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746)화 (747/763)

 저 사람이 노스인가?""

 정말 제논 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게 아니야?""

 노스의 등장에 떠들석했던 광장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드문드문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다만 금방 잦아들었다."

 케이트는 노스의 등장에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정녕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굳게 믿었던 신앙이 흔들리다 못해 부서지는 걸까."

 '부디······'"

 케이트가 그런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때, 단상 위에 올라선 노스는 긴장한 낯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세계 각 국에서 모여든 사람들. 이 사람들은 진실을 듣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원래라면 아이작이 퍼뜨렸어야 할 진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아이작은 사라졌다."

 ··· ···""

 바로 저 사람 때문에. 노스는 군중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푸른색 머리카락의 남자를 쳐다봤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자 자신에게 협박했던 남자, 라오스. 그는 계획대로 된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솔직한 마음으로,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다. 자신이 퍼뜨릴 진실은 세상에 큰 혼란을 몰고 올 테니까."

 더 나아가 라오스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이 가장 꺼림칙했다."

 '······할 수밖에 없나.'"

 하지만 노스는 소시민이다. 자기 목숨이 아까워 협박에 굴할 수밖에 없던 소시민."

 처음에는 아이작을 향한 열등감 및 질투 때문에 시작한 거지만, 그 결과가 참담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작도 안 하는 건데······'"

 자신이 밝힐 진실도 진실이다. 그러나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인해 밝히는 진실이라는 게 차이점이다."

 더구나 아이작이었다면 적절하게 포장해서 사람들을 납득시켰겠지. 자신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믿을 것이며 루미너스와 모라를 의심하게 되겠지. 신뢰를 잃어버린 신에게 존재 가치는 없다."

 그런 행동을 하려는 것이다. 당장 루미너스에게 벼락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을 신성모독."

 '자기 목숨은 아깝다는 건가?'"

 라오스도 그걸 알기에 스스로 나서지 않고 자신에게 떠맡긴 것이다."

 꼴에 목숨이 아깝다 하면서 남의 목숨은 파리처럼 여기는 그."

 노스는 순간적으로 손에 힘을 줬다가 이내 풀어버렸다."

 이래나저래나 단상 위에 올라온 거, 하는 수밖에 없다."

 세상에 혼란을 몰고 올 진실을 말이다."

 ······많은 분들이 모이셨군요.""

 노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조용히 말했으나 광장 전체에 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람들은 그가 입을 열기 시작하자 수근거림도 멈추며 집중에 들어섰다."

 노스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게 영 부담스러웠는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내 라오스의 시선을 느끼고는 두려움에 떨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아마 많은 분들께서 궁금해 하실 겁니다. 제논 님께서 어떤 진실을 밝히려는 건지. 그리고 어째서 제논 님이 아닌 제가 이 자리에 나섰는지.""

 ··· ···""

 그리고 많은 분들께서도 눈치채셨을 겁니다. 어째서 제논 님께서 그런 결말을 내셨는지. 그리고 신들이 어떤 진실을 숨기고 있는지.""

 노스의 말에도 군중들은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그 진실이 너무나도 궁금했으니."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지만 뇌피셜과 공인의 입에서 듣는 건 천지차이다."

 제논보다는 아니지만 노스도 공인이라 할 수 있는 인물."

 이에 노스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두려움에 덜덜 떠는 목소리로 외쳤다."

 지, 진실은······! 진실은 이렇습니다! 신들께서는······!""

 그 말과 함께."

 "번쩍!"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노스를 비추었다."

 구름이 끼어있던 하늘에서 화사한 빛이 내려온다. 노스는 그 빛을 멍하니 올려다 봤다."

 처음에는 신이 기어코 천벌을 내리는구나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것도 계획 중 하나였으니 상관없었다."

 하지만 빛은 내려오기만 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빛이 자신을 향해 비출 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정말로 노스가······?""

 노스조차 당황하고 있는데 군중들은 오죽할까. 그들은 빛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노스를 보며 수근거렸다."

 심지어 모든 흉계를 꾸몄던 라오스조차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 저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저, 저기 봐! 따, 땅에 뭔가 올라온다!""

 뭐?""

 어느 한 사람의 말을 시작으로, 군중들은 단상 밑의 땅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던 케이트도 마찬가지. 그녀는 눈을 천천히 뜨며 단상 아래를 바라봤다."

 '저기는······'"

 아이작이 히르트로부터 받은 씨앗을 기억하는가."

 그 씨앗을 어디에 심을 지 고민한 결과, 광장 중앙에 심자는 결론이 나왔다."

 알븐하임의 세계수는 거의 작은 도시 하나만한 크기를 자랑했지만, 그건 오랜 세월이 흘러서다."

 마이샬 영지의 광장은 본래 작디 작았던 규모를 보완한 거라 한계가 명백하다. 그래서 후에 리모델링을 거칠 예정이었다."

 '······새싹?'"

 그리고 씨앗을 심었던 자리, 그것도 정확하게 단상 밑에서 작디 작은 새싹이 돋아나 있다."

 이윽고 그 새싹은 눈에 띨 정도로 서서히 성장하더니 머지않아 단상을 뚫고 솟아났다."

 과장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단상을 뚫어버렸다. 빨라도 너무 빠른 성장이다."

 저게 무슨······""

 오······ 오오······""

 비현실적인 걸 넘어 초현실적인 광경에 케이트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새싹은 점점 성장해 나무 줄기로 변하고, 그 나무 줄기는 단상을 가득 메울 만큼 자라났다."

 스스스스-"

 ······어?""

