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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76)화 (677/763)

 차라리 시원하게 터뜨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원래 참고 참다가 폭발하는 게 더 무섭잖아.""

 레오나의 의견이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그녀는 요점을 정말 잘 짚는 편이다."

 냉전 당시에도 핵전쟁의 불안감만 조성됐지, 실제로 핵전쟁까지 터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며 평화 또한 마찬가지다. 강대국끼리 무력 충돌이 일어나는 순간 또다시 핵전쟁의 위협에 시달려야 된다."

 만약 강대국 중 한 쪽이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핵을 발사한다? 그리 된다면 문명은 석기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건 또 모르지. 미래는 신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르는 법이잖아?""

 리나가 걱정말라는 듯이 말했지만 나는 오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장 내가 이곳으로 넘어온 탓에 지구의 미래가 엉망진창으로 뒤틀렸다. 신들도 미래를 모른다."

 지금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만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는 것정도는 알고 있다. 그 과정에 핵전쟁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핵전쟁이 나기 전에 이리로 넘어왔잖아. 나름 평화로운 시대에서 살다 온 편이지.""

 시대가 평화로워도 너희 나라는 평화롭지 않았잖아. 분단국가에다가 징병까지 됐으면서.""

 혹시 그 북한이라는 나라에도 핵이 있던 건 아니지?""

 세실리 다음으로 마리가 예리한 질문을 꺼냈다. 나는 그 질문에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하지만 그 반응만으로도 확신을 준 모양이다. 몇몇은 마른세수를 하고, 몇몇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으니."

 심지어 리나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얘한테도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네."

 그······ 전에 말했다시피 북한은 현상유지에만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야. 먼저 전쟁을 걸 이유가 전혀 없어. 국제 사회도 북한을 비난하는 상황이고.""

 전쟁이 난다면 그런 거 상관없이 서로 공멸하겠지. 그리고 너는 무조건 군인이 됐을 거고. 아니야?""

 맞긴 맞는데······""

 여기서 더 설명할 게 있는지 모르겠다. 허구한 날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덤덤하던 나라가 대한민국이었으니까."

 물론 민간인만 그렇다는 거지, 최전방의 군인들은 바짝 긴장해야 된다. 더 나아가 무력 도발이라면 전쟁 준비까지 해야되고."

 늘 생각하는 거지만 아이작이 살던 세상이 정상적인 건지 모르겠어. 작은 나라조차 도시 몇 개는 없앨 무기를 갖고 있잖아.""

 인류 문명의 끝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신이 인류를 멸망시키는 게 아니라, 인류가 스스로 본인들의 문명을 멸망시키는 거지.""

 일리 있는 말이네. 과욕이 부른 참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로 운명일 수도 있고.""

 애인들은 내가 살던 세상, 지구의 비대칭적인 면모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 듣기만 했다."

 그러고보니 아인슈타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3차 세계 대전에서 사용될 무기는 몰라도, 4차 세계 대전에서 사용될 무기는 안다고."

 그 무기는 바로 막대기와 돌멩이. 3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멸망한 세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명언이다."

 실제로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아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나 같으면 불안해서 못 살 거 같은데. 어떻게 무덤덤할 수가 있는 거지?""

 아이작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전반적으로 그렇다잖아. 그래서 좋은 건 하나도 없는데······""

 길었던 평화가 독이 됐을 수도 있어.""

 다른 나라도 아니고 다른 차원 이야기인데 안보 의식을 너무 걱정해준다. 이 이야기는 굳이 지금 할 필요가 없다."

 이에 내가 중간에 나서서 끊어버리자 여인들도 그제서야 본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의 주제로만 대화를 이을 수는 없는 법. 그래서인지 몰라도 다른 주제로 바뀌었다."

 100년만 통치하다가 후손에게 물려주면 된다고 생각하니라. 우리의 영향력이 너무 짙어지면 그것도 곤란할 테니.""

 그건 너무 짧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세상이 급변한다면 다양한 갈등이 발발할 터. 그때 우리가 나서야 중재할 수 있겠죠""

 그리 된다면 더 큰 불만이 쌓일수도 있느니라. 고인물은 썩게 되기 마련이고, 평화 또한 마찬가지. 쉽게 생각할 사안이 아니야.""

 바로 통치권 문제다. 세실리와 아르웬 둘 모두 내 아이를 가질 예정이다."

 하지만 아이와 별개로 통치 또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이 통치한다면 당분간 세상이 평화롭겠지만, 왕위에서 내려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괴상하다면 괴상한 주제일 수도 있지만 나름 진지하다. 무엇보다 이 둘은 수명이 길어도 너무 길다보니 반드시 계획을 짜야된다."

 ······우스운 일인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진지한 의견이 오고 가는 상황에 리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감평을 내렸다. 하기야 조금 우스워 보여도 깊게 파고들 여지가 충분하다."

