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748)화 (749/763)

 이미 끝난 게임이다. 라오스가 무슨 말을 하든 간에 그는 무조건 잡혀갈 것이다."

 만물의 아버지도 지구의 신들에게 참교육 아닌 참교육을 당하는 중일 테고, 남는 건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다."

 다만 걱정되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후에 있을 후폭풍이 테르스 왕국을 덮쳐버릴 것이니."

 미네르바 제국은 물론이거니와 세이비어와 헬리움이 다 같이 조져버릴 가능성이 높다."

 설령 어찌저찌 수습한다고 한들 왕실이 폐지되는 건 기정사실이다."

 차라리 깔끔하게 멸망당하는 일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참에 제국이 꿀꺽할 수도 있고."

 하실 말씀이 없으십니까?""

 ··· ···""

 연이은 내 물음에도 라오스는 무뚝뚝한 표정 그대로였다. 최대한 평온함을 유지하는 듯했지만 똥줄이 타겠지."

 내가 부활했다는 건 만물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뜻. 뭔 짓을 하든 간에 내 손바닥 위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게리오스 왕국에 그랬던 것처럼 테르스 왕국 전체를 마족화시키려던 계획도 끝났겠지."

 이런 표현조차 부족하지만 그는 완전히 끝났다.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

 세이비어 혹은 헬리움에게 끌려가서 평생동안 고문을 받던가, 영혼 단위로 잘게 찢어지는 고통을 받겠지."

 더구나 만물의 아버지와 접촉한만큼 영혼마저 변질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세탁도 어려울 것이다."

 피식-"

 어디 한 번 발버둥 쳐보라는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라오스가 피식거렸다."

 해탈한 웃음 같기도 하고, 황당하다는 표정 같기도 하다. 하기야 완벽할 거라 생각한 흉계가 모조리 박살났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겠지만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이다. 나는 보란듯이 부활했으며 만물의 아버지는 쓰러졌으니."

 '무슨 발악을 할지도 대충 알 것 같고.'"

 보나마나 시선이 쏠린 틈을 타서 만물의 아버지의 진명을 말하겠지. 사실 이것도 문제가 없다."

 지구의 신들이 어떤 조치를 취했을지는 몰라도 당장은 내가 직접 나설 것이다."

 ······본래 밝히려던 진실을 다른 사람이 대신 밝혔을 뿐인데 반응이 따라 다르다니. 참 재미있는 현상이야. 안 그래?""

 라오스가 두 손을 위로 들었다 놓으면서 말했다. 평온하기 짝이 없는 말투였지만 비꼼이 가득하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그래서 뭐? 에 지나지 않았다. 꼬우면 이겼어야지."

 그래서 약오르냐는 미소만 지어줬다. 라오스의 눈 밑이 꿈틀거리는 것이 포착됐다."

 '인생 참 좆 같을 거야.'"

 라오스의 인생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탄탄대로를 넘어선 황금빛이었다."

 한 국가, 그것도 강대국의 왕태자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으며 미래도 창창했다."

 아델리아가 오점으로 남았다만 사생아 자체는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도리어 프리드리히가 이상한 거지."

 하지만 웬 빨간머리 펭귄 한 마리 때문에 모든 것이 틀어졌다. 그 놈이 아델리아와 이어지면서 테르스 왕국이 크게 흔들렸으니."

 심지어 역린이자 최대의 공포 중 하나였던 혁명마저 일어날 뻔했으니 라오스 입장에서는 열불이 나는 게 자연스럽다."

 '그것과 별개로 인성이 글러먹었지.'"

 고작 나에게 복수하겠다라는 일념 하나만으로 이 사단을 만들었다. 하물며 잘못은 저쪽에서 먼저 했다."

 만약 내가 제논이 아니었더라면 나조차 소리 소문 없이 처형당했겠지. "

 본인이 가장 잘 나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한 놈이 떡하니 등장해 훼방을 놓으니 짜증날만 하다."

 ······정말로 신이 된 건가?""

 아직은 아니죠. 신체(身體)가 아닌 신체(神體)를 얻었을 뿐, 과정은 남아있습니다.""

 그리 되면 너는 정말로 신이 되겠군.""

 네.""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다. 영혼 상태로 지내면서 몇 가지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케이트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몰라도 내 안에 심어진 신성이 나날이 강해지고 있더라."

 그 전까지만 해도 인지하지 못했는데 신의 육체를 얻고 난 후에는 명확해졌다."

 '스타비르크 지역이 유난히 강하던데······'"

 이건 차차 생각할 문제다. 지금 고려할 건 아니다."

