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741)화 (742/763)

 그거야 바다만이 우리의 악의를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이 세상을 뒤덮기 위해서는 바다만한 것도 없지.""

 그거 참 설명 고맙습니다. 나는 마른 기침을 하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게리오스 왕국이 바다에 뒤덮힌 일. 루미너스와의 일전 이후 온 세상이 바다에 덮힌 일."

 그런 것들을 고려하면 세상을 멸망시키는 데에 '대홍수'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바다를 이용한 대홍수이긴 하지만 어찌 됐든 간에 비슷한 개념일 터."

 후우.""

 나는 입 안의 짠 기운이 모두 가시자 숨을 몰아쉬었다. 그 사이 히르트가 내 앞에 당도했다."

 루미너스가 나를 바다에 봉인시킨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니라. 너희 지구에서도 바다가 행성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들었다. 왜인줄 아느냐?""

 ······바다에 몇 번 덮혔기 때문이겠죠. 콜록.""

 정답이다. 그쪽 최고신도 바다를 이용해 세상을 멸망시켰지.""

 그런 내용이 있었나.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만물의 아버지 히르트가 끝까지 멸망에 집착하는 이유도 악의란 악의가 뭉쳤기 때문일 터."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히르트 같은 창조신은 바다가 등장하고 난 이후에 태어났다."

 그렇다면 지구는? 지구에서도 창조신과 비등한 존재가 있을 텐데 어째서 언급이 안 되는 걸까."

 내 말은 신화에 등장하는 각종 대지모신이 아닌, 행성 그 자체를 말하는 신을 말하는 것이다."

 '설마······'"

 내가 속으로 설마하고 있을 때였다."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히르트가 가설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꺼냈다."

 신들을 완전히 소멸시키려면 하나의 방법밖에 없지. 그 신을 대신하는 직위를 얻고, 원래의 신을 완전히 잊혀지게 만드는 것.""

 ··· ···""

 너희 지구에서 언급되는 '고대 신'들이 바로 그 적절한 예시라고 할 수 있느니라.""

 이름을 언급하거나 아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린다는 고대 신. 역시 지구에서도 존재했다."

 하지만 고대 신에 관련된 이야기는 이미 '문화'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재미로 볼지언정 진지하게 파고드는 사람은 적을 터."

 설사 고대 신이 깨어난다고한들, 그쪽 신들이 직접 나서서 대응하겠지. 지구의 창조신은 그런 식으로 사라졌다.""

 설명 고맙습니다.""

 곧 있으면 사라질 놈에게 이정도 자비는 베풀어야지.""

 좆 까고 있네."

 나는 속마음이 들키지 않게끔 최대한 조절했다."

 어떻게든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탈출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일단 물리적으로 탈출하는 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애당초 이 공간 자체가 그런 곳이니."

 '지구는 천지창조로 탄생한 게 아닌가?'"

 아니. 맞긴 할 거다."

 천지창조 이전의 세상이 멸망하고, 그 후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다면 말이 되니까."

 나는 여러모로 깨닫게 되는 지구의 역사에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알게 되는 건지."

 앞으로 알기 싫어도 수많은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그리 만들 테니.""

 ······제가 당신의 종 노릇을 할 거라 생각하세요?""

 입을 잘 놀리는 것과 달리 이해력은 낮나 보구나. 나는 그리 만들 거라고 했다.""

 염병.""

 창조신이자 최고신 앞에서 시원하게 욕을 날려버렸다."

 히르트는 그게 마음에 든 건지 피식거릴 뿐이었지만."

 나는 어느 정도 몸 정비가 끝나자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덩치가 덩치다보니 고개를 들어야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어차피 이리 된 거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예정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셔야······ 아니. 이 질문은 그만두겠습니다.""

 만물의 아버지 히르트에게 이 질문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

 자연의 어머니와 다르게 만물의 아버지는 '엄벌'만을 주기 위해 탄생했으니."

 그러므로 설득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만물의 아버지를 직접적으로 쓰러뜨리는 것밖에 답이 없다."

 아까도 비슷한 질문을 했지만, 정말로 지구의 신들이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영혼의 복제고 나발이고 저를 건드리는 순간 낌새를 알아차릴 텐데?""

