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95)화 (696/763)

 그러자 미소를 짓는 아르웬. 뺨이 약간 붉어진 걸 보아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애인이 갖고 있는 섭섭함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 특히 아르웬은 스트레스가 쌓이기 쉬운 환경이다."

 그때마다 내가 살살 풀어준다면 서운함을 느끼지는 못하겠지. 내가 선택한 여인이니 아낌없이 사랑해줄 것이다."

 앞으로 2개월. 2개월 동안 서로 상의하면서 조율해줘. 나도 머스크 씨와 일정을 조율하면서 정보를 전달할게.""

 우리는 따로 할 게 없느냐?""

 아버지랑 어머니는 평소처럼 하시면 돼요. 아! 제가 자리는 비우는 동안 축구 일정이 이상해지지 않도록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네요.""

 아. 요즘 아이를 가진 부인들이 많아졌다고 하더구나. 산모를 위해서라도 신전을 지원해야겠지.""

 나는 가족들끼리 이런 저런 의견을 나누라고 한 후 잠깐 자리를 떠났다."

 계획도 계획이지만 가장 중요한 사람이 한 명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도 같이 가도 되지?""

 네. 그러세요.""

 모라도 내가 누구와 만날지 예상한 것인지 함께 대동했다. 가족들은 우리가 함께 떠나는 모습을 보고도 토론에 집중했다."

 이윽고 모라와 내가 함께 도착한 곳은 루미너스 신전. 뒤이어 모라와 함께 예배실로 들어섰다."

 예배실로 들어서고 눈을 잠깐 감았다 뜨니 새하얀 배경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이제 시작하는 거니?""

 그와 동시에 귓가로 들리는 익숙한 남자의 미성. 나는 그 질문을 듣자마자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자 잘생긴 외모와 근육질 몸매의 루미너스와 우리를 반겨줬다. 여전히 매치가 되는 듯하면서 안 되는 외모다."

 아직 시작하는 건 아니죠. 2개월 뒤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니까.""

 그래. 그렇구나.""

 무언가 복잡한 지 그 대답만 남기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 루미너스."

 정말 이래도 되냐는, 복장한 심경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얼굴이다."

 위로를 해줘야겠지만 나는 그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여기서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다."

 오빠.""

 ··· ···""

 이러다가 아버지가 부활하면 아이들은 또다시 고통받을 거야.""

 모라가 담담하면서도 뼈가 실린 말을 루미너스에게 건넸다. 그에 루미너스가 고개를 들며 모라를 쳐다봤다."

 나 또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별이 흐르는 것 같은 검은색 눈동자에는 안쓰러움이 담겨있다."

 이제 이 일도 마무리해야지. 늦어도 너무 늦었어.""

 늦었다라······""

 지금이 아니면 우리 아이들은 평생동안 악마 숭배자에게 고통받을 거야. 종양을 치료할 때는 극심한 고통이 따르지만, 목숨을 위협하는 종양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처럼.""

 만물의 아버지와 악마 숭배자는 말 그대로 암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평범하디 평범한 창조신과 숭배자지만, 변질된 지금은 해악을 끼치는 종양."

 지금은 어느 정도 약화시켰다지만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어디든지 전이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자. 오빠도 이제 편히 쉬어야지.""

 ······그래.""

 모라의 설득에 루미너스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해야 할 일인 건 알고 있지만 마음의 짐이 상당히 무거운 모양이다."

 사실상 자신의 아버지를 두 번 죽이는 셈이니 심경이 복잡하겠지. 공감할 수는 없어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명심해야 된다. 만물의 아버지는 절대 부활하면 안 된다."

 '부활을 위해서는 숭배자가 필요하겠지만.'"

 소멸된 신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중 중요한 게 신성과 숭배자."

 신성이 존재한다면 완전히 소멸한 것이 아니며, 만약 숭배자들이 충분한 신앙을 전수한다면 부활할 수 있다."

 만물의 아버지는 전자는 충족해도 후자는 한참 부족하다. 애당초 악신으로 묘사될 테니 부활의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질 것이다."

 '그래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여태까지 살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 세상은 언제나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우후죽순 튀어나온다고."

 제논 일대기가 그러했으며 악마 숭배자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대공황이 터져버려 세상을 어지럽혔다."

 분명 중간에 무언가 터진다. 악마 숭배자를 자극할 계획이기도 하니 100%에 가깝다."

 그걸 타파하기 위해서 루미너스를 만난 것이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루미너스 님.""

 말하렴.""

