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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735)화 (736/763)

 그런 의문을 지니고 있을 때, 기사들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인을 끌어올렸다."

 쿨럭! 쿨럭! 자, 잠깐만······! 나, 나는 노······ 읍! 읍!""

 남자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기사가 입을 막아버렸다. 그에 남자는 어떻게든 떼어내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반항이 심하면 심할수록 제압 또한 강해지는 법."

 퍽!"

 기사 중 한 명이 뒷목을 가격하자 남자의 눈이 뒤집히며 추욱 늘어졌다."

 그 후로 기사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중년인. 나는 그가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지켜봤다."

 안타깝기는 해도 이런 식의 만남은 해서는 안 될 짓이다. 나중에 저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해야겠지."

 최근들어 잠잠하다 했네.""

 그러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애인들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나고."

 어서오시게. 그동안 잘 지냈나?""

 네. 뭐······""

 하하. 보아하니 잘 지낸 모양이군. 아델리아 너도.""

 ······누구 덕분에요.""

 재수없는 쌍판데기와 만났다."

 나는 정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라오스 왕태자를 보고 살짝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마리아 여왕이 전달한 정보에 따르자면 모습도 잘 드러내지 않고 두문분출한다고 했으니."

 그런데 왕궁에 도착하자마자 살갑게 인사하며 반겨줬다. 옷차림도 말끔하기 그지 없는 것이, 귀티가 좔좔 흘렀다."

 그동안 잘 지내신 모양이군요.""

 내가 잘 지내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나?""

 이상한 짓을 한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소문은 소문일 뿐일세.""

 라오스는 사람 좋은 미소를 유지하며 우리를 안내해주기 시작했다."

 대화를 하면서도 그에게 수상한 낌새가 느껴지지 않는지 세세히 파악했다."

 겉으로만 본다면 쓸데없이 잘생긴 얼굴의 남자다. 하늘색 머리카락이 유독 돋보이는 미남."

 나는 그에게 안내를 받으면서 아델리아를 힐긋거렸다. 안색이 약간 굳어있는 것이 불편하다는 기색이다."

 '불편하겠지.'"

 다른 왕족들과 달리 라오스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던 사람이다."

 아델리아를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자존심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못 본 사이에 아름다운 여인이 한 명 더 늘었군. 케이트 추기경이라고 했던가?""

 예. 그렇습니다.""

 참 능력도 좋아.""

 앞서서 안내하던 라오스가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말했다. 그의 시선은 케이트를 향해 있었다."

 세실리가 이미 내 애인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히 퍼지고 있다."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을 뿐, 다들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케이트는 다르다. 그녀는 최근들어 대외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꼽주는 건가?'"

 인식이 인식이다보니 그런 식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타격은 1도 없다."

 이미 바람둥이라는 이미지가 제대로 박혔는데 뭐라고 하겠나.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라오스는 내 답을 보고 피식 웃더니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속내는 여전히 모르겠다."

 ··· ···""

 ··· ···""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어색하고도 무거운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다른 국가는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테르스 왕국은 뭔가 다르다."

 이미 애인들도 라오스 왕자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는 건 말해놓은지 오래다."

 그래서 만일을 대비하여 케이트에게도 말했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행동은 보여주지 않았다."

 오라버니!""

 그때 무거운 침묵을 완전히 깨뜨리는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낭랑하고도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절로 깨끗해지는 듯한 미성."

 라오스는 물론이요, 나와 일행은 그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라라?""

 아델리아가 살짝 놀란 듯이 중얼거렸다. 눈을 동그랗게 뜬 것이 정말 놀란 모양이다."

 나도 목소리의 주인을 파악하느라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이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델 언니도 있었구나. 그리고 아이작 오······ 아니, 제논 님께서도 오셨군요.""

 멀리서 다가오는 소녀는 테르스 왕족 특유의 하늘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마리아 여왕과 함께 테르스 왕국의 양심이라 평가했던 3왕녀, 라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가 인형처럼 귀여웠던 외모였는데 지금은 조금씩 성숙한 티를 보여줬다."

