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만물의 아버지가 나에게 손을 뻗는다. 나는 최대한 두 다리를 움직이며 거리를 벌렸다."
억지로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입에서 튀어나오는 피의 양이 더 많아졌다."
의식 또한 서서히 멀어지는 것이,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것 같다."
꽈악!"
하지만 이런 발악조차 못하게 막겠다는 듯, 만물의 아버지가 내 팔을 잡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와 동시에 팔에서부터 신비한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왔다."
기분 나쁜 기운이 아닌, 청량하기 그지 없는 기운."
꽤 나쁘지 않은 발악이었구나.""
··· ···""
하지만 영혼이 떠나기 전에 막는다면 의미가 없는 짓이지.""
그와 동시에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쁜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피식 웃었다. 심장에 칼을 박는 것만으로는 떨쳐내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쿨럭.""
푸악!"
기침을 하자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이대로 간다면 만물의 아버지가 심장을 고치겠지."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내 운명이 '죽음'에 확정짓도록 만들어야 된다."
나는 심장 쪽에 박혀있는 단검을 바라보다가 손잡이를 꽉 쥐었다."
촤악!"
이윽고 단검을 빠르게 뽑은 후."
콱!"
그대로 목 부근, 그러니까 최대 급소 중 하나인 경동맥을 찔러버렸다."
심장을 찔렀을 때부터 훨씬 더 끔찍한 격통이 몰려왔다."
심장 마비에 걸렸던 경험 덕분에 심장을 찌르는 건 괜찮다만, 목은 더 아프다."
너, 너······""
꺼윽······""
만물의 아버지는 내가 끝까지 발악할 줄은 몰랐는지 크게 당황했다."
나는 꺽꺽거리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루미너스도 그렇고 모라도 그렇고 이 세상의 신들은 내 미래를 읽지 못한다."
그렇기에 찰나의 시간을 벌 수 있던 것이다. 만물의 아버지는 내가 이정도까지 죽음을 원할 줄은 몰랐겠지."
'이제······'"
의식이 멀어져 간다. 나는 눈 앞이 서서히 감기는 느낌이 들자 몸에 힘을 뺐다."
의식이 멀어져 간다는 건 내 운명이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뜻."
그 말은 즉슨······"
대앵!"
지구의 신들이 실시간으로 내 위치를 파악했다는 것이다."
크흑!""
마음 속까지 청명해지는 타종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만물의 아버지가 내 팔을 놓으며 침음성을 흘린다."
귀가 아니라 정말로 마음이 울리는 것 같은 느낌. 잠시나마 의식이 또렷해지는 기분이다."
댕!"
다시 한 번 울리는 타종 소리. 바닥에 쓰러진 나는 눈만 간신히 굴려 만물의 아버지 쪽을 쳐다봤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손바닥이 만물의 아버지를 짓누르고 있다."
끄으윽······""
차이점이라면 벌레처럼 찌그러졌던 현자와 다르게 강경히 버티고 있다는 걸까."
완전한 부활이 아닌, 성자의 몸인데도 저 정도면 굉장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역시 창조신은 창조신이다."
쩌저적!"
얼마 가지 않아 거대한 황금 손바닥에 균열이 일어났다."
힘으로 부순 건지 신성으로 부순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시간'만큼은 벌 수 있었다. "
여기 있었구나. 아이야.""
듣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목소리."
지난번에는 공간 전체가 울리는 목소리인데 지금은 다르다."
나는 최대한 고개를 들어올리며 그 주인을 보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이미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몸이어서 간신히 발만 쳐다볼 수 있었다."
'맨발에······ 주황빛이 감도는 옷······'"
대충 이것만 봐도 누구인지 알 것 같다. 나는 속으로 진한 미소를 지었다."
내 죽음을 담보로 한 도박이었지만 성공한 모양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
쩌엉!"
그 사이 유리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황금색 빛무리가 터져나왔다."
유추하건데 만물의 아버지가 여래신장을 전부 박살낸 모양이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 이미 상황은 이쪽으로 기울어진 지 오래였으니."
설마 혼자 온 건가?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혼자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걸 알 텐지.""
의기양양한 만물의 아버지의 음성. 그럴 수밖에 없다."
부처님이 지구의 책임자 중 한 명이라지만 만물의 아버지는 말 그대로 '창조신'"
부처님조차 자연의 순리 속에서 태어나셨으니 제압하기에는 상당히 힘들 것이다."
'혼자라면 말이지.'"
파바박!"
그 생각과 함께 은빛의 무언가가 만물의 아버지 머리 위에 비처럼 쏟아졌다."
만물의 아버지도 그 공격을 미리 눈치챘는지 몇 걸음 물러가는 것으로 가볍게 피했다."
은빛의 무언가는 십자가 형태를 띄고 있었다. 현자의 손발에 못처럼 박아넣었던 그 은빛 십자가."
내 말대로 차라리 십자가에 매달리지 그랬느냐.""
··· ···""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그건 힘들었습니다."
