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64)화 (665/763)

 어찌보면 내가 '종교'로 탄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지구의 과학으로도 절대 설명이 불가능하다."

 다른 세상의 영혼이 이곳으로 넘어와 문명을 부흥시켰다? 이건 정말로 '신'만이 가능한 일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케이트는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내 손을 조용히 붙잡았다. 그리고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합니다. 아이작 님.""

 ··· ···""

 앞으로도 제가 곁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말씀만 하세요.""

 케이트 씨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요?""

 그리 물으니 케이트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저에게 씨앗을 주실 건가요?""

 ··· ···""

 장난입니다. 나중에 체리와 함께 받도록 하겠습니다.""

 체리의 의견도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니냐, 라고 되묻고 싶다. 나는 쓰게 웃었다."

 일단 나중에 오해 아닌 오해를 풀어야 할 듯싶다. 만약 그때도 체리가 동의한다면 뭐······"

 '천천히 생각하자.'"

 지금은 다가올 내일을 기약하는 거다. 나는 케이트를 끌어당겨 살포시 안아줬다."

 케이트도 말없이 나에게 푹 안겼다. 이리 안으니 생각보다 작다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그녀의 심장 소리가 크게 느껴졌으며, 점점 더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오늘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 푹 쉬도록 하세요. 케이트 씨.""

 네.""

 나는 등을 토닥거리며 케이트가 잠에 들 수 있도록 도와줬다."

 점점 강하게 뛰던 심장 소리도 머지않아 느려졌다. 이윽고 귀에 들려오는 고른 숨소리."

 그녀가 잠에 빠져들었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꾸준히 등을 두드리며 평온을 전달했다."

 '며칠 후면 해명해야 할 것도 많겠네.'"

 폭풍전야나 다름없던 하루가 흘러가고, 나와 케이트는 스타비르크를 떠났다."

 그리고······"

 [스타비르크의 새로운 지도자, 아살라. 우리는 악마 숭배자에게 농락당했다. 하지만 제논 덕분에 스타비르크는 구원받았다.]"

 아살라가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저택으로 돌아와 한창 바가지를 긁히고 있을 때였다. 아살라가 묻고 따지지도 않고 정면돌파를 실시했다."

 스타비르크도 사실 악마 숭배자에게 농간을 당했고, 하마터면 스타비르크 민족 전체가 제물로 바쳐질 뻔했다고."

 여기서 현자는 어떻게 표현했느냐. 재미있게도 현자 또한 악마 숭배자의 피해자로 둔갑시켰다."

 악마 숭배자가 뒤에서 스타비르크를 알음알음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희생자라는 식으로."

 또한 극단주의자들, 그러니까 하얀 손들이 악마 숭배자와 결탁하여 스타비르크를 파멸로 몰아넣을 계획이었다며 누명을 씌웠다."

 [극단주의자들은 모두 처형했다. 속속 나오는 증거물들.]"

 [스타비르크 또한 악마 숭배자에게 피해를 입은 지역 아니, 나라였다.]"

 [세이비어도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전쟁의 시작점이 될 뻔한 스타비르크는 더하면 더 했을 것.]"

 이러한 정면돌파가 제대로 먹혀들었다. 아무래도 스타비르크보다 더 심한 선례가 있다보니 다들 납득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타비르크를 용서할 수 있느냐. 이건 별개의 문제여서 처우가 상당히 곤란했다."

 어찌 됐든 간에 스타비르크의 민족성을 이용해 나를 해칠 뻔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극단주의자들을 모두 처리해도 그 찜찜한 느낌을 어떻게 처리하기 힘들었겠지."

 [스타비르크로 직접 찾아가서 헬리움·세이비어 연합군을 가로막은 제논. 이 전쟁을 막으러 왔다.]"

 타이밍 좋게도 이런 기사가 수루룩 나오기 시작하더라. 아무래도 각 국가마다 의논하느라 늦어진 모양이다."

 아살라야, 최고 지도자라서 곧장 결정할 수 있던 거고. 행동력이 유달리 빨랐던 것도 있다."

 [제논의 충격 고백. 피와 강철은 실존하는 세계이며, 자신은 그 세계에서 넘어온 사람이다.]"

 [이와 비슷한 전쟁이 발생하기 전에 연합군을 막은 것. 지나간다면 손목을 자르겠다고 밝혀······]"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피와 강철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또다른 세계의 이야기인 것인가?]"

 [너무나도 현실적이었기에 비현실적이었던 피와 강철.]"

 당연하게도 세상은 큰 충격에 휘말렸다. 내가 신들이 데려온 영혼이라는 것만으로도 뒤집어졌는데 이제는 그걸 한참 넘어섰다."

 피와 강철은 좋든 싫든 이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사상부터 시작하여 인간의 적나라한 광기까지."

