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728)화 (729/763)

 [빨리 그 놈의 영혼을 빼앗고 싶구나.]"

 그때 남자의 머릿속에서 울려퍼지는 누군가의 목소리."

 남자는 그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가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며 조용히 답했다."

 '당신만큼 나도 마찬가지다. 그 놈과 그 주변인들의 얼굴이 망가지는 걸 보고 싶거든.'"

 [어리석은 것. 명심하거라. 내 마지막 분신이 너이기에 가만히 있다는 것을.]"

 현자가 붙잡힌 이상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존재는 남자 하나밖에 없다."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선택지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상관없어. 당신이야말로 제대로 해. 저쪽 세계의 신들이 수를 쓰기 전에.'"

 [모든 준비는 끝난지 오래니라. 부디 멀쩡한 육신과 영혼으로 왔으면 좋겠군.]"

 그 말에 남자는 자신의 손을 쳐다봤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하디 평범한 손이다."

 하지만 이 손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어떻게든 달성해야만 하는 목적."

 '걱정할 필요는 없어.'"

 아이작이 모든 걸 건만큼."

 '신이어도 이건 못 막을 거라서.'"

 남자 또한 모든 걸 걸었다."

 마리에 이어서 세실리까지 거하게 사고를 쳐버렸다. 차이점이라면 이성의 유무랄까."

 마리 때는 이성을 잃어버려 서로서로 짐승처럼 탐했고, 세실리는 에라, 모르겠다에 가까웠다."

 그때문인지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또다시 사고를 쳐버렸구나 정도."

 뒷감당이 조금 걱정되기는 했지만 마리보다는 덜할 것이다. 순서가 바뀐 건 아니니까."

 축하합니다, 세실리 공주님. 드디어 은혜를 넘는 축복을 받으셨군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정말 믿는 거예요?""

 아이작 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니까요.""

 알븐하임으로 출발하기 직전, 가장 먼저 케이트와 아델리아에게 사실을 고백했다."

 아직 확정은 아니었지만 전례가 있어서 다들 믿는 분위기다."

 데스칼과 아이실리아에는 소식을 전달하지 못했는데, 듣자하니 방에서 아직까지 안 나왔다고."

 나와 세실리의 밤일이 새벽 즈음에 끝났는데도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이쯤 되면 진짜 무슨 능력이라도 있는 게 아니야?""

 케이트에게 축하 인사를 받는 세실리를 보며 아델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처음에만 놀랐지 다소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듣자하니 전부터 분위기를 미리 파악했다고."

 그것보다는 내 능력에 더욱 관심을 표했다. 글이든 그림이든 상관없이 가임기를 앞당긴 능력."

 나도 궁금한 건 매한가지여서 의문을 품는 건 당연했다."

 글쎄. 나중에 물어봐야지. 아무래도 내가 작가다보니 그런 거 아닐까? 그것과 관련된 신성을 얻은 거지.""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구나. 루미너스 님과 모라 님도 본연의 권능을 갖고 계시니까.""

 루미너스와 모라는 각각 관장하는 영역이 다른만큼 권능도 다르다."

 나도 그런 쪽이라 생각하면 편하지만 그래도 의문이 여전한 건 사실이다."

 작가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인 '언어'에서 힘이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그러고 보니 어제 노래를 부를 때도 자동적으로 번역이 됐던가?'"

 이 부분도 심상치 않았다. 나는 분명 한국어로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세실리는 그 노래를 다 알아듣고 나를 덮쳤다. 사실상의 트리거였던 상황."

 이런 것만 따지자면 언어 자체에 권능이 심어졌다는 데에 가능성을 둘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확인이 필요한 법. 알븐하임으로 떠날 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아있다."

 으음······""

 ······왜, 왜 날 쳐다봐? 설마? 아니지?""

 내가 빤히 쳐다보자 아델리아가 자기 가슴을 감싸안으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진 걸 보아하니 다음 타겟(?)을 자기자신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뭐, 순번으로만 따지자면 그녀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정말로 누나 말대로 언어에 효력이 있나 싶어서.""

 아.""

 그럼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어?""

 어제 노래를 부를 때처럼 한국어로 얘기했다. 다른 건 몰라도 한국어는 똑똑히 기억한다."

 응. 다 알아듣는데? 너 지금 우리말로 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래? 그럼 이거는?""

 다 알아들어. 아까부터 계속 우리말로 하고 있잖아.""

 신기하네.""

 영어로 물어봤는데도 다 알아듣는다니. 정말로 신성을 각성한 건가 싶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의문이 갈린다. 바로 '언어'가 아닌 '문자'다."

 가끔 가다 사람들은 언어와 문자를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언어는 말 그대로 '말'이고 문자는 글자다. 상호작용을 하는 관계인 것이다."

 누나. 누나가 갖고 다니는 검 있지?""

 응. 그건 왜?""

 잠깐 나한테 줄 수 있어?""

 스릉-"

 아델리아는 내 부탁에 잠깐 의아해하긴 해도 군말없이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이윽고 조심해라는 당부와 함께 나에게 조심히 내밀었다."

 미네르바 제국의 황실에서 지원해준 강철검이라 때깔이 매우 곱다."

 나는 그 검을 천천히 살펴보다가 앞주머니에서 마법필을 꺼냈다."

 팬사인회는 물론이요, 그렇고 그런 용도로까지 사용했던 마법필."

 누나. 이 검에서 문제점은 없지?""

 마땅히 없는데?""

 그럼 원했으면 하는 건?""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 정도? 철 자체가 워낙 무거우니까.""

 무게라······""

 나는 그 말을 듣고 검신에 마법필로 글자를 새겨넣기 시작했다."

 사인을 했을 때도 한국어로 썼으니 여기에도 한국어로 썼다."

