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721)화 (722/763)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른다. 조만간 추기경들을 불러모아 의논을 거쳐야 할 것 같다."

 브리크는 복잡한 표정으로 루미너스 석상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이트는 아이작을 따라다니고 있으니 사실상 호출이 불가능하다."

 '데이모스 추기경부터 호출해야겠군.'"

 그나마 다행히 회색 사막에 있는 데이모스 감독관은 호출이 가능하다."

 동시에 물어볼 것도 많아졌다. 회색 사막에는 수많은 진실이 잠들어 있던 곳."

 '그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야겠어.'"

 브리크는 옷을 정리하며 바깥으로 나섰다."

 일단 사람을 시켜 데이모스를 호출하는 것부터 우선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건지······'"

 세상이 한 번 뒤집힐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가장 험난하다고 생각했던 세이비어 교국의 팬사인회는 절찬리에 마감되었다."

 교황이자 지도자인 브리크와의 대면도 끝났으며 남은 건 다음 국가로 넘어가는 일뿐."

 곧바로 헬리움으로 향하는 게 아닌, 벨루오 공국부터 시작해 변두리에 소속된 도시 국가까지 모두 순방할 예정이다."

 진짜 형이 제논이에요?""

 네. 제가 진짜 제논입니다.""

 와아! 저 유명한 사람 처음 봐요! 제논 님은 왕님보다 만나기 힘들다고 하던데!""

 미네르바 제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시대에 비해 앞서나간 기술력을 갖고 있는 거지,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 농경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도시라 해도 단지 사람들이 많이 모인 마을에 지나지 않더라."

 그래도 평균이 낮은 건 아니고 판타지답다면 판타지다운 생활상을 많이 보여줬다."

 일례로 모험가 길드가 있다. 모험가 길드는 범국가적인 기관이자 몬스터의 위험성을 미리미리 차단하는 존재들."

 전세계를 방방곡곡 돌아다니면서 몬스터를 토벌하다보니 어디서나 모험가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러니까 진짜 판타지 세상 같네.'"

 환생한지 20년이 훌쩍 지났는데 이제 와서 판타지 같은 느낌이 든다는 건 조금 이상할 거다."

 지금 내가 말하는 판타지는 정통 판타지, 그러니까 반지의 제왕 같은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다."

 현대적인 요소가 다분히 섞여있는 판타지가 아니라 잔잔하면서도 위험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는 배경."

 비록 나는 든든한 호위를 등에 업고 다니고 있었다만 풍경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왕자님께서 최초로 진: 디아볼스 카드를 뽑으셨다고요?""

 네!""

 이번에는 팬사인회에 당첨됐고요.""

 네!""

 수많은 나라를 순방하면서 재미있는 인연도 만날 수 있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주인공보다 더한 운을 가진 아이와 만날 수 있었으니."

 작디 작은 변방국인 하디칸 왕국. 그러나 앞의 소년처럼 사람들은 화목한 미소를 띄며 생활하고 있었다."

 평소 저한테 묻고 싶은 건 없었나요?""

 음······ 축구 잘하는 법을 알려주세요!""

 아. 이 나라에도 축구가 유행하는 건가요?""

 나는 그렉이라는 소년의 질문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네르바 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축구가 유행 중이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금지됐던 럭비를 대신하는 유흥이자 종교마저 금지할 수 없는 놀이였으니까."

 그러나 시대의 한계로 퍼지는 속도는 한없이 느릴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네! 어느 날 사제님이 오셔서 저희에게 공이랑 축구에 대해 알려주셨어요! 제논 님께서 퍼뜨린 축구는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을 주실 거라고요!""

 그, 그러니?""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는데. 맞는 말이긴 하지만."

 축구는 체력이 갈리는 스포츠로 유명하니 건강한 신체는 필수고, 스포츠맨십과 페어플레이 정신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스포츠라는 개념이 등장하지도 않은 이 시대에 그런 걸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그래도 아이의 동심을 유지시켜야 하는 건 변함이 없다. 이에 조언 아닌 조언을 꺼냈다."

 나도 축구를 멀리서 지켜보기만 한 입장이어서 단순한 것만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왕자님은 아직 성장 중이시니 드리블, 그러니까 공을 잘 다루는 것부터 연습하는 게 좋을 거예요. 혹시 주로 쓰는 발이 어딘가요?""

 오른발이요!""

