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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세상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법 (662)화 (663/763)

 통하고 나발이고 그 과정에서 인류가 반드시 멸망해야 되잖습니까. 그걸 눈 뜨고 지켜보라고요? 말도 안 되지.""

 솔직히 말해 사상적 대립은 이미 끝났다. 이 세상은 지구와 다르게 신이 엄연히 존재하는 세상으로 남을 것이다."

 만물의 아버지가 부활해도 의미는 없을 것이다. 막무가내로 인류를 멸망시키겠다는데 과연 그 누가 동의할까."

 설령 그 과정 속에서 루미너스의 과거가 밝혀져도 상관없다. 일단 악마 숭배자가 숭배하는 것만으로도 답이 나온다."

 포기하세요. 당신들이 숭배하는 만물의 아버지께서는 졌습니다. 부활하여 이상향을 이루고 싶어도 안 될 거예요. 끔찍한 희생만 동반될 뿐이죠.""

 과연 그럴까? 그럼 내가 하나 묻도록 하겠네. 만물의 아버지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알고 있나?""

 제물?""

 당연하게도 제물이 필요하지 않나. 무려 봉인된 창조신을 부활시키는 건데 그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내 대답이 정답이었는지 현자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였다."

 정확히는 풍부한 '신성력'을 지닌 제물이라네. 세이비어 교국에 숭배자를 심은 것도 그 이유지.""

 타락한 추기경, 바크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 쏠쏠한 제물을 얻을 수 있었는데 누구 덕분에 공급이 끊겼지.""

 공급은 개뿔, 나라 하나를 박살낼 뻔한 주제에 말도 참 많다.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세이비어 입장에서는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자칫하다가 일반 성직자를 넘어 같은 추기경까지 위험했을 수도 있으니."

 오죽하면 신들조차 이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칭찬했던 걸로 알고 있다. 겸사겸사 케이트의 광신 아니, 신성력도 대폭 증가했다."

 이제는 그만한 공급을 찾기 어려우니······""

 현자의 목소리는 이때까지만 해도 평범했다."

 [이제 네가 그것을 대신하면 되겠구나.]"

 다음부터는 노이즈가 상당히 끼어있었지만."

 이상하다 못해 불쾌하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흠칫거렸다."

 그와 동시에 현자로부터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검은색과 푸른색이 두루 섞여 심연을 표현하는 것 같은 기운."

 위험하다. 나는 그 생각을 들자마자 의자를 뒤로 슬금슬금 끌어 멀어졌다."

 ······절 제물로 바치려고요?""

 [아니. 제물로 바치기에는 살이 오르지도 않았잖나.]"

 무슨 가축을 키우는 것도 아니고 살이 올랐다고 말하는 거야. 정말이지 정감이 하나도 가지 않는다."

 [이곳에 조만간 너를 숭배하는 종교가 세워질 터. 그러면 너에게도 조만간 신성이 생기겠지. 아니, 지금도 약하게나마 느껴져.]"

 ··· ···""

 [내 친히 너를 만물의 아버지께로 인도해주마.]"

 짝!"

 현자가 두 손을 맞잡으며 하늘 높이 뻗는다. 마치 누군가에게 기도를 하는 것 같은 모양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지체없이 행동에 나섰다. 가장 먼저 의자를 들어 놈에게 집어던졌다."

 콰직!"

 하지만 이미 대비를 해놓았는지 불투명한 막이 현자를 보호하고 있었다. 심연처럼 검푸른색의 알음알음 띄는 보호색이다."

 [세상의 진정한 창조주이자 바다를 탄생시킨 분이여.]"

 그와 동시에 현자가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노이즈가 강하게 끼던 목소리는 아예 기계음처럼 울린다."

 나는 어떻게든 방해하기 위해 온갖 잡동사니를 집어던졌다. 그러나 반투명한 보호막은 도통 깨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끈!"

 악!""

 어느새 방 안을 거의 다 채운 검푸른 기운. 그러자 갑작스러운 두통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만 두통이 이는 걸 보면 세뇌 관련 쪽인 건 반쯤 확실하다."

 아마 알게 모르게 세뇌시켜서 훗날 제물로 바쳐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겠지."

 가축처럼 살이 토실토실하게 오르는 걸 기다린다 했으니 그럴 것이다."

 '누구 마음대로.'"

 최대한 이곳을 빠져나갈 궁리를 세웠다."

 하필이면 스타비르크는 신들의 영향력이 옅은 지역이라 알아서 타파해야 된다."

 가능하면 케이트가 이 사실을 알아챘으면 좋겠지만 그건 힘들어 보인다."

 저 현자가 풍기는 기운은 그 자체만으로도 케이트의 신성력을 앞섰으니까."

