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751)화 (752/763)

 모두 모이셨군요.""

 그 옆에는 케이트가 서 있었다. 그녀는 모일 사람이 모두 모이자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들으신 분은 들으셨겠지만, 이건 루미너스 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내려주실 마지막 예언이시죠.""

 마지막······ 예언?""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다고?""

 설마 루미너스 님이 우리를 떠나신다는 거야?""

 마지막 예언이라는 소리에 사람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예언이라는 건 루미너스가 필멸자들을 돌보지 않을 거라는 뜻이니까."

 어제, 정확히는 이틀 전에 진실까지 고백했던지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했다."

 혹시 본인의 과오를 부끄러워하셔서?""

 대체 얼마나 자책감이 심하셨으면······""

 그래도 우리를 거둔 분이시잖아.""

 마지막이 아니기를 빌자. 예언만 끝낸다는 거지, 우리를 지켜보는 건 여전할 수도 있어.""

 진실이 밝혀져도 루미너스를 향한 신뢰는 굳건하다. 오히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면모다."

 무엇보다 사람들도 루미너스가 자신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신봉하는 자들도 늘어난 상황이다."

 아마 많은 게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그러나 루미너스 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장성할 때까지 책임을 져야하지만, 그와 동시에 독립시켜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고.""

 ··· ···""

 그리고 이 마지막 예언은 제논 님께서 모든 과업을 끝냈을 때, 저희가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잠깐만."

 가만히 있던 나는 왜 언급되는 거지."

 너무 자연스럽게 말해서 순간적으로나마 눈치채지 못했다."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작품은 루미너스 님의 마지막 예언.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동안 케이트는 작품을 가리던 천을 손에 쥐었고."

 여러분이 맞이할 새로운 신의 모습입니다.""

 펄럭!"

 그대로 잡아당겨 작품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아······ 아아······""

 그랬던······ 거였어······""

 작품을 본 사람들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홀린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나 또한 루미너스가 나에게 준 '선물'을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경악이다."

 작품의 정체는 그림이다. 그것도 누구인지 다 특정되는 그림."

 붉은색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반짝이는 황금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남자."

 한 손에는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펜을, 다른 한 손에는 웬 손도끼 한 자루를."

 실로 언밸런스한 조합이지만 성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겨서 묘하게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더 눈에 띄는 건 주변이다. 그 남자의 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공물을 바치거나 기도하는 등."

 이 작품의 제목은······ 인류의 신.""

 누가 봐도 신을 향해 기도하는 신자들의 모습이다."

 우리를 새로이 이끌어 갈 분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 ···""

 나는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이 인간······ 아니, 신이 선빵을 쳐?'"

 다른 의미의 고생이 시작됐다고."

 세상에 새로운 신이 도래할 것이다. 이 말을 과연 누가 믿을까."

 그리스·로마 신앙이 팽배했던 로마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를 생각하자."

 기독교는 야만의 시절에 '도덕'과 '윤리'를 가져오면서 수많은 반향을 일으켰고, 국가의 근간마저 흔들었다."

 일련의 과정 끝에 그리스·로마 신앙을 신화로 격하시키고, 기독교가 득세했지만 많은 피가 흘렀다."

 하물며 기독교의 수많은 선교사들도 다른 나라에 종교를 설파하다가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종교는 국가의 근간마저 흔들 수 있는 거대한 문화덩어리. 그렇기에 새로운 종교를 전파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된다."

 하지만 성자를 넘어 하나의 종교가 될 사람이 진작부터 무수한 업적을 세웠다면?"

 업적을 세운 걸 넘어서 세상을 구한 것도 모자라 발전을 크게 앞당겼다면?"

 이래도 큰 반발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영웅이어도 종교로 승격되는 경우는 잘 없다."

 루미너스와 모라는 태생이 신이었는데다가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부터 시작했기에 거부감 없이 종교가 됐다."

 반면에 나는 아니다. 이미 확고한 종교, 그것도 신이 실존하는 세상에서 우연과 우연이 겹쳐 신격을 얻은 케이스다."

 누차 강조했다시피 신격을 얻는 것과 종교가 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신격만 얻었다면 일만 주구장창하면 된다. 위에서 하라는 것만 하면 끝."

 그러나 종교가 된다면 책임까지 져야되니 여러모로 머리가 아파질 수밖에 없다."

 이봐요. 크레토스.""

 크레토스가 누구니?""