 왼발을 오른발 수준으로 잘 사용하면 왕자님을 막기 어려울 거예요. 요지는 기본기부터 착실하게. 아셨죠?""

 네!""

 그렉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기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어리니까 어련히 잘 알아듣겠지."

 제논 님. 제논 님.""

 또 뭐가 묻고 싶은 건가요?""

 제논 님이 살던 세상은 콜 오브 듀티나 축구처럼 재미있는 게 많아요?""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고 있죠.""

 중의적인 표현이다. 실제로 유흥거리가 너무 많은 나머지 좋지 못한 문화가 등장하고 있다."

 과학 및 인터넷의 발달은 세상을 빠르게 진보시켰으나 그 여파로 다양한 부작용이 생겼다."

 물론 그렉에게 그런 걸 알려줄 생각은 없었다. 아직은 동심을 지켜줘야 할 때이지 않은가."

 그렉은 내 대답을 듣고 초롱초롱한 눈을 유지하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럼 왜 제논 일대기랑 피와 강철이랑 콜 오브 듀티랑 축구만 알려준 거예요? 다른 것도 많잖아요.""

 음······ 갑자기 많이 퍼뜨리면 재미없잖아요? 조금씩 조금씩 알려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약속해줄 수 있나요?""

 물론이죠.""

 미안하다. 그 약속은 지키기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 생각없이 지구의 문화를 퍼뜨리는 건 지양할 계획이다."

 축구를 퍼뜨린 이유는 콜 오브 듀티에 대한 예비책에 가깝다. 건강한 유흥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 영지는 축구가 유행한 이후부터 생활력이 대폭 상승했다. 출산율이 증가한 건 덤이고."

 '이미 퍼질 건 퍼졌겠지.'"

 물론 전부 의미가 없긴 하다. 피와 강철을 썼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웃긴 일이지."

 거짓말도 아니고 진실도 아닌 약속이라 할 수 있다. 그냥 어린애의 동심이나 지켜주자."

 제논 님. 제논 님이 사셨던 곳은 축구를 얼마나 잘했어요?""

 이후에 자잘한 대화가 이어졌다. 축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대부분 그쪽과 관련된 질문이더라."

 나는 웃음을 잃지 않고 그렉의 질문에 충실히 답해줬다. 저 정도 질문은 쉽다."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네!""

 정말 못했어요.""

 엑?""

 한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을 밝히자 그렉의 표정이 순식간에 당황으로 물들었다."

 마치 '산타는 없다'는 말을 듣고 충격받은 아이의 표정이다. 아무래도 내 위상만큼 대한민국 또한 비슷하다 생각했겠지."

 하지만 원래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이다. 이에 그렉의 꿈을 채워줄 역사적 사실을 꺼냈다."

 그래도 세계 최강을 꺾은 전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경기에서 말이죠.""

 으음······""

 쉽게 말해 하디칸 왕국이 미네르바 제국을 꺾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와아! 정말이요?""

 환하게 밝아진 그렉의 표정. 나는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축구라는 게 그런 놀이에요. 독보적으로 잘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걸 다양한 방법으로 메꿀 수 있어요.""

 펠레와 마라도나 다음으로 축구의 신이라 칭송받던 메시조차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영원한 우승 후보라 부르는 브라질도 매 월드컵마다 시원찮은 결과를 가져왔고."

 이를 본다면 축구라는 스포츠가 얼마나 기묘한 종목인지 알 수 있다."

 그러니 왕자님도 불가능이라 생각하던 일이 닥쳐왔을 때 포기하지 마세요. 아시겠죠?""

 네! 앞으로 평생 새겨들을게요!""

 축구가 빠른 시일 내에 발전할지는 미지수다."

 지구에서도 제국주의가 팽배하던 시절에 전세계로 퍼졌으니 오래 걸리겠지."

 과연 내가 죽기 전에 제대로 된 축구 경기를 볼 수나 있을까. 영지에서 보는 것도 정말 재밌어서 기대된다."

 '국제전은 꿈도 꾸지 말아······ 아니지. 건강한 정신까지 얻으면 모르려나?'"

 한 소년의 동심을 지켜준 것을 끝으로 하디칸 왕국에서의 팬사인회도 끝났다."

 국왕와의 대화도 별 거 없는 것이, 변방국이라 크게 대화할 주제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퍼뜨리는 진실 때문에 혼란스러워지는 하겠지. 그러나 하디칸 왕국은 종교적인 색채가 옅은 나라다."

