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750)화 (751/763)

 이윽고 내가 덮고 있던 이불을 빼았더니 나뭇잎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니까······""

 마리는 빙긋 웃으며 내 나뭇잎을 세차게 벗겨냈다."

 오늘만 힘내자?""

 커다란 나뭇잎 한 장이 나풀거리며 서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름이었다."

 만물의 아버지 대면 다음으로 인생 최대의 위기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반쯤 장난에 가깝긴 해도 그 많은 사람들과 정을, 그것도 정신적으로 피곤한 상태여서 더 힘들다."

 한 명이 만족하면 다른 사람들이 몰려오고, 또 한 명을 만족시키면 그 한 명이 또 회복하여 달려든다."

 사실상 뫼비우스의 띠나 마찬가지여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이 무슨 음란함을 넘어 괴악한 생활인가 싶었지만 진짜 밥 먹고, 자고, 하고만 반복했다."

 뭐, 그래도 미친듯이 하지만 않고 중간중간 대화도 나누면서 화목한 한때를 보냈다."

 더구나 애인들을 완전히 만족시키기만 하면 끝인지라 딱 하룻밤만 지내고 끝냈다."

 이제 전부 끝난 거지?""

 모라 님에게도 말씀은 드렸지만 완전히 끝난 건 아니야. 책을 써야 끝나겠지.'"

 길고 길었던 정사가 모두 끝나고 정리마저 모두 끝난 후였다. "

 급한 불은 껐으나 아직 원대한 프로젝트가 하나 남아있다. 바로 루미너스의 주신 승격."

 만물의 아버지가 주신이라는 위치에 있는 이상 이 세상은 불안하다. 히르트가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면 모르겠지만."

 우응······ 아이작······""

 마리와 대화하는 동안 나를 껴안은 세실리가 귀여운 소리를 낸다. 당연하게도 알몸이다."

 성욕을 포함한 여태까지의 걱정은 모두 해소시켜줬지만, 정서적 교감만큼은 현재진행형이다."

 세실리 님. 이제 제가 안을 차례인데······.""

 5분만 더······""

 ··· ···""

 아델리아의 부탁에도 세실리는 요지부동이었다. 도리어 나를 꽉 껴안는다."

 은근히 이런 부분에서 소심했던 아델리아는 항의조차 못하고 쩔쩔맬 뿐이었다."

 세실리. 아까 전에도 5분이라고 했잖아. 슬슬 양보해야지.""

 임산부는 안정이 필요하잖아. 지금까지 걱정만 해서 아이가 위험할 거야.""

 ··· ···""

 납득이 가는 설명에 마리조차 할 말을 잊어버렸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실제로 스트레스는 유산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세실리는 나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하루하루 무력하게 지냈다."

 ······그런 걸로 따지면 아델 언니도 오늘 임신했을 수도 있잖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실리 혼자일 때의 이야기지, 오늘부터는 다르다."

 가임기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에 누가 임신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정말 운이 겹치고 겹친 경우에는 전부 다 내 씨앗을 품었을 수도 있겠지. 이리 되면 약간 복잡해진다."

 특히 리나는 황제가 되기도 전에 아이를 품은 셈이니 온갖 구설수가 오고 갈 확률이 매우 높다."

 '본인은 신경도 안 쓰는 모양이지만······'"

 모두 알다시피 리나는 음란·음탕·변태의 끝판왕이다. 첫날밤부터 모두가 꺼리는 행위까지 했으니 말 다했지."

 오죽하면 마리가 리나에게 넌 마지막에 하라고, 우리가 하는 걸 지켜보기만 하라고 말할 정도다."

 그리고 리나는 한 술 더 떠서 수락했다. 중간에 끼어들긴 했다만 취향(...)이 독특하여 만족했다."

 그러니 잔말말고 아델 언니에게 양보해. 아델 언니도 너처럼 아이작을 껴안는 걸 좋아하니까.""

 그럼 네가 양보해주면 안 될까?""

 참고로 마리도 내 팔 하나를 붙잡고 앵기는 중이다. 오른쪽은 마리, 왼쪽은 세실리인 것이다."