 어쩌면 만물의 아버지를 숭배하는 자들만이 갖는 신성력일 수도 있다."

 옛날에 모라가 케이트의 신성력이 두 번째로 높다고 했는데 어쩌면 저 현자를 염두하고 말한 걸 수도 있다."

 [한낱 미천한 종이 부탁합니다. 부디 저 어린 양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힘을 내려주소서.]"

 죄송한데 제가 죽으면 이 세상은 멸망하는데 괜찮아요?""

 [오오! 어린 양이여! 경배하라! 그 분께서 너를 원하신다!]"

 사실을 밝혔는데 좆까라는 대답만 돌아오는구나.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어떻게든 문을 발로 차고 온갖 지랄을 하는데도 빠져나갈 수가 없다. 이건 창문도 다를 바가 없더라."

 무기가 될만한 걸 찾아 놈의 머리를 강타하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검푸른 기운이 방 내부를 다 채워버렸다."

 [경배하라. 경배하라. 경배하라.]"

 [경외하라. 경외하라. 경외하라.]"

 [만물의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니, 너에게 은총을 내려주시리라.]"

 모든 구조물이 사라진 검푸른 공간에서 나와 현자만이 남게 됐다."

 현자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리며 나는 그걸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지끈! 지끈!"

 으으······""

 아까의 두통이 더욱 심해진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어떻게든 버티고 또 버텼다."

 건강한 신체도 의미가 없었다. 이건 건강한 신체가 아니라 건강한 정신을 얻어야 되는 거겠지."

 [귀를 기울여라. 만물의 아버지이자 세계의 창조주가 그 존함을 밝히신다.]"

 머리가 아픈 상황에서도 놈의 목소리는 귀에 똑똑히 들어왔다."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마치 머릿속에서 울리는 느낌이다."

 [그 분의 존함은······]"

 이윽고 절대 들어서 안 될 것 같은 이름이 나오려던 찰나."

 대앵!"

 웬 알 수 없는 타종 소리와 함께."

 [끄억?!]"

 현자가 돼지 멱 따먹는 소리를 내며 이름을 밝히다 말았다. 그와 동시에 두통도 완전히 사라졌다."

 뒤이어 감았던 눈을 살금살금 뜨니 눈을 의심케 만들 상황이 펼쳐졌다."

 현자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아니, 찌부러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납작해졌다."

 무엇보다 그런 그를 강하게 짓누르는 건."

 ······손바닥?""

 황금색으로 빛나는 손바닥이었다."

 나는 황금색 손바닥 밑에서 바둥거리는 현자를 멍하니 쳐다봤다. 당최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스타비르크는 루미너스와 모라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고, 더 나아가 현자는 이곳에 올 때부터 판을 짜놓았다."

 사실상 도망칠 구석이 거의 없었다. 현자와 1대1 면담을 하는 것부터가 퇴로란 퇴로는 전부 막혔다는 뜻이니."

 애당초 현자와 대화를 나누기 전에 그가 악마 숭배자, 그것도 고위층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안일한 게 아니라 운이 없다고 봐야겠지. 신의 눈조차 피하는 게 악마 숭배자다."

 말을 질질 끈 것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케이트나 아살라가 온다면 어떻게든 해결했겠지."

 '그런데 저건······'"

 위기에 순간에서 타종 소리와 함께 현자를 짓누른 황금빛 손바닥. 손바닥의 크기만 보더라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손바닥에 비해 현자의 크기는 겨우 새끼 손가락만하다. 빠져나갈 구멍 같은 건 전혀 없다."

 설마 루미너스가 위기를 느끼고 온 건가 싶었을 때, 어느 한 목소리로 공간 전체에 울려퍼졌다."

 [어리석은 중생이로구나. 자고로 깨끗한 마음에서 진정한 신앙이 나오는 것이거늘.]"

 엄격한 말투와 달리 중저음의 목소리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게 이런 건가."

 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잠깐 멍해진 것도 잠시, 그 말을 듣고 화들짝 놀라 앞을 다시 쳐다봤다."

 황금색 손바닥과 그전에 들렸던 타종 소리. 마지막으로 목소리에서 언급된 '중생'."

 이것들을 하나로 종합했을 때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부처님?""

 [오랜만이구나. 아이야.]"

 현자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했을 때와 달리 세상 온화한 목소리로 반겨주셨다."

 정말로 내가 알던 그 부처님이 맞는지 혼란스럽다. 지난번 아리엘의 실수로 신성을 섭취했을 때 딱 한 번 봤다."

 심지어 얼굴을 대면한 게 아니라 멀리서 지켜봤을 뿐이다. 악마 숭배자의 농간으로 내 영혼이 넘어왔을 때의 상황 말이다."

