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74)화 (675/763)

 다른 사람에게도 했던 설명을 세실리에게도 똑같이 해줬다."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 편법을 사용한 모라. 그에 분노한 루미너스가 추방시켰다는 것까지."

 파리했던 세실리의 안색은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점차 나아졌다. 그러면서 묘한 시선으로 모라를 바라봤다."

 이윽고 설명이 모두 끝났을 때쯤, 세실리가 모라에게 물었다."

 그럼 신성력은요? 신성력은 받을 수 있는 건가요?""

 그건 상관없어. 의식체만 추방된 거지, 신성은 본래의 차원에 있으니까.""

 다행이네요. 어쩐지 최근들어 저에게 말도 안 전해주셔서 이상하다 생각했거든요.""

 신도들의 반응은 어때? 막 혼란스럽다거나 그래?""

 아뇨. 단지 바쁘신 일이 있다 생각하고 있어요.""

 모라는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신성력까지 전달하지 못했더라면 모라 교단은 거대한 혼란과 직면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장난은 심하잖아요. 모라 님도 같은 여성이신데.""

 세실리 누나가 질투나서 그래.""

 아니거든!""

 가볍게 장난친 건데 발끈하는 모라. 반응을 보아하니 더욱 신빙성이 높아졌다."

 그 반응에 세실리는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모라에게 물었다."

 제 가슴을 없앤 것처럼 모라 님도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아요?""

 너처럼 크면 무거워서 그래. 너도 솔직히 불편하잖아.""

 불편하긴 해도 아이작이 좋아하면 괜찮아요.""

 음······""

 마음대로 할 수 없을 텐데. 돌려서 말한 거지, 진실은 루미너스에게 들은 적이 있다."

 먼 과거, 루미너스는 본래 수염을 기른 신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외형적인 부분이 변했다고."

 근육질인 건 똑같았지만 신자들이 외모 묘사를 잘못하는 바람에 수염이 모두 사라졌단다."

 모라의 외양도 신자가 묘사하는대로 따라가는 것일 테니 저것이 한계일 것이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모라가 인상을 쓰다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오빠가 괜히 쓸데없는 걸 알려줬네. 그래도 난 이 모습이 마음에 들어.""

 알겠어요. 앞으로 쓸 책에서도 비슷하게 묘사할게요.""

 ··· ···""

 내 말에 모라의 시선이 세실리의 목 아래 쪽으로 향했다. 누가 봐도 질시에 찬 눈빛이다."

 '솔직하지 못하기는.'"

 신자에게 질투하는 신이라. 인간적이라면 인간적이다."

 그래도 이번에 세계대전을 막고, 리나의 신변까지 보호해줬으니 원하는대로 해줄 예정이다."

 혹시 원하는 거라도 있어?""

 조용히 지내기만 해주세요. 그게 끝입니다.""

 내가 꼭 사고라도 칠 것 같다는 말이네?""

 방금 전에도 쳤잖아요. 읏차.""

 히히.""

 나는 그리 대꾸하며 아리엘을 번쩍 안아들었다. 아리엘도 나에게 안기자 해맑게 웃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마리 뱃속의 아이처럼 아리엘도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다."

 그럼 저는 잠시 밖에 있을게요. 두 분이서 한 번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세요.""

 아이작 너는 어디가?""

 리나가 찾아오기로 했거든.""

 연락도 없이 찾아온 세실리와 다르게 리나는 먼저 올 거라 연락을 보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리나를 맞이해야 되는 상황이다. 세실리에게는 미안하지만 밤에 예뻐해주면 된다."

 세실리 엄마! 아빠가 밤에 예뻐해줄거래! 그러니 섭섭해하지 말래!""

 아리엘?!""

 어머. 고마워. 덕분에 기분이 풀렸네.""

 아리엘이 성장하더니 눈치도 늘어난 모양이다. 그녀의 위로 아닌 위로에 세실리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나는 다급히 아리엘을 데리고 내 침실로 돌아갔다. 침실에는 낮잠을 청하는 마리와 그 곁을 지키는 아델리아가 있다."

 잠시 맡아줄 수 있어?""

 알았어.""

 아리엘도 해결했겠다, 남은 건 리나를 맞이하는 일만 남았다. 스타비르크 사건 이후로 처음 얼굴을 보는 것이다."

 그동안 엄청 바빴겠지. 당장 스타비르크의 독립도 구렁이 담 넘듯이 진행된 상황이다."

 지금쯤 총을 포함해 최대한 뜯을 걸 다 뜯고 있지 않을까. 나는 그리 예상하고 있었다."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 그리고 정말 안 좋은 소식이 있어. 뭐부터 알려줄까?""

