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68)화 (669/763)

 과정이 약간 남사스럽기는 해도 자체는 부끄럽지 않다. 심지어 엘프는 성행위마저 신성한 의식으로 치부할 정도다."

 당연히 알고 있죠. 과학적으로 설명해드려요?""

 그런 거란다.""

 ······?""

 잠깐 뇌정지가 온 탓에 미간을 좁혔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정자와 난자가 만나야 된다."

 인공적으로 배양을 하더라도 진리 자체는 다르지 않다. 남자의 상징과 여자의 상징이 서로 만나 탄생을 이룬다."

 일종의 진리와도 같은 거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내가 태어난 것처럼, 신성은 정자가 아닌 난자에 가까운 형태란다. 네가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세계수의 씨앗 또한 그런 형식이고.""

 어······ 음······ 그러면 지금의 모라 님은······""

 너와 아리엘 그 아이와 비슷한 관계라고 보면 되겠구나.""

 이 무슨 막장 가계도인가.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려 입을 떡 벌렸다."

 하지만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이래야 신화답지."

 지난번 게리오스 왕국에서 불순한 생각을 했다가 벼락이 떨어진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남매라서 그렇구나, 라며 넘어갔는데 그보다 더한 진실이 숨어있었다."

 모라 님은 알고 계세요?""

 당연히 알고 있지. 더 나아가 스스로를 모라라고 인지하고 있단다.""

 기억 같은 건 이전된 건가요?""

 그건 아니란다. 인간으로 치자면 뇌를 교체한 격이라 전의 기억은 사실상 무의미한 수준이거든.""

 어쩐지 루미너스가 유독 성숙하고 모라가 장난기가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혼나는 사람은 대부분 모라였다."

 그래도 충격적인 건 마찬가지다. 신화답다면 신화답지만 평소 친근했던 신들인지라 더욱이."

 아직 인간이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네요. 모라 님이 사실은 루미너스 님의 딸이었다라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진다면······""

 잘 부탁하마.""

 이건 부탁하고 자시고 돌려서 말할 수가 없는데요?""

 난이도가 급상승한 느낌이다."

 모라가 사실은 루미너스의 동생이자 딸이다. 이것만 듣는다면 이 무슨 막장 가계도라 물을 것이다."

 하지만 신화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솔직히 지구의 신화에 비해서 약과라 할 수 있다."

 지구는 자기 형제를 아내로 맞이한 건 물론, 그 사이에서 낳은 딸마저 아내를 맞이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사실 저게 정상적인 신화고, 이 세상의 신화가 비정상(?)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의외로 근친은 안 했네요. 지구 신화는 틈만 나면 근친이니 뭐니 하면서 난리인데.""

 그래서 무례하듯, 무례하지 않은 질문을 꺼낼 수 있었다."

 워낙 매운맛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루미너스와 모라의 관계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첫 번째 아내인 테라는 바다에서 태어났다지만 다소 애매하다."

 두 번째 아내이자 형제들의 자식이라 했던 아리스는······ 넘어가자."

 루미너스는 본인이 밝혔음에도 머쓱했는지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태생적으로 거부감이 들더구나. 빛과 어둠은 합쳐지지 않고 명확히 구분돼 있으니까. 그때문인지 많이 싸웠지.""

 현실 남매였다는 소리네요.""

 그런 셈이지.""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였다면 냅다 달려들지 않았을까."

 그 인간 아니, 그 신은 자기 형제는 물론 어머니와 할머니까지 취했다. 단연코 이 분야의 Goat라 할 수 있지."

 그래도 이 세상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한다는 건 다를 게 없다. 이걸 신화라 포장하는 것도 일이다."

 쉽지 않네요. 고대에서부터 시작하지 않고 근대 초입에 신화를 뿌리는 거니까······""

 힘내렴. 내가 할 수 있는 건 응원밖에 없구나.""

 응원이라도 해주세요.""

 모라에게 들을 이야기가 한가득일 것 같다. 루미너스 말로는 기억이 이전되지 않았지만 전말은 모두 알고 있다고."

 아무래도 피와 강철 다음 작품은 신화, 그것도 루미너스의 일대기이니 장기 연재는 반쯤 확정이다."

 제논 일대기마냥 30권이 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원래 신화는 다양한 설화가 존재하기 마련."

 '북유럽 신화의 로키처럼 묘사하면 되려나?'"

 그리스·로마 신화는 제우스가 주인공이라 할 수 있지만 각 신마다 비중이 균등한 편이다."

 반면 북유럽 신화는 로키가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중이 높다. 이런 식으로 구조를 잡으면 될 것 같다."

 인간은 빛과 어둠 사이에 창조된 존재로 묘사할게요. 혹시 최초의 인간이 무슨 짓을 저질렀다거나 그런 건 없었나요?""

 최초로 살생을 가했지. 먹고 살기 위해서.""

 으음······ 그건 본능이니 어쩔 수 없는데.""