 세상을 멸망시켰던 전쟁의 신이요. 아무튼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어요?""

 루미너스의 선물(엿)을 보고나서 곧장 신전으로 향했다."

 선물의 정체가 공개되자마자 마이샬 영지가 또다시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루미너스가 어떤 의도로 그런 예언 아닌 예언을 내렸다는 거다. 사실 예언이라 하기에도 애매하다."

 신들은 내 미래를 볼 수 없었으니까. 미래를 볼 수 없는데 그걸 미래랍시고 한 걸 보면 의도적인 행위다."

 네가 봤던대로란다. 너도 이제 어엿한 종교가 되는 것이지. 때마침 교리도 세웠잖니?""

 무슨 교리······""

 목소리를 내어라. 침묵하지 말아라.""

 ··· ···""

 이 얼마나 훌륭한 교리니? 아주 훌륭해.""

 짝짝짝짝!"

 박수까지 치면서 정말 좋아하는 루미너스. 나는 황당한 얼굴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근육질 미남이 저런 반응을 보여주니 뭐랄까. 뭔가 어긋난 것 같은 느낌이다."

 ······영웅이 종교로 되는 경우는 잘 없지 않아요?""

 지구의 신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섭섭해 할 것 같구나.""

 아니. 그때는 수백 년이 아니라 수천 년 전이었잖아요. 심지어 부처님은 기원전 인물이신데?""

 그게 무슨 상관이니? 세상에 진실을 알려서 근간을 뒤집었잖니. 새 시대가 열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그 시대를 연 건 바로 너고.""

 ··· ···""

 문과지만 저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대해적시대를 연 해적왕 같은 느낌인가."

 세상을 뒤집었다는 말은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는 뒤집을 계획을 잡고 있는 것이다."

 루미너스 일대기, 그러니까 '전쟁의 신'이 발매된다면 많은 것들이 변하겠지. 특히 신학 쪽은 부랄을 찢으면서 울지 않을까."

 그나저나 우리 세상에도 필멸자 출신의 초월자가 탄생하는구나. 지구는 고대 시대 때 탄생했건만 너무 오래 걸렸어.""

 아예 처음부터 낙점 찍었던 거군요?""

 물론이지.""

 하아······""

 솔직히 할 말이 없기는 하다. 바로 눈 앞에 특 A급 소가 떡하니 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까."

 심지어 그 소가 망가질대로 망가졌던 밭을 모조리 뒤엎은 상황이다. 농사를 짓기 딱 알맞도록 말이다."

 원래라면 그 소를 도축해야겠으나 루미너스는 그러지 않았다. 더 좋은 소를 낳을 수 있도록 가만히 놔뒀다."

 ······초월자가 되면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아서 깨닫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직접 배워야 되나요?""

 필멸자가 말하는 승천을 하게 될 시 알아서 깨달을 거란다. 물론 적재적소로 사용하는 방법은 따로 배워야겠지.""

 전 언제쯤 승천하는 거죠?""

 네가 원한다면.""

 오. 그러면 승천하지 않고 짱박혀 있어도 되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루미너스는 내 생각을 읽고는 부드러이 말했다."

 미리 말하지만 깨달은 자조차 때가 되자 열반에 들었단다.""

 에이씨.""

 도망칠 구석따위는 없다는 뜻이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짬 때린다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고생한 건 알고 있다만 대놓고 이럴 줄은 몰랐다."

 '어차피 이 인간 아니, 신도 더 고생하겠지.'"

 나는 그리 생각하며 루미너스를 힐끔거렸다. 아직 내 흉계(?)를 전혀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다."

 과연 그때 루미너스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서 빨리 그때가 왔으면 좋겠다."

 ······알겠어요. 지금 와서 부정해봤자 달라진 건 없으니 받아들이는 게 좋겠네요.""

 잘 생각했단다.""

 그럼 앞으로 태어날 제 아이들은······""

 그 아이들이 필멸자로서의 삶을 살아갈지, 아니면 초월자로서의 삶을 살아갈지는 선택에 따라 다를 거란다.""

 다행이네요.""

 혹시나 무조건적으로 초월자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내 자식들만큼은 본인이 원하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존중해줄 용의가 있다."

 물론 잘못된 길을 걷는다면 엄하게 타이를 것이다. 신화에서 으레 있을 법한 비극은 더이상 없다."

 제 애인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성자여도 한계는 무시할 수 없잖아요.""