 신이라······ 참 멋진 존재들이야. 우리처럼 완벽하지 않은 필멸자들을 어루어 만져주면서 보살펴주니까.""

 그러나 정작 신들께서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죠. 단지 우리를 보호해주시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나는 의문이 들어. 본인들조차 완벽하지 않은데 어째서 우리를 통치한다는 거지?""

 꽤 재미있는 주제다. 나는 어디 한 번 말해보라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놈은 내가 우위에 있는 듯이 행동하자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잘생긴 얼굴이지만 추악해도 너무 추악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발악하는 게 더 재미있지."

 이어서 라오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조금씩 앞으로 걸어갔다. 동시에 크게 외쳤다."

 네 말대로 신께서는 차마 용서치 못할 죄악을 저지르셨지만 우리를 보살핌으로써 용서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신이 우리를 통치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말이 안 됐던 거지. 본인부터 완벽하지 않은데 어째서 우리를 통치하겠다는 건가? 이 모든 것이 오만이지 않은가?""

 재미있는 견해로군요. 하지만 그렇다 해서 만물의 아버지가 세상을 멸망시켜 들었다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그의 오만이 더 큰 것이죠.""

 만물의 아버지께서는 적어도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노력하셨다!""

 아뇨. 다릅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도 만물의 아버지가 히르트의 본체라는 걸 알고 있을 터."

 루미너스도 완벽한 통치자라 할 수 없지만 만물의 아버지는 더욱 아니다."

 만물의 아버지께서는 인류가 악에 물들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을 멸하려 들었습니다. 저희를 믿지 않았다는 뜻이죠. 신께서 저희를 믿지 않았는데 과연 저희가 그 신을 믿어야 할까요?""

 네 말도 일리가 있겠지. 그러나 창조부터 인류의 악을 제거한다면 되지 않는가? 인류는 어째서 신의 죄악까지 받아들이면서 악을 영혼에 품어야 하는 건가?""

 역시 짱구 굴리는 속도가 다르다. 현자 밑에서 배워서 그런가."

 라오스는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기회를 잡았다 생각했는지 말을 이어갔다."

 인류가 처음부터 완벽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물의 아버지는 그런 인류를 만들어 싶어했을 뿐.""

 본인부터 완벽하지 않은데 어떻게 완벽해질 수 있다는 거죠?""

 기계처럼 만들면 되는 것이다.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한 사회가 아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처음부터 만들면 되는 것이다. 신은 그게 가능하지 않는가?""

 흐음······""

 나는 그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봤다. 저마다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이 몇몇 존재했다."

 이처럼 그가 말을 이으면 이을수록 집중하는 사람들도 한두 명씩 늘어난다. 보아하니 이걸 노린 모양이다."

 아직 주도권은 이쪽에 있다만 라오스가 원하는 건 의구심이다. 어째서 신은 인류를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었는가."

 실제로 신은 인류를 처음부터 완벽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 당장 멀리 가지 않아도 엘프와 마족이 바로 그 예시다."

 완벽한 사회라······ 흥미롭네요. 당신은 그런 세상을 원하는 건가요? 정작 본인은 느끼지도 못할 텐데?""

 죄악이 가득한 신에게 통치를 받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그리 되면 개개인은 행복해져도 인류는 불행해질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옛날에 읽은 책이 있다. 시간으로만 따진다면 20년이 훌쩍 넘었으며, 발매일은 무려 20세기 초다."

 하지만 문학계에서 깊은 울림을 선사함과 동시에 '디스토피아'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예를 들어주겠습니다. 당신이 말한대로 인류는 완벽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운명에 만족하지 않은 자가 없고, 더 나아가 불필요하거나 불편한 것들을 모두 제거했죠.""

 ··· ···""

 인류에게 더이상 가족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닌, 사회 속의 일원만으로 살아갈 테니까요.""

 누군가가 말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고."

 완벽하게 보이는 것조차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결함이 존재하고 있다."

 인류는 더이상 질병과 기근 속에서 허덕이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니까요.""

 과학이 발전해도 인류는 끊임없이 질병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프란츠 하버가 질소비료를 발명해도 세상의 어딘가는 기근으로 고생하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사회에서는 그것들이 필요없다. 모든 게 완벽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기 때문이죠.""

 ··· ···""

 문학, 철학, 사랑, 고통, 고뇌, 슬픔 등등. 이 모든 것들은 필요없습니다. 완벽한 세상 속에서는 무가치한 것이니까요. 그저 자기 할 일만 하면 됩니다. 본래부터 받은 운명에 순응하면서 서서히 죽어가겠죠. 그러나 사람이 죽어도 슬퍼하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누군가 그 자리를 대신할 뿐. 이것이 당신이 말하는 완벽한 세상일 겁니다.""