 마리는 세실리의 지적에 콧방귀를 뀌더니 당당하게 대꾸했다."

 이럴 때야말로 정실의 권위를 사용하는 거지.""

 ··· ···""

 장난이고, 나도 슬슬 양보할 거야. 그러니 너도 양보해.""

 으응······""

 세실리는 불만스러워하면서도 마리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이윽고 그녀가 내 팔에서 떨어졌다."

 아델리아는 세실리가 비켜주자 눈치를 살금살금 보더니 내 곁으로 다가왔다. 뒤이어 편안한 얼굴로 안정을 취한다."

 레오나. 이제는 네가 이리로 와.""

 응!""

 마리는 레오나에게 비켜줬다. 그러자 레오나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조용히 안긴 아델리아와 다르게 레오나는 얼굴을 마구 비빈다. 중간중간 혀로 핥기까지."

 나 또한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인지라 음욕이 들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눈만 감았다."

 몇 개월 동안 집 밖으로 나갔다가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나니 깨달았다."

 이런 일상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평범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그나저나 세실리. 아이 이름은 정했어?""

 아들이면 진. 딸이면 릴리.""

 ······너무 흔한 이름이지 않아?""

 대신 상징적이잖아.""

 제논, 메리, 진, 릴리."

 제논 일대기의 주조연들의 이름이자 원래 흔치 않던 이름이다."

 하지만 제논 일대기가 대박을 넘어 전세계적 작품으로 남게 되면서 흔하디 흔한 이름이 됐다."

 엄밀히 따지자면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저 위의 이름을 붙이는 일이 부지기수다."

 '릴리도 그런 경우고······'"

 게다가 어머니께서 새로 태어날 아이가 아들이면 진, 딸이면 메리로 지을 거라 말씀하셨다."

 그걸 듣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내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것들 중 하나다."

 생각해 보니 이름을 짓는 것도 힘들겠네. 다들 미리미리 이름은 정하는 게 좋겠다.""

 그레이스는 아이작이 지어줬다며? 아이들 이름은 아이작이 지어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작가니까 이름을 짓는 것도 쉬울 거고.""

 나는 서로 이름 짓기에 열중하고 있는 애인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들은 모르겠지만 소설을 쓸 때 가장 고민되는 것 중 1순위가 이름이다."

 새로운 등장인물에게 어떤 이름이 어울릴까, 고민하는 것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본래 이름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데에 적합하니까. 이름 하나로 사람에게 기품이 깃들기도 한다."

 덜컥-"

 걸즈 토크가 신나게 이어지고 있을 때쯤이었다. 누군가 노크도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에 잠을 청하고 있는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작 님. 전에 말씀하셨던 선물이 준비되었습니다.""

 케이트였다. 하루 내내 정사를 나눈 후, 체력이 충전되자마자 곧바로 신전으로 향했던 그녀."

 그녀는 레오나처럼 욕망을 쌓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는 식이어서 금방 만족시킬 수 있었다."

 준비됐다고요?""

 네. 지금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 ···""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를 껴안고 있던 아델리아와 레오나를 번갈아봤다."

 레오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지만 아델리아는 영 아쉽다는 반응이다."

 하기야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밖으로 나가야 하니 아쉬울만도 하다."

 나중에 더 안아줄게.""

 ··· ···""

 물론 내가 부드럽게 말하자마자 얼굴이 금방 풀어졌지만. 정말 귀엽다."

 나는 아델리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고는 케이트에게 말했다."

 금방 나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중요한 일이니 깨워야겠죠.""

 잠을 자고 있는 애인들은 리나, 체리, 아르웬이다. 이들도 깔끔하게 씻고나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잘 자는데 깨우는 건 조금 미안하긴 해도 무려 루미너스의 선물이다. 신이 직접 주는 건데 놓치면 안 된다."

 우응······ 그래. 거기······ 좀 더······ 흐응.""

 ······얘는 자면서도 아이작이랑 하고 있는 거야?""

 진짜 변태야, 정말. 자식이 얘랑 똑같이 닮으면 진짜 큰일나겠어.""

 리나를 깨울 때 재미있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리나의 자식은 엄격히 교육할 필요가 있겠다."