 응접실로 데려온 리나가 차를 마시며 그리 말했다. 바쁜만큼 갖가지 일이 발생한 듯했다."

 정말 안 좋은 소식이라 해봤자 악마 숭배자보자 더 하겠어. 나는 무던히 답했다."

 좋은 소식부터 알려줘.""

 스타비르크로부터 조약을 받아냈어. 총의 설계도는 물론, 관련 장인들을 데려왔지. 극단주의자 즉, 하얀 손들도 공개 처형될 예정이야.""

 역시나 예상대로다. 총은 민간인에게 쥐어줘도 큰 위력을 발휘하니 제국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다."

 더 나아가 하얀 손까지 처치했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득이 될 일이다."

 안 좋은 소식은?""

 네가 원자폭탄의 존재를 알리는 바람에 군사유지비가 더 늘어날 예정이야. 허튼 짓을 하다가는 군대로 밀어버려야 할 판이거든. 더 나아가 외교도 힘들어질 테고.""

 이건 좀 예상치 못했는데. 하지만 제국이 가지는 불안감은 합당한 명분이 있다."

 그만한 폭탄을 발명한다는 건, 너에게도 쏠 수 있다는 걸 의미하니까."

 패권 유지가 중요한 제국으로서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핵폭탄에 한해서 지랄발광하는 거랑 같다."

 마지막으로 정말 안 좋은 소식은 뭐야? 악마 숭배자가 또 이상한 짓거리를 하기라도 했어?""

 그건 아니야. 단지······""

 리나는 잠깐 망설였다가 많은 의미가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그녀는 나를 힐끔거리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랑 최대한 빨리 하룻밤을 보내야 할 것 같아.""

 ······?""

 잘못 들었나."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드러내자 리나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연이어 나를 힐긋거리더니 부끄러움을 최대한 참은 채 겨우겨우 말했다."

 네가 다친 이유 중 하나가 오라버니의 독단이라는 게 뒤늦게 밝혀졌어. 그때문인지 사실상 황위계승권이 나에게 옮겨진 상황이야.""

 ······그럼 레오르트는 어떻게 돼?""

 오라버니는 거의 포기했어. 본인도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겠지. 네가 다쳤잖아.""

 여론을 버티지 못한다는 뜻이다. 제아무리 황태자인 레오르트라도 압박을 이기지 못할 터."

 그런 의미에서 베리트 황제도 리나에게 계승권을 이양한 모양이다."

 너랑 하루빨리 이어져야 황실 내의 잡음도 없어지겠지. 오빠도 깔끔하게 물러날 명분도 얻을 수 있고.""

 그렇구나. 그러면 그게 왜 정말 안 좋은 소식이야?""

 ······증거가 필요하거든.""

 뭐?""

 우리가 이어졌다는 증거가 필요해. 아니면······""

 쑥쓰러워하는 리나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증인······ 이라던가.""

 다른 의미의 원자폭탄이었다."

  

 나는 다른 의미의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폭탄을 떨어뜨린 장본인, 리나는 내 시선을 마주지치 못한 채 얼굴을 잔뜩 붉히고 있었다."

 빠른 시일 내에 리나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이건 조율만 잘 하면 되니까."

 하지만 '증거'라든지, '증인'이라든지 하는 건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순간 리나의 성적 취향이 듬뿍 들어간 건가 싶었다. "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래? 그것만 말하니 네 취향이 다분히 들어간 것 같아서.""

 이, 일단 미리 말할게. 내 취향이 들어간 건 절대 아니야.""

 ··· ···""

 진짜야!""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무래도 표정에서 내 생각이 다 드러난 모양이다."

 다른 건 몰라도 포커페이스만큼은 얻을 수 없더라. 이건 연습한다고 연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론 내가 대놓고 짜디 짠 시선을 보낸 것도 있다. 나는 어디 한 번 설명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지? 참고로 말해서 내가 납득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납득하지 못하면 그대로 꽝이야.""

 ······일단 알겠어. 어떻게 된 건지 설명부터 할게.""

 리나의 설명은 이러했다. 아까 말했듯이 스타비르크 사건으로도 레오르트의 실책은 덮을 수 없을만큼 크다."

 현재 미네르바 제국은 중앙집권체제에 가깝다.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던 백작들은 악마 숭배자와의 결탁으로 줄줄이 잡혀갔다."

 개중에는 정말 억울한 자도 있었지만 원래 정치라는 건 기회가 있을 때 처리해야하는 법. 자연스레 황권의 권력이 강해진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넘어온 게 아니라서 알음알음 정부를 견제하는 움직임이 있다. 이번 일로 인해 명분이 제대로 잡힌 것이다."