 그냥 하루하루 농경일을 하거나 다양한 1차 산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 적당히 먹고 살기 좋은 나라라 할 수 있다."

 이제 헬리움으로 가는 거지?""

 그렇지.""

 하디칸 왕국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친 후에는 고대하고 고대하던 헬리움이다."

 세실리는 본인의 조국으로 향한다는 사실에 행복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미소를 보고 피식 웃었으나 내심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마키나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와 환영했는데 헬리움은 얼마나 심할까."

 얘도 참. 언제나 한결 같네.""

 응? 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다 티가 나는 거.""

 그런 내 마음이 얼굴로 드러났는지 세실리가 잔망스레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내 얼굴을 더듬거렸다가 이내 민망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속마음을 들킨 적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너무 부담가질 필요는 없어. 우리 헬리움은 진작부터 너를 성자로 숭배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더 부담되는데?""

 마족을 구원한 성자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죠?""

 음.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군."

 의도되지 않은 행적이라지만 과거는 다시 쓸 수 없는 법."

 설사 과거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제논 일대기는 집필했을 것이다."

 심심해서라도 써야지. 마족의 인식이 시궁창이었던 것도 크게 작용했다."

 헬리움은 크게 바뀐 건 없지?""

 딱히 바뀐 건 없어. 대신 연금술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어서 연금술사가 꽤 증가했지.""

 그러면 플라스틱은? 플라스틱을 완전히 분해시키는 기술은 어떻게 됐어?""

 그건 아직 연구 중이야. 생각보다 까다롭더라고.""

 범용성이 넓고 강철보다 튼튼하면서도 강철보다 가벼운 소재, 플라스틱."

 하지만 플라스틱은 완전히 분해되어도 문제고 그대로 방치해도 문제다."

 당장은 안전모를 수출하느라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있다지만 서둘러 완전분해 기술을 발명해야 될 것이다."

 처음에는 불에 태우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연기가 너무 심하게 나왔어. 설상가상으로 그 연기에 독까지 품어져 있었고.""

 원래 그래.""

 당장 연구 중인 방향은 아예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거야. 그러면 재활용도 가능해지겠지.""

 그거 지구에서도 힘든 기술이었는데 과연 이 세상은 가능할까."

 마법이 있어도 비행기조차 발명하기 힘든 세상이다. 이건 시간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괜히 미안해지네. 귀찮은 걸 떠넘긴 것 같아서.""

 절대 아니야. 당장 안전모만 보더라도 큰 효과를 갖고 있잖아? 누구는 방패를 플라스틱으로 제작해달라고 부탁까지 했어.""

 그건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철만큼 튼튼하면서도 무게가 가벼워 방패에 딱이라 하더군요.""

 케이트도 그 소문을 들었는지 옆에서 거들어줬다."

 아델리아조차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아하니 꽤나 퍼진 소문인 듯했다."

 왜 나는 그걸 몰랐을까. 집구석에 쳐박혀 있어도 신문을 꼬박꼬박 챙겨보는데 말이지."

 아무래도 신문이 아니라 세상에 알음알음 퍼지던 소문인 모양이다."

 아무튼 우리 헬리움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성장하고 있어. 딱 하나의 문제만 빼면.""

 그게 뭐야?""

 후계자 문제.""

 ······응?""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꽤 심각한 문제인 줄만 알았는데 뭔가 김빠지는 주제다."

 세실리도 장난식으로 말했지만 특유의 고혹적인 미소를 띄며 입을 열었다."

 시선은 분명 다른 곳으로 향했는데 나 들으라듯이 말하는 게 포인트다."

 알다시피 내가 형제자매도 없는 외동이어서. 사실상 다음 대 국왕이 나로 지정된 상황이지. 그런데 나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 그러면 헬리움이 상당히 혼란스러워질 거야.""

 ··· ···""

 어서 빨리 나도 후계자를 갖고 싶다. 마리도 낳았는데 나는 언제 가지려나~?""

 나는 그 말을 듣고 시선을 위로 옮겼다. 세실리의 뿔 쪽이다."

 아직 악주기가 도래하지 않아 그녀의 뿔은 검은색이 대부분이었다."

 '아직은 괜찮겠네.'"

 마리의 경우는 전혀 예측할 수 없던 사고였다."

 그러니 다른 사람만큼은 착실하게 계획을 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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