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705)화 (706/763)

 그에 어깨를 으쓱이며 찻잔을 들었다. 리나도 얼굴을 붉힌 채 찻잔을 들어올렸다."

 아무튼 문제는 없을 겁니다. 제국에게도 큰 도움이 되겠죠. 물론 국서가 아니라 마리의 남편으로 살아가겠지만 말이죠.""

 그렇군.""

 베리트는 내 대답에 별로 개의치 않은 것 같았다. 숨겨둔 수라도 있는 것일까."

 뒤이어 그는 레오르트와 한 번 눈을 마주쳤다가 다시 나를 바라봤다."

 이윽고 베리트가 진지한 목소리로 진실을 꺼내기 시작했다."

 실은 국서가 되겠다 했으면 우리가 반대했을걸세.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

 흠? 어째서죠?""

 의외라면 의외인 이야기다. 내가 국서가 된다면 미네르바 제국은 그 어느 나라도 범접할 수 없는 위상을 갖는다."

 당장 마이샬 영지조차 미네르바 제국, 그것도 수도 바로 옆에 붙어있지 않은가."

 황제라면 응당 욕심을 부릴 법한데 그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선 이것부터 묻지. 아이는 몇 명 정도 낳을 생각인가?""

 어······ 리나가 원하는대로요?""

 5명으로 생각하겠네.""

 아바마마!""

 베리트의 농담에 리나가 화들짝 놀라며 빼액 소리쳤다. 그에 껄껄 웃는 베리트와 레오르트."

 놀리기에 진심인 아버지와 오빠의 모습이다. 그 누가 저걸 보며 권위 높은 황족이라 생각할까."

 베리트는 리나가 숟가락을 던지려는 모션을 취하자 곧장 사과하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아이를 몇 명이나 낳든 상관없다네. 대신 한 명은 무조건 갖게 해줄 수 있겠나?""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세실리마저 임신한다면 그 다음부터는······ 순번 같은 건 없다. 그냥 모두 해피 엔딩을 맞이하는 것뿐."

 물론 저 말을 대놓고 할 수 없었으니 애둘러 말할 수밖에 없었다. 베리트도 이해하는 표정이었고."

 그나저나 궁금한 부분이 있다. 베리트는 어째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베리트 본인이 입 밖으로 꺼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네. 전에 리나가 말하길, 자네의 세상은 입헌군주제라는 제도가 존재한다고 하더군. 최종승인은 왕실에게 있고, 정치는 평민이 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 말씀은······""

 리나 세대에 입헌군주제, 그리고 민주주의를 도입할 계획이네.""

 베리트의 입에서 나온 폭탄발언.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쳐다봤다."

 전에 보던 장난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진지하디 진지한 표정."

 나는 한동안 그와 마주하다가 조용히 질문을 날렸다."

 어째서죠?""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누구 덕분에 일이 너무 많아져서 그렇네.""

 양심이 쿡쿡 찔리는 말이었다."

 리나 일러스트 곧 공지에 올리겠습니다!"

 *******"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왕의 권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봉건제, 그러니까 '영주'라는 개념이 명확히 존재하는 제도에서 왕의 권력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

 왕이라고 해봤자 가장 큰 도시를 다스리는 영주에 가까운 취급이다. 괜스레 권력 다툼이 꾸준히 일어나는 게 아니다."

 중앙집권체제는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으나 세금을 거두는 과정에서 큰 손해가 발생한다."

 그나마 이 세상은 텔레포트가 존재해서 세금을 쉬이 거둘 수 있는 거지, 지구는 극악의 비효율을 달린다."

 오죽하면 거두는 세금보다 그 세금을 운송하는 비용이 더 나온다고 할 정도일까."

 과거의 중국도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으나 체제의 안정을 위해 중앙집권화를 추진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약점을 제대로 잡히는 바람에 아편 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해버렸지만."

 권력을 모두 포기하실 생각이십니까?""

 미네르바 제국은 위의 단점에서 한없이 자유롭다. 세금 문제도 텔레포트를 이용하면 끝이고, 권력도 베리트에 치중돼 있다."

 레킬리스 공작은 권력을 버리고 권위가 높은 총리격 가문이고, 후작가들은 대부분 군사 가문들이다."

 나머지 백작들이 있다지만 감히 황제에게 덤빌 수 없는데다가 악마 숭배자로 크게 휘청였다."

 아무리 일이 많다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인데 그걸 포기한다는 건 다소 놀라운 선택이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아까 말했다시피 일감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다네. 앞으로 이보다 더 많아질 거고.""

 그건 그렇다지만······""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리나는 사법과 관련된 부분을 조정하고 있어. 영주들이 가진 권한을 빼앗는 거지.""

 전에 들은 적이 있다. 리나가 원하는 건 사법 체계를 좀 더 견고하게 만드는 것."

 봉건제는 그 특정상 판사가 영주이며 변호사나 검사도 없다. 오직 죄의 유무만 판단할 뿐이다."