나는 근엄하면서도 자애로움이 묻어나오는 핀잔에 피식거렸다."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맨발에다가 흰색 옷을 입고 계시는 분."
지구의 종교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전반적인 순리에 책임을 지시는 분들이 모두 도착하셨다."
그래도 발상 하나는 훌륭하구나.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여 우리가 알아차리도록 만들다니. 저 죄인만 아니었더라면 모든 게 좋았을 것을.""
······죄인?""
예수님의 키워드가 '죄'라서 그럴까. 만물의 아버지가 얼척이 없다는 뉘앙스로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모든 죄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님이다. 종교에서도 예수가 모든 죄를 씻어줄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런 존재가 너는 죄인이다라고 칭한다? 그냥 답도 없는 놈이라고 못 박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본래 이 세상의 최고신은 죄인이 아니었지. 그러나 이제는 죄인이다.""
······그 죄가 누구에게 왔다고 생각하나?""
같은 무력이어도 상황에 따라 다른 법.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력을 휘두르는 것과 단지 욕심에 못 이겨 무력을 휘두르는 건 다르지. 그렇기에 너를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루미너스와 히르트의 결정적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루미너스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나머지 하나의 존재로써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참작의 여지가 충분히 가능한 거고, 씻을 수 있는 죄악이다. 본인도 후회하고 있지 않는가."
반대로 만물의 아버지는 아니다. 본래 하나였던 존재가 두 개로 갈라져서 그런지 악의란 악의로 똘똘 뭉쳐있었다."
'이걸로······ 되려나······'"
의식이 점점 멀어진다. 어떻게든 눈을 뜨고 싶지만 이제 힘들다."
영혼이 육신을 벗어나고 있다는 의미겠지. 이분들에게 모든 걸 맡기면 되겠으나 걱정되는 게 있다."
'이 세상은······ 어떻게······'"
이 세상의 신들과 지구의 신들은 계약을 맺었다."
나에게 해를 가하는 순간 이 세상을 지배하겠다고. 무력을 써서라도 그리 만들 거라고."
그리 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들은 멀쩡할 수 있을까."
특히 가장 걱정되는 건 세실리와 케이트다. 이들은 종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더 충격적일 터."
그러한 걱정들을 마음 속에 안은 채, 나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빌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이야.]"
의식이 끊기기 직전, 내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목소리."
처음 듣는 목소리였기에 순간 누구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너의 세상은 너로 인해 안전해질 것이니.]"
하지만 이 다음에 이어진 말과 함께."
[이 세상에······]"
내 시야가 순식간에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빛이 있으라."
온 세상이 빛으로 물들어 있다."
보기만 해도 경건함이 드는 빛이었으나 눈이 부시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저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편안하다. 바다의 부유감이 아닌 하늘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느낌."
바다의 깊은 심연 속으로 끌려가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나는 것 같다. 이런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으음······""
나는 침음성을 흘리며 눈을 떴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힘을 빼고 싶다만 할 일이 남았다."
여기는······""
눈을 뜨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건 광활한 하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다였는데 지금은 푸르런 하늘이다."
중간중간 구름이 끼여있어 마음이 절로 평온해진다. 사방이 빛으로 가득한 건 덤."
일어났느냐.""
멍하니 하늘을 둘러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어느 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처님과 예수님과 다르게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 평범하디 평범한 목소리."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는 목소리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뒤를 바라봤다."
꽤 고통스러웠을 텐데 결국에는 성공했구나.""
··· ···""
노인이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풍성한 수염이 특징적인 노인."
여기에 고대 그리스 복식 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인자함마저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이치에 통달한 '신선'을 묘사한다면 딱 이렇게 생겼을 것 같다."
물론 이 생각들은 앞의 노인에게 있어서 무례한 것이다. 사실 진작부터 이 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설마 하······""
쉿.""
내 진명을 입에 담으려 하자 입에 검지 손가락을 갖다 댄다. 나는 그 행동에 입을 꾹 다물었다."
뒤이어 지구의 최고신은 인자한 미소를 띄더니 뒷짐을 진 채로 내게 말했다."
가급적이면 아버지 혹은 최고신이라 부르거라. 이 세상의 달이 말하지 않았느냐? 최고신들은 그 진명을 부르는 것만으로 강력한 힘을 얻는다고.""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이미······""
그렇기에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지. 괜히 내 진명을 외치며 순리로 돌아가는 이들이 있겠느냐?""
··· ···""
최고신의 진명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하는 건 균형을 위해서란다. 자칫하다가 나에게 힘이 쏠리게 되면 자연스레 타락의 길로 걸을 테니.""
한 곳에 밀집된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이 말과 일맥상통하는 듯한 설명이다."
종교의 위세는 시대가 흘러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설령 약세하더라도 종교는 어마어마한 힘을 포함하고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사이비 종교를 보아라. '믿음'이라는 것 자체부터가 종교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최고신의 진명을 함부로 발언하지 못하는 거겠지. 무섭다면 무서운 일이다."
······아버지.""
말하거라.""
이 세상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