 오라버니가 계승권을 나에게 이양했다지만 황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건 변함이 없지.""

 그것을 나와의 결합으로 무마시키려는 거고. 맞지?""

 정확해. 훗날 내가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면 더욱 견고해질 거야.""

 그래서 증거가 왜 필요한 건데?""

 ··· ···""

 돌고 돌아 증거가 필요한 이유를 묻자 리나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렸다. 동시에 약간이나마 가라앉았던 얼굴이 다시 붉어진다."

 리나와 이어지는 건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이다. 마이샬 영지가 미네르바 제국에 속해있다보니 서로에게 이익이다."

 그래서 무덤덤할 수 있었다만 증거가 왜 필요한 지는 모르겠다."

 그전에 그 증거가 뭘 말하는 거야? 설마······""

 네, 네가 생각대로야. 가장 확실한 증거가 그거잖아.""

 음.""

 역시나다. 제일 확실한 증거라함은 당연하게도 후손이겠지."

 하지만 리나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어서 그것만큼은 적극적으로 거부할 것이다."

 사실 거부고 나발이고 애인들이 이 소리를 듣는다면 리나를 타도하겠지. 국가 간의 사이가 안 좋아질 수도 있다."

 미리 말하지만 아이를 가질 계획은 추호도 없어. 그러면 내가 위험해지잖아?""

 평생동안 눈초리를 받고 살겠지.""

 그래서 증거 대신 증인을 원한다는 거야. 곁에서 우리의 관계를 지켜본 사람이 있다면 누구도 항의할 수 없을 테니까.""

 리나가 다다다 쏘듯이 설명을 꺼냈다. 듣기만 한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리나다. 평소 우아한 행실과 다르게 음흉하고 음란한 취향을 갖고 있는 여자."

 어찌 보면 내가 아는 여자들 중에서 가장 독특한 취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말로만 들으면 그럴 듯한데... 꼭 그래야만 해? 내가 직접 너와도 교제하는 중이라 공표하면 되잖아.""

 너무 뜬금없잖아. 하다못해 세실리처럼 중간중간 염문설이 났다면 모를까, 너와 나는 접점이 거의 없어.""

 아르웬은?""

 그쪽은 아예 백성들이 자기 여왕을 너에게 바쳤잖아.""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빙빙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어쨌거나 리나가 나와 이어져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다. 여기에 증인이 될 사람까지 있어야 된다."

 이에 살짝 고민하고 있을 때쯤, 리나가 약간 툴툴거리는 식으로 나에게 권유했다."

 아, 아니면 우리도 염문설이 퍼지도록 하던가.""

 응?""

 세실리랑 그랬듯이 우리도 데이트를 하면 될 거 아니야? 그러면 사람들도 서서히 받아들이겠지.""

 아까 전처럼 자기가 할 말을 다다다 쏟는 리나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화법이다."

 부끄러움을 억지로 참으며 하고 싶은 말을 꺼내는 것 같달까. 달아오른 얼굴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뭐지?'"

 뭔지는 몰라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변한 것 같다. 사건 전까지만 하더라도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인 관계였다."

 서로에게 호감은 충분하지만 특유의 '뜨거움'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리나의 행동을 보면 뭐랄까... 솔직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황녀로서의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처음 겪는 감정에 횡설수설하는 건지."

 한 번 떠볼 필요가 있다. 나는 오락가락하는 리나에게 불렀다."

 리나.""

 으, 응. 말해.""

 너 나 좋아해?""

 담담하지만 빠꾸없는 질문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러자 리나의 반응은 사뭇 볼만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아까보다 더 크게 당황했다."

 내, 내가? 너를? 무, 물론 친구로서는 좋아하고 있지! 다만 이성으로서는 절대 아니야!""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던데.""

 거짓말! 내가 널 왜 좋아해야 하는데! 스타비르크에서 날 구해줬다고 너에게 반했을 거 같아?!""

 리나는 테이블까지 박차며 나에게 소리쳤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붉은 물이 뚝- 뚝- 떨어질 정도로 붉게 물든 얼굴로."

 마치 고양이가 앙탈을 부리는 느낌이다. 정말로 화를 냈다면 하악질을 했겠지."

 리나는 성격상 고분고분하게 화를 낼 스타일이다. 지금처럼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이에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리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꾹-"

 뒤이어 손가락으로 리나의 뺨을 꾹- 눌렀다. 찹쌀떡 같이 말랑말랑하다."

 ······뭐하는 거야.""

 누르면 빨간물이 떨어지나 싶어서.""

 ··· ···""

 말은 그래도 몸은 솔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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