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81)화 (682/763)

 그렇다고 연재를 강제로 중단시키는 건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죠. 목소리를 내라는 아이작 님의 교리와 상반되는 일입니다.""

 조언도 아니고 '교리'라고 하니까 떨떠름해진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케이트는 진심을 다해 교리로 받아들인 듯하다."

 하여 로만 형제에게 형벌을 내렸습니다. 완결을 내기 전까지 개인방에서 나올 수 없도록. 음식은 꾸준히 전달하고 있지만 그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습니다.""

 ······그거 군만두형 아니에요?""

 군만두형이 뭐죠?""

 이 세상은 군만두가 따로 존재한다. 드워프가 안주거리를 위해 발명한 음식 중 하나다."

 다만 군만두와 별개로 군만두형은 모를 것이다. 이 세상에 올드 보이 같은 영화가 등장한다면 또 모르지."

 아무튼 로만이 군만두형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과 별개로 의문이 든다. 케이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로만이 바보도 아니고 철두철미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겼을 터. 아무리 케이트가 상사여도 분명 제대로 숨겼을 것이다."

 ······혹시 루미너스 님께서 알려주셨습니까?""

 네.""

 역시 그렇구나. 루미너스가 알려줬으니 케이트도 눈치챈 모양이다."

 나는 아주 훌륭한 신과 신도의 합작에 허탈하게 웃었다. 전후사정을 알게 됐으니 나머지는 이유다."

 왜 그러셨어요? 죄악이라지만 눈 감아 줄 수도 있었잖아요. 저와 협업하고 있다는 것정도는 알고 있었을 텐데.""

 ··· ···""

 정곡을 찌르는 내 질문에 케이트가 입을 다물었다. 온화한 미소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대신 무언가 들킬까봐 안절부절하며 얼굴을 붉히는 등.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분명 이유가 있어서 적당한 구실을 댄 것 같다. 루미너스의 말마따나 케이트답지 않게 성급했을 뿐."

 화내지 않을 테니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왜 그러셨어요?""

 ······정말로 화 안 내실 겁니까?""

 케이트가 소심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마치 강아지가 잘못했을 때의 표정과 흡사했다."

 형언할 수 없는 귀여움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괜찮다는 듯이 손을 올렸다."

 그에 케이트도 자신감을 얻었는지 두 손을 꼭 맞잡으며 가슴 중앙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는 부끄러움을 담아 답했다."

 멸망을 향해 걸어가는 기사가 완결된다면······ 아이작 님께서 신들의 이야기를 쓰실 거라 생각하셨습니다.""

 네. 그렇죠. 그전까지 외전을 쓸 예정이었고요.""

 저는 그때가 빨리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야만 아이작 님의 씨앗을 받을 날이 앞당겨질 테니까요.""

 ··· ···""

 그런 거였구나. 나는 얼굴을 붉히며 마음을 고백한 케이트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모건 왕의 궁전에서 했던 약속이다. 신화와 관련된 소설을 쓸 때 하룻밤을 보내겠다고."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케이트의 빌드업이었으나 나 또한 그녀에게 호감을 가져서 문제는 없었다."

 다른 여인들도 케이트를 반기는 모양새다. 광신도적인 면모도 옅어졌을 뿐더러 나에게 꽤 많은 도움을 줬으니."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나요?""

 ······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된다고 들었습니다.""

 신실한 자답게 편법을 사용할지언정 약속은 제대로 지키려는 듯했다. 올곧다면 참 올곧다."

 나는 부끄러워하는 케이트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귀여워서 봐준다."

 그런 거라면 저에게 말씀하시지. 그 날을 좀 더 빨리 앞당길 수 있었을 텐데요?""

 하, 하지만 아이작 님께서 괜히 불편해하실까봐······""

 불편한 건 없어요. 덕분에 케이트 씨가 저를 많이 좋아한다는 건 알게 됐네요.""

 우으······""

 원래 본심을 들키는 것만큼 부끄러운 것도 없다. 당장 케이트의 얼굴을 보아라."

 얼굴이 빨개질대로 빨개졌다. 어떻게든 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손으로 덮었지만 어림도 없다."

 나는 그 반응을 보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종교적인 의미가 아닌,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가졌다고."

 물론 종교적인 색채가 띠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만의 개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이번 일은 봐드릴게요.""

 자,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대신 이거 하나만 물어볼게요. 듣자하니 체리도 동참하는 것 같은데······""

 체리는 이미 아이작 님에게 은혜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그 은혜가 그 은혜가 아닐 텐데. 체리는 나에게 은혜를 받았지만 케이트가 원하는 은혜가 아니다."

 짓밟혔던 꿈을 일으켜 세워줬으며 더 나아가 작가로서의 명예까지 쥐어줬다. 은혜를 넘어선 구원이라 할 수 있지."