 이렇듯 재미있는 해프닝이 있었으나 전부 다 수월히 기상할 수 있었다. 옷은 미리 세탁해 놓았다."

 나 또한 나뭇잎이 아니라 평범하디 평범한 와이셔츠에 바지를 입을 수 있었다."

 화려하게 입어봤자 적발금안 때문에 다 가려지니 의미가 없다."

 그런데 내 나뭇잎은? 그거 어디 갔어?""

 그거 케이트가 가져갔는데?""

 ··· ···""

 그걸로 뭐 하려고.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뒤이어 버릇적으로 마법필을 찾으려다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 내 전 육체에 있구나.'"

 마법필은 내 신기로 변모했지만 안타깝게도 히르트의 사원에 함께 갇혔다."

 아니면 마법필이 신기가 된 게 아니라 '문자' 자체가 내 고유 권능이 됐을 수도 있다."

 이건 모든 프로젝트가 끝나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듯했다. 바다 밑에 내 마법필이 잠들어 있다고."

 사람들은? 다 거기 몰려있는 거야?""

 그런 거 같은데?""

 루미너스의 선물은 마이샬 영지 광장에 배치돼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진실을 고했을 때처럼 케이트가 직접 선물에 대해 발표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라오스는······ 어떻게 됐는지 알아?""

 글쎄. 듣자하니 심문실로 끌려갔다는 말이 있어. 그 뒤로는 나도 잘 몰라.""

 테르스 왕국은 입장 표명을 했지?""

 바로 했지. 라오스 왕자는 왕실과 전혀 무관하다고. 맞는 말이긴 하지만······""

 쉽게 넘어가지는 못 하겠지.""

 마리가 뒷말을 흐리자 아델리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실제로 그녀의 말대로다."

 테르스 왕국이 아무리 처신을 잘해봤자 왕실 폐지 또는 멸망이다. 어쩌면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

 그들로서는 억울해 미칠 것이다. 더 나아가 왕실 전체가 악마 숭배자로 낙인찍혀 목이 매달릴 수도 있다."

 '라라는······'"

 마리아 여왕과 함께 양심 중 하나였던 라라가 신경 쓰인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아델리아도 마찬가지겠지."

 마음 같아서는 그들만이라도 빼오고 싶었으나 과연 내가 그 여론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구할 수 있다면 타이밍을 잘 노려서 쏙- 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오! 제논 님이시다!""

 뭐? 정말?""

 지, 진짜다. 제논 님이시여!""

 오오! 제논! 오오!""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광장에 도달하자마자 사람들이 무릎을 꿇으며 경배한다. 모세의 기적은 기본 패시브고."

 어제는 정신적으로 피곤한 나머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정말 부담스럽다."

 게다가 무릎 꿇지 말고 일어나라고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내 팔자야······'"

 내가 마른세수로 하고 있는 동안 애인들은 뭐가 재미있는지 저마다 한두 마디씩 나눴다."

 대부분 신이 된 기분이 어떠냐니, 이제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니, 황제도 이러지 않는다니 등등."

 어지간하면서 저택 밖으로 나서면 안 될 듯했다. 앞으로 나설 일이 있으면 변장이라도 해야겠지."

 이제 이것도 익숙해져야지. 숭배 받을 일만 남았는데.""

 세실리 말이 맞아. 제논 신전은 누가 가장 먼저 세울까?""

 헬리움으로 예상할게. 아니면 스타비르크?""

 스타비르크는 갑자기 왜?""

 마리와 세실리가 서로 떠들고, 아델리아는 내 뒤를 조용히 따랐다."

 다른 여인들도 멀리 떨어지지 않고 각자 정답게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나와의 관계가 제대로 공표되지 않았던만큼 조심해봤자 나쁠 건 없다."

 이윽고 전에 내가 부활했던 광장에 도착하니 들었던대로 루미너스의 '선물'을 볼 수 있었다."

 ······뭐지?""

 글쎄. 천으로 가려져 있네.""

 마리의 말마따나 천으로 가려져 있어서 뭔지 잘 모르겠다."

 그나마 직사각형 모양에 세로로 길다는 것 정도랄까. 크기도 꽤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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