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생각을 할 여유가 있느냐?""
모건 왕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만물의 아버지가 도끼를 들어올리며 지적한다."
확실히 관찰이고 나발이고 일단 이것부터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내가 아니라 클라크 할아버지가 전부 도맡겠지만."
양심이 아주 터졌구나.""
이제 와서.""
"콰앙!"
만물의 아버지가 도끼를 강하게 내려찍으면서 파편이 사방으로 튀겼다. 다행히 이번에도 가뿐히 피했다."
뒤이어 내 몸을 통제하고 있던 클라크 할아버지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더니 공격을 가했다."
만물의 아버지가 무기를 회수하기 직전, 손목을 향해 도끼를 강하게 내려친 것이다."
"서걱!"
별로 묘사하기 싫은 느낌과 함께 귀에 들어오는 깔끔한 소리."
검이 아니라 한 손 도끼로 내려쳤음에도 만물의 아버지의 손 하나가 깔끔하게 절단됐다."
쿵-"
배틀액스를 들어올리려다가 이 사단이 난 거라 자연스레 바닥에 떨어지는 배틀액스."
클라크 할아버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목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서걱!"
모건 왕, 그러니까 만물의 아버지의 목은 너무나도 쉽게 떨어졌다."
얼마나 깔끔하게 베였으면 이음새가 나중에 생기는 걸까."
이윽고 이음새가 새겨진 목은 중력에 따라 툭- 하고 힘없이 떨어졌다."
"쿠웅!"
몸을 통제하는 목이 떨어져나감으로써 자연스레 그 거구 또한 뒤로 쓰러졌다."
나는 피는커녕 숨 한 번 고르지 않고 쓰러뜨린 만물의 아버지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쉽다. 쉬워도 너무 쉽다. 만물의 아버지는 대놓고 기습을 가했는데도 그 어떤 유효타조차 내지 못했다."
어째 너무 쉽다 생각되는구나.""
여기가 끝은 아니겠죠.""
잘 아는구나.""
내가 그리 말하자마자 떨어져나간 목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목 위가 없는 육체가 슬금슬금 몸을 일으켰다. 손을 휘적거리는 걸 보아 목을 찾는 듯했다."
"뻐엉!"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클라크가 아니다."
그는 피조차 흘리지 않는 얼굴을 발로 멀리 차버렸다."
모건 왕의 얼굴이 그대로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여기까지만 해도 가차없다는 생각이 들기에는 충분하지만, 클라크 할아버지는 한 술 더 뜨셨다."
"콰직! 콰악! 콱!"
무슨 생선 회를 뜨는 것마냥 모건 왕의 신체를 조각조각내기 시작했으니까."
일어나려던 몸을 왼손으로 밀쳐 도로 눕힌 후, 그대로 도끼를 이용해 아주 작살을 내셨다."
가장 먼저 자르기 쉬운 팔부터 시작해서 두터운 몸통과 다리까지."
손도끼밖에 없어서 조각을 내는 데에 한계가 있었으나 클라크는 개의치 않고 꾸준히 내려쳤다."
'······피가 전혀 흐르지 않아.'"
얼굴을 시원하게 발로 찼을 때 깨달은 거지만 토막을 내도 피를 흘리지 않았다."
모건 왕은 생물학적으로 따지자면 이미 죽은 존재다. 그걸 대신해 만물의 아버지가 깃든 거고."
어째서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갖고 있는 동안에도 클라크 할아버지는 열심히 토막을 내고 계셨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냐.""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요?""
이런 놈은 죽여도 죽여도 부활할 거다.""
단신으로 악마 숭배자 수장들을 처치한 경험에서 나온 확신."
나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
그렇게 한참동안 클라크 할아버지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을 때쯤."
네 놈이었구나. 내 아이들을 방해한 게.""
?!""
느닷없이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리더니 오싹한 느낌이 전신을 사로잡았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의 통제권을 갖고 있던 클라크 할아버지가 서둘러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뒤를 돌아봤을 때는 이미 늦었다. 도끼가 아니라 손바닥이 내 얼굴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니."
쑤욱!"
우굽?!""
큰일난다는 위기감도 잠시, 내 입 안에 두터운 손가락이 강제로 침범했다."
이어서 손가락은 내 혓바닥 밑에 있던 세계수의 씨앗을 집더니 그대로 잡아당겼다."
[아. 제기ㄹ······]"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던지라 클라크 할아버지조차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결국 내 입에서 세계수의 새싹이 빠져나가면서 클라크 할아버지와의 영혼 공유 또한 취소됐다."
커흡! 콜록! 콜록!""
장난은 그만두도록 하마.""
"으직!"
짜디 짠 바닷물 특유의 맛에 기침을 하는 동안 만물의 아버지가 새싹을 갈갈이 짓이겼다."
나는 최대한 정신을 차리며 앞을 쳐다봤다. 분명 토막냈을 모건 왕의 육체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고 있는 동안 그가 짓이긴 세계수의 씨앗이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설마 신성 때문에?'"
본래의 차원에서 추방당한 모라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머나먼 과거에는 신들이 물리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며, 육체가 파괴되어도 신성이 멀쩡하면 다시 부활한다고."
모건 왕의 신체를 빼앗은 만물의 아버지도 그런 식인 건가 싶었다."
비슷하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육체가 없었지. 하지만 적절한 시간에 제 발로 오더구나. 지구의 속담으로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다라고 하던가?""
콜록······""
지구의 속담까지 잘 알고 있구나. 나는 기침을 토해내며 고개를 간신히 들어올렸다."