 핵융합에 준할만큼 어울리는 두 여인이지만, 이것만큼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체리가 생각하는 은혜와 케이트 씨가 생각하는 은혜는 다를 거예요. 체리에게 어떤 사정이 있으셨는지 알고 있나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번 물어보세요. 케이트 씨가 설득하신다면 저 또한 체리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체리도 나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어둡다 못해 심연 같은 성격으로 다가오지 못할 뿐."

 따지고 보면 아델리아와 같은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차이점은 아델리아는 무너지기 직전에 구원받았고, 체리는 무너진 후에 구원받았다."

 아델리아는 주변의 응원과 격려로 나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체리는 아예 주변의 도움부터 거부하고 있다."

 자기는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나 뭐라나. 게다가 나에게 버리지만 말아달라고 애원했다."

 케이트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아픈 아이에요. 그러니 심도 깊은 상담이 필요할 겁니다.""

 음······ 그러면 아이작 님에게 은혜를 받았다는 건······""

 그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케이트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과연 빛 그 자체인 그녀가 심연 같은 체리의 마음을 끌어올 수 있을지 기대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로만의 군만두형은 그대로 집행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나도 로만에게 안타깝긴 해도 집행을 달게 받으라는 식으로 편지를 부쳤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은."

 [배신자]"

 오타를 이용한 암호문이었다. 배신자라는,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단어."

 나는 그 암호를 보자마자 곧장 케이트를 호출했다."

 무슨 일이신가요?""

 잠깐 로만 씨를 뵈러 갈 건데 괜찮나요? 아, 집행을 봐달라는 건 아닙니다.""

 군만두형이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어쩌면 케이트 씨가 원하는 걸 더 빨리 이룰 수도······""

 어서 가도록 하죠.""

 통조림형으로 대신 해주마."

generic

generic

 자유다! 드디어 자유라고!""

 군만두형을 넘어 통조림형까지 당한 로만이 예배실 밖으로 뛰쳐나오며 환희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교황청에 있던 예배실에서 튀어나온지라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로만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듯이 달리다가 교황청 밖으로 달려나갔다."

 -아아! 진짜 태양이다! 진짜 태양이라고! 루미너스 님이시여! 자비에 감사합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쨍쨍한 태양에게 기도를 올리는 로만이다."

 엄숙해야 할 교황청도 아니고 바깥에 나가 저러니 그 누구도 쉬이 제지할 수 없었다."

 더구나 저런 사람이 한두 명만 있는 것도 아니다. 고행을 거친 후에 깨달음을 얻어 간혹 저러는 편이니."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로만이 땅에 키스를 하거나 태양을 향해 기도를 올려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듯했다."

 그렇게 좋은가?""

 그 사이 나는 로만과 함께 있던 예배실에서 나왔다. 두 손에는 두툼한 원고가 쥐어져 있다."

 로만이 하루빨리 원고를 완결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며 루미너스에게 용서까지 받아줬다."

 대신 루미너스도 작품을 완결하는 것으로 모든 죄를 용서하겠다고 했을 뿐. 나는 옆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칼즈처럼 될까봐 풍경까지 보여줬는데.'"

 폭포수가 흐르는 숲의 풍경도 보여주고, 깜깜한 밤하늘에 모닥불만 타오르는 풍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화이트 노이즈 즉 백색 소음이라고, 단순히 소음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들까지 보여줘서 집중력을 올려줬다."

 로만도 처음에는 만족스러워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차 우울해지더라."

 어차피 이 모든 것들이 허상인데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고. 자기는 진짜 삶을 살고 싶다나 뭐라나."

 끝나셨나요?""

 원고를 대충 확인하고 있을 때 케이트가 나에게 다가왔다. 기대에 찬 표정하며 목소리다."

 통조림 속의 시간은 대략 1개월이 흘렀다. 완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나 로만이 안에서 딴청을 피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깥 시간은 5분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두툼하게 쌓인 원고를 보여주면서 대답했다."

 네. 전부 끝났습니다. 저택에 돌아가서 다시 검수해야겠지만요.""

 그, 그러면······""

 내 말에 케이트가 잔뜩 기대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손을 꽉 맞잡은 걸 보면 서둘러 거사를 치르고 싶은 모양이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케이트는 다른 애인들에 비해 다소 급한 것 같다."

 때가 오면 하겠지~ 라는 마인드였던 애인들과 다르게 하루빨리 이어지고 싶다는 느낌."

 종교적인 색채가 잔뜩 끼여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그녀에게 더욱 특별한 날로 다가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해야 할 일은 아직 남아있다. 우선적으로 체리부터다."