 원래라면 천사로 환생시키면 되지만······""

 루미너스는 뒷말을 흐렸다. 현재 주신의 자리는 사실상 공석이다."

 만물의 아버지와 자연의 여신이 합쳐져도 과연 주신의 역할을 온전히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러고 보니 지구의 신들께서는요? 만물의 아버지는 어떻게 된 거죠?""

 너도 알고 있겠지만 우리의 부모는 본래 하나였던 존재란다. 한 쪽이 소멸한다고 해서 다른 한 쪽이 소멸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지.""

 그러면······""

 어머니께서 결심을 내리셨단다.""

 나는 히르트, 그러니까 자연의 여신이 결심을 내렸다는 말을 듣고 설마하는 표정을 지었다."

 루미너스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는지 씁쓸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필멸자의 세상에 전혀 간섭할 수 없도록, 물리적인 형태가 완전히 소멸하도록.""

 ··· ···""

 아마 지금쯤 지구의 신들의 관여 하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겠지. 그 모습은 영원토록 볼 수 없겠지만.""

 그렇······ 군요······""

 자연의 어머니답다면 자연의 어머니다운 선택. 그녀 덕에 부활할 수 있던 거라 더 안타깝다."

 슬퍼하지 않아도 된단다. 원래 우리의 부모는 만물과 자연 그 자체. 물리적인 형태가 소멸할 뿐,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이상 영원토록 존재할 테니.""

 뭔가······ 아이러니하네요.""

 세상이 원래 그런 거잖니.""

 신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마음이 무거워지기는 해도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루미너스의 말마따나 히르트는 만물의 자연 그 자체니까."

 물리적인 형태가 사라져도 언제 어디서든 인류를 벌할 능력이 충분하다."

 멀리 가지 않아도 지구의 자연이 인류에게 천벌을 내리는 중이다."

 결국 인류조차 결국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

 뭐······ 이래나 저래나 모든 게 결정된 것 같으니 제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네요.""

 글쎄. 네가 책에 어떤 내용을 쓸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기대해도 좋으실 겁니다.""

 걱정만 되는구나.""

 선빵을 맞았지만 이쪽도 필살기가 남아있다. 나는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

 과연 루미너스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 건 확실하다."

 아. 그렇지. 하나 중요한 걸 알려주마.""

 뭔데요?""

 필멸자에게 미래, 정확히는 운명에 대해 알려주지 말 것.""

 그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신탁까지 내리는 양반이 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내 아버지, 그러니까 히르트께서는 자유의지를 인간에게 부여할 생각이었지. 하지만 자유의지를 준다고 한들, 우리가 필멸자의 미래를 읽을 수 있는 건 다르지 않단다. 그렇기에 함부로 미래를 알려주지 않는 거지.""

 그렇군요. 그건 왜요?""

 필멸자들이 스스로의 선택을 거부하고 운명대로 순응하는 것. 그리 된다면 발전은 막힐 것이요, 모든 건 순리대로 돌아갈 거라 굳게 믿을 테니까. 깨달은 자가 가장 경계하는 부분이란다.""

 깨달은 자, 그러니까 부처님은 기원전의 인물임에도 순리의 존재를 깨달으셨다. 그렇기에 더욱 위대한 분으로 칭송받는 거고."

 신들마저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걸 보면 의미가 깊은 말이다."

 예외적으로 케이트가 있으나 그녀는 나와의 관계가 너무 깊어져버려 미래를 읽지 못한다."

 지금 내가 할 조언은 이것밖에 없단다. 같은 차원에 있을 때 많은 걸 알려주마.""

 별로 알고 싶진 않은데요?""

 그런다고 네가 도망칠 수 있겠니?""

 허, 참.""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말대로 이제 벗어날 수 없다."

 얌전히 순응하는 게 좋겠지. 그래도 이것이 최상의 결과라는 건 변함이 없다."

 뭐······ 이렇게 떠들어봤자 루미너스 님께서도 미래를 모르시니 의미가 없겠네요.""

 그렇지.""

 그럼 제가 초월자가 된다면 미래를 읽으실 수 있는 건가요?""

 네가 이 세상의 신이 된다면 세상의 미래를 읽을 수 있겠지. 게다가 신이라해도 다른 신의 미래를 읽을 수 없고.""

 네. 그러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다가 평범하게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잘 부탁하마.""

 평범하면서도 건조한 인사. 지금은 이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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