 마이샬 영지는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쳤다."

 예전까지만 해도 서로 견제하는 입장이었으나 표현 방식이 극명하게 갈리다 보니 경쟁조차 하지 않았다."

 '세계가 점점 하나로 뭉치는 느낌이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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