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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99)화 (700/763)

 딱히 없단다. 네가 원하는대로 탈선만 하지 않도록 하면 되거든. 훗날 네가 신격을 얻더라도 그 아이는 별개의 존재이니 아무런 영향도 없을 거란다.""

 영웅의 혼은 천사가 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격이라 하지 않았나요?""

 만물의 아버지가 부재 중인 탓에 천사는 더이상 탄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영웅의 혼들을 전부 발할라에 짱박아 놓았으며 클라크 할아버지도 그곳에서 계셨다."

 듣자하니 꽤 살기 좋은 곳이라나 뭐라나. 대신 물리적인 신체를 가지지 못해 심심한 구석이 많단다."

 부활하자마자 시가를 뻑뻑 피우시는 걸 보면 어떤 느낌이 대략 알 것이다."

 그렇지. 하지만 아리엘과 달리 신격을 지닌 채 태어난 존재가 아니잖니? 물론 그 아이가 원한다면 너와 같은 성자의 반열에 들어서서 영구적인 수명을 얻을 수 있을 거란다.""

 그건 차차 생각해볼 문제겠네요. 으음······""

 나는 루미너스의 설명을 듣고 고민했다. 진로(?)는 둘째치고 육아 및 양육부터 난관이다."

 영웅의 혼이 깃든 아이를 가족이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다못해 환생자인 나도 얌전하게 성장했다."

 소문이 퍼지는 건 상관없다. 어차피 휘광을 뿜어내며 탄생을 알렸으니 퍼질대로 퍼질 예정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단다. 정신은 여느 아이와 똑같을 테니까.""

 그래서 문제에요.""

 루미너스의 은총을 직접 받은 케이트는 물론 나조차도 갓난아기 시절은 다 똑같다."

 심지어 나는 환생자인데도 3살까지의 기억이 거의 전무하다. 어머니 말로는 다른 아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반면 그레이스처럼 날 때부터 비범하지는 않았다. 24시간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몸을 뒤집었다."

 육체와 영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처럼 정신과 육체 또한 마찬가지다."

 자칫하다가 몸은 어른인데 정신은 어린아이인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것도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신체와 정신 모두 조화를 이루면서 성장하거든.""

 성장 속도 자체는 일반인과 똑같다는 거죠?""

 그래. 단지 힘이 좀 세다거나 비범한 신체 능력을 보여준다거나 등등. 영웅의 편린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겠지. 뒤집기를 비롯해 걷기도 근력이라 할 수 있잖니?""

 벌써부터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앞으로 몇 주 뒤면 팬사인회를 돌 예정이다."

 과연 그 시간동안 마리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어머니와 유모가 도와줄 거라지만 그래도 걱정된다."

 아무래도 텔레포트를 이용해 저택으로 자주 돌아와야 할 듯했다. 시간이 좀 더 빠듯해지겠지."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야. 네 아이에게 사랑을 퍼부어준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자랄 거란다.""

 그거야 당연하죠.""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가문 출신은 다들 얌전히 자랐다는 것."

 나는 환생자이니 그렇다 쳐도 데이브와 니콜도 육아 난이도가 나름 쉬운 편이었다."

 잘 때는 잘 자고 먹을 때도 잘 먹고 무엇 하나 어려운 게 없었다고. 그나마 통잠을 늦게 잔 것밖에 없다."

 혹시 그레이스의 미래를 엿보실 수 있나요?""

 읽을 수는 있지만 먼 미래는 사실상 불가능하단다. 너와 제일 가까운 관계니까.""

 결국 제가 노력하는 수밖에 없군요.""

 힘내라는 말밖에 못하겠구나. 24시간 동안 전투하는 것보다 육아가 더 힘들 거란다.""

 다른 신도 아니고 전쟁의 신이 저런 말을 하니 더욱 두려워진다."

 이래나 저래나 그레이스는 내 딸이니 아낌없는 사랑을 퍼부어줄 생각이다."

 육아 과정이 조금 험난하겠다만 괜찮다. 사랑으로 보듬어주면 된다."

 그리고 그 결심은."

 그레이스! 어디 가니! 뛰지 마! 이리로 와!""

 아우! 우우!""

 일주일만에 저택을 뛰어다니는 그레이스를 보며 조금 흔들렸다."

 어떻게 저 짧은 다리로 저런 속도를 내는 거지. 말도 안 된다."

 나는 저택 이곳저곳 종횡무진하는 그레이스의 뒤를 급히 따라갔다."

 마리는 산후조리를 하고 있는지라 어지간해서는 안정을 취하는 중이다."

 따라서 그레이스를 담당할 사람은 몇 없었는데, 여기서 두 발로 서서 뛰어다니니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다."