 한 나라의 왕이 누구에냐 따라 정세가 오락가락으로 뒤바뀌는데 헬리움과 알븐하임이다. 결코 좌시할 수 없다."

 너도 계획을 짜는 게 어때?""

 나는 그런 리나에게 반장난식으로 물었다. 그녀는 인간인지라 세실리나 아르웬처럼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는 없다."

 나이가 적당히 차면 후손에만 물려주면 되니까. 짧은 수명이 가질 수 있는 장점 중 하나가 빠른 세대 교체다."

 그러나 리나는 내 질문에 미소를 짓더니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걱정마. 계획한 게 있으니까.""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리나. 그 모습에 감탄한 것도 잠시, 무언가 낌새를 알아차린 마리가 훅- 치고 들어왔다."

 너 혹시 여기 오기 전부터 계획을 짠 거야? 아이작의 아이를 가질 거라는 걸 전제하고?""

 ··· ···""

 마리가 정곡을 찔렀는지 하던 행동을 우뚝 멈춘 리나. 그리고는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마리는 리나의 반응을 보고 피식 웃더니 귀엽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욕심이 아주 그냥 넘쳐나네? 안 되겠다. 넌 맨 마지막 순번으로 잡아야지.""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될까?""

 너 하는 거 보고.""

 제대로 주도권을 잡은 걸 보면 리나가 마리를 이길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겉으로 보면 황녀가 신하의 남편을 취한 셈이긴 한데······'"

 그런 여론은 나타날 일이 없을 것 같다."

 ******"

 아이작네 저택에서 간이 국제 회의가 열렸을 때쯤."

 세이비어 교국의 교황청에서는 아주 작은 사건이 발생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글을 쓰시고 계시더군요. 로만 님.""

 ··· ···""

 감히 신들의 몰락을 적으시다니, 정말 재미있어요.""

 교황의 친아들이자 멸망기사의 저자, 로만."

 가장 들키지 말아야 할 인물(케이트)에게 정체를 들켜버렸다."

 로만은 혼란스러웠다. 아니, 혼란스러운 걸 넘어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루미너스를 모시는 종으로서, 감히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건 인지하고 있다."

 결코 있을 수 없고, 또 있어서는 안 될 신들과 세상의 몰락. 그로 인해 나타나는 온갖 인간군상들."

 멸망을 향해 걸어가는 기사. 짧게 줄여서 멸망기사의 내용이다."

 처음 멸망기사가 등장하게 된 경위는 모두 알다시피 아이작이 직접 주체한 공모전이다."

 이단심문관 겸 작가, 로만은 아이작과 만나게 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장편 연재로 결정했다."

 이후로도 꾸준히 연재하면서 4권에 달하는 분량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다. 그때마다 큰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

 [마족의 비극성을 한 집단만으로 모두 표현했다.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기에 더욱 비참하다.]"

 [희망 같은 건 없다. 기사가 나아가는 길은 오직 슬픔과 통곡만이 남아있을 뿐.]"

 [더이상 멸망기사 속 세상은 구원받을 여지가 없다.]"

 제논 일대기는 물론 피와 강철에도 다양한 비극들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일말의 '희망'은 존재했다."

 멸망기사는 그런 것도 없다. 문자 그대로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가 연달아 이어지는 중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피로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주인공이 비극을 겪은 자들에게 '죽음'을 선물해주면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으니."

 이렇듯 멸망기사는 떠오르는 초신성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피와 강철 다음으로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체리의 차기작이 등장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일단 멸망기사가 압도적이라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로만 형제일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멸망기사 속에서 등장하는 비극들은 하나 같이 인상깊었으니까요. 악마 같은 생각을 가지지 않고서야 이런 전개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겁니다.""

 케이트는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를 칭찬을 하면서 로만에게 말했다. 미소 지은 얼굴은 상큼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심문 아닌 심문을 당하는 로만에게는 무시무시한 압박이었다. 입을 벙긋하는 것조차 힘들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그래서 언젠가 들킬 것을 각오하고 꾸준히 글을 쓰고 있었다."

 '어째서?'"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스타비르크에서 악마 숭배자, 그것도 고위급 간부가 등장하는 바람에 한창 바쁘던 시간이었다."

 로만은 이단심문관이지만 동시에 교황의 아들. 직접적으로 나서기보다는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편이다."

 불만도 전혀 없다. 스스로 단련 및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을 뿐더러 나름대로 유능하다고 평가받았으니."

 그런데 오늘 갑자기 케이트가 부르더니 이렇게 됐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제 이야기 듣고 계시죠?""

 ······예.""

 케이트의 물음에 로만이 힘겹게 대답했다. 그에 케이트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현재 이들이 있는 곳은 교황청, 그것도 케이트가 개인적으로 거주하는 방이다."

 교황 다음으로 막강한 권위를 갖고 있는 그녀이기에 교황의 아들쯤은 마음대로 호출할 수 있다."