 상관없다. 그 전에 이 세상부터 멸망시키면 되니라. 내 목표는 오직 그것 뿐.""

 방금 전에는 저쪽도 피해를 입을 거라 하셨으면서?""

 그렇다 해서 내 궁극적인 목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라.""

 나는 눈쌀을 찌푸렸다. 무슨 되도 않는 말을 계속 지껄이는 건지."

 분리된 존재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악의가 똘똘 뭉쳐서 그런 건지 몰라도 오락가락한다."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

 지구의 신들은 필멸자의 세상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않는다."

 이 세상이 지구의 신들 손에 넘어가도 비슷한 방식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

 마법과 마나의 존재가 일찍 발견됐다는 게 변수지만, 흐름 자체는 지구와 비슷했으니."

 이래나 저래나 히르트의 계획은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이다. 아주 엿 같게도."

 ······좋아요. 그럼 하나 더. 라오스 그 인간이 왜 당신을 모시는 거죠?""

 그 놈은 나를 숭배하는 게 아니니라. 단지 너에 대한 열등감과 증오로 나를 찾은 거지.""

 ··· ···""

 그 미친 새끼가 고작 그런 이유로 이 사단을 만든 거구나."

 설마설마했는데 너무 직선적이고 간단한 이유라 헛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히르트는 흥미롭다는 기색으로 라오스에 대해 입을 열었다."

 참 재미있는 놈이더구나. 필멸자를 기준으로 많은 것들을 갖췄으면서 고작 자존심 하나 때문에 자기 왕국을 바치려 하니까.""

 ······잠깐만요. 왕국을 바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당황스러워하며 묻자 히르트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 부활이 이루어지는 날, 놈의 왕국은 그때처럼 나를 도와줄 것이니라.""

 ··· ···""

 필멸자들은 정말 재미있더구나. 저마다 다른 이유로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걸 보면.""

 설마 게리오스 왕국을 말하는 건가. 나는 낯빛을 딱딱하게 구겼다."

 그리 된다면 악마 전쟁보다 더한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서쪽 끝이었던 게리오스 왕국과 달리 테르스 왕국은 중앙에 있었으니."

 모든 인류가 힘을 합쳐 싸우긴 하겠다만 그전에 만물의 아버지의 진명이 밝혀지면 답이 없다."

 ······그렇다면 제가 그걸 막아야겠네요.""

 나는 그리 말하며 오른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단검을 꺼내들었다."

 원래 쥐고 있던 도끼는 저 멀리 날아가버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른다."

 이 단검이야말로 마지막 발악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끝까지 저항할 셈이냐?""

 네. 제가 여기 있는 동안 라오스가 진실을 밝히면 그대로 끝이겠죠. 아닌가요?"

 그래. 너랑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 이유지.""

 내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동안 제논 축제는 더욱 가까워졌을 터."

 더 나아가 이 공간이 어떤 식으로 시간이 흘러가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어쩌면 하루가 지났을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제논 축제가 끝났을 수도 있다."

 '꼬박꼬박 잘 대답해주는 이유가 있었어.'"

 내가 시간을 벌기를 원하는 것처럼 만물의 아버지도 시간을 벌고 있던 거다."

 시간의 흐름만큼은 만물의 아버지조차 어떻게 하기 힘들 테니까."

 그런고로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야 된다."

 아무리 너라고 해도 도망치지 못할 것이니라. 네 육신은 이미 이곳에 속박돼 있을 테니.""

 뭐. 그렇겠죠. 제가 아무리 발악해봤자 당신을 이기지는 못할 겁니다.""

 불행하게도 진실이다. 어떤 식으로 발악해봤자 나는 만물의 아버지를 이길 수 없다."

 물리적인 형태는 물론이요, 다른 것들까지 전부 포함해서 말이다."

 자. 여기서 마지막 질문을 하겠습니다. 히르트 님.""

 말하거라.""

 당신은 제 미래를 읽을 수 있나요?""

 내 질문에 히르트가 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건 왜 묻냐는 모습."

 하지만 이내 상관없다 생각한 것인지 시원하게 대답해줬다."