 저것 봐. 그레이스 님이 벌써 뛰어다니시네.""

 제논 님의 자식이어서 그렇겠지?""

 세상이 빛으로 가득 차겠어.""

 나와 그레이스가 추격전을 벌이는 동안 저택의 사람들이 저마다 감탄했다."

 일주일만에 걷다 못해 뛰어다니는 아기라니. 누가 봐도 '신화'를 목격하고 있는 느낌이겠지."

 정작 나는 죽을맛이다. 혹여 그레이스가 발을 잘못 디뎌 다치기라도 할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수도 없는 것이, 보나마나 머뭇거릴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대역죄인이 되겠지. 내가 고생하는 게 훨씬 낫다."

 '진짜 이참에 아탈란테로 개명시킬까?'"

 달리기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아직 달리는 방법을 몰라 두 팔을 휘적이는데도 그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지금보다 더 성장했을 때는 어찌 될련지. 어머니 말로는 3살 때가 가장 힘들단다."

 3살로 성장한 그레이스는 도대체 얼마나 빠를지 두려웠다."

 [음?]"

 한참을 뒤쫒고 있을 때 모퉁이에서 익숙한 해골······ 아니, 사람이 나타났다. 클라크 할아버지다."

 이제는 숨길 것도 없었기에 투구를 벗고 돌아다니는 그. 클라크 할아버지는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그레이스를 발견했다."

 그레이스는 클라크 할아버지를 지나치며 모퉁이를 돌려고 했지만······"

 [아이고. 우리 증손녀. 그러다 다쳐요.]"

 클라크 할아버지가 아주 부드럽게 그레이스의 몸을 캐치했다. 언제 잡았는지도 모를 속도와 부드러움이다."

 나는 그레이스가 잡히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더이상의 추격전은 없을 것 같다."

 그래. 그러리라고 굳게 믿었다."

 빠아!""

 빠악!"

 그레이스가 작디 작은 손으로 클라크의 머리를 세게 후려치기 전까지는."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아기의 손으로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는 건가."

 물론 클라크 할아버지는 스켈레톤 상태였기에 아무런 피해도······"

 [끄어어억!]"

 ······입지 않아야 정상인데 어째서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시는 걸까."

 클라크 할아버지가 머리(두개골)을 부여잡으며 쓰러지면서 그레이스는 다시 도망가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상황에 멀리 도망가는 그레이스를 황망히 쳐다봤다."

 어떻게 클라크 할아버지에 '고통'을 줄 수 있는 것일까. 언데드 상태셔서 통각을 느끼지 못하시는데."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으으······ 괜찮긴 한데······]"

 클라크 본인도 고통이 느껴지는 이유를 모르는 듯했다. 그레이스에게 영웅의 혼이 담겨서 그런 건가."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었으나 다짜고짜 클라크 할아버지의 머리를 친 것도 의아하다."

 지금처럼 제멋대로인 성향은 있어도 부모인 나와 마리에게 손찌검은 하지 않았으니."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매한가지다. 투정을 부려도 의도를 가득 담아 때리진 않았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구나.]"

 익숙한 느낌이요?""

 [그래. 원한······ 아니, 답답함이라고 해야하나? 뒤는 몰라도 원한을 살만한 곳은 없는데?]"

 클라크 할아버지는 이해가 힘드셨는지 중얼거리며 곰곰이 되짚으셨다."

 나는 원한이라는 말과 그레이스가 지닌 영혼을 떠올렸다. 그레이스는 영웅의 영혼을 가진 아이."

 그리고 영웅은 천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발할라에서 대기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

 [뭐냐.]"

 혹시 발할라에 계셨을 때 사고를 치신 적은 없으셨나요?""

 [너무 많이 쳐서 기억도 안 난다. 애당초 틈만 나면 싸워대는 곳이야.]"

 영혼에서 우러러 나오는 감정이라는 건가. 유독 클라크 할아버지에게만 쌀쌀맞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그레이스가 남긴 수수께끼를 푸느라 여념이 없는 클라크를 두고 다시 추적에 나섰다."

 속도가 빠르다지만 그 짧은 다리로 얼마 가지 못했겠지. 밖으로 나가는 것만큼은 저택의 고용인들이 막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레이스를 발견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래요. 그레이스 님. 뭐가 불편해서 찾아왔나요?""

 우웅.""

 배가 고픈 모양이네요. 저는 아직 은혜를 받지 못해 모유가 안 나온답니다. 마리 씨에게 돌아가죠.""

 케이트가 그레이스를 안은 채 침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또다시 의문을 가졌다."