 이것이 모두 실화를 기반으로 뒀다는 건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반지의 제왕이 다른 세계의 실화였다는 소리와 같다."

 그러나 여태까지 부족했던 부품들이 딱딱 들어맞는 느낌이라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발상을 꺼낸 것? 다른 세계에서 왔으니 가능하다.]"

 [전혀 생각치 못한 문화를 퍼뜨리는 것? 다른 세계에서 왔으니 가능한 일이다.]"

 [역사에서 이상한 일이 발생한 이유가 드디어 나왔다. 제논은 다른 세상에서 온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장난식으로 말하는 게 있다. 나는 훗날 역사학자들에게 두고두고 씹힐 위인이라고."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어느 기점부터 세상이 요동쳤다. 참고로 제논 일대기가 첫 등장했을 때가 3년 전이다."

 불과 3년만에 역사의 흐름이 미친듯이 뒤틀린 것이다. 개연성 따위는 밥 말아먹다 못해 아예 사라진 수준."

 과학을 넘어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저 사실이 밝혀지니 나름대로 납득한 것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 직접 나선 제논. 최악의 전쟁을 몸소 경험했기에 누구보다도 경계했을 것이다.]"

 [광기의 시대를 두 눈으로 지켜봤으니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 것.]"

 [전쟁은 살아남았다고 안심할 수 없다. 몸은 현실에 있으나 정신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그것이 전쟁이다.]"

 겸사겸사 자기들 멋대로 나를 2차 세계 대전 참전자로 추측하더라. 이런 착각은 할만하다."

 나에게도 꽤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라 따로 해명하지 않았다."

 애당초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잘하는 상황이다. 이제는 내가 나서도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마족을 구원한 이유가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마족도 유대인처럼 아무 이유없이 학살당했을 수도 있다.]"

 [드워프 공장들에게 혁명의 바람을 불어넣은 것도 불합리함의 극치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기 때문.]"

 여태까지의 행보가 절묘하게 겹쳐지기도 해서 내 위상은 끊임없이 상승했다."

 물론 부작용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특히 피와 강철이 실제 세계를 기반으로 둔 이야기임이 밝혀지면서 애매해진 게 있다."

 [나치 독일 또한 실제로 존재하는 집단이라면, 장난이나마 따라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바로 나치 독일 모방이다. 나치 독일은 존재해서는 안 될 악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동시에 매력적이다."

 '이 녀석도 사실 좋은 녀석이었어'라는 클리셰는커녕 무조건 비난받아야 마땅할 악의 축. 그렇기에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홀로코스트 등장 이후 나치 독일을 따라하려는 사람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특유의 멋은 사라지지 않아 모방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사상 같은 쪽이 아니라 디자인 쪽이다. 아무래도 나치 독일의 군복, 그것도 제복의 디자인이 맛깔나는지라 인기가 많다."

 덕분에 디자인적으로도 큰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으며 홀로코스트가 발발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사상에만 빠지지 않으면 그만이니."

 하지만 피와 강철이 실화라는 게 밝혀지면서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니 우리는 상관없다. 사상에 동조하지는 않아도 제논 축제처럼 놀면 되지 않은가?]"

 [이미 다른 세계에서 온 인물이 존재한다. 제논을 위해서라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지구의 일이니 상관없다는 쪽과 그래도 내가 있는데 최대한 언급을 피하자는 쪽으로 나뉜 것이다."

 사실 이게 가장 애매하다. 만약 지구에서 나치 독일 코스프레를 한다? 욕 쳐먹기 딱 좋다."

 특히 폴란드에서는 오른팔 한 번 잘못 뻗는 순간 그대로 집단린치 당하는 게 일상이다."

 당장 대한민국만 하더라도 일장기 하나로 크게 격분하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이 같은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

 [제가 살던 세상에서 나치 독일은 악마 숭배자와 비슷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이 악마가 된 이유는 히틀러와 사상 때문이지, 그들이 만든 제품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그들이 잊혀지지 않고 두고두고 회자됐으면 좋겠습니다. 평생동안 그들의 악행이 잊혀질리 없도록.]"

 침묵을 고수하여 존재가 잊혀지기보다는 차라리 꾸준히 인지되는 게 낫다. 사상이 위험한 거지 다른 건 괜찮다."

 단, 코스프레만큼은 주의해라. 허허 웃으며 넘어가는 사람이 있겠지만 눈쌀을 찌푸리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저런 식으로 딱 잘라 말하자 논란을 재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직접적인 표현은 삼가하되, 다르게 표현하는 식으로 말이다."

 '욕 먹기 전에 해결해야지.'"

 지구의 최고신께서 나치식 인사가 퍼지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보나마나 천벌을 내릴 생각만 하겠지."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조치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들도 껄끄러워하는 분위기였고."