 라라.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잖니?""

 오라버니 말씀대로 기다리고 있던 거예요.""

 내 말은······ 아니. 됐다.""

 라오스의 사람 좋은 미소가 깨졌다. 사고를 친 동생이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라는 베시시 웃으며 우리 쪽을 쳐다봤다. 이어서 치맛단을 끌어올리며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3왕녀 라라 듀커드 폰 커쳐스라고 합니다. 저명하신 제논 님과 만나봅게 되어 영광입니다.""

 편하게 제논이라고 불러주세요. 왕녀 님. 그동안 많이 성장하셨네요.""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했던 때가 제논 축제였던가요?""

 딱딱했던 분위기는 라라의 등장으로 전부 풀어졌다. 라오스는 말없이 발걸음만 움직였다."

 제논 님은 제논 축제 때보다 더 아름다워지신 것 같은데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시는 라라 왕녀님께서는 성숙해지신 것 같네요.""

 고마워요. 세실리 공주님께서는······ 달라진 게 없으시네요. 여전히 아름다워요.""

 후후. 고마워요, 공주님.""

 마치 종달새처럼 조잘조잘거리는 라라. 하지만 귀찮다거나 무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리어 라라가 끼어듦으로써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오직 한 사람, 라오스만 빼고."

 나도 앞서 나가는 라오스는 깔끔히 무시하고 라라하고만 대화를 나눴다."

 지난 제논 축제 때는 깨물고 싶을만큼 귀여웠는데 점점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케이트 추기경 님. 추기경 님께서는 루미너스 님과 직접 독대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물론이죠.""

 루미너스 님께서는 어떤 분이세요? 저는 직접 만난 적이 없거든요.""

 모두에게 친절하신 분이랍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시는 분이죠.""

 케이트도 라라에게 좋은 인상을 가진 듯했다.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보면 확실하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어떻게 해야 테르스 왕국에 이런 양심적인 소녀가 등장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양심적이었던 마리아 여왕을 쏙 빼다 닮은 것이 아닐까. 아델리아를 대한 걸 보면 신빙성이 높다."

 라라 왕녀님도 조금 있으면 아카데미에 입학하시죠?""

 네. 1년 후면 테르스 아카데미에 입학할 것 같아요.""

 전공은······ 문학 계열이실 테고 혹시 전공하고 싶은 학과라도 있으신가요?""

 저는 제논 님 같은 글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 제논 님의 제자인 메리 님 같은 글도 쓰고 싶고요.""

 역시 테르스 왕국 출신답게 예술가가 꿈이구나. 나는 라라의 꿈을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체리는 정체를 밝히지 않았기에 메리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

 차기작은 언제 낼지 모르지만 아마 곧 낼 것으로 추측 중이다."

 그럼 제 글과 메리의 글 중 어느 것을 더 선호하시나요?""

 어······""

 내 농담 아닌 농담에 라라가 당황한다. 뒤이어 하늘색 눈동자가 데굴데굴 구른다."

 누가 봐도 당황했다는 티가 역력한 얼굴이다. 나는 약하게 웃으며 농담이라 말했다."

 농담이에요. 저도 메리의 글을 좋아하는 걸요. 각자마다 취향이 존재하는 법이랍니다.""

 그, 그렇죠? 깜짝 놀랐잖아요.""

 라라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표정에서 속마음이 다 드러나는 케이스인 모양이다."

 아델리아까지 포함한다면 5남매 중 막내인 라라. 사랑을 무럭무럭 먹고 성장해서 그런지 활기차다."

 보통 왕족들은 옛날부터 엄격하게 교육을 받기에 딱딱한 성격을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라라 같은 경우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막내에다가 정치적으로도 자유로운 편이니 정도가 덜한 편이다."

 '진짜 라라 때문이라도 테르스 왕국을 압박할 수 없단 말이야.'"