 당연하게도 억울한 자가 양산되기 딱 좋은 구조다. 이러한 병폐들을 없애기 위해 권한을 뺏는 것이다."

 마력 기관차의 등장으로 철도가 깔리고, 자네의 조언으로 바다를 지배하기 위해 해군을 강화시키는 중이지. 대공황을 해결할 수 있었던 공장들도 점차 늘어날 걸세. 더 나아가 종교도 마찬가지. 이 모든 것들이 자네의 손에서 태어난 결과물일세.""

 ······저는 조언만 했을 뿐입니다.""

 겸손하군. 하지만 우리 제국이 부강해지는만큼 내가 해야 할 일도 대폭 늘어날걸세. 각 분야마다 '전문가'가 거의 없는 수준이니 무조건 내 쪽으로 넘어오겠지.""

 맞는 말이다. 미네르바 제국의 최종권한은 언제나 황제, 베리트에게 달려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중간에 거쳐가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냥 나라에 이런이런 일이 있다며 전부 넘어간다."

 중간에 레킬리스 공작가가 도움을 줄 수 있기에 망정이지, 스트레스성 위염이 걸려도 이상하지 않다."

 여기서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겠네. 짐이 미네르바 제국의 몇 대 황제인지 알고 있나?""

 ······제가 알기로 폐하의 성함은 베리트 우르미 재클리스 미네르바 21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500년이라는 세월 동안 황제가 20번이나 바뀌었지. 그중에 7명이 과로로 사망했네. 당장 내 아버지께서 그렇게 돌아가셨지.""

 황제나 왕은 언뜻 좋아보이지만 실상은 하루에 6시간 이상 자기도 힘든 위치다."

 틈만 나면 과로로 사망하기 일쑤이며, 권력이 불안한 상황에서는 암살까지 걱정해야 된다."

 그 자리에 앉은 자, 책임을 견뎌라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직위. 몸과 마음 모두 편할 수 없다."

 황실의 권력을 풀어서 전문성을 띄는 기관을 만든다. 이것이 짐의 목표이며 리나가 원하는 방향일세. 첫번째로 개인은 물론 단체도 쉬이 건드릴 수 없는 법을 만드는 것이지.""

 헌법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히틀러 같은 괴물이 태어나면 안 되니까.""

 피와 강철이 마냥 혼란만 유발한 건 아닌 모양이다. 특히 피와 강철은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둔 소설이다."

 히틀러는 헌법을 건드려서 수권법을 통과시킨 게 아니다. 수권법을 막을 수 있던 헌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이 부분은 테르스 왕국이 더 효과적이라 할 수 있겠지. 그쪽은 사실상 민주주의가 들어서기 쉬운 환경이니까 말일세.""

 베리트의 푸념처럼 테르스 왕국은 현재 삼권분립의 기본적인 토대를 만든 상황이다."

 비록 사법부가 없는 상황이나 '의회'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 중이다."

 어찌 됐든 간에 의회는 평민의 대표들이 나서는 자리였으니까. 괜히 그들이 문화의 나라라 칭하는 게 아니다."

 꽤 힘든 싸움이 되겠군요. 권력을 결집하는 것도 힘들 텐데 그것을 분산시킨다면 귀족들이 크게 반발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것 때문에 리나와 아이를 몇 명이나 가질 건지 물어본 걸세. 아예 안 가진다고 했으면 착잡했을 테니까.""

 그야말로 '묘수'라 할 수 있다. 내가 국서가 되지 않더라도 나와 이어지는 것만으로 강력한 권력을 얻게 된다."

 더 나아가 체제를 입헌군주제로 바꾸어도 큰 반발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내가 따로 조언하지 않더라도 압박감을 느낄 테니까. 당장 마키나는 내 조언으로 혁명에 성공했지 않은가."

 아이작 님의 의지를 잇는 것처럼 보이겠군요. 리나 님은 아이작 님께서 은혜를 받을 몸이시니.""

 케이트의 말마따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리나의 행동이 내 의지처럼 보여질 수도 있다."

 뭐, 솔직히 말해 별 상관은 없다. 일단 리나가 나에게 흠뻑 빠져있다는 게 결정적이다."

 무슨 파란 너구리 로봇마냥 조언을 받는 건 조금 아니지 않냐고 할 수 있는데, 차라리 조언을 받는 게 훨씬 낫다."

 나는 민주주의가 기본 디폴트값이어도 이 세상 사람들은 군주제가 익숙하다. 중간에 삐걱거린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지 모른다."

 심지어 나조차 모르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대공황이 바로 가장 큰 예시다."

 케이트 추기경께서 요점을 정확히 짚으셨군. 혹시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런 건 아닌지?""

 절대 아닙니다. 도리어 아이작 님의 영향력이 더욱 퍼져나가니 도움을 드릴 의향도 있습니다."

 그, 그거 다행이로군.""