 나무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무가 자라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예상은 틀렸다."

 두텁게 성장하던 나무 줄기는 중간에 성장을 멈췄으며, 형상을 바꾸기 시작했으니까."

 밑부분은 갈래가 두 개로 나뉘고, 중간 부분은 두께가 아주 약간 얇아졌으며, 상체는 조금씩 두꺼워지더니 양쪽에서 또다른 줄기가 돋아났다."

 ······사람?""

 누군가의 한 마디처럼 나무는 사람의 형상으로 서서히 변했다."

 평범했던 나무 줄기는 뼈와 살를 대신했으며 풍성했던 잎사귀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으로 변화한다."

 사람은 사람의 뱃속에서 태어나 그 존재를 갖게 되지만, 지금 사람들의 눈에는 전혀 아니다."

 아이작의 딸, 그레이스가 빛을 뿜어내며 태어났듯이 앞의 사람도 '신화'적인 의미로 탄생하고 있었다."

 시, 실례합니다.""

 잠깐만······ 잠깐만 지나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던 중 몇몇 여인들이 빼곡히 밀집된 군중들을 파고들어 맨 앞으로 나아갔다."

 본래 저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마리와 아이작의 여인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보고 서둘러 밖으로 나선 것이다."

 저건······""

 ······설마?""

 한 그루의 나무가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여인들."

 그러나 표정만큼은 달라도 그들의 마음 속에는 '기대'라는 감정이 품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신으로 바뀌도록 만들었다."

 붉은색······ 머리카락······""

 아아. 붉은색이다. 붉은색이야!""

 누군가 환호하듯이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카락이 서서히 붉은빛으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비단 머리카락뿐만 아니다. 아이작의 애인들 입장에서는 익숙하디 익숙한 외모였다."

 ······진짜 사람 걱정시키네.""

 ······흐윽.""

 마리는 기가 찬다는 듯이 중얼거렸으며 세실리는 감정에 못 이겨 눈물을 흘렸다."

 흑······ 평범한 사람이라 해놓고서······ 뭐가 평범해······""

 그러는 와중에도 복잡한 감정이 담긴 팩트를 꺼내는 세실리."

 실제로 지금 사람들 앞에서 펼치지는 '기적'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리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세실리를 조용히 안아주면서 단상 쪽을 쳐다봤다."

 피부까지 돋아나 완전한 사람이 된 나무. 다소 민망한 부분은 커다란 나뭇잎 한 장으로 가린 게 포인트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음심 같은 건 들지 않았다. 도리어 마음 속 한 구석에서 경건함이 들 뿐."

 아이작이 돌아왔다. 역사를 넘어 신화로 기록될 정도로 화려하게 말이다."

 ··· ···""

 뒤이어 감겨있던 아이작의 눈이 서서히 떠지며 모두와 마주할 수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과 함께 마이샬 가문의 상징 중 하나인 황금색 눈동자. 그러나 그 밝기가 심상치 않다."

 원래도 채도가 밝았던 눈동자였으나 정말로 눈에서 빛이 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아······ 이건 정말로······ 기적······""

 기적이다······""

 내 앞에서······ 기적이······""

 신화 속에서 나올 법한 기적이 눈 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저마다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아이작의 부활을 직감했던 케이트부터 시작해 성기사들, 더 나아가 근처의 사람들까지."

 진실을 듣기 위해 광장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홀린듯이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딱 한 사람, 흉계를 꾸몄던 라오스만 제외한다면. 그의 표정은 정말 볼만했다."

 '좆됐다'라는 감정을 얼굴로만 표현했다고 해야 되나."

 아무튼 라오스 입장에서는 모든 일이 꼬이다 못해 한 방에 역전된 셈이니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 일어서세요.""

 아이작은 무릎을 꿇은 군중들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작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다."

 그에 군중들은 고개를 들며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서 하늘의 빛은 아이작을 내려쬐고 있었다."

 노스 씨.""

 네, 네?""

 노스 씨도 일어나세요.""

 아······ 네, 네!""

 다른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기적을 목격한 노스는 부리나케 일어났다."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을 보아하니 아직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노스 씨는 여기 계세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네, 네······""

 무슨 할 일이 남아있다고 남겨두는 것일까. 노스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뒤이어 아이작은 부드러운 눈길로 좌중을 둘러봤다. 언제라도 아이작의 말을 듣기 위해 준비돼 있는 사람들."

 이제 시작이다. 아이작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뜨더니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저는 신을 대신하여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 ···""

 강제로 나서는 게 아닌, 저 스스로 그 분들을 대신하여 목소리를 전하러 왔죠. 하지만 여기 있는 노스 씨는 아닙니다.""

 아이작이 노스를 언급하며 말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한 쪽으로 몰렸다. 당연하게도 노스다."

 노스는 수많은 사람들이 시선을 보내자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대로 몰매를 맞고 죽는 건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해도 목숨만큼은 살려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이때까지 내가 한 짓을 보면······'"

 이래나저래나 결국 자신의 목숨은 없던 거다. 그리 생각하자 초연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에 노스가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드려던 찰나, 아이작이 예상 외의 발언을 꺼냈다."

 노스 씨는 강제적으로 이 자리에 나서서 목소리를 내려고 했습니다. 전혀 원치 않았으나 목숨을 빌미로 협박을 당한 것이죠.""

 ······제논······ 님?""

 저게 무슨 소리야?""

 목숨을 위협당했다고? 누구한테?""

 아이작의 말에 술렁이기 시작한 광장. 노스는 자신을 변호해준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