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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724)화 (725/763)

 네. 뭐······ 건강한 유흥 덕분에 그런 거죠. 그런데 그건 왜······?""

 사실 제 남편과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데······ 제 악주기가 워낙 고약하다보니 남편이 힘들어 해서요.""

 마족이 힘들어 한다고요?""

 모두 알다시피 악주기는 마족만이 갖고 있는 생리 주기다. 그렇기에 악주기가 온다면 모두가 이해하는 편이다."

 그러나 악주기는 가임기나 마찬가지. 이렇다 보니 여러모로 고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엘프의 낮은 출산율이 보수적인 관념 때문에 그런 거라면, 마족은 말 그대로 '전투'를 해야되서 힘들다."

 그런데도 꾸준히 균등한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고 그런 짓이 아니라 단순히 약이다. 약을 통해 악주기를 조금이나마 완화하는 것이다."

 악주기마다 잠에 빠져드는 체질이라서······ 남편도 잘 자고 있는 저를 건드리기 미안해서 가만히 두고 있어요. 기껏 노력해도 생기지 않고······""

 그······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이제 300살을 조금 넘겼어요. 남편은 240살이고요. 결혼한 지는 100년이 흘렀죠.""

 어마어마한 연상연하로군."

 그래도 결혼한 지 100년이 넘었는데도 아이가 없다는 건 꽤 고민이 될 일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10년 동안 알콩달콩 지냈는데 아이가 없다는 뜻이니까."

 힘들겠네요.""

 네. 그러니 어떻게 안 될까요? 아이는 꼭 갖고 싶어서······""

 비단 마족들뿐만 아니라 모든 종족이 갖고 있는 고민이다. 분명 남편과의 궁합은 좋은데 이상하리만큼 아이가 생기지 않는 체질."

 나와 마리는 사고 한 방으로 생겼다지만 원래 임신은 확률이 미묘한 편이다. 안 생기면 진짜 안 생긴다."

 '그건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는데.'"

 무슨 만화마냥 제가 대신 해드릴까요? 라고 대답하면 미친 새끼지."

 이건 나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끝내자."

 죄송하지만 그건 저도 힘들 것 같습니다. 제가 아직 그······ 완전하지가 않아서요.""

 아······ 그, 그러면 다른 걸 부탁해도 될까요?""

 무슨 부탁이죠?""

 드르륵-"

 내 질문에 의자를 뒤로 끌며 서서히 일어나는 마족 여성. 나는 무던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겉보기에는 동그란 안경까지 써서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미녀다. 소심해 보이는 얼굴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행동은 절대 소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끄럽지만 절박하게 느껴지는 표정으로 상의를 서서히 올렸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당황스러웠으나 이 다음에 이어진 행동은 더 충격적이었다."

 여, 여기에다 사인을 해줄 수 있을까요······?""

 ······네?""

 안 될 거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의마저 살짝 내려 하복부를 수줍게 보여줬으니까."

 나는 입을 살짝 벌리며 그녀의 얼굴과 그 아래를 번갈아봤다."

 맨들맨들한 살결과 살짝 튀어나온 하복부. 헌데 신기하게도 음심은 전혀 들지 않았다."

 착각일지 몰라도 절박하디 절박한 그녀의 심정이 나에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냥 해줘. 난 모른 척 할게.""

 때마침 옆의 아델리아도 모른 척해준다고 말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음을 굳게 다잡으며 펜을 쥐었다."

 뒤이어 나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마족 여인의 하복부에다가 내 이름을 새겨줬다."

 스윽- 슥-"

 '······하. 시발.'"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심한 현타가 몰려온다. 그래도 꿋꿋이 이름을 새겨줬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인이 신음 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것. 조금이라도 냈다면 집중력이 흐뜨려졌겠지."

 '차라리 진짜 됐으면 좋겠네.'"

 이 절박함이 원하는대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진심'이었다."