 루미너스와 이런저런 의논을 나누면서 방향성을 잡았다. 소멸된 신들에 대한 것도 중간중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듣다보니 문득 궁금한 점이 떠오른다. 루미너스의 무력과 권능은 어떤 것일까."

 제우스가 벼락을 다스리는 것처럼 루미너스도 벼락을 다스를까. 이건 조금 궁금하다."

 루미너스 님의 본질은 빛인데 어떤 권능을 갖고 계시죠? 신자들에게 주는 능력과 비슷한가요?""

 너무 추상적이라 딱 잘라 말하기도 애매하구나. 빛과 관련된 모든 권능을 갖고 있다 해도 무방하단다.""

 그냥 전쟁의 신이니 힘이 엄청 강하다고 묘사할게요.""

 근육근육한 모습만 봐도 산을 거뜬히 들어올릴 것 같다. 어쩌면 주먹질 한 방으로 모세마냥 바다가 갈라지지 않을까."

 루미너스도 딱히 상관없었는지 어깨를 으쓱거리며 넘어갔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주인공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오직 힘만이 존재하던 전쟁은 지혜와 만나 더 큰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지혜를 잃은 전쟁의 신은 분노에 차 무차별적으로 세상을 파괴했다. 서사적으로도 훌륭하네요.""

 전쟁의 신과 지혜의 여신의 만남도 서사적으로 훌륭했다. 본래 전쟁과 지혜는 붙어다니는 편이다."

 일례로 아레스와 아테나는 각각 전쟁을 관장하는 신들이다. 하지만 아레스는 전쟁 속의 광기와 분노를 상징하고, 아테나는 지혜와 전술이다."

 북유럽의 오딘도 마찬가지. 오딘은 전쟁과 지혜를 관장하는 편이다. 이렇듯 전쟁과 지혜를 뗄래야 뗄 수 없다."

 그냥 예뻐서 청혼한 건데······ 나를 도와준 건 그 이후였고.""

 조용히 하세요.""

 정작 진실은 쓸데없을 정도로 현실적이었지만. 신화에 인간적인 면모가 두루 섞이다보니 가끔씩 혼동된다."

 어쨌거나 루미너스로부터 정보를 조합한 결과, 꽤 많은 이야기를 꾸밀 수 있었다."

 이걸 신화적으로 포장하는 일은 피와 강철 완결 후에 해야 될 듯싶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네요. 저도 할 일이 있어서.""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부탁하렴. 케이트 그 아이에게 말해놓으마.""

 알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며칠동안 정보를 습득하고 싶다. 그러나 본래의 목적은 이게 아니다."

 우선 현자부터 제대로 조져놓을 생각이다. 강제적으로 패륜을 저지르게 만든 놈은 죽어도 싸다."

 하지만 현자에게 뜯어야 할 정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악마 숭배자 중 고위급에 달하는 간부이니 살려야 된다."

 아. 그러고보니 제가 현자에게 당할 뻔했다는 걸 알려줬던가요?""

 지구신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단다. 다음부터 주의하라고 하더구나.""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려면 무조건 교단이 들어서야 하는 건가요?""

 이건 조금 궁금하다. 악마 숭배자가 신들의 눈으로부터 도망쳤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스타비르크마저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조금 의아하다. 스타비르크는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 때문에 스타비르크를 포함해 우리의 영향에서 벗어난 나라에서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란다. 누누이 언급했다시피 네가 하는 행동은 우리도 예상할 수 없으니까.""

 주의하도록 할게요.""

 사실 스타비르크가 예외에 속한 거지, 세상은 이미 루미너스와 모라의 세가 넓게 뻗어있다."

 영향권에서 벗어난 국가는 별로 없다. 굳이 꼽자면 애니머즈와 마키나 정도."

 이 둘은 아무래도 창조신이 따로 있다보니 스타비르크처럼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편이다."

 물론 영향권에 들어선 나라도 안심할 수 없다. 악마 숭배자가 워낙 미친 짓을 많이 저질러서 말이지."

 혹시 현자의 머릿속이 어떤지 알 수 있으신가요?""

 그건 힘들단다. 아버지의 가호를 받고 있기 때문인지 놈의 기억을 훑어볼 수가 없어.""

 만물의 아버지의 가호라······""

 나는 말을 흐리며 루미너스를 쳐다봤다. 수많은 의미가 담긴 시선이었다."

 이에 루미너스는 진중한 얼굴로 내 의문에 대한 대답을 꺼냈다."

 완전한 부활은 아니란다. 하지만 의식체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건 확실하지.""

 역시 예상대로다. 모라를 보고나서 만물의 아버지도 의식체가 존재하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이제 그 의문이 확신으로 바뀐 상황이다. 지구신들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현자가 나를 의식체가 있는 쪽으로 데려갔겠지."

 현자에게 그 의식체가 어디 있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겠네요. 의식체가 나타난 건 언제부터 인지하셨나요?""

 언제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구나. 다만 악마 전쟁 이전부터 소유했을 가능성이 높단다. 그렇지 않고서야 악마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겠지.""