 안 돼요.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체리와 상의해야 된다고 했잖아요. 특히 그녀의 가문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 필수에요.""

 체리 개인은 몰라도 어째서 가문과 상의해야 된다는 거죠?""

 체리는 귀족이니까요. 더구나 체리는 분위기만 그렇지, 미적으로 상당히 아름답기도 하고요. 어쩌면 지금도 혼약이 오고 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체리의 아버지, 레티시 백작은 체리와 내가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지 알고 있다. 스승과 제자에 가깝게 보이겠지."

 하물며 현재 나는 결혼을 한 몸이지만 수많은 애인들을 거느리고 있다. 공공연한 비밀이라 숨기는 건 크게 의미없다."

 그러니 레티시 백작, 정확히는 딸을 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껄끄러울 것이다. 가문 입장에서도 그렇고."

 비록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애가 망가지긴 했지만 말 그대로 잘못된 교육이었을 뿐, 그녀를 향한 애정은 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던 간에 그녀의 미래를 존중하자는 거예요. 레티시 백작을 설득한다고 한들, 체리가 거절하면 의미가 없다는 거죠.""

 체리를 설득하면 레티시 백작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까?""

 레티시 백작에게 납득이 갈만한 이유를 대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미친 사람 취급할 걸요?""

 솔직히 말해서, 현재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어부지리에 가깝다. 스타비르크에서의 일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적절한 진실이 섞인 구라를 통해 세간 사람들에게 오해 아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통해 크기를 키워나갔으니."

 케이트가 교리이니 뭐니 했을 때는 양심이 얼마나 찔렸는지 모르겠다."

 이러다 훗날 나를 중심으로 둔 사이비 종교가 탄생하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신은 몰라도 종교는 조금······'"

 신으로서 숭배받는 것과 하나의 종교로서 숭배받는 건 큰 차이가 있다."

 지금도 신앙심을 가진 채 나를 숭배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 이건 신들이 알려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종교로 바뀐다면 몹시 당황스러울 것이다. 종교는 인종을 초월시키는 문화이자 철학의 시작점이니까."

 거짓말로 포장된 종교는 결코 진실된 종교라 할 수 없다. 지구의 예수님과 부처님을 모욕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작 님을 미친 사람 취급한다면 그 즉시 성전을 선포할 겁니다.""

 내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케이트가 폭풍한설이 흩날리는 어투로 말했다."

 그 말에 오싹해지는 건 나다. 벌써부터 적대감을 가진다면 케이트 성격상 진짜로 성전을 선포할지도 모른다."

 이에 그녀가 오해를 풀 수 있도록 적당한 말을 골라 입을 열었다."

 제, 제 말은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무조건 그렇다는 게 아니에요.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잖아요? 이건 케이트 씨가 조심하셔야 될 부분이에요.""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아이작 님은 대동하지 않으실 겁니까?""

 케이트가 의아함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 하기야 그녀로서는 어째서 내가 직접 찾아가지 않는 건지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만큼은 대리인을 통해 의견을 전달해야 된다."

 괜히 내가 직접 나서봐라. 이게 무력 시위지 아니면 뭐겠나."

 '그냥 협박이지.'"

 내 여자가 되지 않는다면 불이익을 주겠다. 이런 의사를 표명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체리 성격상 완강히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여러 번 기회를 줬음에도 그녀는 멀리서 지켜보기로 정했다."

 따라서 내가 설득하는 것보다 케이트가 설득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상징적으로든, 효율적인 면에서든 말이다."

 제가 직접 나서면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게다가 체리 같은 경우는 케이트 씨가 원하는 거잖아요?""

 아이작 님께서는 체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그건 아니에요. 저에게 순수한 사랑을 바라는 여인에게는 언제든지 보답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랬듯이.""

 리나도 이런 저런 변명을 댔지만 나를 향한 마음은 순수했다. 마리조차 기꺼이 받아들일 정도로 말이다."

 체리는 자존감이 바닥을 찍다 못해 나락을 뚫고 있어서 그렇지, 기회는 언제든지 열려 있다."

 꼭 체리를 설득시킬 필요는 없어요. 원하신다면 케이트 씨 혼자······""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말씀을 듣고나니 더욱 결심이 서는군요. 반드시 설득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케이트가 결의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최근들어 체리와 자주 붙어다니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강경하게 반응하는 건지 모르겠다."

 체리가 케이트 씨에게 도움을 주기라도 했나요?""

 저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을 돕고 있습니다.""

 케이트조차 불가능한 일을 돕고 있다. 그게 뭔지 궁금해진다."

 일단 육체적인 일은 절대 아닐 것이다. 체리는 일반인, 그것도 마나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일반인이다."

 나는 한때 기사 훈련을 받았기에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거지, 일반인은 대체로 마나 사용이 힘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