 이리 되면 과학은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다. 폭발적인 성장은 기록하지 못해도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문화는 영원토록 정체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러한 사회에 의문을 지니지 않고 순응하기 때문이다."

 정말 완벽한 세상입니다. 슬픔과 고통 같은 건 전혀 없이, 오로지 행복과 쾌락만으로 채워진 세상. 신들께서는 이런 세상을 만들 능력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셨죠.""

 ··· ···'"

 라오스는 답하지 않았다. 놈도 내 말을 듣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완벽한 걸 만들겠다고 나선 존재들 중에 멀쩡한 놈들은 없다. 결과물이 개판인 건 당연한 거고."

 나는 라오스에게서 시선을 떼어 군중들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내 말에 제대로 현혹됐는지 무언가 깨달은 표정이다."

 인류는 완벽해지라고 창조된 게 아닙니다. 영원토록 불완전하기에 영원토록 발전할 수 있는 존재인 거죠. 완벽해지는 순간 인류의 존재 의미는 상실하게 됩니다.""

 ··· ···""

 루미너스 님께서는 그걸 깨달으셨기에 멸망 후 잔존한 인류를 최대한 번성시킨 겁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비극들이 탄생했지만, 인류는 조금씩이나마 잘못을 깨닫고 성장하게 됐죠.""

 루미너스가 이를 깨달았는지는 모른다. 그냥 있어보이게 구라친 거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스스로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믿겠지."

 여기에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을 언급하면 금상첨화다. 그래서 직접 언급했다."

 정말 아이러니하네요. 마키나가 그랬듯이, 테르스 왕국도 한때 혁명이 발발했던 나라. 더 나아가 문화마저 발전한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의 왕태자가 완벽한 세상을 위해서 움직였다니,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너 이······""

 당신에게 문화는 땅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보다 못한 모양이군요.""

 팩트폭력을 연달아 때리자 라오스의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나는 그걸 보며 살짝 비웃어줬다."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못하잖아."

 만물의 아버지는······""

 쉿.""

 라오스가 무어라 말하려고 하자 나는 입가에 검지 손가락을 대며 말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의 입에서 그 어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입은 벙긋거리는데 소리가 나지 않는다."

 ······!""

 놈도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자기 목을 더듬거리며 최대한 노력했다. 하지만 나오지 않는 목소리."

 나는 빙긋 웃으며 라오스에게 마지막 사형선고를 내렸다."

 당신은 영원히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겁니다. 그 어떤 진실, 거짓도 말할 수 없을 겁니다.""

 !!@!#""

 그러니······ 죄를 달게 받으시길.""

 콰당!"

 내 말이 끝나자마자 라오스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전에 제압당하는 것이 먼저였다."

 케이트가 뒤에서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그대로 발로 차버렸으니까."

 발로 차이자마자 눈을 부릅 뜨고 입까지 벌린 모습이 꽤 웃기다."

 이윽고 케이트가 라오스를 제압한 사이 성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포박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물고기마냥 바둥거리는 라오스. 입을 연신 뻐끔거리는 게 진짜 물고기 같다."

 ··· ···""

 라오스가 어디론가 끌려간 후에 다시 군중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는 모습이다."

 솔직히 이제 할 말도 없다. 라오스도 붙잡혔고 진실도 밝혔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

 이에 나는 빙긋 웃고는."

 아직 축제가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목소리를 내었다."

 모두 즐겁게 즐겨주세요.""

 모든 게 마무리되었다."

 아직 할 일은 남아있긴 하지만, 나를 위협하던 것들은 더이상 없다."

 만물의 아버지는 지구의 신들에게 붙잡힌 상황이고, 라오스는 성기사들에게 끌려갔다."

 후에 거친 폭풍들이 몰려오겠지만 당장 내가 신경 쓸 건 아니다. 지금은 그냥 집에 돌아가고 싶다."

 라오스 때문에 돌아오기까지 조금 오래 걸렸다만 조금만 걷는다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 ···""

 ··· ···""

 나는 축제를 즐기라는 말을 한 뒤 단상에서 내려와 저택으로 걸어갔다."

 내가 저택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무슨 모세의 기적마냥 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터주더라."

 헬리움에서도 경험했던 일이지만 마이샬 영지에서 똑같은 일이 생기니 조금 당황스럽다."

 '제발 무릎만 꿇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내가 지나친 쪽의 사람들이 전부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있더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역시나 이런 건 부담스러웠다."

 목소리를 낼지어다······""

 침묵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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