 혹시 의식체가 사망하면 어떻게 되나요?""

 부질없는 짓이란다. 의식만이 차원으로부터 추방당했을 뿐, 본체는 여전히 존재하기에 어디선가 부활하겠지.""

 무슨 게임도 아니고 부활을 무한으로 하는 건지 원. 나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상황에 한숨을 내쉬었다."

 악마 전쟁 이전부터 의식체가 존재했다면 그 후에는 어떨지 감도 안 잡힌다. 다만 신성을 직접적으로 보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식체 다음 단계가 어떻게 되죠? 시간이 지났으니 분명 그 단계까지 도달했을 텐데.""

 신도들이 자신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단계란다. 하지만 일반 신도는 어림도 없고 강력한 신성력을 보유한 자에게만 한정되겠지.""

 그렇다는 말은, 현자의 눈으로 현재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다는 소리군요. 지구신들이 찾아왔다는 것도 아는 건가요?""

 높은 확률로 그럴 거란다.""

 생각보다 상황이 복잡해지네. 현자를 신전으로 데려오길 잘한 것 같다. 적어도 루미너스가 막아줄 테니까."

 나는 현자에 관한 정보를 들은 후에 잠깐 고민에 빠졌다. 이걸 역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물론 처음에는 현자를 상대할 예정이다. 현자의 눈을 빌린 만물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선 속을 박박 긁어놓은 다음에 스스로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될 것 같다."

 일단 알겠습니다. 현자부터 찾아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조심하렴. 내가 지켜보고 있다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주의할게요.""

 루미너스에게 인사한 후에 곧바로 예배실 밖으로 나섰다. 안에서는 시간이 꽤 오래 흘렀지만 바깥은 아니다."

 그에 케이트가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건 당연한 수순. 그녀는 내가 예배실 밖으로 나오자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반겨줬다."

 루미너스 님과 이야기는 잘 나누셨나요?""

 네. 좋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곧바로 죄인에게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케이트는 빙긋 웃고는 심문실이 위치한 지하 쪽으로 향했다. 지하에 있는 심문실이라 무언가 공포스러운 분위기일 줄 알았다."

 그러나 의외로 편견과 다르게 등불이 배치돼 있어서 상당히 밝았다."

 케이트의 설명에 따르자면 지하 1층은 말 그대로 심문만 하는 곳이란다."

 여기는 대부분 가난하거나 억울한 자들이 오는 곳입니다. 신을 원망할 정도로 몰린 나머지 폭력적인 성향을 띄기도 하거든요.""

 폭력을 저지르면 어떻게 됩니까?""

 진정될 때까지 제압합니다.""

 조금 거칠기는 해도 충분히 괜찮다. 여기가 1차 거름망이라고 봐야 되겠지."

 현자는 어느 층에 있죠?""

 지하 2층에 있습니다. 악마 숭배자들을 감금하거나 '심문'하는 곳이죠.""

 ······다른 의미의 심문이죠?""

 잘 아시네요.""

 웃는 얼굴로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안 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2층으로 내려갔다."

 2층으로 내려오니 뭐랄까······ 기류가 180도 확 바뀐 느낌이다. 등불로 밝히긴 했지만 분위기가 그렇다."

 [끄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귓가로 들리는 비명소리. 내가 그 비명을 듣자마자 흠칫한 것과 별개로 케이트는 평온하다."

 도리어 안심하라는 듯, 웃는 얼굴로 비명에 대해 설명했다."

 죽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죽기 직전까지 고문하는 건 아니죠?""

 신성력마저 독으로 작용하는 놈들이라 최대한 고통만 주는 편이죠.""

 ··· ···""

 그냥 말을 말아야겠다. 나는 말없이 케이트의 뒤를 따라갔다."

 분명 등불로 환히 밝혔음에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심문실. 현자는 VVIP(?)에 달하는 귀인이다보니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철컥-"

 시간이 흘러 육중한 철문으로 잠겨있는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철문 양옆에는 이단심문관으로 추측되는 성직자가 지키고 있다."

 나는 엄숙한 느낌을 풍기는 이단심문관들을 힐끔거리는 것도 잠시,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주인공이 왔군.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다네.""

 이윽고 철장을 사이에 두고 포박돼 있는 현자와 마주할 수 있었다."

 고문을 받았다는 것과 달리 겉보기에는 꽤 멀쩡해보인다. 다만 얼굴에 털이란 털은 죄다 불에 타 없어진 상태다."

 드르륵-"

 나는 현자의 빈정거림에 대답하지 않고 의자를 끌어 그와 마주했다. 옆에는 케이트가 호위 격으로 기립해 있었다."

 그렇게 미묘한 대치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쯤, 내가 현자에게 물었다."

 현자님.""

 뭐지?""

 지금 필요한 건 한 가지."

 만물의 아버지가 고자라던데 정말인가요?""

 도발이었다."

 지금도 현자의 눈과 귀로 지켜보고 있을 테니 언제 나오나 보자."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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