 이윽고 사인을 모두 끝내자 마족 여인도 옷을 제대로 갖춰입었다."

 감사합니다. 제논 님.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아닙니다. 부디 결실을 맺기를 바라겠습니다.""

 화악!"

 내 말을 끝나자마자 느닷없이 새하얀 빛무리가 뿜어져나왔다."

 어디서 나왔냐고 하면 아까 전 사인을 했던 곳이라고 대답하겠다."

 그러니까 마족 여인의 아랫배에서 흰색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다는 뜻이다."

 ······어?""

 ··· ···""

 그 현상에 마족 여인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나는 기가 차서 할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어서 여인은 황급히 자신의 아랫배를 확인했는데, 방금 전 그 사인이 온데간데도 없이 사라져 있다."

 ··· ···""

 ··· ···""

 순식간에 침묵으로 가득 채워진 방 안. 당최 무슨 상황이 펼쳐진 건지 모르겠다."

 그동안 여인은 계속해서 아랫배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가, 감사합니다! 제논 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요."

 미처 그 말을 하기도 전에 밖으로 튀어나가는 마족 여인."

 [여보! 여보! 빨리 집으로 가자!]"

 [어, 어? 갑자기?]"

 [빨리! 제논 님에게 축복을 받았어! 오늘 분명 아이가 생길 거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악주기도 아니······]"

 [됐으니까 빨리!]"

 바깥에서의 소란이 내 귀에 똑똑히 들어왔다."

 나는 그 소란을 듣고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델리아는 어이가 없는 건 마찬가지인지 한 쪽 입꼬리만 올린 채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작.""

 ······응.""

 너 대체 무슨 신이 되려고 하는 거야?""

 그 질문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소심하게 답했다."

 ······잡신?""

 진짜 잡신이 될 것 같은 기분이다."

 미래의 나는 어떤 신이 될까라는 주제는 얼마 가지 않았다. 팬사인회는 꾸준히 이어졌으니까."

 이후로도 갖가지 부탁을 하거나 내 앞에서 기도를 하는 등. 여러모로 진이 빨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나마 아랫배 사인이 제일 압권이었다는 걸까. 그걸 제외하고는 무난한 팬사인회가 이어졌다."

 앗! 그때 그 빨간머리 오빠다!""

 공주님은······""

 에이미! 나는 에이미야!""

 그렇다고 피곤한 마음을 달래줄 사람이 없던 건 아니었다."

 여태까지 꾸준히 느꼈던 바지만 아이들이 가장 순수해서 좋았다."

 너무 어린 나머지 성자라는 개념도 잘 모르고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을 이롭게 만든 성자가 아니라 작가 제논으로서 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에이미? 아~ 옛날에 만났던 그 애구나.""

 성자 오빠도 기억하네? 히히.""

 젖살이 빠지지 않아 오동통한 볼살을 지닌 소녀가 해맑게 웃는다. 깊이 파인 보조개가 매력적이다."

 양뿔처럼 돌돌 말려있는 뿔과 미래가 기대되는 외모. 나는 이 소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2년 전이었던가 3년 전이었던가. 헬리움에 잠깐 방문했을 때 우연히 만났던 소녀다."

 그때는 내가 정체를 밝히기 전이라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내 머리카락을 보고 빨간색이라 외쳤지."

 저······ 제논 님? 정말로 기억하시는 건가요?""

 에이미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응모권에 당첨된 아이들은 부모와 대동할 권한이 주어진다."

 나는 방실방실 해맑게 웃는 에이미를 보다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해줬다."

 당연히 기억하죠. 제 머리카락을 보고는 위험하다 소리쳤던 것도 기억나는 걸요? 뿔이랑 머리카락이랑 헷갈렸던 걸로 알아요.""

 저, 정말 기억하시는군요. 이걸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할 지······""

 감사까지야······""

 감격한 얼굴로 두 손을 꼭 마주잡는 에이미의 어머니.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가 다시 에이미를 쳐다봤다."