 아니. 읽지 못한다. 너는 아예 다른 차원의 영혼이니까.""

 그렇단 말이죠?""

 그러면 뭐가 달라지지? 네 육신은 이곳을······""

 맞아요. 제 육신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겠죠. 그리고 저 또한 당신을 물리적으로 쓰러뜨릴 수 없을 테고요.""

 나는 그리 말하며 단검을 스리슬쩍 역수로 쥐었다."

 혹시 제가 한 말 기억하시나요? 만물의 아버지께서는 지혜로우셔도 현명하지는 못하다고요.""

 ······그 말을 왜 지금 와서 하는 거지?""

 왜냐면 지금도 똑같은 실책을 저지르셨기 때문입니다.""

 지혜와 현명함은 비슷해 보여도 다르다."

 간혹 똑똑한 사람들이 재앙급에 달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더러 있지 않는가."

 자신의 지혜를 너무 과신한 나머지 다른 곳을 둘러보지 못하고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다."

 저는 당신을 이기지 못하지만······""

 나는 말을 흐리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갔다. 머릿속을 읽히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잡생각을 하는 건 덤."

 이윽고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른 분들은 가능하겠죠. 안 그런가요?""

 ······네 놈!""

 읽었구나."

 만물의 아버지는 내 생각을 읽었는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두 손으로 단검을 쥐고는."

 푸욱!"

 그대로 내 심장에 찔러넣었다."

 건강한 정신을 얻어 성자를 넘어 초월자로 승격한 존재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루미너스가 알려주기를, 예수와 부처가 공통적으로 행했던 행동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두 성인의 최후를 상기하고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예수는 모든 이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렸고, 부처는 깨달음을 전수한 후에 열반에 들어섰다."

 다시 말해 '죽음'을 경험해야 된다는 뜻이다. 이후에 부활을 하든 뭘 하든 간에 상관없다."

 그들의 희생으로 인류에 큰 깨달음을 선사하고, 종교로 재탄생하게 된다면 진정한 성인이 될 테니까."

 '이미 한 번 죽은 거 뭐가 무섭다고.'"

 죽음 자체는 무섭지 않다. 전생에서 부모님을 잃고 건강 같은 건 챙기지 않았으니까."

 비록 죽음 자체가 이 세상의 악마 숭배자 때문이라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래도 심장 마비는 조금 아프더라. 죽음의 순간이어서 그 격통만큼은 생생히 기억하다."

 하지만 생생히 기억하는만큼 다시 그 고통을 겪는 데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빨리 가야해.'"

 죽는 건 두렵지 않다. 그러나 내가 죽어 사라지는 게 두렵다."

 선행이었던 내 행동으로 소중한 부모님들을 잃어버렸다. 그 트라우마는 시간이 흘러서도 유효했다."

 아무런 인간 관계가 없었더라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들이 슬퍼하는 건 싫다."

 전생에 남아있던 마음 속의 짐은 다름아닌 친구들이다. 친구들이 내 시체를 봤을 때 어떤 반응이었을지."

 그렇기에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만물의 아버지를 직접적으로 처치할 수 없다면, 그게 가능한 존재들을 부르자."

 ······쿨럭.""

 그것이 내가 내 심장을 찌른 이유다. 심장을 찌르고 얼마 가지 않아 입에서 피가 한 움큼 뿜어져나왔다."

 하지만 고통만 찾아올 뿐 의식이 멀어지지는 않았다. 이 빌어먹을 건강한 신체가 억지로 막는 거다."

 허튼 수작을 부리는구나! 이대로 순순히 보낼 것 같느냐!""

 만물의 아버지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크게 외쳤다. 다급함이 섞여있다."

 방금 전 그가 이리 말했다. 내 육신은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반대로 '영혼'은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겸사겸사 버스터 콜도 발동시켰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목이 잘렸다면 즉사였겠지. 그러나 심장은 약간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죽음에 이르는 건 변함이 없을 터. 하지만 만물의 아버지가 조치하면 의미가 없다."

 내 육신과 운명이 '죽음'에 도달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야 된다. 만물의 아버지가 강제로 회복시키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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