 현재 저는 건강한 신체를 얻은 상황입니다. 이 덕분에 사실상 물리적인 타격을 입는 건 거의 불가능하죠.""

 신성력이 바닥나지 않는 이상 물리적인 타격을 입은 건 힘들다."

 스타비르크에서 총을 맞아서 기절한 것도 마찬가지. 총을 맞았을 때는 멀쩡했는데 착지를 잘못해서 잠시 기절한 거다."

 그러므로 물리적인 공격에서는 한없이 자유롭다. 하지만 약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다만 현자와 만났을 때 깨달았습니다. 건강한 정신을 얻지 못한다면 그런 공격에는 한없이 약해진다는 걸요. 만약 지구의 신들께서 도움을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건강한 정신이라······""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면 지구의 신들께서 도움을 주시겠죠. 그러나 지구의 신들께서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닥쳐온다면 솔직히 말해 게임 오버다. 그런 상황이 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말이다."

 물론 대비책을 세워놓지 않은 건 아니다. 클라크 할아버지가 내 몸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했으니."

 지금도 아리엘의 머리 새싹으로 만든 부적을 갖고 있다. 마법필과 수첩이 보관된 앞주머니에 말이다."

 건강한 정신을 얻도록 도와주세요. 훗날 제가 위험해져도 맨 정신으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도록.""

 ··· ···""

 무슨 시련이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결의에 찬 내 부탁에 루미너스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이글거리는 것 같다."

 부담스럽다 못해 보기만 해도 몸이 움츠려지는 시선이다. 나는 굴하지 않고 묵묵히 마주했다."

 그렇게 얼마나 서로를 보고 있었을까. 루미너스는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건강한 정신은 수련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란다. 말로 통해 알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네가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부분이란다. 지구의 예수와 부처가 그랬던 것처럼.""

 신들마저 건강한 정신을 얻는 방법을 알려줄 수 없다니 조금 아쉽다."

 일종의 보험 같은 거였는데 이리 된다면 마냥 안심할 수 없는 모험이 될 것 같다."

 그런 내 착잡한 마음을 읽었는지 루미너스가 나에게 말했다."

 대신 힌트를 주도록 하마. 지구의 성자가 신을 넘어 종교가 된 케이스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지. 예수와 부처.""

 그건 알고 있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모든 이의 죄를 짊어졌고, 부처는 깨달음을 얻은 후 열반에 들어갔단다. 여기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거야.""

 ··· ···""

 나는 힌트를 듣고 해괴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저 둘에서 무슨 힌트를 얻으라는 건지."

 루미너스도 그런 내 반응을 예측했는지 미묘한 미소만 지었다. 그때 모라가 그에게 말했다."

 오빠.""

 응?""

 그거 잘못하면 우리도 위험하지 않아?""

 아무래도 모라는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썩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반응을 보면 확실하다."

 이에 루미너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알게 뭐라는 뉘앙스로 답했다."

 얘가 큰일나면 우리도 큰일나는 건데 뭐 어때? 아버지가 부활해서 세상이 멸망할 바에야 저쪽 신들에게 넘겨주는 게 훨씬 낫지.""

 ······에휴. 난 모르겠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어! 라는 마인드에 모라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건강한 정신을 얻기 위한 조건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할 것 같다."

 중요한 순간에 제가 어떤 선택을 해야 되는 건가요?""

 그 질문에 루미너스가 의미심장하게 답했다."

 그건 네 자유란다.""

 *****"

 멸망기사의 완결까지 2개월이 남은 시간. 나는 탱자탱자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훗날 모든 인류의 기원이 인간임이 밝혀진다면 보나마나 인간우월주의 같은, 별 쓰잘데기 없는 사상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비록 나치를 통해 인류의 광기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줬다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평범한 사람이 나치로 어떤 피해를 입는지 보여주는 책.]"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버티지 못해 죽었다.]"

 [수용소 같은 건 절대 존재해서는 안 될 감옥.]"

 그래서 '안네의 일기'를 통해 보여줬다. 우월주의가 얼마나 지독하고 위험한 지를."

 오스카 쉰들러를 통해서 자그만한 인류애를 보여줬다면, 안네의 일기는 정확히 반대에 속해있다."

 사람들은 일기 형식의 독특한 책에 저마다 다양한 의견을 주고 받았다"

 특히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상황에서 나는······"

 오랜만이네요, 선조님.""

 [그동안 재미있는 짓을 저질렀더구나.]"

 내 선조이자 이 이야기의 시작점을 방문했다."