 다만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다는 것. 심문실에 있는 것도 아닌데 심문실 특유의 압박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조금 궁금하군요. 형제님은 어떤 연유로 이 불경한 책을 쓰신 겁니까? 사실대로 밝힌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과연 아무 일도 없을까. 로만은 침을 꿀꺽 삼키며 케이트를 쳐다봤다."

 온화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케이트. 하지만 저 미소 안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잠들어 있다."

 이단심문관으로서 케이트와 협업을 한 적이 많다. 메이스로 악마 숭배자의 머리통을 수박처럼 부수는 건 약과다."

 그녀가 심문실에서 악마 숭배자를 어떤 식으로 대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뒷처리하는 것도 이단심문관의 일이었으니."

 '로라 자매를 구원했을 때부터 괜찮아진 건가 싶었는데······'"

 외모가 아름답다지만 딱 상사와 부하 관계로 남는 게 최고였다. 다만 로라를 구원했을 때는 잠깐이나마 다르게 보였다."

 그러나 그걸 다 제치고 이번 일은 결코 쉬이 넘어갈 수 없다. 까딱 잘못하면 머리통이 깨질 수도 있다."

 이에 로만은 한치의 거짓말도 없이 솔직하게 답하기로 정했다."

 ······호기심입니다.""

 호기심?""

 네. 단지 제가 상상하던 걸 쓰고 싶다는······ 그런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속담을 알 것이다. 현재 로만의 상황이 딱 그러했다."

 호기심 하나로 신을 모시는 신자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다. 허나 참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취미로 쓰면 되겠지. 아이작이 주체하는 공모전이 나왔네? 어차피 떨어지겠지만 넣기나 하자."

 이런 안일한 생각들이 겹치고 겹쳐 지금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 남은 건 천벌을 받거나 심문을 당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하세요.""

 어떻게 아신 겁니까? 원고는 분명 꽁꽁 숨겨놓았습니다.""

 숨겨놓다 못해 금고에 보관해놓았다. 미쳤다고 교황청에 도둑이 들진 않겠다만 혹시 모르니까."

 그런데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케이트는 전부 파악했다. 심지어 금고조차 털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물증 없이 오직 심증으로만 멸망기사의 저자가 로만이라는 걸 파악한 것이다."

 케이트는 그의 질문에 미소를 유지한 채로 대답했다."

 루미너스 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제가 답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네요.""

 그렇습니까······""

 예상대로다. 로만은 허탈함에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루미너스가 국교인 나라에서 저런 불경한 책을 썼으니 분명 노하셨겠지."

 그렇다면 될대로 되라다. 루미너스가 직접 호명했는데 거짓말을 해봤자 전부 드러날 것이다."

 이에 로만은 한숨을 내쉬었다가 여태까지의 일들을 모두 설명했다."

 사실은······""

 로만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케이트는 잠자코 경청했다. 로만의 예상과 달리 미소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만족스럽다는 표정에 가까웠다. 한 술 더 떠서 차를 직접 우려내 로만에게 내밀기까지."

 로만은 생각없이 그 차를 마시며 상황을 줄줄 읊었다. 이미 인생을 포기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 말은 즉, 아이작 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신다면 로만 님이 집필은 한다는 거군요.""

 네. 사실 플롯, 그러니까 이야기 자체는 전부 전달해주셨습니다. 직접 쓰는 게 낫지 않냐고 물으니 문체가 저와 어울린다고 하더군요.""

 동의합니다. 로만 형제처럼 암울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문체는 찾기 힘들겠죠.""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로만은 재차 한숨을 내쉬며 케이트가 달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요?""

 아이작 님께서 도움을 주셨다지만 제가 먼저 이 책을 쓴 겁니다. 결국 제가 근원이라는 거죠.""

 잔뜩 체념한 목소리다. 케이트는 로만의 말을 듣고 잠깐 생각에 빠졌다."

 그의 말마따나 아이작의 도움 이전에 먼저 책을 집필한 건 로만이다. 불경한 생각을 본인이 직접 기록한 것이다."

 옛날 같았으면 '불경한 자'로 낙인 찍으며 심판을 내렸겠지. 자칫하다가는 현 교황마저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옛날에 한해서다. 그동안 깨달음을 얻으면서 로만이 저지른 건 '죄'가 아니다."

 '쓰고 싶은 책을 썼을 뿐.'"

 그뿐이다. 불경하다고 욕을 먹긴 해도 천벌까지 받을 일은 절대 아니다."

 로만의 비밀을 알아낸 이유도 루미너스 덕분이다. 루미너스는 '대업'을 앞당길 수 있을 거라며 비밀을 알려줬다."

 '그러고보니······'"

 게리오스 왕국, 그것도 왕궁에서 아이작과 약속했다. 신들의 비밀과 연관된 책을 쓰기 전, 자신에게 은혜를 내리겠다고."

 현재 피와 강철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따라서 차기작이 연재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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