 클라크 할아버지에게는 쌀쌀맞게 굴었으면서 케이트의 말은 잘 듣는다."

 분명 말도 못 알아들을 텐데도 그녀가 앞에만 있다면 안아달라 부탁하기까지."

 오죽하면 마리가 섭섭해 할 정도로 유달리 케이트를 잘 따랐다."

 '······클라크 할아버지랑 케이트랑 관련이 있는 자의 영혼인가?'"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모라의 설명을 빌리자면 갓 태어났을 때는 영혼의 끌림이 더 강하다고."

 성장할수록 영혼의 흔적이 옅어지고, 자연스레 그러한 경향도 없어질 거라고 설명했다."

 아. 여기 계셨군요. 그레이스 님은 여기 계십니다.""

 매번 귀찮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이처럼 다사다난한 그레이스 탄생기 및 육아기가 시작되고."

 [멸망을 향해 걸어가는 기사의 완결본. 사흘 후 출시 예정.]"

 모험을 떠날 준비가 서서히 다가왔다."

 로만의 작품, 멸망을 향해 걸아가는 기사는 큰 관심을 받는 작품이다."

 아이작이 여러 조언 및 설정을 추가한 것도 작용했으나 작품 자체부터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일단 전반적인 스토리가 암울하다 못해 비참하다. 세계관이라 해서 다를 게 없다."

 신들이 모두 사라져 순리가 어긋났다는, 결코 존재해서는 안될 세기말."

 이뿐만 아니라 나름 비중 있어 보이는 등장인물조차 비참하게 죽어나갔다."

 오죽하면 희망을 인질 삼아 사람의 마음을 고문하는 작품이라고 평가될 정도."

 그래도 사람들이 큰 관심을 주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재미있으니까."

 재미조차 없었더라면 관심도 주지 않았을 것이며 도리어 제논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며 욕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멸망기사가 피와 강철 다음의 존재감을 드러낸 가장 큰 이유가 있다."

 [나는 멸망기사를 읽을 때마다 외친다. 빛 만세!]"

 [망해가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저런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 것인가?]"

 [굳센 믿음은 곧 강함이다. 그에게 의심따위는 찾아볼 수 없으며 그것이 강함의 비결.]"

 약방의 감초를 넘어서서 한 줄기 빛 같은 인물들이 존재했기 덕분이다."

 주인공의 곁을 보좌하는 성녀도 성녀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건 빛의 기사 라이트."

 대충 눈치챘겠지만 아이작이 전생의 게임에서 등장한 캐릭터를 오마주한 것이다."

 그 게임의 세계관도 멸망기사처럼 세기말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

 더 나아가 순리가 완전히 어그러져 죽지 않는 자들이 세상을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는 절대 미치광이가 아니다. 사라져버린 빛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라이트를 본받아야 할 것. 그처럼 굳센 신념을 지닌 자가 또 어디에 있겠나?]"

 워낙 암울한 세계관이다보니 라이트의 존재감은 주인공급이라 할 수 있었다."

 가끔 가다 주인공을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는 건 물론이요, 꽤 진중한 조언도 건네는 편이니."

 오죽하면 성녀가 아니라 라이트가 진정한 짝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할 정도다."

 물론 라이트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해서 그렇지, 이외에 매력적인 캐릭터는 많다."

 [멸망기사를 읽을 때 한 가지 당부하고 싶다. 이름 없는 기사, 성녀, 라이트 이 셋을 제외하고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애정을 가지지 마라.]"

 전부 죽거나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게 흠이지만 말이다."

 주인공을 선뜻 도와주던 조연이 미쳐버리는 바람에 싸울 수밖에 없는 건 기본이다."

 뒤통수를 화려하게 치는 빌런이 등장하거나 세기말에 으레 등장할 법한 사이비 교주 등등."

 망해가는 세상에서 어떤 인간군상들이 존재하는지 전부 보여주고 있었다."

 [이 세상도 슬슬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과연 숨겨져 있던 진실은 무엇인가?]"

 [기사는 어떤 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인가? 작가와 제논은 무엇을 전달하려는 건가?]"

 [루미너스, 모라, 히르트 이 셋을 제외한 다른 신의 존재? 이것은 진실인가?]"

 그리고 길고 길었던 이야기의 끝이 다가왔다."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만물의 아버지와 관련된 떡밥도 충실히 뿌렸고, 남은 건 수거다."

 단, 만물의 아버지는 고대에 존재하던 신이라고만 묘사했다. 그 신이 부활해 세상을 어지럽힌 거고."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신을 처치한다면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게 된다."

 주인공과 성녀는 그 비를 피하기 위해 동굴로 피신한 후, 다가오는 종말에 조용히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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