방금 전 토막났던 신체와 달리, 매우 멀쩡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모건 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죽여도 죽여도 다시 부활하는 몸. 아무래도 모건 왕이 신체가 성자에 준했던지라 이런 결과가 나타난 모양이다."
'그런데 어째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거지?'"
신체도 있고 신성도 멀쩡한데 대외적인 활동을 한 적이 전혀 없다."
바닷속에서 이 사원만 멀쩡한 이유와 크게 연관된 걸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입을 놀리는만큼 머리도 비상하구나. 네 말도 맞지. 이 공간은 내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세워진 곳. 필멸자도, 초월자도 찾을 수 없는 차원이니라.""
그래서 빌어먹을 라오스가 나를 바다로 떨어뜨린 거구나."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공간이라면 지구의 신도 내 위치를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지구의 신이 트집을 잡고 난입할 수도 있는데 어째서 이러는 걸까. 더 나아가 나를 해한다면 이 세상은 멸망하게 된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곧 너가 될 것이요, 너는 곧 내가 될 터이니.""
그게······ 무슨······""
내가 의문을 가지자 만물의 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무릎을 서서히 굽혔다."
이어서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미소를 짓더니 사뭇 섬뜩해질만한 사실을 하나 꺼냈다."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로서 너와 똑같은 영혼을 만드는 게 어려울 것 같느냐?""
··· ···""
더 나아가 내 신도가 세상에 내 이름을 널리 알릴 것이니라. 그리 된다면 나는 비로소 완벽해지겠지.""
그래. 이름."
그 빌어먹을 이름이 대체 뭐길래 이리 난리를 치는 거지."
나는 여전히 말이 나오지 않아 기침만 토했다. 방금 전 손가락을 입에 넣었을 때 수작이라도 부린 모양이다."
만물의 아버지는 내 생각을 읽고는 피식 웃었다. 이어서 천천히 일어서더니 두 팔을 벌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 궁금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너도 짐작하고 있지 않느냐? 내 이름이 무엇일지.""
······그래. 만물의 아버지의 말이 맞다."
하지만 부정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 된다면 이 세상은 위태위태한 걸 넘어 낭떠러지에 매달린 수준이었으니."
"-행성의 이름을 우리 어머니의 이름으로 하면 안 돼. 그리 된다면 너무 강한 힘을 얻거든."
"-아버지는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는다."
"-바다도 결국 자연 아니야? 난 그렇게 알고 있는데."
"-너는 그 이름을 이미 알고 있다."
나는 여태까지 만물의 아버지의 이름과 연관된 말들이 떠올랐다. 이게 왜 지금 떠오르는 걸까."
그러는 사이 만물의 아버지는 두 팔을 펼치더니 승기를 잡았다는 목소리로 외쳤다."
[경배하고, 두려워하거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바다가 되고, 그 바다에서 만물과 자연이 탄생할지어니!]"
입에서 내는 게 아니라 머릿속이 울리는 듯한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에 최대한 저항하면서도 문득 알븐하임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히르트와의 만남이다."
나에게 세계수의 씨앗을 넘겨준 히르트는 슬퍼하는 표정으로 이리 말했었다."
"-무슨 진실을 드러나든······"
[우리가 바로 만물과 자연의 진정한 부모.]"
만물의 아버지와 자연의 어머니."
"-'"
"우리"
"'를 너무 미워하지 마렴."
['"
"히르트"
"'이니라!]"
그들은 본래 한 몸이었다."
만물의 아버지와 자연의 여신이 모두 '히르트'였다는 진실."
그 진실 하나로 모든 의문점이 풀리는 느낌이다. 어째서 신들이 이름을 알리지 않은 이유."
자연의 여신으로 널리 알려진 히르트가 사실 만물의 아버지와 동일인물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그 충격은 어마어마하겠지."
만물의 아버지는 악마 숭배자들이 숭배하는 신이다. 이리 된다면 세상에 큰 혼란이 빚어질 테고, 그 틈이 서서히 벌어질 수도 있다."
내가 말했듯이 이 세상은 절벽 끝에 간신히 서 있는 수준이다. 누군가 살짝 툭- 밀기만 해도 아래로 떨어지겠지."
'그래. 이래야 신화답지.'"
같은 존재지만 두 개의 자아. 신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실이다."
이집트 신화에서 창조신이자 태양신으로 널리 알려진 '아툼'과 '라'."
이들은 같은 존재지만 서로 별개의 자아로 구분되기도 하는데, 어찌 됐든 간에 하나라는 건 변함이 없다."
히르트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연유로 하나였던 몸이 두 개로 분리됐는지 모르겠다."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군.""
콜록······""
나는 만물의 아버지 아니, 히르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겉보기에는 인자하게 느껴질 법한 미소였으나 분위기가 분위기다보니 섬뜩하게 느껴졌다."
뒤이어 그는 자신이 승기를 잡았다는 것마냥, 내 주위를 빙글빙글 배회하며 입을 열었다."
필멸자가 우리를 모욕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필멸자가 악에 물들어 간다는 것을 느꼈지. 하지만 우리는 필멸자를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갈라질 필요가 있었다.""
··· ···""
만물의 아버지가 아닌 자연의 여신 히르트는 자애롭고 너그러운 성격이다."
가끔 자식들이 사고를 친다면 엄격하게 혼내지만 심성 자체는 온화한 분이시다."
비록 자연 그 자체인지라 화를 내거나 슬퍼하면 온갖 자연재해가 발생한다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어쩐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강해하더니.'"
자연의 좋은 면모는 자연의 여신이, 자연의 무서운 부분은 만물의 아버지가 몽땅 가져간 모양이다."
그러나 어째서 만물의 아버지가 바다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