 다행히 강철에 새기는데도 글자가 또박또박 새겨졌다."

 [가벼움+1]"

 '······내가 써도 병신 같네.'"

 마땅히 생각나는 단어가 없어서 게임에서나 쓸 법한 걸 골랐다."

 그래도 이것만으로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읽을 줄 아는 사람도 없을 테고."

 파앗!"

 어?""

 글자를 다 새기자마자 검신에서 흰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에 이야기를 나누던 세실리와 케이트도 이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윽고 그 빛은 차츰차츰 옅어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검신에 새겼던 글자 또한 녹은 것처럼 자연스레 없어졌다."

 ······어때? 가벼워진 거 같아?""

 지, 진짜 가벼워졌는데? 거짓말이 아니라.""

 휘익! 휙!"

 아델리아는 당황한 얼굴 그대로 검을 마음껏 휘둘렀다."

 실제로 검이 가벼워진 것인지 몸놀림이 더욱 빨라진 듯했다."

 여태까지 그녀와 대련을 한 적이 아예 없던 건 아니라 그녀의 몸놀림 정도는 알 수 있다."

 신기하네. 정말로 네가 사용하는 언어와 문자에 신성이 깃들기라도 한 걸까?""

 그건 나도 모르지. 이제 곧 알븐하임으로 갈 테니 그곳에서 물어보면 돼.""

 혹시 신체 쪽도 가능합니까?""

 우리의 실험(?)을 가만히 지켜보던 케이트가 문득 그런 질문을 꺼냈다."

 이에 그녀를 쳐다보자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케이트. 세실리도 비슷한 표정이다."

 나와 아델리아는 그 질문을 듣고 서로를 쳐다봤다. 오묘해진 분위기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글쎄? 이것도 실험해볼까? 원하는 거라도 있어?""

 나는 딱히 없는데? 지금이 딱 좋아. 이건 절대 거짓말이 아니야. 가슴도 커봤자 나 같은 기사에게는 방해만 될 걸?""

 아델리아가 허리에 손을 척 얹으며 당당한 태도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위아래로 상세히 훑어봤다."

 그녀는 다른 애인들에 비해 길쭉한 편이다. 키가 가장 큰데다가 기럭지가 우월하다."

 더 나아가 여성으로서의 매력도 충만하다. 건강미를 꽉 채워넣은 몸이랄까."

 기사로서의 단련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말마따나 지금이 딱 적당하다."

 나도 내 몸에는 불만이 없는 걸?""

 저도 딱히 없습니다.""

 세실리와 케이트도 외모와 몸매는 자신 있어서 불만이 없었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아무래도 이 부분은 넘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정 궁금하면 나한테 해도 돼. 나는 별 상관 없으니까.""

 아델리아가 기꺼이 실험쥐 역으로 나섰다."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 개의치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검과 달리 이건 몸에 직접 새기는 것이다. 잘못될 수도 있다."

 괜찮겠어?""

 검이 가벼워진 대가로 치지 뭐. 어디로 할래? 네가 제일 좋아하는 가슴?""

 ··· ···""

 부정할 수 없다는 게 슬프군. 나는 피식 웃었다가 펜을 쥐었다."

 아델리아도 내가 펜을 쥐자 셔츠 단추를 풀더니 조심스레 맨살을 드러냈다."

 활동하기 편한 스포츠 브라를 착용하고 있는 그녀. 이것 또한 헬리움에서 발명한 거다."

 대신 프로토타입이라서 상용화는 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세실리의 선물에 가깝다."

 스윽- 슥- 슥-"

 뽀얀 가슴살에 글귀를 적어넣었다. 어떤 글귀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만약 정말로 효과가 난다면 글자가 사라질 거고, 효과가 나지 않는다 해도 지우면 되니까."

 마법필은 수성이라서 물에 잘 지워진다. 그렇고 그런 취향도 없으니 오늘 밤에 씻으면 되겠지."

 다 됐다.""

 음······ 달라지는 건 없나?""

 아델리아가 단추를 주섬주섬 닫으며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확실히 아까와 다르게 즉각적인 반응은 없었다. 원래라면 지금쯤 나왔어야 했는데."

 단순히 우연인 것인지, 아니면 권능을 사용하는데에 한계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파앗!"

 그런 생각을 하려던 찰나였다."

 글자를 새겼던 아델리아의 가슴 윗부분에서 새하얀 빛무리가 터져나왔다."

 그에 깜짝 놀라 모든 인원이 그쪽을 쳐다보고 있을 때, 그녀에게서 변화가 찾아왔다."

 어, 어어?""

 가슴이 커진다. 이상한 말 같긴 하지만 진짜다."

 평균보다 살짝 컸던 아델리아의 가슴이 눈에 띌 정도 성장했다."

 뚜두둑!"

 어느 정도 커지자 무언가 끊기는 소리마저 났다. 설마 속옷의 후크가 끊어지기라도 한 건가."

 모두가 당황해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을 때쯤, 얼마 가지 않아 성장이 멈췄다."

 하지만 성장이 멈춰도 아델리아의 흉부는······ 전보다 훨씬 커져버린 상태."

 바로 옆의 세실리에 비해 전혀 꿇리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다."

 이, 이게 뭐, 뭐야?""

 와아······""

 ······누구를 이미지했는지 알 것 같네.""

 아델리아는 가슴을 감싸안으며 당황하고, 케이트는 신기해했으며, 세실리는 피식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세실리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녀를 떠올리며 적긴 했다. 이리 될 줄은 몰랐을 뿐이지."

 어쨌거나 확인까지 했으니 다시 복구는 시켜야겠다. 보아하니 속옷도 새로 사야할 것 같다."

 이에 마법필을 아델리아의 가슴 쪽에 갖다 대려는 순간."

 티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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