 '······설마 이 세상 멸망하는 건가?'"

 루미너스가 말했다. 지구신들이 이곳으로 넘어오는 건 세상이 멸망하는 것과 같다고."

 정황상 내 목숨이 위험해지자 난입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간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아니란다.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황에서는 우리가 직접 나설 거라고 했단다.]"

 끄으으윽······!""

 설명하는동안 현자가 앓는 소리를 낸다. 아직까지 여래신장에 묶여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다."

 [다만 우리가 직접 나서는 경우는 이처럼 한정적인 경우밖에 없을 거란다. 저 자는 너를 완전히 취하기 위해 술수를 부렸지만 우리가 개입할 여지를 만들었거든.]"

 지금 이 공간이 현실과 다른 공간이라는 건가요?""

 [네가 태양과 달과 만날 때 드나드는 공간과 비슷한 구조라고 보면 된단다.]"

 태양과 달이라함은 루미너스와 모라를 말하는 건가. 부처님답다면 부처님다운 비유다."

 아무튼 생각보다 현자의 능력이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시간이 걸리긴 해도 공간을 바꿀 수 있다."

 만약 부처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발악에 지나지 않았겠지.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경우는 앞으로 거의 없을 거란다. 지금은 특수한 경우거든.]"

 나는 물론, 신들조차 예기치 못한 사태를 말하는 것 같다. 그 누가 스타비르크에 악마 숭배자 고위 간부가 있을 거라 생각했겠나."

 더구나 현자는 스스로 악마 숭배자임을 밝히기 전까지만 해도 '현자'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잊혀진 불과 대장장이의 신, 달로스에 대한 이야기도 말하지 않고 얌전히 때를 기다렸다."

 포교를 하고 싶어도 민족 단위로 박힌 거부감 때문에 힘들었겠지.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럼 저 사람은······""

 끄아아아악!!""

 현자는 어떻게 처리하는 건지 물어보려던 찰나, 현자가 전에 없던 비명을 터뜨렸다."

 화들짝 놀라 그를 쳐다보니 어느새 여래신장은 사라져 있었다. "

 대신에 은색으로 빛나는 십자가 모양의 기운이 각각의 손발에 꽂혀있을 뿐."

 저건 누가 했는지 알 것 같네. 이에 조심스레 하던 말을 이었다."

 ······어떻게 되는 건가요? 직접 처벌하시는 건가요?""

 [거기까지의 권한은 없단다. 우리가 떠나도 능력을 펼칠 수 없도록 조치하는 거지.]"

 그렇구나. 하긴 지구신들이 떠나가는 즉시 현자가 나에게 달려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조치를 하고 떠나는 게 마음 편할 터."

 [떠나기 전 약간의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겠지. 그렇지 않느냐?]"

 부처님의 온화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아닌, 근엄함과 자애로움이 동시에 묻어나오는 목소리가 들렸다."

 현자의 손발에 꼬챙이처럼 꽂힌 은색 십자가 기운을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지구에서 70% 이상이 믿는 종교의 주인. 십자가에 매달려 모든 죄를 짊어진 성자."

 전 상관없어요. 저와 무슨 말을 나누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나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죄를 짊어졌으면 좋았을 것을. 이 말을 하려고 했다.]"

 ······처음부터 무시무시한 농담을 하시네요.""

 내가 떨떠름하게 말하자 호탕한 웃음소리가 공간 내를 가득 메웠다."

 성서에서도 힘이 느껴지는 구절이 많았는데 실제 성격도 강직한 모양인 것 같다."

 반대로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호칭처럼 다정한 성격이시다. 물론 내가 그리 생각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같은 종교 내에서도 다양한 해석이 갈리는데 내가 어찌 확답할 수 있을까. 이것만큼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저와 무슨 말을 나누고 싶으신 건가요?""

 [진짜 성자가 된 기분이 어떻느냐? 조만간 신성도 완성될 거라고 보고 있다.]"

 그냥······ 떨떠름한 기분이네요. 두 분께서는 어떠셨어요? 어떻게 해야 진정한 성자가 될 수 있는 거죠?""

 종교적 해석으로 갈리긴 해도 예수와 부처 모두 인간의 몸으로 성자가 되고, 더 나아가 하나의 종교가 된 분들이다."

 양심이 찔리다 못해 터진 수준이지만 대선배격이라고 봐야되겠지.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깨달음을 얻으면 된단다.]"

 [난 아버지의 말씀을 전달했을 뿐.]"

 아······ 네······""

 그들답다면 지극히 그들다운 대답만이 돌아왔다. 실질적인 조언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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