 언니. 언니.""

 응? 저, 저요?""

 응. 언니는 성자 오빠랑 무슨 사이야? 언니도 엄청 예쁘다. 눈이 하늘 같아.""

 에이미는 여전히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지 내가 아니라 옆의 아델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빨간머리라는 이유로 나에게 말을 걸었던 것도 그렇고 꽤 붙임성이 좋은 모양이다."

 나는 아델리아에게 대답해도 된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당황했던 그녀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저는 성자님을 지키는 기사입니다. 지금도 곁에서 지키는 중이죠.""

 앗. 그러면 성자 오빠가 릴리고 언니가 진인 거야?""

 어······ 그런······ 셈이죠?""

 묘하게 납득이 가는 비유에 아델리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이미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잘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소년들이 원하는 질문을 따닥따닥 한다면, 에이미 같은 소녀는 온갖 말을 지어낸다."

 그 말은 즉슨, 에이미의 질문 공세에 하나하나 열심히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성자 오빠. 오빠는 인간인데 어째서 마족의 성자라 부르는 거야?""

 제논 일대기에서도 릴리가 진을 구원해줬잖니? 그런 거라고 보면 돼.""

 아하! 그럼 제논 일대기가 실제로 있던 이야기야? 엄마는 그렇다던데?""

 ··· ···""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 슬쩍 에이미의 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녀도 에이미처럼 보조개가 움푹 파일 정도로 기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적어도 마족 입장에서 제논 일대기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의미가 없다. 그 책으로 구원받았다는 건 변함 없었으니까."

 나는 여기서 고민했다. 귀엽디 귀여운 소녀의 동심을 지켜줄 것인가, 아니면 동심을 파괴할 것인가."

 '산타클로스가 어째서 탄생했는지 알 것 같네.'"

 줄곧 생각해보면 에이미 같은 어린이들에게는 거짓말을 했다. 당연하게도 동심을 지켜주기 위함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거짓말을 하자.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서."

 응. 맞아. 제논 일대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야.""

 그것 봐! 엄마, 내 말이 맞지?""

 어, 어어? 저, 정말로······?""

 아니. 당신이 왜 동심을 갖고 있는 건데요."

 에이미의 어머니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나와 에이미를 번갈아봤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직접 한 말이라 덥썩 믿어버린 모양이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우선 오해를 풀어줘야 할 듯싶었다. 이에 에이미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에다 검지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에이미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을까. 혼란스러웠던 그녀의 표정이 잠잠해졌다."

 이윽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오해를 푼 모양······"

 '······푼 거 맞겠지?'"

 왜 결연한 표정인지 모르겠네. 무덤까지 끌고 갈 기세처럼 느껴졌다."

 그럼 성자 오빠는 무슨 능력을 갖고 있어? 릴리처럼 아픈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거야?""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야. 대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치유했지.""

 마음이 아픈 사람? 마음이 아프다는 게 어떤 느낌이야?""

 그건 에이미가 크면 자연히 알게 될 거란다.""

 그렇게 재잘재잘 이야기의 꽃을 피우다보니 어느새 10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에이미는 어떻게든 나와 더 얘기하기 위해 땡깡을 부렸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끌고나갔다."

 -나 성자 오빠랑 더 말할 거야! 더 말할 거라고!"

 -안 돼. 에이미. 성자 오빠는 나중에 보자?"

 -언제 볼 수 있는데?"

 -······한 100년 뒤?"

 -너무 멀잖아!"

 100년 뒤라면 내가 승천하고 없어질 시간이지 않은가. 여러모로 고생하는 에이미의 어머니다."

 '그레이스도 나중에 저럴까?'"

 지금도 말괄량이 기질이 넘쳐나는 그레이스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짧은 두 다리로 오도도 달리는 아이."

 나중에 크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됐다. 차라리 에이미처럼 재잘거렸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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