 지금까지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회색 사막 원정은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학자들은 게리오스 왕국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샅샅이 파악하고 있었으며, 각 국가 간의 충돌도 없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밝혀졌는데, 사막화가 된 주요 원인은 바로 토양이 바닷물에 '오염'되었다는 것."

 한때 해수면이 올라갔다가 내려간 곳이니 바닷물에 흠뻑 젖는 건 당연하지만, 토양에 염분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사막화가 더 심하게 진행되고 비가 거의 오지 않으니 태양 또한 더 뜨겁게 느껴졌다."

 따라서 토양의 염분만 어떻게든 해결한다면 알븐하임 못지 않은 곡창 지대로 바뀐다는 소리다."

 [우리 왕국이 동쪽으로 뻗어나갈 수 있던 이유도 거대한 곡창 지대 덕분이었지. 지금이야, 모두 의미없는 이야기지만.]"

 정말로 로마가 됐을 수도 있었겠네요.""

 [로마가 무슨 나라인가?]"

 천년제국이라면 어떤 나라인지 감이 잡히나요?""

 [굉장하군.]"

 오랜만에 선조이자 이야기의 시작점, 모건 왕과 만나 잡다한 담화를 나눴다."

 그동안 데이모스를 통해 내 책을 읽으면서 꽤 감명 받았다고. 피와 강철을 모조리 읽었다나 뭐라나."

 성공가도를 달리던 군주가 처절하게 몰락하는 과정은 세계를 불문하고 똑같다고 말해줬다."

 [특히 원자폭탄은 믿을 수 없었지.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인간이 세상을 멸할 무기를 발명했다니 말이야.]"

 전에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만?]"

 잘 생각해보니 모건 왕에게는 신화만 주구장창 알려줬지, 원자폭탄 같은 건 언급하지 않았다."

 강력한 마법으로 산을 사라지게 만들 수는 있어도, 폭탄 하나가 도시를 소멸시킨다는 건 믿기 힘들겠지."

 원자폭탄은 인간의 뛰어난 지능이 안 좋은 쪽으로 쏠렸을 때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제가 사는 세계는 별의별 기물들이 많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제 입장에서는 오히려 마법이나 주술이 더 신기하고요.""

 [서로 관점이 달라서 그런 거겠지. 아무튼 나를 찾아온 이유부터 알려줄 수 있겠나?]"

 잡다한 이야기 후로 본론으로 들어섰다. 모건 왕도 내가 왜 찾아왔는지 궁금해하는 듯했다."

 이에 나는 왕좌에 앉아있는 모건 왕을 똑바로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6월 말에 모든 것이 결정될 겁니다. 운명이든 뭐든 간에.""

 [··· ···]"

 폐하께서 저에게 부탁하셨죠. 옥체를 되찾아 성불을 시켜달라고.""

 당시에는 별로 관심없는 이야기여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모험에는 전혀 관심 없었으니까."

 하지만 여태까지 단서들을 종합한 결과, 몇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우선 모건 왕의 존재부터."

 그는 왕궁에 속박되어 절대 벗어나지도 못하는 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있는 것인가."

 루미너스가 벌을 줬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클라크 할아버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클라크 할아버지는 장례를 치르지도 못했는데도 발할라에서 영혼 상태로 계셨다. 후에 주술로 부활하셨고."

 현재 그 몸을 차지하고 있는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나는 여기서 가설을 하나 세울 수 있었다. 누군가 모건 왕의 육체를 차지하고 있다."

 모라가 알려줬다. 신체와 영혼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하나의 생명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아리엘의 실수로 신성을 섭취했을 때 그랬다. 격이 상승한 영혼을 위해 신체가 강제적으로 재구축을 이루었다고."

 그 과정에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으나 어찌저찌 버틸 수 있다. 이를 본다면 신체와 영혼이 균형을 이루어야 된다는 소리다."

 [그런 질문을 한 것부터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내 질문에 모건 왕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말투와 달리 확신을 시켜주는 대답이다."

 이 세상은 간혹 원한이 강한 악령이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다. 판타지 세상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영혼은 순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존재들. 그리고 순리를 담당하는 존재는 바로 '신'이다."

 지구는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기에 순리에 어긋나는 악령이 거의 없지만 이 세상은 아니다."

 모건 왕도 신들 입장에서 당장 치워버리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 이유를 얼마 전, 현자의 몸에 빙의한 만물의 아버지와 만나면서 눈치챘다."

 만물의 아버지와 대면하신 모양이군요.""

 [그래. 다시는 상종하기 싫은 놈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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