 예상보다 포용력이 넓어도 너무 넓은 케이트의 대답에 베리트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그는 케이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만약 이용당한다는 느낌이 든다면 사과하겠네. 변명 같겠지만 국가와 관련된 일은 절대 감정적으로 대해서는 안 되거든.""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해타산적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겠다만 어쩔 수 없다."

 베리트의 말마따나 국가와 관련된 일을 감정적으로 해결하는 순간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우려먹다 못해 사골까지 만들겠다면 그 절정이 바로 나치 독일이다. 감정적 국정의 끝판왕이자 모든 걸 말아먹은 이유."

 여태까지 내 조언을 받아들인 것도 감정적이라 할 수 있으나 그들이 바보도 아니고 여러 계산을 통해 도출했을 것이다."

 게다가 저는 조언만 할 뿐이지, 선택은 폐하께서 하시는 겁니다. 저는 단지 멀리서 지켜볼 예정이고요.""

 이해해줘서 고맙네. 그럼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되겠나?""

 무엇을 말이죠?""

 헌법을 제정할 때 참고할만한 문헌이 있나 싶어서 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테르스 왕국을 따라하고 싶다만 쉽지 않아서 말이야.""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테르스 왕국은 헌법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권리장전이 제정돼 있다."

 권리장전도 똑같은 권리장전이 아니라지만 인권 및 평등을 중요시 여긴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존재한다."

 앞으로 시간이 흐른다면 권리장전을 토대로 헌법이 제정되겠지. 하지만 미네르바 제국은 그보다 더 앞서기를 원했다."

 음······ 헌법은 그 나라의 역사를 기반으로 두는 편이라서요. 저도 저희 나라의 헌법밖에 모릅니다.""

 더군다나 그 헌법조차 1조 1항이 아니라 2항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옛날에 본 영화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이라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상관없다네. 토대가 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구절일 테니까. 한 번 말해줄 수 있겠나?""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훌륭하군.""

 베리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 구절이야말로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다."

 미네르바 제국의 헌법이 제정될 때도 과연 저 구절이 그대로 들어갈지는 모른다."

 무턱대고 민주주의를 도입시키는 것보다는, 테르스 왕국처럼 의회부터 신설한 후에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나가 오랫동안 통치를 해야 되는데······'"

 그 생각이 들자 리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둔 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다."

 과연 미래의 미네르바 제국은 어떤 양상을 보일까. 그 막대한 영토를 잘 관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중간에 쪼개질까."

 어떻게 되든 간에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신들조차 내가 존재하는 이상 이 세상의 미래를 모르고 있다."

 레오르트. 너는 리나를 도와 사법부의 개설을 도와주는 게 좋겠구나. 혹시 모르니 권력이 집중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나을게다.""

 알겠습니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군.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네.""

 슬슬 해산할 시간이 되었을 때 베리트가 나를 불렀다. 이번에는 또 어떤 조언을 원하려나."

 하지만 예상과 달리 조언을 구하려는 듯한 표정이 아니었다. 다소 심각해 보이는 얼굴이다."

 이어서 그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내가 기다리던 질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이번에 완결된 작품 말일세. 멸망을 향해 걸어가는 기사였던가?""

 네. 맞습니다.""

 그 책도 재미있게 읽었지. 헌데······ 마지막 부분이 다소 의미심장해서 말일세.""

 마지막 부분이라함은 그것이다. 기사가 성녀와 함께 악신을 물리쳐서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부분."

 현재 악신을 물리쳤는데 어째서 세상이 멸망하는지에 대해 온갖 갑론을박이 오고 가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의견이 등장했으며, 그중에서 상당히 예리한 것도 나왔다."

 우리의 미래가 그것과 연관이 있는지 궁금하다네.""

 우리라 하면······""

 인간, 수인, 드워프, 엘프, 마족. 모든 인류일세.""

 명석한 분이신만큼 결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대략 눈치챈 모양이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베리트의 표정이 묘해졌을 때쯤,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세상이 멸망할 일은 절대 없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그렇게 만들 겁니다.""

 ··· ···""

 단호한 내 대답에 베리트는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억눌린 듯한 반응이다."

 뒤이어 나는 빙긋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저도 해피 엔딩을 원하거든요.""

 베리트는 내 확신 어린 대답을 듣고 피식 웃더니 명료히 반박했다."

 그런 자가 처음에 진을 죽였나?""

 그건 할 말이 없네요.""

 진짜 할 말이 없어서 넘어갔다."

 ******"

 디저트 타임까지 끝나고, 베리트는 오늘 하루만 황궁에서 머무르라고 편의를 베풀어줬다."

 말만 편의지, 사실상 리나와 깔끔히 하룻밤만 보내라는 무언의 표시와 다름없다. 나 또한 그걸 모르는 바보가 아니다."

 그리하여 케이트는 신전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고, 아델리아는 방을 따로 잡은 채 잠을 자기로 정했다."

 그렇다면 마리와 세실리는 어디서 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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