 이후로는 자기들끼리 떠드느라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스타비르크. 우리를 구원해준 제논을 위한 성지를 건설할 것이다.]"

 저거 하나 빼고. 갑자기 나를 위한 성지를 짓는다길래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알고보니 내가 연합군을 막았던 자리에 사원을 짓는다더라. 이걸 듣고 얼마나 어이없었는지."

 사실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때 그 반응을 보면 종교가 되고도 남았으니까. 하지만 이리 빠를 줄은 몰랐다."

 '괜찮은······ 건가?'"

 말만 성지지 사실상 기념비나 다름없다. 저것이 실제로 신전과 같은 역할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겠지."

 더구나 종교의 중심이 될 '교리'조차 거의 전무한 수준이라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누가 작정하고 성경 같은 책을 쓰지 않는 이상 '종교'가 되기까지 험난한 세월이 걸릴 예정이다."

 이렇듯 한순간에 다사다난한 일들이 터지고 있을 때쯤, 어느 한 의문이 튀어나왔다."

 [어째서 피와 강철 속 세계의 신들은 방관을 선택한 것인가?]"

 나조차도 의문을 지녔던 부분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나도 말해줄 수 없는 부분이다."

 지구의 신들은 어째서 인간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선사한 것일까. 그들도 이것이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을 터."

 아마 이건 지구의 신들만이 알고 있겠지. 지금 내가 신경 쓸 건 아니다."

 지금 내가 신경 써야할 건 단 하나."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죠?""

 없는데? 너무 편해서 평생 여기 있고 싶을 정도야.""

 그럴 거면 빨래나 좀 도와달라니까요.""

 너무해.""

 진정한 의미의 잉여신이 되어버린 모라와 어떻게 지내야 하느냐다."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를 소개시켰다. 앞으로 여기서 지내야 할 텐데 뒤로 미룰 수는 없다."

 당연하게도 다들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난데없이 등장한 여자가 사실은 여신이다?"

 정신에 문제가 있나 의심하겠지, 덜컥 믿지는 않는다. 그래도 천천히 설명하니 고개를 끄덕이더라."

 여신이긴 여신인데 아무런 힘도 없는 여신. 신도들에게 신성력을 주는 건 괜찮아서 신성에 문제가 갈 일은 없다."

 그래서 나는 왜 찾아온 거야?""

 침대 중앙에 앉아있는 모라가 나에게 묻는다. 그녀는 돌아갈 때까지 손님방에 머물기로 정했다."

 나는 기이하게 반짝이는 그녀의 흑안과 마주하면서 전에 있던 일을 털어놓았다."

 지구의 신들께서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악마 숭배자에게 당할 뻔한 순간에서요.""

 역시 그랬구나.""

 알고 계셨나요?""

 지금 네 몸에도 느껴지는 걸?""

 모라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 잠깐의 시간동안 기운이 덮힌 모양이다."

 보아하니 대표들이 온 모양이네. 맞지?""

 네. 그나저나 그런 것도 느낄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지. 그들처럼 독특한 신성력을 가진 신들은 별로 없거든.""

 독특한 신성력이라. 어째서 독특하다고 말한 걸까."

 일단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혹시 무단으로 침입했다고 해서 항의하시지는 않으셨죠?""

 우리가 어떻게 항의를 하니? 오히려 고마워해야지. 네가 스타비르크로 간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거든.""

 그러면 하나만 물어볼게요.""

 사실 이게 가장 의아한 부분이다. 어째서 스타비르크는 신들조차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던 걸까."

 누군가 임의로 막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바다가 아닌 땅에 한해서는 영향력을 끼쳐야 된다."

 현자에게 들었어요. 스타비르크 민족이 숭배하던 신이 있다고.""

 ··· ···""

 불과 대장장의 신, 달로스.""

 나는 잊혀신 신을 언급하며 질문을 날렸다."

 그 분은 완전히 소멸된 게 아니죠?""

 현자에게 들었을 때부터 의아함이 들었다."

 어째서 현자는 소멸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과 대장장이의 신, 달로스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또한 스타비르크 민족은 어째서 대멸망으로부터 존속을 유지할 수 있던 걸까. 무언가 앞뒤가 안 맞는다."

 더구나 수인과 드워프는 다른 신이 창조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들은 멀쩡히 존재한다."

 전에 모건 왕이 저에게 말했어요. 신을 완전히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그 신을 믿는 신도들을 전부 소멸시켜야 된다. 신을 믿는 자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이런 식이죠.""

 맞아.""

 하지만 스타비르크의 현자, 아니지. 악마 숭배자는 불과 대장장이의 신을 기억하고, 심지어 이름까지 밝혔습니다. 존재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내 설명에 모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이상 부정할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너무 멀리 와버린 상황이다. 이제 와서 거짓말을 해봤자 모순이 더 늘어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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