 내 한 마디 하나면 테르스 왕국을 물리적으로 무너뜨리는 건 일도 아니다."

 설사 전쟁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크게 압박을 넣을 수 있었다. 테르스 왕국이 가장 무서워하는 '목소리'를 이용해서."

 테르스 왕국은 대중의 목소리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깨달은 나라 중 하나다. 그렇기에 더욱 두려워하는 중이고."

 하지만 그리 된다면 라라의 목숨마저 위험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자중하고 있다."

 사실상 라라의 존재 덕분에 테르스 왕국이 존속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아참. 제논 님. 하나만 여쭈어봐도 될까요?""

 무슨 질문이죠?""

 제논 님은 비극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논 일대기에 수많은 비극이 등장해서 묻는 질문이에요.""

 체리와 같은 문학 소녀여서 그럴까. 그녀는 유독 나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다."

 사심 같은 건 전혀 끼어있지 않은, 순수하디 순수한 예술가로서의 질문."

 나는 그녀의 질문을 듣고 미소를 유지한 채 정성껏 대답해줬다."

 비극은 사람들을 몰입시켜주는 장치입니다. 왕녀님께서는 맛 중에서 어떤 맛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저는 신 걸 좋아해요. 레몬 같은 거요.""

 상당히 독특한 입맛이다. 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비극은 쓴 맛입니다. 때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쓴맛이죠. 왕녀님께서 좋아하시는 신맛은 쓴맛을 모른다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를 겁니다.""

 음······ 이해가 갈 듯하면서도 잘 안 되네요. 매번 같은 것만 먹으면 질리는 거랑 똑같나요?""

 그런 셈이죠. 주인공이 비극을 겪는다면 왕녀 님께서는 어떤 생각이 들죠?""

 안타깝고, 그 비극을 딛고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라라에게 비극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라라도 내 설명을 진중하게 들었다."

 비극은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려주고 몰입감 또한 올려주지만, 너무 남발하면 독자들이 지친다."

 이른바 완급조절을 잘 해야 된다는 것이며 그만큼 사용하기 어려운 편이다."

 그러면 멸망을 향해 걸어가는 기사는요? 거기는 꿈도 희망도 없었잖아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멸망기사 같은 경우는 희망이 비극의 역할을 대신하는 겁니다. 잡힐 듯 말 듯한 느낌을 주는 거죠.""

 으음······ 어렵네요.""

 라라는 고운 미간을 좁히며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나를 포함한 애인들은 그 귀여운 반응에 저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한참 고민에 빠져있던 라라의 시선이 향한 곳이 있었으니."

 ··· ···""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아, 아뇨. 그냥······""

 세실리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세실리의 압도적인 흉부 쪽."

 라라는 한동안 그녀의 가슴을 멀거니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다소 무례한 시선 처리이긴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세실리 본인도 아무렇지 않다는 식이었고."

 그······ 세실리 공주님.""

 네. 말씀하세요.""

 마족은 비극의 종족이라는 거, 공주님께서도 동의하시나요?""

 듣는 마족에 따라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질문이다. 마족은 비극적인 종족이라는 질문."

 실제로 마족은 비극으로 똘똘 뭉쳐있는 종족이기도 하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마족이 되고, 시간이 흘러서도 각종 차별을 받았으니."

 지금이야, 평범한 종족처럼 생활할 수 있다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차별이 매우 심했다."

 게다가 심심찮게 악마화도 일어났기에 여러모로 '비극'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동의는 한다만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건가요?"

 사실 저희 오라버니가······""

 도착했습니다.""

 라라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라오스가 엄격한 목소리로 도착을 알렸다."

 떠들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집무실까지 도착한 상황이다. 아무래도 라라의 질문은 다음에 들어야 할 듯했다."

 안에 여왕님과 국서께서 기다리시는 겁니까?""

 네. 그리고······ 히리야 왕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히리야······""

 히리야도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아델리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라라와 달리 지난 제논 축제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소문에 따르자면 폐인처럼 지내고 있다던데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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